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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가 보는 500나한도는 부처님이 반열반에 드신 후, 마하가섭의 주도하에 칠엽굴에 모여 경, 율, 론 3장을 결집한 500장로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이 500나한도에서 마하가섭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는 아난과 함께 가운데에 있으며 홀로 백발이 성성한 모습을 하고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영축산에서 연꽃과 미소로 부처님의 법을 전해 받는 것을 그린 그림에서도 마하가섭은 마치 트레이드마크처럼 백발과 수염이 함께한다.
이는 마치 ‘두타’와 부처님 사후 교단에서 가장 어른이 된 상징성을 ‘늙음’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덕분에 그림을 통해 마하가섭이 본래 타고난 아름다움을 발견하기란 어렵다. 그는 기어코 그리고 필사의 의지로 자신의 외적인 우월함을 감추고 또 감춘다. 하지만 원래 무엇이든 감추려고 하면 할수록 잘 드러나는 법이다.

다정함과 매서움을 함께 갖춘 멋진 어른, 멋진 리더
지하철 막말남을 비롯하여 젊은 사람들이 어른을 공경하지 않는다는, 청소년의 도덕심이 바닥에 추락했다는 뉴스가 연일 터져 나온다. 젊은이들의 버르장머리가 사라져버린 것은 그들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여기에는 또 하나의 매우 밀접한 비례관계가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멋진, 존경할만한 어른들이 점점 줄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늙은, 나이 먹은 사람들이 우리 사회의 ‘어른’ 노릇을 하지 못하면서 젊은이들의 도덕심도 방향감각을 잃어버렸다. 공경의 대상, 즉 진정한 어른이 너무 희박하기 때문에 공경심이 자체도 점차 사라져가는 것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마하가섭은 어른이었다. 그는 한결같은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자비로움과 꼬장꼬장함을 동시에 갖춘 참으로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최상의 신분과 부유함을 타고났으면서도 가난하고 무지한 사람들은 왕처럼 존중하였고 고행을 즐겼으나 동시에 말귀를 알아듣는 도반은 매운 독설로 자극을 하여 발전하도록 도왔다.
만약 마하가섭과 동시대에 태어나 그의 도반이었다면 아마 실로 찔리는 구석이 있거나 대단히 어리석지 않은 이상 독설을 듣고 기분 나빠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와 같이 정신이 번쩍 나게 만드는 도반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뻤을 것이다. 어떠한 단체에 소속이 되어 있을 때, 갈 길을 잃고 우왕좌왕 하는 일이 없도록 알아서 두 어깨에 기꺼이 책임감을 짊어지고 능숙하고 당당하게 앞장을 서서 걷는, 이견의 여지가 없는 타고난 리더가 있다는 것은 실로 행복한 일이다. 중생을 향한 무한의 다정함과 도반과 교단을 향한 매서움은 백발과 수염처럼 마하가섭만의 트레이드마크이다.

열반을 결심하고 아난에게 법을 전하다
마하가섭은 부처님이 반열반에 드신 후 도반들의 수행을 채찍질하고 엄격하게 관리하며 교단과 비구, 비구니들이 방만해지는 일이 없도록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2~30년이 지나고 점차 나이가 들면서 마하가섭은 서서히 염세적인 사상(세상이나 인생에 실망하여 이를 싫어하고 행복이나 희열이 덧없는 것이라 여기는 비관적인 생각)에 빠져들었다. 부처님의 뒤를 이었을 때 마하가섭은 이미 7~80에 가까운 노인이었으니 그 무렵 그의 나이는 이미 100살이 넘었을 때였다.
마하가섭은 실천을 중시했고 그것은 100세가 넘었다고 해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제 할 일과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으니 더 이상 비관적인 생각으로 남은 나날들을 보내지 않도록 하루빨리 열반에 들어야겠다고 생각한 마하가섭은 곧바로 아난을 찾아갔다. 항상 젊은 청년과도 같았던 아난 역시 그 무렵 7~80의 노인이었다. 하지만 부처님이 늘 그렇게 바라보신 것처럼 마하가섭의 눈에도 아난은 언제나 ‘어린 동생이자 도반’이었다. 마하가섭은 아난을 만나 편안하게 이야기를 한다.

“아난이여, 나는 이제 너무 늙어서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으니 앞으로는 그대가 부처님 법을 이어받아 안으로는 교단을 이끌고, 밖으로는 불법을 만대에 전하는 책임을 져야겠소.”

아난에게 교단을 맡기는 마하가섭의 말투는 마치 감히 거역할 수 없는 큰 형님 같다. 아난은 이미 마하가섭을 제외하고 교단 최고의 어른이자 장로였다. 그는 두말없이 마하가섭의 뜻을 따랐다. 아니, 아난의 승낙은 중요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마하가섭에게 이것은 이미 정해진 일이었다. 그래서 마하가섭에게 법이 아난에게 전해지는 과정은 부처님으로부터 마하가섭에게 법이 전해지는 과정보다 훨씬 간단하고 일방적이다.
말을 마친 가섭은 허공에 몸을 날려 여덟 군데에 모셔진 부처님의 사리탑을 일일이 찾아가 공양 예배를 드렸다. 아난과의 밋밋한 작별과 달리 마지막까지 스승의 향해 제자의 도리를 다하는 모습은 실로 감동적이다. 공양 예배를 마치고 라자가하로 돌아온 아자타삿투 왕에게 하직인사를 올렸다. 마하가섭이 스스로의 열반을 준비하는 모습은 후세에 모범과 규칙이 될 정도로 정법과 예절을 두루 갖춘 것이었다.

용화삼회(龍華三會)에서 다시 만나길 원함
사리탑 공양 예배와 왕에게 하직인사를 마친 마하가섭은 쿡쿠타파타 산으로 은신했다. 세 개의 산이 솟은 모습이 마치 닭의 발처럼 생긴 쿡쿠타파라 산 중턱 즈음에 있는 숲이 깊고 풀밭이 있는 곳에 이윽고 자리를 잡고 마하가섭은 열반을 향한 선정에 들었다. 선정 속에서 마하가섭은 하나의 서원을 세웠다.

“내가 지금까지 목숨을 부지한 것은 오로지 신통력에 의한 것이었으나 내 이제 열반에 들고자 하니 내가 열반에 든 후 누구든지 내 옷으로 내 몸을 덮어주기 바란다.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67억년 후 미륵보살이 성불하시고 회상을 마련할 때 나도 다시 태어나서 참배하고 중생을 교화하리라.”

용화삼회란 미래의 부처님인 미륵보살이 성불한 후 중생제도를 위해 마련한 세 번의 법회를 이르는 말이다. 첫 번째 법회에서는 96명의 아라한이 나고, 두 번째 법회에서는 94억의 아라한이 나며, 세 번째 법회에서는 92억명의 아라한이 난다고 한다. 즉, 마하가섭은 열반에 이르면서 다시 한 번 부처님이 계신 세상에 태어나 성불하겠다는 서원을 세운 것이다. 생과 사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아라한의 몸으로 열반을 맞은, 마하가섭다운 말이었다.

스스로 은신하면서 고요하게 이룬 열반이었으나 마하가섭의 열반 소식은 아자타삿투 왕에게 전해졌다. 아마도 아자타삿투 왕은 마하가섭이 하직을 고하고 떠난 직후 사람을 붙여 그의 행방과 소식에 대하여 수하를 파견해 두었을지도 모른다. 이를 알 수 있는 것이 바로 아자타삿투 왕의 행동이다. 가장 먼저 마하가섭의 열반소식을 들은 그는 슬퍼하며 말을 타고 아난이 있는 곳으로 달려간다. 그리고 아난에게 마하가섭의 열반소식을 전하고 아난과 함께 쿡쿠타파라 산으로 간다.
두 사람이 도착했을 때, 마하가섭은 이미 선정에 든 상태로 열반한 후였다. 만다라 꽃으로 온 몸이 덮인 채, 단정한 자세로 앉은 채 입가에 은은한 미소가 번져있는 마하가섭의 모습을 본 아난과 아자타삿투 왕은 곧바로 공양 예배를 하고 그의 몸을 옷으로 덮어주었다.

선종(禪宗)의 초조, 신비로운 현실주의자
마하가섭의 마지막 청을 들어준 아자타삿투 왕은 매우 극적인 과정을 통해 불법에 귀의를 하였다. 그는 아자타삿투 왕은 부처님이 살아계실 당시에는 제바달다를 후원하고 아버지 빔비사라왕을 죽이고 왕위에 오르는 등 패륜적인 행동을 많이 하였으나 후에 불법에 귀의한 후에는 부처님은 물론 부처님의 큰 제자들을 극진하게 스승으로 모셨다.
이런 과정을 통해 뒤늦게 불법에 귀의한 그는 누구보다 열렬하게 불법을 보호했고, 장로들이 열반에 들 때마다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일찍이 목건련이 외도들에 의해 목숨을 잃었을 때 분노를 참지 못해 철저하게 경위를 조사하여 목건련의 죽음과 관련된 외도들을 모두 화형에 처하려고 했다가 부처님의 중재로 참은 적도 있었다.
오늘날 불교에서 마하가섭의 위치는 십대제자나 법제자를 넘어 보다 특별하다. 그는 선정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깨달음과 법을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 선종(禪宗)의 초조(初祖)로 여겨지는데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 부처님과 한 마디 대화 없이 그저 미소로 서로의 뜻을 알았던 영산회상의 이심전심(以心傳心) 에피소드이다.
한없이 현실적이며 모든 비구들의 모범이 될 모습들을 구체적으로 보여주었지만 가릴 수 없는, 가려지지 않는 신비로움을 지닌 마하가섭과 만나기 위해 미륵보살이 성불하는 그날의 용화삼회를 기다려본다. 그 자리에서 스스로의 서원에 의해 다시 태어난 마하가섭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가장 허름한 차림을 했으나 온몸에서 자체발광을 하며 진지하고도 엄한 얼굴과 꼿꼿한 자세를 지닌 이가 바로 마하가섭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 그를 먼저 알아보게 되면 말하리라. 우리 역시 그대를 다시 만나기 위해 67억년의 세월을 기다려왔다고. 그 말에도 전혀 감동하지 않은 얼굴을 한다면 그야말로 마하가섭일 것이다.

성도하신지 49년이 되던 해, 부처님은 고향 카필라 성이 멀지 않은 쿠시나가라의 사라나무 숲에서 반열반에 드셨다. 그때 500명의 비구들을 이끌고 이웃나라에서 부처님의 법을 펼치던 마하가섭은 부처님이 반열반에 드셨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그날로 비구들을 모아 쿠시나가라로 향했다. 부처님의 마지막 모습을 뵙기 위해 쉬지 않고 길을 재촉하였으나 그가 도착하였을 때는 이미 한밤중이었다. 게다가 이미 부처님의 시신은 관에 들어가 화장할 준비를 마친 후였다. 비통한 마음을 감출 길이 없었다.

칼 같은 엄격함을 지닌 차가운 수석 장로
그때 교단의 말썽꾸러기 6군 비구 중 한 명인 발난다가 마하가섭의 침통한 얼굴을 보고 말했다.

“마하가섭이여, 그대는 무엇 때문에 그리 상심하고 계시오? 그 늙은이가 이제 세상에 없으니 우리는 자유를 얻었소. 그가 살아있을 때는 우리를 구속하고 간섭했기 때문에 매우 불편했으나 이제 우리는 자유롭소, 이 얼마나 기쁜 일이오?”

비록 마하가섭이 이미 생사를 초월한 아라한이라고는 하지만 아직 생을 마치지 않은 인간이었다. 스승의 반열반을 지키지 못한 것도, 이제 스승이 세상에 없다는 것만으로도 비통한 일인데 스승의 죽음을 기뻐하는 비구의 말은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결국 참지 못한 다른 비구가 발난다에게 달려들었다. 그러자 마하가섭은 두 사람을 말리며 말했다.

“지금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어 모두 슬퍼하고 있는 이때에 그대는 도리어 기뻐하니 매를 맞아 마땅하다. 그러나 우리 교단 안에서 서로 주먹질을 하고 싸우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니 더 이상 소란을 피우지 마라.”

매를 맞아 마땅하다. 아, 이 얼마나 꼬장꼬장하고 칼 같은 마하가섭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주는 말인가. 농담도 허튼 소리도 하지 않는, 오직 필요할 때 필요한 말만 하는 마하가섭의 입에서 나온 말이니 진실 그 자체로써의 무게감이 더해진다. 그런 모든 것을 담아 매를 맞아 마땅한 사람에게 매를 맞는 것이 마땅하다는 진실을 말해준다. 위없이 자비로운 부처님의 가르침을 펼치며, 비천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보시의 기쁨을 누리게 해주며 존중할 때의 모습과 전혀 다른 카리스마가 펼쳐진다. 이것은 ‘차가운 수석 장로’로써 마하가섭의 면모를 잘 드러내주는 일화 중 하나이다.

부처님의 열반 그리고 마하가섭에게 전한 뜻
부처님의 열반을 지키지 못한 자책에 발난다 비구의 망언(妄言)으로도 충분했다. 하지만 마하가섭의 슬픔을 더한 것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마침내 부처님의 다비식이 진행되는 곳에 도착했을 때, 그는 부처님의 마지막 모습을 뵙게 해달라고 아난다에게 간곡히 청했다. 아난다는 이미 부처님의 시신은 관에 있고 다비식이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마하가섭의 청을 거절했다. 마하가섭은 두 번을 더 청했으나 아난은 두 번 다 거절했다. 이때 두 사람 사이에 흘렀을 기(氣) 싸움을 생각하면 지금도 오금이 저릴 정도이다.
결국 마하가섭은 부처님의 마지막 모습을 뵙는 것을 포기하고 예에 따라 관을 세 번 돌았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양 발을 관 밖에 내보이시며 마하가섭의 서운한 마음을 어루만져 주셨다. 또한 부처님이 두 발을 관 밖으로 내보이신 것은 마하가섭에게 전한 마지막 가르침이었다. 부처님의 두 발을 보고 마하가섭이 눈물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자비로우신 부처님이시여, 위대한 스승이시여, 안심하십시오. 저희들이 비록 눈 어둡고 어리석기는 합니다만 기어코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바른 법을 널리 펴서 모든 중생이 복을 누리게 하겠습니다.”

그러자 두 발이 저절로 관 안으로 들어가더니 한나절 내내 아무리 불을 붙이려고 해도 불이 붙지 않았던 나무에 저절로 불이 붙기 시작했다. 그때서야 사람들은 부처님이 마하가섭을 그토록 기다리셨다는 것을 알았다. 마하가섭의 등장으로 드디어 그리고 저절로 불이 붙었을 때, 그걸 지켜보는 아난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칠엽굴에서의 삼장 결집과 아난을 십대제자의 반열에 올려놓다
부처님의 뒤를 이을 법제자로써 마하가섭은 거침없이 다음 일을 진행했다. 그는 가장 먼저 500비구들을 결집했다. 그 중에는 아누룻다, 우바리, 부루나 같은 장로들도 있었고 아난도 물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고향 근처에 있는 칠엽굴에 모여서 부처님이 안 계신 후의 일을 의논하였다. 모두들 두말없이 마하가섭을 따랐다.
그는 먼저 부처님이 그동안 출가자들이 지켜야 할 계율을 엮을 인물을 찾았다. 만장일치로 우바리가 뽑혔다. 논을 엮을 비구로는 부루나가 뽑혔다. 그리고 마지막 경을 엮을 비구로는 아난이 뽑혔다. 그러자 마하가섭이 싸늘한 얼굴로 반대를 했다. 그가 아직 깨달음을 얻지 못했다는 이유였다. 그때 아난의 얼굴은 얼마나 화끈거렸을까.
6살 때 출가하여 20살 때 부처님의 시자가 된 아난은 누구보다 교단의 일을 잘 알고 있는 중요 인물이었을 뿐 아니라, 항상 부처님을 가까이에서 모시며 부처님의 법문을 듣기를 가장 즐겨하고 또 엄청난 집중력과 비상한 기억력으로 그 말씀들을 모조리 암기하여 많은 이들로부터 칭찬을 받아오지 않았던가. 그런 그가 부처님이 반열반하신 후, 최초로 교단에서 가장 신뢰받는 500명의 장로들이 모인 자리에게 공개적인 망신을 당한 것이었다.
하지만 아난으로써도 마하가섭의 반대에 대하여 할 말이 없었다. 그 자리에 있는 비구와 장로들 중 아라한의 깨달음을 얻지 못한 이는 오직 자신 한 사람뿐이었다. 아난은 창피해하거나 화를 내는 대신 이를 악물고 용맹 정진하여 깨달음을 얻기로 했다. 이 얼마나 정정 당당하고 멋진 방법인가. 깨달음을 얻는 일은 정진하는 시간과 비례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를 아는 나머지 장로들은 아난의 선택을 존중하고 그가 작은 석실에서 홀로 정진하도록 배려해 주었다. 언제나 부처님 곁을 그림자처럼 맴돌며 지켜왔던 아난은 부처님이 떠나신 후 비로소 자립하여 수행에 홀로 몰두할 수 있었다. 아난의 깨달음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난이 깨달음을 얻고 석실에서 나올 때, 이를 알고 가장 먼저 맞이한 이 또한 마하가섭이었다. 마하가섭의 인도에 따라 아난은 사자좌에 앉아 경을 암송하기 시작했다. 아난의 암송이 끝날 때마다 500명의 장로들이 그의 말을 따라 하며 부처님의 말씀을 암기했다. 그렇게 계, 율, 경 삼장이 순조롭게 결집되었다.
이 모든 것을 총 지휘한 마하가섭은 깨달음을 얻은 아난을 보면서 내심 기뻤을 것이다. 그것을 위해 일부러 500명의 장로들이 보는 앞에서 아난에게 대놓고 망신을 주며 자극을 주었는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고 해도 농담을 모르는 칼 같은 마하가섭의 성격이 그의 내심을 철저하고도 확실하게 감추어주었을 것이다. 반면 언제나 어린아이 같던 아난은 이를 계기로 의젓한 장로의 위치를 확립하고 마침내 잘 생기고 마음씨 고운 부처님의 ‘시자’에서 벗어서 ‘십대제자’의 반열에 오를 수 있게 되었다.

주윤발이 열연을 펼친 영화 <공자>는 춘추전국 시대 제자백가 사상의 으뜸이자 수 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살아있는 멘토의 역할을 하고 있는 동양 최고의 현실주의 철학자 공자의 이야기이다. 공자는 살아서 거의 평생을 이 나라 저 나라를 떠돌면서 가난하게 지냈다. 하지만 그의 방랑은 외롭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와 함께한 제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공자는 이 제자들과 함께 대화를 하며 자신의 사상을 전하고 발전시켜 나갔는데 이 대화를 기록한 책이 바로 유가 사상의 정수이자 교과서라고 할 수 있는 <논어(論語)>이다.
머무는 곳 없이 제자들과 함께 이곳저곳을 떠돌며 생활했다는 점에서 공자의 일생은 어떻게 보면 부처님과도 닮아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공자는 타의에 의해서 즉, 본인은 간절하게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있는 나라와 왕을 찾아다녔지만 ‘채용’이 되지 않아서 떠돌았고, 부처님은 타고난 지위와 수많은 스카우트 제의가 있었으나 자의에 의해서 수행자의 삶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스승과 제자라는 아름다운 관계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고는 하지만 모든 중생과 제자들의 ‘아버지’를 자처한 부처님에게도 유독 애틋한 제자가 있었던 것처럼 공자에게도 그런 제자들이 있었다. 영화 <공자>에서는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일화를 남긴 제자 자로와 안회의 이야기는 영화 속에서도 깊은 감동을 주었다.
먼저 스승과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았던 제자 자로는 괄괄한 성격을 지녔는데 공자는 자로의 그러한 성품을 늘 경계하라고 가르쳤다. 그래서 자로와의 일화에는 칭찬 보다는 나무람 섞인 이야기들이 많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공자가 이 제자 또한 몹시 사랑하였음을 매우 아름다운 영상으로 보여주었다.
고국을 떠나 제자들과 함께 정해진 거처 없이 여러 나라들을 떠돌아다니며 계속해서 수업을 해 나가기를 수 십 년, 그들의 명성을 들은 위나라의 왕이 공자의 제자 중에서 자로에게 벼슬을 내려 초빙한다. 한 마디로 스카웃이 된 것이다. 자로는 기뻐한다. 이런 좋은 기회에 자신이 빨리 위나라에서 공을 세워 자리를 잡아 스승을 편안하게 모시겠다는 마음으로 떠나기 전 스승 앞에서 인사를 올린다.

“제가 하루빨리 공을 세워 스승님을 편안히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자 머리가 하얗게 세고 등은 굽은 채 지팡이를 짚은 공자가 이 말을 듣고 흰머리에 주름이 성성한 제자를 타이른다.

“자로야, 그런 소리 하지 마라. 무엇이든 빨리 이루겠다는 마음을 먹어서는 안 된다. 너의 그런 성격이 염려스럽구나.”

공자는 떠나는 제자의 모자 끈을 손수 묶어주며 자상하게 마지막까지도 그를 타이르며 염려한다. 함께 늙어가는 스승과 제자의 이 짤막한 대사를 통해 수 십 년을 함께하고도, 배우고 가르치면서도 참으로 변하지 않는 것이 사람의 성격이요, 혈연조차 뛰어넘는 것이 스승과 제자의 인연임이 새삼 가슴에 와 닿는다.
다음 순간, 자로를 태운 위나라의 마차가 달리는 장면과 함께 늙은 스승이 지팡이를 짚고 힘겹게 언덕 위를 올라 제자가 떠나는 것을 끝까지 지켜보는 모습이 등장한다. 그 순간 절로 가슴이 뭉클해오며 스승과 제자라는 인연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새삼 감동이 밀려왔다. 마하가섭과 부처님의 관계 또한 공자와 제자들의 애틋한 관계에 못지않았다. 아니 가섭과 부처님의 관계는 공자의 제자들 중 안회와 자로를 합친 것을 뛰어넘을 정도였다.

죽음을 뛰어넘은 사랑
공자가 가장 사랑했던 제자로 유명한 안회는 가난한 환경 속에서 성장했지만 단정한 외모와 뛰어날 자질을 갖춰 스승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그는 무슨 일을 해도 언제나 칭찬을 아낌없이 받았는데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공자는 총애하던 제자의 안타까운 죽음을 크게 슬퍼하였다.
영화 <공자>에서는 안회의 죽음을 매우 극적으로 다루었다. 추운 겨울, 공자와 제자들이 수레를 타고 얼음 호수 위를 달리며 이동한다. 그러던 중 얼음이 깨지는 상황이 발생한다. 깜짝 놀란 공자와 제자들은 더욱 서둘러 움직이는데 안회가 탄 수레가 그만 얼음 호수에 빠지고 만다. 안회가 몰던 수레에는 공자가 그동안 쓴 글들을 담은 죽간이 가득 담겨 있었다. 안회는 거침없이 얼음물 속으로 뛰어들어 가라앉는 죽간들을 건져낸다. 스승과 사형, 사제들이 그가 빠진 웅덩이를 에워싸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발만 동동 구르며 그가 나오기를 기다린다. 이윽고 안회가 죽간을 가득 안고 물 위에 나타난다. 그리고 죽간만 얼음 위로 던져놓고는 다시 물속으로 들어간다.
그러기를 수차례, 공자는 당장이라도 함께 물속에 들어갈 듯 손을 저으며 울음을 터트리고, 노쇠한 스승을 말리는 제자들의 눈에도 눈물이 가득하다.

“회야, 그만 나오거라. 이제 그만 나오거라.”

늙은 스승이 울부짖지만 안회는 스승의 명이 들리지 않는 듯 계속 죽간을 건져내다가 끝내 물 위에 떠오른다. 제자들이 서둘러 그를 건져낸다. 공자는 망연한 얼굴로 제자의 몸을 품에 안고 다시 이동한다. 거처를 정한 후에도 이미 숨이 끊어진지 한참이 된 제자의 차가운 몸을 끝내 품에서 놓지 못한다. 결국 다른 제자들이 억지로 두 사람을 갈라놓자 공자의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흐른다.
공자가 당시로써는 장수를 하며 안회와 자로 같은 애틋한 제자들이 먼저 세상을 떠나는 것을 지켜봐야 했던 것처럼 부처님도 사리불과 목건련 같은 제자들이 먼저 열반에 드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사리불과 목건련이 떠난 후, 부처님은 가섭에게 의지하고 싶으셨을 수도 있다. 마하가섭은 교단과 법을 이어받을 든든한 제자가 아니던가. 부처님은 마하가섭에게 두타수행을 그만 두고 이제 교단에서 지내라고 권유하셨던 것에는 그런 의미도 담겨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마하가섭의 대답은 단호했고, 부처님은 사랑하는 제자의 뜻을 존중해 주셨다. 그 결과, 마하가섭은 교단의 등불이 되었지만 부처님의 열반을 지키지 못했다. 그러나 부처님은 사랑하는 제자가 슬퍼하자 죽음 이후에도 자신의 마음을 보여주셨다. 실로 죽음을 뛰어넘은 자애로운 스승의 사랑이었다. 부처님의 반열반 이후의 이야기는 다음 편에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