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바팔리에 비해 제석의 전생은 다소 심심하다.
제석의 전생을 궁금해 한 이는 릿짜비 족의 왕자 마할리였다. 부처님께서 바이살리에 계실 때 설법을 들으러 왔던 그는 부처님이 제석을 개인적으로 만났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부처님께서 설법 하실 때마다 제석은 하늘에서 일가친척들을 싹 데리고 내려와 들었다거나, 설법을 마친 뒤 경전을 수호하기를 맹세했다는 등의 이야기가 경전마다 등장한다. 그러니 부처님 생전에도 이런 의문을 가진 사람이 충분히 있을 수 있다.

그가 부처님께 여쭈어 본 것은 요즘 식으로 하자면, “부처님, 하느님하고 만나신 적 있지요? 어떤 분인가요? 무슨 복을 지어서 하느님이 되셨나요?” 정도였다. 진심으로 스스로도 복을 받는 방법을 알고 싶어 제석처럼 큰 복을 받은 이의 과거가 궁금했을 뿐, 딱히 부처님을 곤란하게 만들 의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왕자라는 신분이 다소 유치하게 느껴질 수 있는 그의 질문에 약간의 무게감을 실어주었을지도 모른다.
부처님은 그의 마음을 마치 안 것처럼 거리낌 없이 말씀해준다.
"마할리야, 나는 제석천을 잘 안다. 또 그가 어떻게 제석천이 되었는지도 잘 안다."
이 얼마나 안심이 되는 답변인가. 귀를 쫑긋 세우자 부처님께서는 술술 다음 이야기도 생생하게 말씀해주신다.

▲ 삽화=김영수

도리천의 주인이자 신들의 왕인 제석의 전생은 마짤라라는 마을에 살던 젊은 청년 ‘마가’ 였다. 마가는 마짤라 마을의 길을 닦아 사람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했고, 청소를 하기도 하고, 누구나 쉴 수 있는 공간도 만들었다. 그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남을 위해 기꺼이 기쁘게 이 일을 했다.
하루는 열심히 길을 청소하는 마가를 눈여겨 본 젊은이들이 그에게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마가가 대답했다.
“나는 지금 천국으로 가는 길을 닦고 있습니다.”
마가의 대답에 한 마디로 꽂혀버린 32명의 젊은이들이 그를 따랐다. 또한 마가는 스스로 7개의 계율을 정해 평생 그것을 지켰다. 그 7개의 계율은 이랬다.
첫째, 부모님을 봉양한다.
둘째, 웃어른을 존경한다.
셋째, 점잖게 말한다.
넷째, 험담하지 않는다.
다섯째, 탐욕을 갖지 않으며, 인심을 후하게 한다.
여섯째, 진실을 말한다. 일곱째, 성내지 않도록 자기 자신을 억제한다.

초등학교 도덕 교과서의 한 페이지를 읽는 것처럼 구구절절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다르다. 몇 가지 안 되는 것 같아 보여도 막상 나 자신의 생활과 직결되는 내용이며 자신과의 약속을 흐트러짐 없이 지키기란 생각보다 어렵다. 마가는 이것을 평생 지켰고 32명의 젊은 청년들의 모범이 되어 그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쳤다.
부처님이 출현하지 않은 세상이었지만, 마가는 스스로 양심을 걸고 이런 선행과 바른 행동을 실천한 덕분에 죽은 뒤 신들의 왕 제석으로 환생한다.
부처님은 마가 시절의 제석을 만난 적이 없지만 이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셨다. 이를 알아주는 부처님이 있어 도리천에서 나른하게 행복한 생활을 누리던 제석도 새삼 할 일이 생기고, 더 좋은 일을 하여 복을 받고 싶다는 목표가 생겼을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앞으로도 본인이 하기 나름이라는 촌철살인의 한 마디로 그의 전생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마가는 선한 일을 하며 깨어있어서 신들의 왕이 되었다. 깨어있으면 언제나 칭송받으며, 그러나 흐트러지면 언제나 비난 받는다.”

신화속꽃미남, 꽃미남

그레고리 & 그레고리
: 예카테리나 2세의 욕망과 권력에 헌신한 남자들

그레고리 포템킨

푸가초프의 반란과 그레고리 포템킨의 등장

한편 제1차 러시아 - 튀르크 전쟁은 러시아를 보는 유럽의 시선을 바꾸어 놓았다. 러시아를 변방의 후진국으로 생각했던 유럽 국가들은 러시아가 커다란 잠재력을 갖춘 떠오르는 강대국이라는 것을 조금씩 인정하기 시작했다. 제1차 튀르크 전쟁을 승리로 이끈 가장 대표적인 인물은 알렉세이 오를로프, 명장 알렉산드로 수보로프, 그리고 그레고리 포템킨이었다.

이들 중 예카테리나의 공식적인 연인이 된 포템킨은 타고난 정치가이자 뛰어난 군인으로 모스크바 대학을 거쳐 1755년 근위기병대에 들어간 전형적인 엘리트였다. 1762년 근위대의 젊은 장교였던 그는 오를로프 형제가 이끈 쿠데타에서 예카테리나를 지지하기도 했다. 그로부터 11년 뒤인 1773년, 포템킨은 자신이 직접 예카테리나를 황위에서 위협하는 세력으로부터 지켜줄 기회를 얻었다.

한창 오스만튀르크와 전쟁을 하던 중 예카테리나의 부름을 받고 달려간 포템킨은 한 농민 반란을 진압하라는 명을 받았다. 바로 황제의 통치 기반이자 러시아 사회 구조의 근간인 농노제 자체를 뒤흔든 푸가초프의 반란(1773∼1775. 러시아에서 푸가초프를 지도자로 하여 일어난 농민 반란. 자신을 표트르 3세라고 자칭한 푸가초프는 농민들로부터 열렬한 호응을 얻었고 역대 최대 규모의 반란 세력의 지도자가 되었다. 이 반란으로 큰 충격을 받은 예카테리나는 이후 겉으로는 계몽 군주의 길을 걸었으나 실제로는 철저한 농노제 구조를 고수하게 되었다.)으로 포템킨이 도착했을 무렵 상황은 겉으로 보기에도 심각했다. 하지만 그는 잘 훈련받은 군대를 동원하여 일사천리로 이 반란을 제압했다. 이 과정에서 늠름하고 믿음직스러운 포템킨의 모습이 예카테리나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포템킨은 예카테리나의 두 번째 ‘공식’ 연인이 되었다.


꿈과 사랑을 공유했던 포템킨과 예카타리나

그레고리 오를로프보다 다섯 살이, 예카테리나보다 열 살이 적었던 포템킨은 침대 위에서 매우 정열적이었다. 노련함도 갖춘 마흔 다섯의 예카테리나는 그의 품에서 활력을 되찾았다. 게다가 포템킨은 예카테리나와 정치적인 관심사와 성격이 비슷했다. 그는 야심이 넘쳤으며 실천력과 추진력이 강했고 무엇보다 유능하여 여제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두 사람은 러시아 남부 국경 문제와 투르크 제국 등에 대해 토론하고 ‘동방 정복’이라는 원대한 꿈을 위한 계획을 세우며 사랑을 나누었다.

불같은 추진력을 지닌 포템킨은 구체적인 실현 방안이 떠오를 때마다 하루빨리 크림반도로 달려가 자신이 세운 군사 전략을 실현하고 싶어 안달이 났다. 예카테리나가 보기에도 이를 책임지고 맡을 적임자로 포템킨만 한 인물이 없었다. 결국 하루빨리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포템킨이 우크라이나로 떠나면서 두 사람의 긴밀한 육체적 연인 관계는 2년 만에 종지부를 찍었다. 하지만 ‘동방 정복’이라는 같은 꿈과 이상을 지니고 있던 두 사람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꿈을 이루기 위해 떨어져 지낼 수밖에 없었던 두 사람은 매우 독특한 방식으로 애정을 유지했다. 그것은 바로 포템킨이 예카테리나의 욕망을 책임질 젊고 건장한 청년들을 직접 선발하여 천거하는 역할을 자처한 것이었다. 마음은 함께였지만 몸은 함께할 수 없었던 그는 이러한 방식을 통해 예카테리나의 ‘몸’, 즉 욕망을 책임졌던 것이다. 예카테리나는 이를 수락했고 그녀의 취향을 누구보다 잘 아는 포템킨은 매번 그녀를 충분히 만족시킬 만한 남자들을 골라서 제공했다.

매우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이 방식은 예카테리나와 포템킨 두 사람 모두에게 만족스러웠다. 포템킨은 육체관계를 맺지 않으면서도 예카테리나의 총애를 잃지 않을 수 있었고, 예카테리나는 정치적인 위협을 받지 않으면서 순수하게 쾌락을 즐길 수 있었다. 이러한 방법을 통해 예카테리나는 자신의 권위를 과시하고, 귀족들(특히 출세를 위해 맹목적으로 그녀에게 충성심을 바칠 수 있는 젊은 남자 귀족들)을 통제할 수 있었으며, 사랑 놀음 때문에 ‘동방 정복’이 늦춰질 염려 또한 없었다.


크림반도 합병으로 역사상 가장 방대한 영토를 완성한 포템킨

예카테리나와의 사랑도 뿌리치고 시작한 포템킨의 동방 정복은 큰 효과를 거두었다. 1776년부터 발칸반도의 여러 곳에 정통한 정보원들을 확보한 그는 7년 후인 1783년 마침내 크림반도 합병에 성공했다. 예카테리나는 이를 치하하기 위해 그에게 타리우스(크림 지역의 고대 이름) 대공이라는 지위를 내렸다. 이로써 러시아는 유럽 국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겨루는 강대국의 위치를 획득했으며 예카테리나와 포템킨이 계획했던 동방 정복의 꿈에도 성큼 다가서게 되었다.

크림반도 합병 이후 포템킨은 공격적인 자세로 정복지를 통치하는 한편 유럽 국가들과는 우호적이면서도 긴밀한 외교 관계를 유지했다. 1784년, 육군 원수의 자리에 오른 그는 각종 군대 개혁을 실시하고 흑해에 함대와 도시를 건설하여 오스만튀르크를 도발했다. 포템킨의 궁극적인 목표는 오스만튀르크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여 화려했던 비잔틴 제국을 부활시키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정복한 콘스탄티노플을 지배할 인물까지도 일찌감치 정해 놓았다. 그것은 예카테리나의 손자 알렉산드로였다.

오스만튀르크라는 최종 목표를 앞에 두고 포템킨은 예카테리나에게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주재하고 있던 유럽 각국의 대사들과 함께 크림반도를 시찰할 것을 건의했다. 이는 크림반도가 러시아의 영토임을 전 유럽에 알리는 효과와 함께 예카테리나의 위상을 한껏 드높일 수 있는 기회였다. 예카테리나가 기꺼이 이를 수락하자 포템킨은 여제의 크림반도 시찰을 초호화로 준비했다. 그녀에게 잘 보이고 싶기도 했지만 그보다 오스트리아 황제와 폴란드 왕을 비롯한 유럽의 많은 외교사절들에게 러시아의 국력을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포템킨의 전략은 과연 성공을 거두었다.

포템킨의 각종 도발을 주시하던 오스만튀르크는 예카테리나의 크림반도 시찰이 끝나기가 무섭게 러시아에 선전 포고를 했다. 마침내 제2차 러시아 - 튀르크 전쟁(1787~1792)이 시작된 것이었다. 오래전부터 이날을 기다려온 포템킨은 준비된 병력을 이끌고 전투를 하는 한편 명장 수보로프 장군의 지원을 받아 우크라이나의 중심지인 오차코프를 점령해 기선을 제압했다. 오차코프가 점령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오스만튀르크의 군주 술탄 무스타파 3세는 충격으로 사망하였다. 사기가 떨어진 튀르크 군은 서둘러 후퇴했고 이를 미리 예상하고 훈련을 거듭해온 포템킨의 흑해 함대는 도망치는 튀르크의 해군을 궤멸시켜 전쟁을 완벽하게 승리로 마무리 지었다.


포템킨의 죽음과 예카테리나의 죽음

1791년, 포템킨과 예카테리나의 사랑과 우정은 한 남자로 인해 종말을 맞이했다. 크림반도 시찰에서 돌아온 예카테리나는 포템킨이 한창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있는 동안 독단적으로 알렉산드로비치 주보프를 정부(情夫)로 삼은 것이었다. 이것은 17년 동안 지켜왔던 포템킨과의 약속을 깨뜨린 행동이었다.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포템킨은 개선의 기쁨을 누릴 틈도 없이 예카테리나 곁에 있는 낯선 젊은 남자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포템킨이 보기에 주보프는 권력과 부귀영화에 대한 욕심으로 예카테리나 곁에 있는 얼굴만 반반한 남창(男娼)에 불과했다. 그동안 그가 엄선하여 소개했던 남자들과 달리 주보프는 예카테리나의 총애를 무기로 그녀의 권위를 무시하는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그런 무례한 행동을 참을 수가 없었던 포템킨은 예카테리나에게 당장 주보프를 멀리할 것을 요구했지만 젊고 아름다운 정부에게 푹 빠진 여제는 그의 이야기를 무시했다. 게다가 한술 더 떠 주보프의 기분이 상할 것을 염려한 예카테리나는 포템킨에게 우크라이나로 돌아가 달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이러한 예카테리나의 행동에 크게 충격을 받은 포템킨은 상심을 견디지 못해 우크라이나로 돌아가는 중에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자신을 견제할 유일한 사람이 사라지자 주보프는 예카테리나의 총애만을 믿고 노골적으로 권력과 부귀영화를 탐하여 많은 신하들과 귀족들의 반발을 샀다. 평생 수많은 정부를 두고도 신하와 귀족들의 반발을 산 적이 없었던 예카테리나도 어느새 판단력을 현저하게 잃어 젊음과 아름다움을 무기로 자신을 미혹시키는 총신의 방자한 행동을 막지 못했다. 20년 가까이 든든한 방패처럼 자신을 지켜주던 포템킨도 없고 충직한 신하들조차 주보프의 방자함에 질려 등을 돌리자 결국 예카테리나의 곁에는 주보프를 비롯한 간신들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총기를 잃고 외로워하던 예카테리나는 더욱 주보프에게 집착했다. 그러던 중 1793년 프랑스의 루이 16세가 처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을 이기지 못한 그녀는 차츰 건강이 악화되었고 1796년 6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공식적인 연인만도 열두 명, 함께 잠자리를 한 대가로 위로금을 지급한 남자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고 알려진 예카테리나가 이들 중 ‘남편’이라는 호칭을 사용한 남자는 단 두 명뿐이었다. 그레고리 오를로프와 그레고리 포템킨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예카테리나가 황위를 차지하고 러시아를 강대국으로 만드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웠다. 또한 남자로서 진심으로 그녀를 사랑했으며 신하로서 죽는 날까지 그녀에게 충성을 바쳤다.

[웹진 북& > 북&칼럼 > 외조: 성공한 여자를 만든 남자의 비결] 러시아의 황태자비 예카테리나의 천생연분 2화 그레고리 & 그레고리 : 예카테리나 2세의 욕망과 권력에 헌신한 남자들 쿠데타의 후환을 말끔히 처리하다 황위 양도 각서를 받긴 했지만 아직 쿠데타가 완성된 것은 아니었다. 비록 격리되긴 했지만 정통 후계자로 황제의 자리에 올랐던 표트르 3세는 곤란한 존재였다. 그레고리를 위시한 오를로프 가의 남자들은 이 일을 도맡아 처리하여 쿠데타를 완성했다. 쿠데타가 일어난 지 일주일이 지났을 때, 알렉세이 오를로프는 예카테리나에게 표트르 3세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예카테리나는 그녀에게 가장 위험이 되는 정적을 이번에도 손에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처리한 것이었다. 그녀는 대외적으로 표트르 3세의 죽음에 깊은 애도와 유감을 표했지만 알렉세이에게 어떠한 처벌도 내리지 않았다. 두 번째로 중요한 것은 외국의 지지였다. 러시아의 주인이 바뀌는 문제는 국제적으로도 매우 중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