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배우 홍광호의 the phantom of the opera를 듣게 된 후로 그리고 그가 팬텀으로 출연한다는 이유만으로 ’오페라의 유령’ 은 그 자체로 이유가 돼버렸다. 출판사가 다른, 표지와 번역자가 다른 책을 수집에 가깝게 사 모으기도 하고 원서를 읽기 위해 프랑스어를 시작하기도 했다. 뮤지컬 관련 서적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노래 한 곡만으로도 감동 이상의 그 무엇인가에 매료되기에 충분한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을 브로드웨이에서 직접 본 저자는 그것에 압도당해 헤어나올 수 없는 상태가 되었을 것이리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내가 정작 준비하지 못한 건 작품에 따라붙는 외적인 정보가 아니라 감동의 크기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뭐 그리 좋은 것도 싫은 것도 없는 무미건조한 삶에 새로운 활력이 찾아와 가슴 저 밑에서 꿈틀대는 것과 합류하는 듯 했다.
일의 시작과 제작과정 모든 디테일을 모아 공연산업의 사례집을 만들어보자라는 생각으로 시작된 이 책은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에 관한 모든 것을 담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그리고 그 밑바탕에 녹아있는 뮤지컬을 향한 그의 열정과 애정이 어느 정돈지 매 장마다 느낄 수 있었다.
책의 구성은 오페라의 유령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과 이것이 한국에서 라이선스로 공연되기까지의 과정으로 크게 두 개의 파트로 나눠볼 수 있다.
우여곡절 속에 오페라 하우스(국립오페라극장)가 완성되기까지의 이야기는 사연 많은 여자만큼이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 지하에 호수를 가질 수 있었던 이유라던가 감옥으로 사용되기도 했으며 이곳에서 많은 사람이 처형당했고 왕권교체로 공사가 오랜 시간 지연되었다는 이런저런 사연들은 소설을 더욱 미스터리하고 흥미롭게 만든다.
오페라하우스는 공연뿐만 아니라 국가의 큰 행사,축제, 무도회 등 다양한 목적을 위해 설계되었다. 이곳은 문화와 사교를 위한 궁전이었으며, 그 무렵 고급문화를 향유하는 상류층이 자신의 부를 과시하고 그들만의 정보를 주고받는 사교장 역할을 톡톡히 했다. 란 글이 나오는데 지금의 뮤지컬 공연장도 비슷한 기능을 하는 것 같다. 단지 부를 과시하는 것에서 부의 정도 혹은 자신의 현재 경제적 위치를 냉정하게 체감하는 공간 정도로 바뀌었을 뿐 많이 다르지 않아 보인다. 공연의 즐거움과 동시에 지불하는 돈의 액수에 따라 사람들을 나열하고 무리를 나누는 슬픔이 공존하는 공간이니 말이다.
90년대 한국 공연의 발목을 잡은 것도 다름 아닌 공연장이었다.
한국 공연 시장이 과연 오페라의 유령을 소화할 만큼 시장 잠재력이 있느냐에 대한 의문뿐만 아니라 뮤지컬이 올려질 적당한 공연장의 부재가 결정적인 이유가 되어 국내 공연은 무산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물론 샤롯데씨어터와 같은 뮤지컬 전용 극장이 있는 2011년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 당시 저자가 느꼈을 당혹감과 실망감은 어느 정도 상상이 된다.
’홍광호’라는 이름을 발견한 순간 ’2000년대 어렵게 성사된 국내 공연의 여정은 길고 험했다’고 자동 요약되며 그에 관한 이야기로 모든 신경이 집중되었다.
라울 역에는 최근 뮤지컬 분야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두 인물 홍광호와 정상윤이 나란히 캐스팅되었다.
홍광호는 짧은 경력에도 불구하고 단숨에 뮤지컬 스타로 급부상한 뛰어난 노래 실력으로 무장된 배우다. 2001년 오디션 때 라울 역으로 응시했다가 고배를 마셨던 홍광호는 8년 만에 꿈을 이루게 되었다. 나이답지 않은 원숙미와 호소력 짙은 목소리로 단숨에 심사위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p200
팬텀은 연기도 중요하지만, 몸을 움직여서 하는 연기가 아니라 목소리 연기를 해야 한다. p111
어느 때는 그 기운이 너무 강해 팬텀의 기마저 느껴진다고 할까. 오디션 때부터 팬텀 역의 가능성을 염두해 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p206
뮤지컬을 좋아하지만, 뮤지컬 그 자체라기보다는 좋아하는 배우가 공연하는 뮤지컬이 좋다. 지금까지는. 그러나 그가 소화해 내는 역이 많아지고 출연하는 작품의 수가 늘어날수록 특정 배우를 좋아하는 팬에서 뮤지컬 자체를 사랑하는 마니아로 나도 성장해 있을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서는 뮤지컬 산업이 더욱 활성화되고 성장해 나가야만 할 것이다. 저자는 뮤지컬 시장이 앞으로 풀어나가야 할 과제들에 대해 어떤 해답을 제시하고 있을까 살펴보면 이렇다.
뮤지컬은 산업이다.
뮤지컬 분야도 영화처럼 정부의 육성책과 뮤지컬 전용 극장이 필요한 때다.
체계적인 극장 시스템과 선진화한 제작방식 역시 우리에게 절실한 과제로 제시되어 있다.p220
갈 길은 명백하다. 뮤지컬 시장의 극대화 그리고 세계적인 수준의 새로운 뮤지컬의 발굴, 세계적인 수준으로 성장하기 위한 작곡가,작사가, 대본작가,연출가, 안무가 등의 육성이 절실하다 ( 중략 ) 세계화 전략 그리고 이러한 경험치를 국내 창작물에 적극 도입하여 활용할 때 비로소 한국 뮤지컬의 세계화는 앞당겨질 것이다.p222
브로드웨이에서 국내 창작작품이 좋아하는 배우에 의해 공연되는 달달한 상상을 하며 책장을 덮을 수 있어 행복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