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과 남성, 인간과 신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 제석은 과연 어떤 인물이었을까. 부처님은 <법구경>에서 제석의 전생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매우 자세하고 강렬하게 한다. 인간이 보기에 거의 절대적인 힘과 복을 지닌 신(神)도 한때 인간이었다는 사실은 언제 읽어도 흥미롭다.

▲ 삽화=김영수

부처님이 제석의 전생에 대하여 입을 열게 되신 이유 또한 ‘인간’의 궁금증 때문이었다. 제석의 전생 이야기가 펼쳐진 곳은 바이살리다. 바이살리는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기 전, 마지막 우기를 보냈던 곳이며 또한 그 유명한 유녀(遊女) 암바팔리가 살던 곳이다. 한때 인간이었으나 감각적 쾌락의 궁극이라 할 수 있는 도리천의 주인이 된 그의 인생을 이야기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장소였다.

어느 종교의 경전이든 창녀(娼女)의 등장은 빠지지 않는다. 불교 경전 속 대표적인 창녀(娼女)가 있다면 단연 암바팔리이다. 하지만 창녀라고 해 그녀가 아무에게나 몸을 파는 여자였다고 생각하면 오해이다. 암바팔리는 바이살리 최고의 미녀이자 왕족들만 상대하는 아주 특별한 여인이었다. 그녀는 본디 고아였다. 망고나무 아래 버려진 것을 정원사가 데려다가 망고를 뜻하는 ‘암바’를 넣은 이름을 지어줬다. 그녀는 점차 너무나 아름다운 처녀로 성장해 바이살리의 왕자들이 모두 청혼을 하기에 이르렀다.

왕자들 사이에서는 그녀를 두고 싸움과 다툼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누구 한 사람의 소유가 아닌 왕자들 모두와 공평하게 관계를 맺기로 하고 망고나무 숲에 있는 저택에서 홀로 살면서 궁중에 출근을 하는 창녀가 됐다. 황진이가 첫사랑을 잃고 나서 혼인하지 않는 대신 모든 남자의 연인인 기생이 되는 길을 택한 것과 살짝 닮아있다. 암바팔리의 미모에 대한 소문은 바이살리 뿐 아니라 중인도 전역에 자자했다. 그녀는 부처님의 후원자이자 친구였던 마가다국의 빔비사라왕까지 사로잡기에 이른다. 누구의 부인도 아니었던 암바팔리는 기꺼이 빔비사라왕의 사랑을 받아들였고 그 사이에서 아들을 하나 낳기도 했다.

부처님께서 바이살리에 머무시던 어느 날, 암바팔리는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크게 감동을 해 부처님과 스님들을 다음 날 자신의 집에서 공양을 대접할 것을 청했다. 부처님은 그녀의 신분을 알았음도 기꺼이 초대를 수락하셨다. 그날 저녁, 부처님께 올릴 공양을 준비하기 위해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는 암바팔리를 보고 왕자들은 질투심이 솟구쳤다. 그들은 암바팔리를 방해하기 위해 수만 냥의 황금을 줄 테니 부처님 대신 자신들을 식사에 초대해달라고 했지만 암바팔리는 바이살리를 모두 주어도 싫다고 했다. 흥정에 실패한 왕자들은 암바팔리 대신 부처님을 찾아가 초대를 이틀 뒤로 미루어 줄 것을 부탁했다. 부처님은 이미 수락한 약속을 번복할 수 없다면 왕자들의 부탁을 거절했다.

다음 날, 부처님은 스님들과 함께 암바팔리의 집으로 가서 그녀가 정성껏 마련한 공양을 먹고, 암바팔리는 기쁨 속에서 망고나무 숲에 있는 자신의 정원을 부처님께 바쳤다. 어떻게 보면 당시 암바팔리는 부처님의 여자 친구로도 보일 수 있는 같은 미묘한 관계였을지도 모른다. 45년간 부처님은 많은 곳을 다니며 법륜을 굴리셨고,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 중 암바팔리처럼 특별한 여인과의 인연이 있는 바이살리에서 욕계육천의 주인, 제석의 전생을 이야기했다는 것은 매우 신기하다. 왜냐하면 아름다움으로 재물과 사람을 쥐락펴락했던 암바팔리야말로 도리천이 자랑하는 욕망이 고스란히 인간화 된 모습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암바팔리는 훗날 아라한이 된 친 아들의 법문을 듣고 늦게 출가한다. 그녀는 비구니가 된 후, 위없이 아름다웠으나 부질없이 늙어버린 자신의 육신에 대한 끊임없는 화두를 던지며 수행에 몰두하여 마침내 깨달음을 이룬다. 부처님이 출현하시기 전, 썩 괜찮은 인간으로 살았던 제석의 전생은 다음 편에 계속된다.

제석과 함께 떠나는 신화여행의 주인공은 당연히 제석이다. 제석은 고대 인도의 리그베다(Rig Veda) 찬가에 등장하는 천신으로 인도 뿐 아니라 소아시아와 메소포타미아, 이란 등에도 널리 알려져 있다. 불교에 수용되면서 여러 가지 이름을 가지게 되지만, 고대 인도의 신으로써 본래 이름은 산스크리트어로는 인드라(Indra), 빨리어로는 사카(Sakka)로 불린다. 한자로는 인다라(因陀羅)라고 음역(音譯)되기도 하며 부처님이 성불하신 후 귀의하여 불법의 수호신이 되었다. 그 후 경전에서는 흔히 석제환인다라(釋帝桓因陀羅), 석가제바인다라(釋迦提婆因陀羅)로 음역했는데 이를 줄여서 석제환인, 제석천이라 했다.

고대 인도의 신이지만 익숙한 이유는 불교에 융화되면서 탁월한 적응력으로 불법이 전파되는 지역마다 이미 존재해왔던 신앙 속 정점에 해당하는 하늘의 주인, 신들의 왕을 대체하는 이름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옥황상제, 우리나라에서는 단군의 아버지 쪽 직계선조들을 모두 석제환인(釋提桓因)이라고 하며 제석천과 동일시하며 숭배하였다.

제석은 하늘의 주인이지만 그가 사는 곳은 단순한 ‘하늘’이 아니라 제법 주소지가 명확하다. 제석이 머무는 곳은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산인 수미산 꼭대기에 있는 도리천 선견성이다. 마치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가 올림포스 산 꼭대기에 사는 것과 비슷하다. 도리천은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온갖 즐거움과 아름다움만 가득한 곳이다. 부처님의 어머님인 마야 부인이 세상을 떠난 뒤에 다시 태어난 곳일 뿐 아니라, 부처님께 복을 짓고 나서 죽은 영혼들이 주로 자주 태어나는 낙원 같은 곳으로 묘사되곤 한다.

	삽화 김영수

제석이 살고 있는 도리천의 하루는 인간 세상의 100년에 해당하는데 그곳에 사는 천신(天神)들의 수명은 1000살이다. 따라서 인간의 눈으로 봤을 때는 영생에 가까운 세월을 살지만 수명은 유한하며 인간과 마찬가지로 결혼을 하여 자식을 두기도 하고 윤회를 한다. 제석의 전생은 인간이었다. 제우스가 벼락을 무기로 사용하는 것처럼 제석 역시 번개를 다스리는 뇌신(雷神)으로 악마를 쳐부수는데 애용하는 무기는 금강저(金剛杵)이다.

제석은 인간이 바라보았을 때 가장 매혹적인 인물로써 남자에게는 닮고 싶고 되고 싶은 이상형이며, 여자에게는 갖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 존재로 선망의 대상이다. 이를 증명하는 것이 바로 리그베다(Rig Veda)로, 제석에 대한 찬가가 약 1/4 을 차지하고 있다. 제석은 흔히 다갈색 피부에 긴 머리칼, 거대한 체격과 탄탄한 몸매, 잘생긴 얼굴에 신들을 다스리는 강력한 힘과 카리스마까지 갖춘 젊은 미남의 모습으로 그려지며 ‘아이라바타’라는 하얀 코끼리를 타고 다닌다. 또한 재물욕, 성욕, 식욕, 명예욕, 수면욕 등 다섯 가지 욕심이 치성한 욕계(欲界)의 주인답게 맛있는 음식과 좋은 술, 음악과 미녀 등 향락을 즐길 줄 아는 남신(男神)이다.

이처럼 제석은 절대적이고 완벽한 신이지만 불교에 수용된 후실수를 하기도 하고, 잔머리를 쓰는 등의 인간적인 모습을 많이 보여준다. 특히 인간보다 더욱 ‘복’을 받는 일에 연연해하며 자신이 제석임을 들키지 않고 부처님의 제자들에게 공양을 올리기 위해 인간으로 변신을 하는 등의 익살맞은 모습은 절로 웃음을 자아낸다. 제석의 또 다른 매력은 그가 부처님이 태어나기 전부터 존재했다는 것이다. 부처님과 만나기 전, 제석의 과거는 제법 거칠다. 제석이 거저 도리천의 주인 자리에 앉은 것이 아니었다. 아수라와의 격렬한 전쟁을 거쳐 천신의 자리를 쟁취한 제석의 과거는 부처님을 만난 후 부드럽게 바뀐 모습과 대비돼 그의 매력을 한층 끌어올린다.

불법을 만난 후, 신으로써의 위엄을 살짝 내려놓은 제석의 모습은 시대와 지역을 초월한 친근함을 형성한다. 부처님이 설법을 하실 때마다 항상 도리천의 대가족과 함께 위풍당당하게 등장하여 부처님의 위엄을 돋보이게 하고, 악귀를 물리치며 불법을 수호하는 그는 과연 신이 되기 전 어떤 인물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