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년 조선 역사에 임금의 자리에 앉았던 왕들은 모두 26명. 그런데 생각외로 다양한 방법으로 왕위에 올랐다라는 것입니다. 선왕 승하 후 왕과 왕비의 아들 혹은 세자의 아들로 태어나 왕위를 정상적으로 이어받은 경우는 단종, 연산군, 인종, 숙종, 정조, 헌종 6명이었고, 장남이 왕위를 이은 완전무결한 정통성을 가졌던 경우는 연산군과 숙종 단 2명뿐입니다. 

 

 

《조선 임금 잔혹사》는 '과연 조선의 임금들은 어떻게 왕이 되었는가'를 주제로 왕으로 선택받은 남자 세종, 성종, 중종, 왕으로 태어난 사람 연산군, 숙종, 정조, 왕이 되고 싶었던 사람 선조, 광해군, 인조, 그리고 끝내 왕이 되지 못했던 사람 소현세자, 사도세자, 효명세자 이렇게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고 뜨겁게 싸운 조선의 9명 임금과 3명의 세자를 다루고 있습니다.

 

 

 

군주로서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의 약점은 누구나 가지고 있었습니다. 세종의 경우 한글 창제 외 정치보복을 하지 않은 조선역사에서 보기 드문 위대한 성군으로 평가받지만 불행사 가정사라는 콤플렉스가 있었고, 성종은 착한 효자이되 비정한 남편의 모습을 보이는 등 임금의 자리를 벗어나면 그들도 한 인간이기에 가질 수밖에 없는 다양한 면모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왕위계승은 결국 친족살인과 더불어 정치파트너와의 관계속에서 이뤄졌던터라 '마음의 빚'은 성군에서 내려오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했고요. 임금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숨겨진 이야기들이 참 많네요. 조선 500년 역사 내내 왕권과 신권이 대립하다보니 왕이 되는 과정, 그 자리를 유지하는 과정은 참 외로우면서도 드라마틱한 인생입니다.

 

 

임진왜란이라는 국난의 중심에서 나라와 군주의 책임을 버렸던 선조를 보며 지금 이 시대를 다시 한번 떠올려 봅니다. 조선 역사상 가장 무능한 군주로 기억하게 된 선조의 일화는 그들에게 주어진 운명인 군주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 결국 역사의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토막 상식으로 나오는 조선 역사와 관련된 상식도 알차네요. 우리가 부르는 임금의 명칭은 종묘에 올린 묘호의 줄임말인데 태종, 세종처럼 종宗을 쓰기도 하고, 영조, 정조처럼 조組를 쓰기도 합니다. 조와 종을 쓰는 데 몇 가지 기준이 있는데 이것도 정통성이라는 명분하에 은근 뒷이야기가 있더라고요. 그 외 조선의 관직, 당쟁의 역사 등 조선역사의 배경을 아는데 도움이 될만한 상식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유치하고도 사소한 두 사람의 감정다툼이 300년 당쟁 시대의 씨앗이 되기도 하고, 신상털기, 막장정치 등 (어찌 이렇게 반복되는지.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게 없군요) 권력에 대한 욕망으로 이뤄진 조선 역사를 하나하나 살펴보다보면 결국 권력과 임금 자리를 두고 가장 치열하게 싸웠던 문제는 바로 '세자 문제'였습니다. 세자가 되었다고 해서 모두 무사히 왕위에 오르는 것도 아니었지요. 폐위조차 되지 못한 채 권력의 희생양으로 목숨을 잃은 세자 이야기는 특히 가슴 아팠습니다. 용의자가 아버지 인조인 의문의 죽음을 당한 소현세자와 조선 왕실 최대 비극이라 말할 수 있는 사도세자 둘 다 비극적으로 삶을 마쳤고, 조선 마지막 등불이었던 효명세자의 짧은 생애도 안타까웠습니다. 위의 표에서도 나오지만 세자 재임 기간이 길수록 국왕 재위 기간이 짧았다는 것은 그만큼 세자 시절의 고난을 짐작하게 합니다.

 

승자의 손에 기록되는 '역사'. 그래서 폐위된 연산군과 광해군의 일부 에피소드는 폐위시킨 이들이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한 노력이었을 뿐 곧이 곧대로 믿으면 안되기도 했고요. 권력과 욕망 그리고 운명의 관계를 보며 인생 덧없다라는 생각도 절로 듭니다.

 

 

왕위 계승표를 보면 그 시기를 다룬 영화나 드라마 소개까지 하고 있어 흥미롭네요. 정조편에는 최근 영화 <역린>도 기재되어 있더라고요. "짐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라며 모든 대신들 앞에서 당당히 자신의 시대를 시작한 정조의 스토리는 상상만으로도 멋지네요. 

 

《조선 임금 잔혹사》라는 제목이 정말 어울리는 것 같아요. 어떻게 태어나, 어떻게 왕위에 오르고, 어떤 업적을 세웠고, 어떤 문제를 일으켰고, 어떻게 세상을 떠났는가를 어렵지 않게 풀어내고 있어 누가 옆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술술 해주고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얽히고 설킨 주변인물의 이야기를 포함해 조선왕조오백년 역사 속에서 조선의 임금으로 살아냈던 왕들의 이야기를 통해 조선 역사의 진짜 모습을 볼 수 있는 책입니다.

 

 

 

 

임금으로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참 고단할것 같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해왔었던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도 그랬었고, 사극에서 임금의 자리를 보면서도 그랬었던 것 같다. 조선의 500년 역사 속에서왕들은 총 26명. 이 26명 중에 왕이 죽고 세자인 아들이 왕위를 이어받는 지극히 자연적이었던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자연적으로 세자가 물려받았던 임금은 딱 2명. 연산군과 숙종이다. 이것만 봐도, 임금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수많은 고난과 역경, 사건들이 발생한 후 왕이 되었는지를 말해주는 숫자이다.

 

이 책에서 소개된 조선의 왕은 총 12명이 소개되어 있다. 3명씩 나누어져 왕으로 선택된 남자와 왕이 되고 싶었던 남자, 그리고 왕으로 태어난 남자. 왕이 되지 못한 남자로 나누어 3명씩 왕이 소개된다. 사실, 우리에겐 상당히 익숙한 왕들이다. 사극드라마를 좀 보신 분들이라면, 그리고 역사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말이다. 26명의 왕이 살아내야 했던 왕의 자리는 어떠한 것이었을까. 그들은 왕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자신의 노력으로 혹은 정치적 세력에 힘입어, 그 자리를 꿰어찼으며,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왕의 자리는 대개 오래가질 못했다. 그리고 왕들은 오래 살지 못했다. 그만큼 그들의 스트레스가 상당했으리라 생각된다. 일부일처제가 아니었으므로 많은 여자를 거느린 왕의 자리는 또 많은 자식을 가지게 되었지만, 그들을 잃음으로써 많이 고통받기도 하였다. 총 12명의 소개된 왕 중 단연 나의 눈에 들어온 이는 세종이었다. 중간중간 토막상식이라고 꼭 알아야 하는 이야기들이 나와서 심심하지 않았고, 맨 마지막 책의 부록에는 한눈에 보는 왕위 계승 표가 있는데, 주요업적뿐만 아니라, 그 시기를 다룬 영화나 드라마까지 소개되어 있어서 독특하고 재미있었다.

 

이 책을 통해서 한층 더 조선의 임금들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었고, 어떤 임금에게는 연민이 또 어떤 임금에게서는 얼굴이 상기될 만큼 화가 나기도 했다. 하지만 자신의 권력욕에 마음을 가득 채웠던 이가 있는가 하면, 백성을 위해 모든 시간을 아낌없이 바쳤던 왕도 있었기에. 마음이 그리 서늘해지지는 않았다. 역사 속에서 그들이 얼마나 힘겹게 왕위에 올랐는지. 또 지키려 했는지. 그 시간을 글로써 읽어내려가는 나는 마음 한쪽이 울렁거린다.

 

 

'짐은 곧 국가다'라는 말을 남긴 루이 14세는 왕권신수설을 믿었다. 제왕이나 황제의 권력과 지위는 신이 주는 것으로, 왕은 신과 소통하는 고귀한 존재였다. 이는 중세 유럽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의 왕권 국가 곳곳에 강력하게 뿌리내린 사상이다. 하지만 조선은 달랐다. 조선은 시골 무사 출신 이성계의 군사력과 리더십 그리고 재상이 중심이 되는 국가, 입헌군주제를 구상하던 정도전의 합작품이었다. 그 결과 이성계는 고려의 마지막 임금 공양왕으로부터 왕위를 양위받은 후 큰 유혈 사태 없이 새 왕조를 창업했다. (p.55)

 

역사 속에서. 뛰어난 천재들은 어느 한 순간에 동시 다발적으로 태어나는 경향이 있다. 이 천재들은 때때로 시대라는 거대한 벽에 부딪혀 사라지기도 하지만 엄청난 에너지를 발휘하여 시대의 흐름을 바꾸어놓기도 한다. 그 중에서도 15~16세기는 문명사회 전체가 중세를 마감하고 근대를 맞이하기 위해 새로운 격동을 겪기 시작하던 시기이자 천재들의 전성시대였다. (p.84)

 

 

엄마라고 꼭 그런것은 아니겠지만 엄마들은 자연스럽게 비교를 너무나 잘한다. 나도 엄마로서 비교는 필수!(ㅋㅋ) 조선의 임금님들을 만나면서도 당연히 비교를 하고 있는 나를 보게 된다. 500년 26명의 임금과 현시대의 대통령이라는 이름하에 지나간 그들을 말이다. 왕으로 선택된 남자, 왕이 되고 싶은 남자, 왕으로 태어난 남자, 왕이 되지 못한 남자 이들을 만난 나는 무겁다. 시대를 잘못 타고 태어난 이들도 있네라고 가볍게 넘겨버리기엔 역사라는 단어 자체가 갖는 중압감이 나를 짓누른다. 우리들의 머릿속에 각인 되어져 있는 선군과 폭군의 이미지에도 많은 금이 생겼다. 특별히 세종대왕은 그도 인간이라는 것을 살짝 엿볼 수 있엇다고 해야할 것이고 누구보다 광해군에 대한 한 인간의 아니 자식으로서 사랑받고 싶은 여린 마음을 들켜버린 것 같아서 가슴이 너무 아팠고 폭군이라는 이미지와는 별도로 임진왜란을 통해서 보여준 백성을 향한 마음에는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나도 모르게 역사는 광해를 내 머릿속에 폭군으로 단단히 박아둔 것 같아서 못내 미안한 마음이었다.

왕으로 태어났지만 나라안의 당쟁으로 인해서 힘들고 어렵게 시대를 지나온 그들에게도 정치라는 명명하에 끝내 왕이 되지 못하고 죽음으로 생을 마감한  소현세자, 사도세자, 효명세자를 만나면 "왜" 라는 울분이 답답한 가슴을 갈갈이 찢는 아픔을 만나게 될 것이다. 지금도 역사의 한 페이지를 달려가고 있다는 사실을 진정으로 가슴 깊숙히 받아들이는 정치인들이 되었으면 좋겟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또한가지 성경에 보면 여호수아와 갈렙이 나오는데 이 갈렙같은 사람(권력의 2인자라고 감히 말해본다)이 우리 역사속에도 역사를 만들어가는 지금에도 미래의 역사속에서도 많이 배출되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역사의 심판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서 책임의식을 갖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르겟다. 그러나 그러나 말이다 너무 슬프지 않는가? 마치 죽음 이후에 천국과 지옥이 없다고 생각하고 세상만사 끝장을 보자는 독한 심성으로 독기품고 살아가는 것같은 우매한 인간으로 전락하고 있는 것 같단 말이다. 한치 앞도 분간하지 못하는 인간이지만 그래도 미래를 생각하고 목표를 삼고 최소한 인간다운 사람다운 모습으로는 살아야 하지 않을까? 권력을 탐하고 돈을 쫓아가고 나의 입신양면만 중하지 다른 이들은 그저 미개한 치근덕거리고 걸그적 거리는 존재 쯤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그것은 참다운 인간, 사람이 할 짓이 아니지 않는가 말이다. 제목처럼 잔혹사를 만들어가는 것도 인간인데 참 힘들다. 그들을 보호하지 못해서 힘들다기보다는 지금의 시대에도 똑같이 반복되어지는 역사가 너무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