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그런지 일본이나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소재는 상대측에 별로 강한 인식을 심어주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겨울연가나 올인같은 어느 나라나 통하는 소재가 아님 먹히질 안는 것이죠.

서두가 굉장히 길어진 이유는 요코미조 세이시의 소설을 읽고 있으면 우리나라 전설의 고향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쉽게 말하면 일본색이 몹시도 강하다는 것입니다.

매 구절, 장면, 대화마다 일본 특유의 정서가 진하게 배여있고, 또한 어떤 부분은 도저히 내 상식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입니다. 이러한 것들에 대해 먼저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을 때 이 <옥문도>의 재미가 한 층 깊어질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옥문도는 일본인들이 선정한 역대 추리소설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작품이라고 합니다. 말 그대로 수많은 일본 독자들이 이미 검증했을 정도로 이 작품은 추리면 추리, 스토리면 스토리, 분위기면 분위기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독자라면 결과는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최고란 말을 먼저 듣고 작품을 보면 기대만 잔뜩 커져 재미만 반감됩니다. 제가 보기에 이 <옥문도>는 최고라기 보다는 정말 잘 만들어진 한편의 추리소설이라고 하는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 같습니다.

<긴다이치 코스케>라는 명탐정이 있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용의자, 약간 호러틱한 살인, 일본 추리소설의 트렌드인 트릭, 그리고 음울한 분위기, 그리고 마지막 반전까지 추리소설이 갖추어야 할 모든 것을 이 작품은 잘 갖추고 있습니다.

<옥문도>에 나온 트릭은 제가 먼젓번에 읽었던 <팔묘촌>은 여기에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차원이 높습니다. 60여년 전의 소설이라고 감안한다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먼저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요즘은 소설이나 영화나 반전 강박증에 빠져 있어 어지간한 반전에도 심드렁한 것이 사실이므로 그런 기준으로 본다면 ’옥문도’는 약간 애교스럽지만 그래도 어디에 내놔도 절대 빠질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정작 굉장히 난해한 부분은 이 책이 일본 시구나 글자를 조금 알아야 더욱 재미를 느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번역해주신 분이 잘 해주셔서 무난하게 이해는 하고 넘어갔지만 일본인들처럼 읽으면서 바로 느낄 수 있는 즐거움까지 선사해주지는 못해 다소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또한 소설의 세부묘사가 생생해 마치 섬의 정경이 눈앞에 펼쳐져 보이는 듯 합니다. 요코미조 세이시는 이른바 트릭에 충실한 본격 추리소설가라고 하는데 나는 여기에 덧붙여 정확한 세부 묘사에 충실한 작가라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책을 읽는 이가 함께 사건 현장에 있는 것 처럼 느껴지는 것, 그것이 이 소설의 또 하나의 매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