넬레 노이하우스라고 늘 홈런만 치는 법은 아닌가 봅니다. 하지만 삼진은 아닙니다. 파울입니다. 그날 따라 끈덕지게 투수를 물고 늘어지는 파울 타자는 그만큼 안타를 칠 확률이 높아지는 법입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겠습니다.

 

<사악한 늑대>는 소재 자체가 정말 읽기조차 힘든 아동 학대에 관한 것입니다. 저 역시도 수많은 추리소설을 읽지만 가장 보기도 싫고 읽기도 싫은 주제가 바로 아이들에 관련된 것입니다. 정말 이 소설에 나오는 사악한 늑대들이 아직도 이 세상에 존재한다면 이들이야말로 인간이 아닌 동물의 탈을 쓴 짐승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자식이 있는데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이 책은 넬레 노이하우스의 파격이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앞서나간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예전에 느꼈던 자연스러움 보다는 당혹스러움이 좀더 앞섭니다. 기존의 타우누스 시리즈에 단골처럼 출연했던 단골 캐릭터 들도 왠지 모르게 낮설어 보이고...전체적인 구성은 건드리지 않았으면 더 좋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 시리즈 역시 타우누스 시리즈가 가지고 있는 장점들은 모두 잘 살아 있습니다. 알듯 모를 듯한 사건의 전개, 그리고 시간이 지날 수록 귤껍질이 벗겨져 나가듯 조금씩 드러나는 전모, 그리고 사건의 뒤에 도사리고 있는 거대한 음모까지 손에 땀을 쥔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몰입감을 전개하는 스토리입니다. 소재의 끔찍함 때문에 보는 내내 가슴이 답답해서 그 점이 아쉬울 뿐이었습니다.

 

피아 키르히호프 형사는 이제 거의 원톱 주인공으로 올라온 느낌입니다(원래도 그랬나??). 우리 불쌍한 보덴슈타인 반장의 역할은...크뢰거라는 새로운 감식반 반장이 도리어 더 큰 역할을 할 정도니...작가가 왜 이리 보덴슈타인을 홀대하는 건지 원망스러울 정도이네요 ㅋㅋ

 

이 책은 전체적으로는 타우누스 시리즈 가운데 분명 낮설은 작품이고 자칫 잘못하면 큰 재미를 느끼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타우누스 시리즈의 퍼즐을 맞추기 위해서는 이 작품 또한 반드시 읽어야 하며 그리고 다른 범작 미스테리에 비하면 훨씬 뛰어나고 재미있다는 점도 인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제 이 시리즈의 남은 작품은 <산자와 죽은자>뿐이네요. 명왕성을 탐험하러가는 호라이즌 호 처럼 이제 마지막 시리즈를 탐험하러 떠나겠습니다.

넬레노이하우스, 방송, 언론, 학대, 변호사

이 소설을 읽고 개인적으로 좀 당혹스러웠습니다. 소설은 소설로만 바라봐야 하는데 도저히 그렇게 하지 못하는 내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이 일본에서 상당히 인기를 끌었던 것 같습니다. 최근 영화화까지 되었고, 작가 개인적으로도 제30회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 신인상ㆍ제62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하였으니 말입니다. 읽어 보니까 아주 걸작은 아니지만 분명 잘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단순한 미스테리 소설이라고는 하나 일본 스파이의 활약상을 다룬 소설을 읽고 기분 좋을 한국인은 아무도 없을 것 입니다. 20세기 초 일본이 펼친 온갖 비밀공작의 가장 큰 희생물은 바로 이 소설에서는 아예 나오지 않는 우리나라 즉 당시의 조선입니다. 이 책은 내용이 아니라 책의 소재가 아무래도 우리나라 정서에는 맞을 수가 없습니다.

 

반대로 일본 독자들은 얼마나 재밌었을까요? 이들은 아직도 과거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제국주의를 건설하고, 한 때는 미국과 맞짱을 떴던 과거를 생각하면 솔직히 가슴 설레고 자랑스러울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반성하라고 해도 인간인 이상 그게 될 수가 없겠죠. 그 이면에 있는 명성황후 시해사건, 위안부 문제, 난징대학살, 관동대지진 학살 등등 이러한 흑역사는 다 한국과 중국이 만들어낸 허위라 치부해버리면 그만일테죠.

 

이 소설도 대놓고 말을 하지는 않지만 이러한 일본의 과거 향수가 뿌리깊게 배여 있습니다. 세계와 어깨를 겨루는(아니 한 수 더 높은) 일본 스파이들의 활약상을 그리는 이 소설에서 저는 일본인이 갖는 그들만의 자부심을 보았습니다. 당시 그들의 수준을 따라잡지 못한 너희가 잘못이라면 입맛이 쓰긴 하지만 왠지 반칙을 당한 축구선수 같은 기분은 어찌할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이제부터 이 소설만 놓고 보겠습니다. 이 소설은 총 5개의 단편을 묶어놓은 장편소설입니다. 메이지 유신 이후 천황을 섬기고 중국으로 야욕을 넓혀가던 그 자신만만했던 시절에 설립된 스파이 양성기관인 D기관과 그 리더인 '유령' 유키 중령과 구성원들의 활약상을 그린 소설입니다. 손에 땀을 쥐는 내용은 없고 온통 그들의 활약상을 지켜보다 보면 시간이 다 가는 그런 내용입니다. 미스테리와 스파이 소설이 접목되었다고는 하는데 그냥 편안히 읽어 보면 되는 그런 내용입니다.

 

일본은 추리소설이 인기를 얻다 보니 이제는 스파이 소설에도 미스테리가 접목되는군요. 이들의 끝은 과연 어디일까요?

일본, 스파이, 제국주의, 천황, 전쟁

조선은 드라마 소재로 쓰기 좋은 정말 무궁무진한 일들이 많이 있었던 나라입니다. 유명 작가가 갖은 상상력을 동원해 글을 써도 만들기 힘든 드라마틱한 스토리로 넘쳐 흐르는 시기가 바로 조선시대입니다.

 

유교를 학문을 뛰어넘어 하나의 종교로 섬기듯이 했던 조선은 결코 조용했던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개국초기부터 형제간의 칼부림을 시작으로 삼촌이 조카를 죽이고, 수백명의 신하를 죽인 연산군이 나오더니 왜란과 호란으로 전 국토가 유린당했고 그 후로도 왕이 아내를 죽이고, 아들을 죽이고, 신하들은 자기들끼리 싸우며 서로의 입장이 다르다는 이유로 또 죽이고...결국은 일찍 근대화를 이룬 일본에 나라 전체를 저항다운 저항한번 해보지 못하고 뺏겼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조선의 역사는 우리나라 5천년 역사 중 가장 발전이 더딘 암흑기였다고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고려같은 개방적인 사회가 이어졌다면 우리나라도 서양문물을 일찍이 접하고 동아시아를 주름잡는 제국으로 성장했을지도 모릅니다. 역사에는 만일이라는 말이 다 헛 것이라는 점은 잘 알지만 아무래도 아쉬운 것은 사실입니다.

 

<영조를 만든 경종의 그늘>은 역사책이라고 하기엔 다소 불편한 점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역사책은 객관적인 서술을 바탕으로 읽는 이로 하여금 지식을 읽히고 스스로 판단을 하게 하여야 하는데 저자의 주관을 다소 강요하려는 듯한 느낌이 있습니다.

 

물론 저자의 시각도 수긍이 갑니다. 경종이 아무리 병약하고 부족했던 왕이라 할 지라도 신임사화에서 보여준 노론에 대한 상당히 과격한 처벌을 보면 동생인 연잉군(훗날 영조)를 죽이고자 했다면 방바닥에 앉은 모기를 죽이는 것보다도 더 쉬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경종은 연잉군을 사실상 보호해 주었고, 그가 훗날 왕이 될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아마도 경종은 골육의 정과 함께 나름 왕조의 미래에 대해서도 고민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갈수록 적통을 이은 왕족은 적어지고(조선시대 왕족의 목숨은 그야말로 파리목숨이나 다름 없습니다), 본인이 후사도 기약할 수 없는 몸 상태라 비록 배다른 동생이고, 생모 장희빈을 죽인거나 다름없는 숙빈 최씨의 아들이지만, 연잉군이 아니면 후사를 이을 사람이 사실 없다는 것도 연잉군을 살려둔 중요한 이유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럼 후세에 경조를 독살한 것으로 사실상 믿어지고 있는 영조는 어떠할까요? 영조가 왕이 된 뒤에 형인 경종을 그리워하는 것도 일견 진실성이 느껴집니다. 얼마나 고마웠겠습니까. 말 그대로 영조는 한 때 하루하루 죽기만을 기다려야 하는 시기도 있었습니다. 경종의 손가락 하나만 까딱하면 김일경을 비롯해 연잉군이라면 이를 가는 소론 강경파들에게 바로 죽임을 당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형은 그러지 않았고 영조는 결국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영조가 경종 독살설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솔직히 그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추리소설을 좋아합니다만 영조에게는 형에 대한 우정을 떠나 경종이 하루빨리 죽어야만 하는 크나큰 동기가 있었습니다. 왕이 되고 말고를 떠나 경종이 죽지 않으면 본인의 목숨이 온전할 수가 없다는 인간의 가장 본질적인 범행동기인 셈이지요. 누가봐도 경종이 빨리 죽어야 자기가 살 수 있는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솔직히 경종이 4년만에 죽지 않았다면 과연 영조가 왕이 될 수 있었을까요? 사람은 변덕스러운 동물입니다. 영조가 왕이되면 자기들의 목숨 뿐만 아니라 가문이 절멸될 것을 뻔히 알고 있는 김일경을 비롯한 소론 강경파들이 경종을 설득해 어떻게든지 영조에게 위해를 가했으리라는 것은 사실 불보듯 뻔합니다.

 

경종의 총애를 받던 환관 박성검 등의 무리를 당시 세제였던 영조가 소론 온건파 대신들을 이용해 죽여버린 것도 적은 의미가 아닌 것이라 느껴집니다. 아마 이때 궁궐에서는 중신은 물론이고 환관이나 궁녀들 사이에서도 몸이 약한 경종을 보며 내부적으로 누구 편에 설 것인지 분주했으리라고 봅니다.

 

환관 박성검 등은 말 그대로 경종에게 올인한 사람들입니다. 노론의 말이 전혀 먹혀들지 않는 이러한 사람들이 없어지면 경종을 보호하는 울타리는 사라져 버리는 셈이죠. 소론 대신들 조차도 연잉군이 왕이 될 걸 확신하고 몸을 사리는 상황에서 과연 누가 경종을 지켜줄 수 있었을까요? 경종이 그답지 않게 박성검 무리의 처벌을 주저한 심정을 저는 잘 알 것 같습니다. 

 

이후 경종이 병세가 악화되어 죽기까지의 영조의 행적은 후세사람들에게 충분히 의심을 살만한 행동들이 있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괜히 스스로가 경종에게 게장과 감, 부자 인삼탕 등을 올릴 필요가 있었을까요? 식약청을 설치하고 어의에게 전 과정을 맡겼으면 훗날 별 말이 없었을텐데 형제간의 우애가 넘치다 보니 경종의 환후에 그리 적극적으로 동참했다는 것은 왠지 설득력이 약한 것 같습니다.

 

이후 영조는 탕평을 주창하며 각 당파의 고른 인재등용을 실시하려고 노력하지만 결론적으로 영조의 조선은 노론의 나라였습니다. 영조 반대를 외친 김일경은 본인은 물론 혹시나 살아남은 후손까지 찾아 죽이라는 영조의 지시로 말 그대로 일족이 사라졌고, 이인좌의 난 이후 소론은 스스로 와해되어 사실상 더 커질 수 없이 커져버린 노론이 사도세자의 죽음을 두고 벽파(사도세자 비판)와 시파(사도세자 옹호)로 나뉘게 됩니다.

 

역사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지 않았던 시절의 일이라 기록된 것 이외에는 내부적으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무도 알 수가 없습니다. 경종과 영조의 우애가 형제간에 피를 보고야 끝나고 말았던 태종이나 세조, 광해군 등과는 분명 다른 남다름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안에 무슨 생각이 있었는지 그리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이 책의 저자의 생각과 마찬가지로 모든 것이 상상의 자유 속에 맡겨져 있음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경종, 영조, 노론, 소론, 신임사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