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노리즈키 린타로>는 아야츠지 유키토나 아리스가와 아리스 등과 함께 이른바 신본격 미스테리 작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신본격은 지나치게 사회나 제도의 모순 등에 집착하는 사회파 추리소설이 미스테리 소설 본연의 정신을 훼손한다고 보고, 과거 에도가와 란포나 요꼬미조 세이시의 작품처럼 퍼즐과 트릭이라는 추리소설의 기본으로 승부를 걸고자 하는 경향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개념정의는 위와 같습니다만 사실 이 작가들이 워낙에 개성이 강한지라 그들의 작품은 때로는 당초 본인들이 설정한 경계를 훌쩍 넘기도 합니다. 사회제도에 대해 논하지는 않지만 단순한 범인 찾기를 뛰어넘어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해내기도 하는데 노리즈키 린타로의 중편 4개를 모아놓은 이 소설집 <녹스머신>을 읽어보면 작가의 상상력이 과연 어디까지 뻗어나갔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과거 <잘린 머리에게 물어봐>라는 걸출한 본격 미스테리를 아주 재미있게 읽었기에 그래도 어느정도는 재미있겠지 하고 들었는데 제가 당초 생각한 방향과 너무 다른 내용이어서 솔직히 당혹스러웠습니다.
먼저 제일 먼저 소개된 중편 <녹스머신>은 아주 먼 미래가 배경입니다.
모든 것이 디지털화 된 사회...종이책은 말 그대로 과거의 유산으로 기억되는 시대에서 유안 친루라는 학자가 영국의 추리소설 작가이자 성직자인 로널드 녹스(Ronald Arbuthnott Knox 1888 ~ 1957)이 제시한 추리소설 10계명 중 제5계명인 추리소설엔 중국인을 등장시켜서는 안된다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기록입니다.
유안 친루(우연히도 부연설명에 등장하는 중국인 성명과 동일한 사람인데 이게 나중에...)라는 미래 학자를 중심으로 이 십계명을 가지고 어떻게 미래 여행까지 연결시키는지 읽어 보시면 작가의 과감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수작이다는 생각이 듭니다. 꼭 예전에 안방TV를 점령했던 고전 미드인 <환상특급>을 보는 느낌입니다.
두번째 중편 <들러리 클럽의 음모>는 과거 영미 탐정소설을 즐겨 읽으신 독자들이라면 상당히 흥미롭고 향수에 젖을 만한 수작입니다. 이 소설에서 나오는 들러리란 즉 탐정소설의 조수역할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셜록 홈즈의 조수 왓슨, 포와로 경감의 조수 헤이스팅스 대위 이런 사람들이 결성한 들러리 클럽이 최근 출간을 앞두고 있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신작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두고 갑론을박을 벌이는데... 재미있기도 하고, 나름 추리소설로서의 면목도 갖추고 있어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이것이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을 해설하는 것인지, 아니면 전체가 노리즈키 린타로의 작품인지는 짧은 미스테리 지식으로는 알기가 어려웠지만 소설과 해설을 전체적으로 하나로 보고 봤습니다.
세번째 중편 <바벨의 감옥>은 내용도 난해하거니와 일본말로 보지 않으면 사실 재미도 느낄 수 없는 작품입니다. 일본어를 이용한 트릭이니... 번역하신 분이 참 고생 많이 하셨겠다 싶습니다. 그치만 우리로서는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소설입니다.
네번째 중편 <논리 증발 - 녹스머신 2>는 <녹스머신>에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디지털 파일을 파괴하려는 테러집단에 맞서 이미 늙어버린 유안 친루가 다시한번 나서는데...
가만 보니 노리즈키 린타로는 이 중편들을 통해 과거 찬란했던 추리소설시대에 대한 일종의 색다른 찬미를 보내는 것 같습니다. 시대는 미래지만(들러리 클럽을 제외하고) 결국 추리소설과 그 작가들에게 가지고 있는 노리즈키 린타로의 마음이 들어간 그런 중편들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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