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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문학의 오늘] 일본에서 한국문학을 출판한다는 것

출판인들이 흔히 말하듯, 정말 “우리가 한 일이라고는 책 한 권에 정성껏 쓴 보도자료뿐”이었다. 따로 홍보를 기획하지 않았다. 그런데 담당 기자들은 문의전화를 걸어왔고, 서평가들은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작품의 수준이 높다, 번역이 좋다, 책의 장정이 뛰어나다…… 평생 받을 칭찬을 이번에 몰아받는 게 아닐까 싶었다.

사실 이 시리즈를 기획할 때 나는 번역자의 연령대를 염두에 두었다. 일본에서 한국문학을 번역하는 번역자들은 주로 60~70대인 편이다. 30대, 40대, 20대인 작가의 작풍을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젊은 번역자?험이 있어 한국을 피부로 아는 번역자를 원했다. 다행히 한국에서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한 일본인 번역자들을 만났고, 한국인이면서 일본에서 문학을 전공한 분(김훈아 씨)과 같이 작업을 하게 되었다.

두 번째로 염두에 둔 것은 세련된 장정이었다. 시리즈로 기획되는 것이니만큼 심플하면서 고급스러운 책을 만들고 싶었다. 일본에서 손꼽히는 아트디렉터 요리후지 분페이 씨가 기꺼이 아트 디렉션을 해주었다. 그 결과, 독자도 우리도 다 만족할 수 있었다.

‘쿠온’에서 <채식주의자>가 출간된 지 두 달 후, 일본도서관협회에서 도서관 선정도서로 지정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일본의 도서관 선정도서는 연간 총 출판서적 중 15%라고 한다. 선정이 되면 도서관에서 구입을 결정하는데 우선순위에 놓인다는 장점이 있다. 자연히 도서관에서 주문이 많이 들어왔다. 더군다나 우리는 시리즈로 기획하고 있기 때문에 1번이 자리를 잡으면 2번, 3번이 자연히 그 옆에 설 터이다. 이는 장정 디자인을 할 때부터 노린 일이다. 일부러 ‘새로운 한국문학 시리즈’ 옆에 ‘01’이라는 숫자를 붙였다.
우리는 이 시리즈를 연4 - 6권씩 출간해 내갈 것이다. 현재 하성란의 <A>, 박성원의 <도시는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 김애란의 <두근두근 내 인생>, 김언수의 <설계자들> , 구효서의 <나가사키 파파> 가 번역 중이다.

일본 출판계에서 이러한 한국문학 시리즈에 시도한 것은 ‘쿠온’이 최초이다. 대단한 체력과 재력(?)과 열정이 필요한 일이지만 우리는 타고난 체력을 바탕으로 나날이 왕성해지는 열정으로, 일본 내 한국문학의 대변자를 자처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한국문학번역원, 한국문화원의 협력을 얻어 독서감상문대회도 열었다. 한국행 비행기 티켓과 한국산 기프트 세트를 부상으로 걸었다. 마감을 해보니 우리의 예상을 깨는 즐거운 일들이 많이 벌어졌다. 우선 응모자 수가 예상보다 많았다.(응모자가 세 자리 를 넘은 것!) 학생들보다 직장인이 훨씬 많았고 여성보다 남성 응모자가 많았다.
우리는 한국문학 팬을 2년 이내에 5000명 정도로 만들 것이다. 5000명의 충성도 높은 팬의 힘으로 1만 부, 2만 부 판매를 확장해 나갈 것이다. (일본에서 작은 출판사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5000부 이상 판매되는 책이 다섯 종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정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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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칼럼외조: 성공한 여자를 만든 남자의 비결] 조선시대 유일한 여성 실학자 빙허각 이씨의 천생연분 3화

서유본
: 조선 시대 유일한 여성 실학자 빙허각 이씨의 남편

<규합총서>의 본문

가정 종합 백과사전 <규합총서>의 탄생

가세가 기울어 직접 농사를 지어야 하는 상황에서도 실학자적인 면모를 잃지 않았을 뿐더러 자신들이 직접 경험한 것들이 후세에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도록 기록으로 남기고자 했던 마음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정신이었다. 그리고 바로 이 정신 덕분에 조선시대 가정 종합 백과사전이라고 불리는 <규합총서>가 탄생할 수 있었다.

<규합총서>는 작게는 장을 담그고 술을 빚는 법을 비롯하여 밥과 반찬을 만들고 관리하는 방법과 길쌈을 하고 논밭을 다스리고 가축을 사육하는 방법, 그 외에 아이를 기를 때 필요한 각종 구급 처방법과 옷을 제작하고 수선하는 방법 등 실생활에 관한 전반적인 정보를 담은 백과사전이다. 

“기사년 가을에 내가 동호(東湖) 행정(杏亭)에 살면서 집안에서 밥 짓고 반찬 만드는 틈틈이 사랑에 나가 보고 옛 글을 읽었는데, 그 가운데 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내용과 산야에 묻혀 있는 모든 글들을 구해 보았다. 손길 닿는 대로 펼쳐보며 견문을 넓히고 또 무료함을 달래기도 했다. 그러다가 문득 옛 사람이 남긴 ‘총명함은 무딘 글만 못하다.’라는 말을 떠올리고, ‘기록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잊어버렸을 때 도움이 되겠는가.’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모든 글을 보고 가장 중요한 말을 가려 뽑아 적고 혹시 따로 내 생각을 덧붙여 다섯 편의 글을 지었다.”

<규합총서>의 서문에서 빙허각 이씨는 집필 당시의 상황을 잘 묘사하고 있다. 고된 나날들 속에서도 서유본 덕분에 책과 학문을 계속 접할 수 있었던 것은 빙허각 이씨에게 매우 의미가 컸다. 항상 자신을 격려하고 위로하며 그녀가 살림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기 위해 애쓰는 남편을 보면서 그녀는 학자로서의 긍지를 잃지 않을 수 있었고, 자신의 손으로 살림을 꾸리게 된 것을 비루하게 여기지 않을 수 있었다.


몰락한 양반가의 여성 실학자가 느낀 생생한 돈의 가치

이러한 남다른 자부심을 가지고 느닷없이 찾아온 ‘가난’에 꿋꿋하게 임했던 빙허각 이씨는 몰락한 양반이 아닌 학자이자 주부로서 스스로 가정경제를 직접 관리하며 배우고 느낀 점들을 생생하게 기록하기에 이르렀다. 만약 자신의 처지를 조금이라고 비참하게 여겼다면 빙허각 이씨는 결코 이런 결심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게다가 양반으로서 또 여성으로서 일상생활에서 알아두면 좋은 갖은 정보들을 정확하게 기록할 기회는 아무에게나 생기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시작된 <규합총서>에서 빙허각 이씨는 “돈 전(錢) 자를 보면 두 개의 창이 금을 다툰다. 돈이 있으면 위태로운 것을 편안케 할 수 있고 죽을 사람도 살리는 반면 돈이 없으면 귀한 사람도 천하게 되며 산 사람도 죽게 하니, 분쟁은 돈이 없으면 이기지 못하고 원한은 돈 아니면 풀리지 못한다. 고로 가로되 돈이 있으면 가히 귀신을 부리리라 하니 하물며 사람은 어떠하랴. 돈이란 날개 없으나 날고, 발이 없으나 달리는 물건이다.”라며 ‘사대부가의 부녀자’라는 틀에서 벗어나 부귀영화를 누리다가 한순간 가난해진 상황을 몸소 겪으며 느낀 것을 가감 없이 표현하였다.

비록 표현이 상당히 노골적이기는 하지만 이러한 서적을 저술한다는 것 자체가 애당초 지식과 교양이 풍부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이를 증명하듯 빙허각 이씨는 <규합총서>에서 살림을 직접 하며 ‘책’ 속의 지식들이 실생활에 몹시 유용하다는 것을 크게 깨달았다고 밝혔다.


<규합총서>의 숨은 조력자 서유본

<규합총서>가 만들어지는 동안 서유본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 ‘책’ 속의 지식들을 하나하나 아내와 함께 공유했을 뿐 아니라 언제든 그녀가 필요로 하는 책을 구해다 준 최고의 파트너였다. <규합총서>는 철저하게 ‘주부’의 시선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단순히 주부의 경험을 글로 옮긴 것이 아니라 <본초강목>, <비봉유설>, <산림경제>, <성호사설> 등에 기록된 내용들을 인용하여 체계적이고도 구체적인 설득력을 갖추고 있다. 바로 여기에 서유본의 노?? 활동을 전폭적으로 응원했던 그는 빙허각 이씨가 <규합총서>를 쓰는 동안 자신이 보유한 장서를 비롯하여 필요하다면 동생 서유구의 장서까지도 빌려가며 완성도 높은 글이 나오도록 도왔다. 믿을 만한 서적에서 정확하고도 알맞은 인용이 더해지며 <규합총서>는 단순한 살림살이 기록이 아닌 가정 종합 백과사전 수준으로 도약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빙허각 이씨가 글을 완성하자 곁에서 물심양면 도왔던 서유본은 뿌듯한 얼굴로 직접 붓을 들어 책의 제목을 <규합총서>라고 지어주었다. 조선 시대 유일의, 여성 실학자가 저술한, 주옥같은 살림살이의 비결들이 단정하게 기록된 가정 백과사전의 탄생이었다.

당시는 비록 실학이 자리를 잡았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여성이 글을 짓는 것 자체가 금기시되던 시기였다. 하지만 서유본은 이런 사회적인 관습에 전혀 연연하지 않았다. 아무리 가문이 몰락하여 그들과 왕래하는 양반들이 줄어들었다고는 하지만 이러한 행동은 참으로 보기 드문 일이었다. 조선 시대에 몰락한 사대부가의 양반 남성들의 활동 범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좁았다. 더구나 달성 서씨처럼 널리 알려진 가문의 남자라면 임금이 나서서 직접 정치적으로 꽁꽁 묶인 손발을 풀어주기 전까지는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따라서 정치적으로 위기를 맞은 가문의 후손들은 실의에 빠져 술로 남은 가산을 탕진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똑같은 위기 상황 속에서도 서유본은 참으로 슬기롭게 아내를 적극적으로 도와 위기를 이겨냈다.


가난한 죽음 이후 세상에 이름을 알리다

동호 행정으로 이사를 와 직접 밭을 일구며 생활한 지도 16년이 흘렀다. 서유본의 나이도 어느덧 환갑이었고 가문의 옛 영광을 되찾을 길은 여전히 아득하기만 했다. 한때 가문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동생 서유구는 여전히 은둔 생활을 하며 오로지 아들과 함께 저술 활동에 힘을 쓸 뿐 세상과 동떨어진 생활을 하고 있었다. 지난 16년 중 서유본을 가장 뿌듯하게 만든 사건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아내 빙허각 이씨가 <규합총서>를 완성한 것이었다. 그것은 비록 달성 서씨 가문이 정치적으로 불운하여 몰락하기는 했어도 그들이 얼마나 뛰어난, 중요한 실학자였는지를 증명해 주는 증거이기도 했다.

1822년, 서유본은 사랑하는 아내 빙허각 이씨가 지켜보는 가운데 조용히 눈을 감았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빙허각 이씨는 죽은 남편을 위해 <절명사(絶命詞)>를 짓고 사람을 일절 만나지 않은 채 머리를 빗지 않고 얼굴을 씻지 않으며 자리에 누워 지낸 지 19개월 만에 남편의 뒤를 따랐다. 공교롭게도 빙허각 이씨가 세상을 떠나던 해, 달성 서씨 가문의 정치적인 비극이 끝났다. 순조의 부름을 받은 서유구가 18년 만에 정계에 복귀한 것이었다. 서유구는 자신이 복귀하는 것을 보지 못하고 너무나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형수이자 어린 시절의 선생님이었던 빙허각 이씨의 묘비명을 손수 지어 그녀를 위로했다.


형수님 빙허각 이씨의 <규합총서>와 도련님 서유구의 <임원경제지>

빙허각 이씨가 세상을 떠난 지 3년 후인 1827년, 서유구는 농촌 생활과 일상 경제활동에 대한 본격적인 종합 경제 이론서인 <임원경제지>를 완성했다. 서유구가 은둔 생활을 하면서도 한시도 저술을 멈추지 않았던 <임원경제지>는 가정경제를 종합적으로 다룬 <규합총서>에서 한 발짝 나아가 국가 경제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을 담은 서적이다. 농업, 축산업, 수산업, 원예, 요리, 지리, 의약, 건축, 음악 등 16개 분야에 대한 다양한 지식과 정보가 망라된 <임원경제지>는 총 113권 52책 250만 자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분량으로 서유구가 정치적 시련 속에서 완성한 집념의 작품이다.

조선 시대 유일의 여성 실학자로 평가받는 빙허각 이씨는 결혼 후 시아버지와 남편, 시동생 모두로부터 재능과 실력을 인정받으며 공부를 했고, 시댁에 정치적 불행이 불어 닥친 후에는 남편의 적극적인 협조 속에서 <규합총서>라는 책을 완성했다. 그리고 죽어서는 18년의 세월을 견디고 정계에 복귀한 서유구 덕분에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리는 묘비명을 가졌다. 오늘날 빙허각 이씨는 오로지 남성 학자들로 가득한 조선 시대의 유일한 여성 실학자로서 존재감을 초롱초롱하게 빛내고 있다. 그런 빙허각 이씨 뒤에는 좋을 때나 나쁠 때나, 아니 오히려 최악의 상황에서도 아내가 당당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던 서유본이 투명하지만 뚜렷하게 함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