서산, 의성, 안동, 익산, 경주로 이어지는 이번 3권의 부제는 '말하지 않는 것들과의 대화'입니다.
책 속에 그 제목에 대한 이야기를 이렇게 소개합니다.

삼불 선생의 글속에 서려있는 이러한 철학적 사색과 예리한 직관력에 감복하면서 나는 당신께서 고고학이 '죽은 사람들과의 대화'라고 했다면 내가 하고 있는 미술사는 '말하지 않는 것과의 대화'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지금 나는 바로 그 제목을 걸고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p.290

조선 후기 회화사가 전공이라는 유홍준 선생님은 군대 시절에도 본인이 좋아하는 회화전 기간에 맞추어 휴가를 나와, 휴가 기간 내내 박물관에서 살았던 분입니다.
그에게 있어 '문화유산'이란 어떤 의미인지도 이 책 속에서 엿볼 수 있었습니다,

언제 보아도 미륵사의 그 무너진 탑은 정말로 아름답다. 아름다움이라는 또 다른 진실을 담지하고 있는 저 미륵사탑을 보면서 내 마음과 서정을 거기에 동화시키면서 갈무리하는 것은 그 또한 또다른 수도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래서 남들이 절을 찾고, 교회를 나가듯 나는 아름다운 문화유산을 찾는다.
p.225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사랑할 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텍스트를 통해 조금씩 느끼며 알게 된 도산서원을, 서산 마애삼존불을, 무령왕릉을 꼭 한번 찾아가 오래도록 느끼고 감상해보고 싶어집니다.
고등학교 시절 수학여행으로 찾아가 아무런 감흥도 없이 쓰윽 지나쳐온 경주 불국사도 유람하고 싶어집니다.
그러고 보면 여러 곳에 '가 본적'은 있으나 진짜 '보고 느끼고' 온 곳은 전무해 보입니다.

말하지 않은 것들과 대화하는 수준은 아니어도 수줍게 눈이라도 마주칠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요....


제사는 가문의 결속과 질서를 세우는 중요한 형식으로 작용한다. 그러니까 제사는 죽은 조상을 통한 산 자손들의 만남이라는 속뜻이 서려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 조상을 구심점으로 해서 집안이 결속한다는 뜻도 있지만 그 조상을 공경함으로써 자신을 항시 반성하면서 조상에게 부끄러운 일을 해서는 안된다는 다짐의 계기도 되는 것이다. 그것은 인륜의 실현에서 매우 중요한 각성제이기도 하다.
p.145


"... 《삼국사기》백제본기 시조 온조왕 15년. 그러니까 기원전 4년 항목에 이런 말이 나와요. 춘정월에 궁실을 새로 지었는데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았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았다'라는 뜻으로 '검이불루 화이불치'라고 했어! 나는 그것이 백제의 정신이고 백제의 마음이고 백제의 아름다움이고 미학이라고 믿고 있어. 그 말을 새기면서 백제의 유물을 보아봐"
p.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