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파크도서 북&

[북&칼럼외조: 성공한 여자를 만든 남자의 비결] 세계적인 인류학자 제인 구달의 천생연분 3화

루이스, 휴고, 데릭
: 세계적인 인류학자 제인 구달의 남자들

아프리카 오지의 연인, 휴고와 제인

한편 내셔널지오그래픽은 한동안 제인의 연구를 불만족스럽게 지켜보았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은 학자가 아닌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잡지였기 때문이다. 독자들에게는 수십 장의 보고서보다 단 한 장의 사진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었다. 그때까지 제인은 곰베에서 홀로 연구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진 또한 직접 찍었다. 습기가 많고 울창한 숲 지역인 곰베에서 그녀가 찍은 사진은 수준 높은 사진과 영상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내셔널지오그래픽에 싣기 무리였다.

그리하여 1962년, 내셔널지오그래픽은 제인의 연구를 ‘시각적’으로 독자들에게 전달할 사진작가 한 명을 곰베로 파견했다. 몇 년 동안이나 아프리카에 체류하며 야생 사진을 전문으로 찍어온 휴고 반 라윅은 실력 있는 사진작가이자 영상작가였다. 그는 스틸카메라와 16㎜카메라 장비를 가득 챙겨서 곰베에 도착했다. 처음에 제인은 겨우 그녀에게 익숙해진 침팬지 연구가 낯선 사람의 출현으로 차질이 빚어질까 우려했으나 이내 휴고와 함께하는 것에 적응했다.

세상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은 탐험가 부부의 탄생

서로 전문 분야가 달랐지만 휴고와 제인은 의견이 잘 맞았다. 곰베에 도착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야생 침팬지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관찰하기 위해 제인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 끝에 ‘바나나 급식소’를 세웠다. 이 급식소는 침팬지의 행동을 연구하는 데에도 매우 큰 영향을 끼쳤을 뿐 아니라 제인의 연구를 훌륭한 영상과 사진으로 담아내는 데 혁혁한 역할을 해냈다. 제인의 우려와 달리 휴고는 그녀의 연구에 날개가 되어줄 찬란하고 든든한 조력자였던 셈이다.

휴고가 사진과 영상으로 담아낸 침팬지의 세계는 두꺼운 논문이나 부연설명 없이도 독자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휴고가 찍은 곰베의 침팬지들과 제인의 사진 및 영상은 세계인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휴고는 제인을 세계로 알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지만 그녀의 연구에도 매우 큰 도움을 주었다. 평균적으로 수명이 40년~60년인 침팬지의 발달 과정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십여 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다.

특히 휴고가 곰베에 도착했을 무렵, 제인은 무리에서 가장 인기 있고 매혹적인 암컷 침팬지 ‘플로’와 친해진 후였다. 1960년 제인과 처음 만난 플로는 1972년에 죽을 때까지 그녀의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 휴고와 함께한 십여 년 동안 제인은 플로의 사랑과 임신, 출산, 육아 등을 비롯하여 침팬지들의 다양하고도 영리하며 ‘인간적인’ 모습을 고스란히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환상의 호흡을 자랑한 휴고와 제인은 실제로 사랑에 빠져 결혼을 했다. 오지에서 연구를 진행하며 사랑에 빠진 귀족 출신의 매력적인 남자와 아름다운 금발의 영국 미녀의 러브 스토리는 전 세계인의 주목을 받았다. 한쪽으로 머리를 묶고 반바지를 입은 채 침팬지와 눈을 맞추거나 손을 잡는 모습, 때로는 아들과 함께 아프리카 밀림에서 함께 있는 모습 등 지금도 ‘제인 구달’ 하면 떠오르는 아름다운 사진들 대부분은 이때 휴고가 찍은 것들이다. 휴고가 찍은, 내셔널지오그래픽에 실린 아름다운 사진으로 전 세계에 이름이 알려진 제인은 동화 같은 결혼을 통해 오지 탐험을 꿈꾸는 여성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으며 더욱 큰 인기를 누렸다.

 
휴고가 찍은 제인과 그럽

아들의 탄생과 이혼의 아픔

1967년 휴고와의 사이에서 아들 그럽이 태어나자 제인은 예전처럼 몇 날 며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연구 관찰을 하기가 어려워졌다. 그래서 제인과 휴고는 소형차 한 대를 마련해 그 안에서 먹고 자며 새로운 작업을 시작했다. 야생동물 사진작가인 휴고는 원래부터 찍고 싶었던 사진을 찍었고, 제인은 틈틈이 그동안 곰베에서 진행해 온 침팬지 연구와 그것을 통해 느낀 점을 글로 썼다키우는 동안 몸은 고되었지만 두 사람은 행복했다.

공들였던 작업이 끝나고 1971년, 두 사람은 각각 책을 출간했다. 제인의 책에 들어갈 사진은 휴고가 찍었다. 하지만 출간 즉시 세계적으로 베스트셀러가 된 제인의 책 <인간의 그늘에서>에 비해 휴고의 사진집은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야생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은 휴고의 뛰어난 사진과 영상은 제인을 스타덤에 올려주었지만, 이제 사람들은 제인이 주인공이 아닌 그의 사진을 보고 싶어 하지 않았다. 사진작가의 꿈을 가지고 있던 휴고는 이 일로 크게 실망했고 뒤늦은 방황을 했다.

하지만 제인은 내면의 문제로 고민하는 휴고에게 별다른 도움을 줄 수가 없었다. 그것은 휴고 스스로 떨치지 않는 이상 제인이 해결해 줄 수 없는 문제이기도 했다. 그녀는 휴고와의 소원해진 사이를 일을 통해 채워나갔다. 1972년 스탠퍼드 대학의 외래교수로 임명된 제인은 강연을 하고 논문을 쓰면서 1년에 몇 달씩은 미국으로 가 강의를 했다. 또 제인 혼자 연구를 계속해 오던 곰베의 캠프가 <곰베 강 연구소>라는 이름의 정식 기관으로 등록되었다. 연구소는 여러 대학들과 결연을 맺으며 침팬지를 연구하고자 하는 학생들에게도 문이 활짝 열렸고, 총책임자인 제인은 기존의 연구를 계속하면서 연구소를 운영하는 일까지 하게 되었다.

이처럼 바쁜 시간을 보내며 세계적으로 명성이 한창 높아지던 1974년, 제인과 휴고는 결국 헤어졌다. 비록 이혼으로 끝나긴 했지만 휴고와 함께한 10년은 제인과 곰베를 세계에 알리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동안 세계적인 인기 학자로 성장한 제인은 이혼으로 경력이나 연구에 전혀 타격을 받지 않은 채 계속해서 전진했다.

인터파크도서 북&

[북&칼럼외조: 성공한 여자를 만든 남자의 비결] 세계적인 인류학자 제인 구달의 천생연분 2화

루이스, 휴고, 데릭
: 세계적인 인류학자 제인 구달의 남자들

인터파크도서 북&

[북&칼럼외조: 성공한 여자를 만든 남자의 비결] 세계적인 인류학자 제인 구달의 천생연분 1화

루이스, 휴고, 데릭
: 세계적인 인류학자 제인 구달의 남자들

하얀색 피부의 케냐인, 루이스 리키

루이스 리키는 1903년 아프리카 케냐에서 선교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케냐에서 태어나 키쿠유족과 함께 자란 그는 영국인이었지만 스스로 자신은 피부색만 다를 뿐 케냐인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의 아버지는 그가 태어나자 키쿠유족의 풍습대로 그를 바구니에 담아 집 밖에 내어놓았고, 부족의 어른들은 한 명씩 침을 뱉으며 그의 탄생을 축복해 주었다. 또 그는 부족의 또래 소년들과 마찬가지로 ‘아프리카 스타일’로 할례를 받기도 했다.

루이스는 열세 살 때 선물로 받은 <역사 이전의 시대>라는 책을 읽고 고고학에 처음으로 관심을 갖게 됐다. 그리고 키쿠유 마을에서 선사시대에 사용했던 석기들을 발견하고 홀로 유물들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보통의 영국 소년들과 전혀 다른 유년기를 보낸 그는 영국에서 고등학교에 들어갔을 때 문화적 충격을 받았지만 주눅 들기보다 오히려 케냐에서 생활했던 것에 자부심을 느끼게 되었다. 주변의 비웃음 섞인 우려에도 불구하고 케임브리지대학에 무사히 입학한 그는 어릴 적부터 막연하게 관심을 가져온 고고학과 인류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로 했다.

대학에서 공부에 매진하던 루이스는 어느 날 운동 중 머리를 심하게 부딪치는 부상을 당했다. 이때의 후유증으로 평생 심각한 만성 두통과 간질 증상을 겪게 되었다. 하지만 부상 당시 루이스는 일단 의사의 권유대로 잠시 학교를 떠나 휴식을 취하기로 한다. 그가 선택한 휴식은 고향 아프리카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루이스는 영국 자연사박물관에서 추진 중이던 아프리카 공룡 화석 탐험에 지원했다. 아프리카에서 진행된 학술적 화석 탐험을 통해 현장 학습을 한 루이스는 ‘발굴과 탐험’을 자신의 진로로 확정했다.


범아프리카 학술 대회를 이끌다

영국으로 돌아와 아더 케이스 교수 밑에서 맹렬하게 공부를 한 끝에 루이스는 1931년, 스물셋의 나이로 케임브리지대학으로부터 연구 기금 지원을 받아 다시 아프리카로 향했다. 무모하리만치 열정적인 도전 정신으로 무장한 루이스는 넘치는 자신감으로 그가 평생을 바친 운명의 땅, 올두바이 계곡에서 발굴 활동을 시작했다.

매력적인 외모와 도발적인 기질을 타고난 그는 어수룩하거나 수줍은 성격의 은둔형 학자와는 거리가 멀었다. 루이스는 새로운 화석을 발굴할 때마다 인류의 기원에 대한 학계의 통설을 뒤집는 과감한 이론을 주장했고, 이내 학계 최고의 이슈 메이커이자 스캔들 메이커로서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

1936년, 루이스는 평생에 걸쳐 함께 고고학과 인류학 연구의 완벽한 동반자가 되어줄 10세 연하의 매리와 결혼했다. 신중하고 꼼꼼한 성격의 매리는 곧잘 덤벙거리는 성격의 루이스와 좋은 팀을 이루었다. 자질 논란을 빚으며 한동안 학계로부터 외면을 당했던 루이스는 매리의 합류로 기운을 차렸고, 1947년 아프리카와 관련된 모든 학자들과 발굴 성과를 한자리에 모은 제1회 범아프리카 학술회의를 개최하였다.

총 26개 나라, 60여 명의 과학자들이 참여한 이 학술대회는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며 성황리에 치러졌고, 학회 덕분에 루이스는 영국의 왕립과학원으로부터 연구비 지원을 받으며 학계로 복귀하게 되었다.

매력적인 영국인 아가씨 제인 구달과의 만남

아내 매리의 협조와 이해가 있긴 했지만 루이스는 일정한 수입이 발생하는 직업을 갖지 않았기 때문에 지원금이 있더라도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경우가 잦았다. 다행히 케냐 자연사박물관에서 그를 학예사로 고용하였다. 아프리카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다양한 인맥을 갖춘 루이스는 그 일을 맡기에 최고의 적임자였고, 덕분에 그는 생활에서 약간의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제인과 루이스가 처음 만난 것도 케냐의 자연사박물관에서였다.

1956년,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을 들고 케냐에 온 스물세 살의 영국인 아가씨 제인은 계속해서 아프리카에 머물며 일을 찾고 싶었다. 그때 그녀의 친구가 아프리카에 관심이 있는 사람 누구에게나 친절과 호의를 베푸는 케냐의 명물 학자 루이스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제인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루이스를 만나러 무작정 박물관으로 찾아갔다.

자신이 아프리카에 왔을 때와 똑같은 나이의 제인을 처음 보았을 때 루이스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두말할 것도 없이 그는 젊고 아름다우며 씩씩하고 명석한 제인에게 한눈에 반했다. 루이스에게는 이미 매리와 세 아들들이 있었고 제인과는 무려 31세의 나이 차가 났지만 그에게 가정과 아름다운 여성에 대한 호감은 별개의 문제였다.

루이스는 제인이 박물관과 올두바이에서 일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 주고 애정을 듬뿍 담아 고고학과 인류학에 대해 개인 지도를 하듯 가르쳤다. 그리고 비서학교를 졸업한 제인의 비서 경력을 살려 제인을 자신의 개인 비서로 고용했다. 아프리카와 인류학에 대해 누구보다 풍부한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열정적으로 활동하는 루이스의 비서로 근무하며 제인은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동물행동 관찰이라는 제인의 재능을 이끌어내다

이 세상 모든 것에 관심이 있었던 루이스는 정열적인 성격과 타고난 달변의 소유자였다. 대학에서 공부를 한 적이 없을 뿐 아니라 발굴이나 연구에 대하여 전문 지식이 전혀 없던 제인은 스펀지가 물을 흡수하듯 루이스를 통해 아프리카와 지식에 대한 갈증을 해소했고, 현장에서 직접 일도 했다. 제인에게 루이스는 단순한 고용주가 아니라 어떤 궁금증도 친절하게 가르쳐주는 최고의 스승이었다.

하지만 그의 바람과 달리 제인과의 로맨스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여린 외모와 달리 당찬 여성이었던 제인은 처음부터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했다. 처음에 루이스는 약간 서운했지만, 그렇다고 제인을 해고하거나 쫓아내지 않고 부녀같이 다정하고 사이좋은 사제지간으로 남기를 택했다. 루이스의 이러한 결정은 제인과 인류학의 역사에 매우 중대한 영향을 끼쳤다. 만약 그가 제인을 오로지 ‘이성’으로만 여겨 자신의 감정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때 그녀를 외면하는 유치한 남자였더라면 오늘날의 제인 구달은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제인은 계속하여 루이스와 함께 일했지만 발굴이나 화석 탐험은 그녀의 적성에 100% 맞지는 않았다. 제인을 꾸준히 지켜본 루이스는 누구보다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오랫동안 준비해 온 프로젝트를 담당할 인물로 내심 제인을 점찍어두고 있었다. 루이스가 야심차게 준비한 프로젝트는 바로 야생 상태의 침팬지를 연구하는 것이었다.

평생 화석을 발굴하며 고인류학을 연구해 온 그는 야생 침팬지 연구가 인간의 과거 행동 양식을 들여다볼 희망의 창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이 일을 하기에 누구보다 제인이 적임자라고 생각했지만 과연 제인도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제인에게 곧바로 프로젝트를 맡기는 대신 수년에 걸쳐 이 연구에 대해 설명했다. 그리고 마침내 제인의 입에서 “그것이야말로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이라는 말이 나오게 만들었다. 제인은 진심으로 이 일을 하고 싶어 했지만 학위도 없고 전문가도 아닌 자신이 과연 이 중요한 일을 맡을 수 있을지 고민했던 것이다. 그러나 제인의 마음을 확인할 날만을 기다려온 루이스에게 이것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