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 읽은 <붉은 집 살인사건>에 이어 또 다시 저를 놀라게 한 <라트라비아타의 초상>! 청출어람이라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이제 더 이상 국내 미스테리가 본격 추리분야가 약하다는 말은 하지 않아야 겠습니다. 그 동안 이런 걸출한 국내 미스테리 작품을 읽지 않고 서양과 일본 미스테리만 죽도록 읽어 왔던 제자신의 독서습관에 대해 많은 반성을 했습니다. 일본 본격 미스테리에 시마다 소지, 아야츠지 유키토나 아리스가와 아리스, 노리즈키 린타로가 있다면 우리나라는 도진기 작가가 있다고 해도 전혀 뒤지지 않는다고 자신합니다.

 

우선 작품을 분석해보자면 이 작품 역시 본격 미스테리입니다. 본격 미스테리 중에 알리바이 깨기 트릭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하지만 역시...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한 아파트 거실에 죽어 있는 두 명의 남녀...아파트 현관 CCTV에는 아무런 외부인도 찍히지 않았는데...과연 어떻게 범행이 이루어진 것이며, 범인은 과연 누구인가? 이 것이 이 소설의 핵심입니다. 그 해답이 보일 듯 보일 듯 하지만 결국 손에 잡히지는 않고, 서초구 강력팀장 유현과 함께 어둠의 변호사 고진의 도움을 받으며 책장을 넘기다 보니 어느덧 봉인되어 있는 결말까지 와 버리고 말았습니다.

 

봉인을 뜯고 읽어본 결말은... 정말 깜짝 놀랐고 도진기 작가의 천재성을 다시한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두 권째 읽어보니까 이제 도진기 작가를 완전히 믿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두번째 작품에 오니까 등장인물의 개성도 더욱 뚜렷해진 느낌입니다. 어둠의 변호사 즉 이 시리즈에서 명탐정의 역할을 하는 '고진'은 1편에서의 다소 탐정으로서 약한 느낌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거의 '긴다이치 하지메' 수준의 추리력을 선보이며 사건을 명쾌하게 해결해 보입니다. 강력팀장 유현의 경우에도 열정은 있지만 슬프게도 평범한 추리력 밖에 가지지 못한 경찰의 한계를 인간미 넘치게 보여주며 동정심을 한 껏 불러 일으키는 캐릭으로 성장해 나가고 있습니다.

 

도진기 작가는 정말 정열적으로 많은 작품을 출간하고 있습니다. 하루빨리 다른 작품도 읽어보면서 한국 추리소설의 성장과 가능성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도진기, 라트라비아타의초상, 알리바이, 아파트, 살인

가족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마냥 즐겁고 행복한 이미지만 연상되어야 하는데 실상은 그렇지가 못합니다. 행복과 사랑이라는 포장지로 포장되어있는 가족이라는 단어를 한 꺼풀만 벗겨 보아도 그 안에 얼마나 많은 단어들이 들어있는지 우리는 금새 알게 됩니다.

 

이 세상의 불신가운데 가장 무서운 것은 바로 가족간의 불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서로 피를 나누고, 서로 아낌없이 사랑하며, 집이라는 같은 공간에서 함께 잠을 자고 함께 생활하는 가족간의 불신이 싹튼다면... 그것을 표현하는 가장 시의적절한 단어는 바로 '지옥'이 될 것입니다.

 

토마스 H 쿡은 동네 여자아이의 납치사건을 둘러싸고 붕괴해가는 비극적인 한 가족의 이야기를 그야말로 가슴 여밀 정도로 가슴아프게 써내려가고 있습니다.

 

<붉은 낙엽>은 사실 우리가 잘 아는 추리소설이 아닙니다. 인간의 심리에 대해 냉혹할 정도로 탐구하는 스릴러이자 '에릭 무어'라는 주인공의 과거와 현재의 가족을 대칭적으로 그려내어 그 붕괴 과정을 적나라하게 그려낸 관찰 리포트이기도 합니다.

 

특히 '에릭 무어'가 사건의 용의자로 몰린 아들에 대해 느끼는 심리상태에 대한 묘사는 정말 압권입니다. 아들에 대한 사랑과 이와 비례해 커져만 가는 의혹, 어떻게 해서든 가정을 지키려 하지만 의혹의 포로가 되어 친형과 아내까지 의심하며 점점 미쳐가는 에릭 무어의 모습은 사실상 피 한방울 튀기지 않는 이 소설에서 붉은 단풍낙엽 만큼이나 진한 핏줄기를 독자들에게 선사하고 있습니다.

 

이 소설은 지독하게도 비극입니다. 이 책을 읽은 많은 이들이 주인공인 '에릭 무어'에 대해 욕 할 것 같습니다만 저는 왠지 이 캐릭터에 대해 돌을 던지고 싶지 않았습니다. 에릭 무어의 모습은 사실 이 땅에 살고있는 수많은 평범한 가장들과 상당히 많이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로 나 자신을 포함해서 말이죠.

 

가장은 지게꾼처럼 아내와 아이들의 모든 것을 다 이고 가야하는 존재가 결코 아닙니다. 망망대해를 떠다니는 배의 선장과 선원처럼 가장은 이정표를 제시해 선원들과 함께 무사히 항구에 도착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아내와 아이들 또한 각자의 역할을 다해 아버지와 함께 행복한 항해가 될 수 있도록 도우면 됩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동양만 그런 줄 알았는데 이 책을 읽어보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정을 꾸려나가는 남자들에게는 동일한 강박관념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내가 우리 가족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해야한다는 이 강박관념이 도리어 가족의 균열을 부추기고 있지는 않는지 다시한번 생각해보는 좋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토마스 H 쿡의 멋진 작품 정말 잘 읽었습니다.   

붉은낙엽, 납치, 단풍, 집, 가족

서평 제목이 좀 거창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국내 미스테리를 다독한 사람도 아니면서 이런 제목을 써서 다른 국내 미스테리에 누가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이 작품에서 보여준 시도가 국내 추리소설 사이에서는 상당한 의미가 있다는 점에서는 다들 공감하리라 믿습니다.

 

도진기 작가와 이 작품의 반향을 익히 잘 알고 있었는데 왜 이제서야 이 책을 읽었는지...그 점이 다만 원망스러울 뿐입니다.

 

<붉은 집 살인사건>은 도진기 작가의 <어둠의 변호사>시리즈 첫 번째 작품으로 내가 읽어 본 국내 추리소설 중에서는 가장 본격 미스테리에 근접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놀랬습니다. 국내 추리소설에 대해 가졌던 선입견을 한 방에 날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우리나라는 국토는 좁고 삶이 각박하다보니 추리소설의 영역에까지 사회의 각종 병폐들에 대한 비난을 언급한 작품이 의외로 많습니다. 어쩔 수 없는 사회현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힘든 세상사를 잊어버리고 잠시의 휴식처럼 추리소설에만 몰입하고자 하는 독자들에게는 이 또한 마음 심란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추리소설에는 추리만'이라고 조금은 고집해 보고 싶습니다.

 

<붉은 집 살인사건>은 이런 점에서 벗어버릴 것은 과감히 벗어버리고, 추리소설의 본연의 즐거움을 즐기기 위한 준비와 자세가 되어 있는 소설입니다. 일단 추리소설의 여러가지 트릭 중에서도 즐겨 사용되는 '알리바이 깨기'가 주 내용이 되어 있음은 물론이거니와, 본격 미스테리에서 자주 차용되는 물리적 트릭에 이르기까지 독자들의 무릎을 '탁'치게 만드는 요소들이 가득합니다.

 

여기에 일본이나 서양의 추리소설에서 사건의 분위기를 고조시키기 위해 양념처럼 등장하는 의문스러운 가문의 과거나 개성이 있는 등장인물들에 이르기까지 국내 미스테리 소설의 완성도를 한층 높인 걸작이라고 감히 평가하고 싶습니다.

 

물론 100% 완벽한 것은 아닙니다. 작가의 고심이 역력히 보이는 대목이 몇 군데 눈에 밟히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아마도 도진기 작가는 원래 추리소설 매니아였겠지요. 그래서 추리소설 독자들이 어떤 부분에서 만족하고, 어떤 부분에서 혀를 차는지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이끌어 가기 위해 무진 애를 쓰는 것 같은 사족같은 부연설명이 곳곳에 보입니다.

 

그리고 이 소설에서 등장하는 살인사건을 더욱 미궁으로 보이기 위해 설정한 알리바이 트릭에 대한 설명이 좀 장황한 부분이 있어 몰입이 도리어 떨어지는 느낌도 적잖이 있었습니다.

 

이런 몇몇 단점이 있지만 이 모든 것들을 커버하고도 남는 것이 있습니다. 스포일러를 방지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말하지는 않겠습니다만 이 소설에서 쓰여진 물리적인 트릭은 그야말로 상당한 수준급이라는 점을 밝힙니다. 책을 읽으면서 저도 모르게 '이 트릭은 상당히 대단한 걸'이라고 혼잣말을 해 버렸습니다.

 

1편이 이리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었으니 많이 늦긴 했지만 이제라도 2편인 <라 트라비아타의 초상>을 읽어 보아야 겠습니다. 언제나 생각하는 것이지만 국내 미스테리 소설도 한류열풍처럼 세계 위에 설 날이 머지 않았습니다.

도진기, 붉은집살인사건, 미스테리, 유산,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