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R. 하트만

삶은 작은 것들로 이루어졌네

위대한 희생이나 의무가 아니라

미소와 위로의 말 한마디가

우리 삶을 아름다움으로 채우네

간혹 가슴앓이가 오고 가지만

다른 얼굴을 한 축복일 뿐

시간이 책장을 넘기면

위대한 놀라움을 보여주리

p265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에 발걸음을 멈추기도 하고 6월의 청명한 하늘을 올려 보기도 하고 저녁의 시원한 바람을 두 팔로 휘휘 저어보기도 하고... 행복하다 느껴진다.그녀의 소소한 일상과 문학이야기가 따뜻한 그림과 함께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행운을 찾아 바삐 움직이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그리곤 그곳에 얼마나 많은 행복이 있었는지를 느끼게 해주었다. 잠깐의 쉼표. 이거였다. 그녀가 축복처럼 보내준 그리고 지금 내게 가장 필요했던 것이.치매 예방법 중에 ’가능하면 자주 감동을 한다’ 란 항목이 있다고 한다.그녀 덕분에 치매로부터 얼마만큼의 거리를 둘 수 있게 되었다. 읽는 내내 울고 웃고... 주위 사람들 그리고 낯 간지러운 표현에 관대해지는 며칠 간이었다.글은 따뜻하고 유머감각 있고 조카와 제자, 문학을 아주 많이 사랑하는 조금은 방향 감각 없는 그녀를 떠오르게 한다.그녀를 처음 본 것은 목발에 의지해 있던 모습의 사진이었다. 마지막으로 본 영상 속 그녀의 모습도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글 속에서 만나는 그녀의 모습에선 오히려 목발이라던가 불편한 몸이 낯설게 느껴졌다.조카에게 보내는 편지에선 나도 다독여졌다.

늘 배고픈 채로 어리석은 채로 남으십시오. p61삶은 마치 조각 퍼즐 같아. 지금 네가 들고 있는 실망과 슬픔의 조각이 네 삶의 그림 어디에 속하는지는 많은 세월이 지난 다음에야 알 수 있단다. 지금은 조금 아파도, 남보다 조금 뒤떨어지는 것 같아도 지금 네가 느끼는 배고픔,어리석음이야말로 결국 네 삶을 더욱 풍부하게 더욱 의미있게 만들 힘이 된다는 것 네게 꼭 말해주고 싶단다.

소설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 로커’의 배경음악처럼 등장했던 밥 딜런의 이 노래. 그녀의 책에서 발견했다. 가사를 확인하고 책의 내용과 정말 잘 어울리는 곡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작가의 섬세함에 새삼 놀랐다. 자그마하고 사소한 발견이지만 나에게 크고 대단한 즐거움으로 다가오는 것은 아마도 작가와 내가 그녀가 말한 ’우리’라는 범주 안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상호의 삶을 바꿔놓은 말 ’우리’ . 정확하게 말하면 소유격 ’나의my’라는 말은 새삼 생각하면 참 요술 같은 말이다.’나와 그 사람’의 평면적 관계가 ’나의 그 사람’이 되면 갑자기 아주 친근한 관계, 내가 작아지고 그 사람이 커지는 소중한 관계가 된다. p31

그녀의 제자인 적도 가족인 적도 지인인 적도 없지만, 그녀가 남긴 글로 맺어진 인연이 있으니 ’우리’란 말이 어색하지만은 않겠지. 그녀와 ’우리’로 있을 수 있어 행복한 시간이었다.

 

본격적인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음에도 계속 바뀌는 화자의 시점에 의해 긴박감이 유지되고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요한 인물 중의 한 사람,

국가 지배층을 대표하는 동창생의 등장은 부의 편재 속 자본주의 혜택과는 거리가 먼 주인공과 대립을 이루며 그에 대한 연민을 한층 더 불러일으킨다.

그에게 ’빨갱이’란 수식어를 붙여 적대감을 표시하는 사람들에게 ’그가 옹호하는 이론자체만으로 배타적인 시선은 부당하다. 흔히 비유되는 칼이 도구가 되느냐 흉기가 되느냐는 그것을 누가 어떻게 사용하느냐의 문제이지 칼 자체를 좋고 나쁘다 말할 수 없는 것처럼’. 이란 말로 옹호하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더욱이 형의 죽음으로 그동안의 형의 생활을 재현하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그려진 비참한 노동자들의 생활은 애처로움을 고조시킬 수 밖에 없었다. 물론 그의 행동은 자책감과 동시에 확고한 이념에서 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육체 노동을 경험하지 않는다면 자신은 타락하고 만다. 자본이 만들어낸 무한한 욕구가 품고 있는 비합리성,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건 프롤레타리아밖에 없다. 세상을 바로잡는 건 프롤레타리아를 빼고는 없다. 고향의 어머니가 흘린 눈물은 피눈물이다(P184)

읽는 내내 동정심보다는 동질감이 컸다. 이것은 우리나라가 1992년까지 세계 각국의 어린아이의 코 묻은 돈부터 할머니 할아버지의 쌈짓돈에 의해 도움을 받으면서도 88서울올림픽에서 급조된 번영을 보이기 위해 또 경제 발전이란 명목하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을까 하는 분노에서였을 것이다.

처음부터 어느 정도 예상했던 결과대로 도쿄 올림픽은 무사히 열리고 주인공의 주변인들은 주인공을 잠시 기억 속의 한 부분으로 흘려보낸 채 올림픽을 만끽하며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불합리한 사회에 돈키호테의 무모함이었을지도 모를 그의 도전이 통쾌하긴 했으나 주인공이 처한 상황과는 대립적인, 너무나도 아무렇지 않은 주변인들의 모습에서 더 큰 애처로움과 씁쓸함이 남았다.

* 민중은 한낱 장기 말로만 취급되고, 국가 체재를 유지하기 위한 희생물에 지나지 않는다. 옛날에는 그것이 전쟁이었고, 이제 그것은 경제발전이다. 도쿄올림픽은 그 헛된 구호를 위해 높이 쳐든 깃발이었다(P386)

* 내가 보기에는 서구 사회를 쫓아가지 못해 안달하는 짓으로 보이는데요. 게다가 국민에게 헛된 꿈을 심어줘서 현실에서 눈을 돌리게 하려는 거예요. (P411)

900페이지가 넘는 많은 분량을 단숨에 읽었다. 아니 읽어졌다. 흥미로운 소재와 구성,긴박감 넘치는 전개는 말할 것도 없을 뿐더러 영화 ’의형제’의 여운이 채 가시기 전이어서 그런지 주인공과 강동원의 이미지가 묘하게 오버랩되며 읽기에 속도가 붙었다.

전후(戰後) 20년이 채 되지 않은 1964년.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외국 손님들에게 보이기 위한 도쿄 치장에 사람들은 분주하고 들떠 있다.

계속해서 경기장과 건물들은 높아졌고 도로는 닦아졌으며 야쿠자들도 외국 손님들의 눈을 의식해 자숙시키며 국가안보에 모든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와중에 올림픽 총감시관 저택과 경찰학교 기숙사에 폭파 사고가 일어난다. 용의자는 도쿄대를 졸업한 시마자키 구니오.

표면상으로는 올림픽을 인질로 삼은 몸값 1억엔이 걸린 인질극이다.

1권에서는 시마자키 구니오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연민과 이해를 끌어내는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