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참 흥미로운 역사서적입니다. 분명 누르하치 일대기인데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명나라의 멸망을 아주 구체적으로 다룬 역사서적으로 보이니 말입니다. 아무튼 그냥 막연하게 알았던 명나라 멸망의 역사를 아주 구체적으로 보고 느낄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됩니다.

 

명나라 멸망은 정말 맞추기 힘든 직소 퍼즐의 고리가 묘하게도 척척 들어맞은 결과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퍼즐 중 하나의 요소만 없었더라도 명나라는 결코 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실상 망하기도 힘들었던 대국이 그렇게 허망하게 무너져 버린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만주에서 일어난 불세출의 영웅 '누르하치' 입니다.

 

누르하치의 일대기를 보면 마치 하늘이 명나라를 멸망시키라고 지상에 내려보낸 신장과도 같이 느껴집니다.

 

일찍이 여러 갈래로 분열되어 있던 건주 여진의 한 이름없는 부족에서 태어나 수많은 여진족들과 몽고족 등 만주 일대를 통일하는 과정은 한 편의 영화 같습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명나라 조정에 의해 억울하게 살해되도 끝끝내 참았던 그는 명나라의 종이자 신하로 자세를 굽히며 만주를 통일할 때까지는 철저히 발톱을 감추고 때를 기다렸습니다. 범인이었다면 경거망동하다 벌써 목이 달아났을텐데 그는 자신이 힘을 기를 때까지 참고 또 참았습니다.

 

그리고 만주를 통일하자 그는 곧바로 명나라에 반기를 들고 수십만 명나라 대군을 격파하고, 요동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이 책에서 언급한 것 처럼 그는 잔인한 군주였지만 군대를 운용하는 전략에 있어서 만큼은 초한지의 장량이나 삼국지의 제갈량 못지 않은 천재로 보여집니다.

 

'이길 수 있는 확신이 없는 전쟁은 절대 하지 않는다'는 이말은 그가 어떻게 명나라 대군을 그토록 철저히 무찌를 수 있었나를 보여주는 좋은 어록입니다. 비록 청제국 수립을 보지는 못하고 눈을 감지만 그의 후손들은 기어코 명나라(더 자세히는 이자성의 농민반란군)를 멸망시켜 중국의 마지막 통일 왕조인 청나라를 세우게 됩니다.

 

이 책에서는 우리가 몰랐던 누르하치에 대해 정말 A부터 Z까지 총망라해 모든 것을 알려줍니다. 상당히 귀중한 자료들입니다. 누르하치의 선조, 그의 성장과정과 통일과정, 대명 전투사, 그리고 그의 아내들과 자식들까지 모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글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명나라가 만력제부터 숭정제(이 책에서는 등장하지 않습니다만)까지 어떠한 멸망과정을 거쳤는지 정말 자세히 서술이 되어 있습니다.

 

역사의 아이러니이지만 명나라는 누르하치와 그 후손에게 멸망당한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사실 명나라는 누르하치와 그 후손들에게 멸망한 것이 맞습니다.

 

이자성이 반란을 일으킨 것은 높은 세금과 기근 등으로 흉흉해진 민심을 이용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명나라 조정이 세금을 올릴 수 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누르하치와 그 후손들 때문이었습니다. 부패한 조정과 황실은 자신들이 축적한 부는 아까워 쓰지 못하고, 만주족과의 전투를 위해 필요한 돈을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 충당했고, 그 결과는 바로 이자성에 의한 자금성 함락과 숭정제의 비극적은 자살이었습니다.

 

청나라와 극한의 대치 중에 벌어진 청천벽력같은 이자성의 자금성 함락은 명나라의 마지막 보루였던 산해관을 지키던 오삼계의 청나라 투항으로 이어졌고, 결국 청나라는 오합지졸인 이자성의 군대를 격파해 중국을 통일하게 됩니다. 황제가 죽어 버렸으니 나머지 지방의 명나라 관리나 군대도 제대로 힘조차 쓸 수 없었습니다. 정말 소설로 써도 이런 소설을 쓰기는 힘들 정도입니다. 명나라는 정말 어이없이 망했습니다. 수억의 중국이 소수의 만주족에게 나라를 빼앗겨 버린 것입니다.

 

이 책에서 서술한 요동에서 명나라와 누르하치와의 전투는 어디서 보기 힘든 무척 소중한 자료입니다. 특히 수십만 대군이 누르하치의 밥이 되어 버린 살이호 전투나 요동경략 웅정필과 영원성의 원숭환 등 그래도 나라를 지켜보려고 애를 쓰던 명나라 장수들의 모습이 무척 인상깊었습니다.

 

그리고 반갑게도 곳곳에 등장하는 우리 조상님들의 모습도 엿볼 수 있습니다. 도원수 강홍립과 그 휘하의 조선부대의 참전과 선조들이 보고 적은 누르하치과 만주족의 모습들 역시 다른 책에서 쉽게 보기 힘든 귀중한 내용들이었습니다. 

누르하치, 청, 후금, 만주, 명나라

만약에 당나라가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신라마저 멸망시켜 한반도를 주나 군현을 설치해 다스렸다면?? 그래서 지금까지도 여기가 한국이 아닌 중국 땅이 되어 버렸다면? 아마도 우리 한민족도 이 책에 잊혀진 민족으로 나왔을 것입니다.

 

"과거 한반도에는 한민족이라는 민족이 살았다. 이들은 고구려, 백제, 신라라는 강력한 고대왕국을 성립했으나 하나로 통일되지 못해 서로 분쟁하다 당나라에 멸망하여 이후 중국에 편입되었다" 정말 이상하게 들리는 말일지 모르지만 정말 역사적으로 이렇게 될 뻔한 적이 우리 한반도에도 여러차례 있었다는 것은 엄연히 사실입니다.

 

이 책에 소개된 민족은 우리가 학창시절에 세계사를 배우거나 좀더 역사를 알고 싶어 공부한 사람들에게는 아주 낮익은 이름들입니다. 철기문명으로 소아시아 일대를 주름잡았던 히타이트나 고대 유럽을 공포로 떨게 한 훈족, 그리고 중국을 두고 두고 괴롭힌 흉노, 돌궐, 선비, 탕쿠트족 등등 한때 말도 안되게 강력했던 이들은 지금 세상에 종적조차 사라져 지금은 그 명맥도 이어지지 않고 있는 민족들입니다.

 

대부분 세력이 강할 때는 수많은 전쟁과 살육으로 강대국으로 행세하다 나중에 세력이 약해져 멸망하면 멸망 과정에서 완전히 몰살 당했든지 아니면 문화적, 인적자산이 풍부하지 못해 현지 주민들 속으로 들어가 민족의 근원이 완전히 소멸해 버렸을 것입니다. 그에 비하면 우리 한민족은 5천년이 넘게 한반도에서 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현재까지도 유지되고 있으니 한 편으로는 무척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책은 그동안 로마나 유럽, 중국 등 찬란하고 현재까지도 역사가 소상히 기록되어있는 주류 역사관점에서 다소 벗어나 우리가 상대적으로 관심을 가지기 힘들었던 마이너한 민족들과 왕조에 관해 많은 지식을 전달해 준다는 점에서 상당히 흥미로웠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왠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지금 그리고 미래를 위해 더 열심히 해야 된다는 메시지도 주는 것 같구요.

 

특히 부여,옥저,동예,가야,우산국 같은 우리나라의 부족국가에 대한 고찰도 흥미로웠습니다. 모두 한반도의 한민족이지만 신비의 왕국 우산국 같은 경우에는 어쩌면 이들은 우리 한민족과는 다른 갈래의 사람들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의 날개를 펼쳐보기도 했습니다.

민족, 부여, 동예, 옥저, 가야

사실 측천무후같이 중국 역사 속에서 이질적인 존재는 없을 것입니다.

 

중국 역사상 유일무이한 여성황제라는 타이틀만 봐도 그녀가 얼마나 돋보이는 존재인지 알 수 있습니다. 청나라를 말아먹었단 평가를 받고 있는 서태후나 악녀의 대명사로 불리는 여후(한 고조 유방의 왕후), 당나라 멸망의 책임을 다 뒤집어쓴 양귀비 등 중국 역사에 등장하는 여인들의 이미지가 대부분 부정적인 측면이 강한 반면 측천무후는 아직도 역사 속에서 상반된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명군인가 희대의 악녀인가라는 극명한 평가 속에 역사의 주류는 그녀에 대해 아주 박한 평가를 내렸습니다. 우리가 그 동안 역사 속에서 배운 그녀에 대한 평가는 권력을 위해 지식까지도 죽인 천하의 악녀이자 자신을 돌봐준 왕후와 경쟁자인 소숙비의 사지를 잘라 항아리에 처넣은 악독한 여자, 당나라를 망하게 한 찬탈자에 공안정국으로 수많은 관리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장본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오죽하면 중국 역사에서 그녀는 훗날 시어머니인 측천무후를 롤모델로 삼아 남편 중종을 독살하고 정권을 잡으려다 죽은 위황후와 함께 <무위의 화(禍)>라고 불릴 지경입니다.

 

하지만 정권장악 미수에 그친 위후와는 달리 측천무후는 치적도 많이 있습니다. 그녀의 치세 동안 나라는 부강해지고, 백성들은 살기가 참 편안해 졌다 합니다. 이를 '무주의 치'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자. 역사 얘기는 이만 하겠습니다. 이렇게 장황하게 측천무후에 대한 역사의 평가를 늘어놓은 이유는 이 소설(분명 소설이긴 합니다)은 지금까지 우리가 알던 측전무후와는 상당히 다른 그녀를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소설을 통해 자신에 대해 내린 세간의 평가에 대해 반박하지만 장르가 소설이기 때문에 이것이 맞냐 틀리냐의 논쟁 자체가 이미 이 책에서는 불필요한 것이 됩니다.

 

따라서 역사서와는 사뭇 다르게 소설의 재미가 더해지면서 측천무후의 삶이 상당히 매혹적인 소재로 다가옵니다.

 

이 소설은 측천무후 일인칭 화자의 입장으로 시종일관 전개됩니다. 따라서 시점 자체가 자기자신이고 자기가 자신에 대한 것을 써내려가는 것이기에 상당히 주관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측천무후는 자신의 인생을 소녀시대부터 죽음 이후에 이르기까지 담담한 듯 하면서도 세밀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도 진지해서 역사책은 제껴 놓고 이 책의 내용이 모두 사실인 듯 느껴질 정도입니다.

 

사랑하는 자녀를 잃고 슬퍼하는 어머니의 모습, 남편 고종에 대한 진실한 사랑, 그러면서도 갖은 염문을 뿌린 풍소보, 장창종, 장이지 형제와의 뜻밖의 진실한 사랑 이야기 등등에 빠지면서 소녀에서 후궁으로 다시 황후에서 태후로 또 다시 황제에 오르기까지의 그 인생을 살펴보다 보면 어느덧 소설은 끝이 나있습니다. 정말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정말 대단한 인물은 측천무후 역시 인간이라는 점에서는 다소 허무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한 사람의 인생을 처음부터 끝까지 본다는 것은 결국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정점에 이른 측천무후 역시 죽으면 한 줌 흙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다는 것도 새삼느끼게 되었습니다. 

측천무후, 산샤, 당, 후궁, 여황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