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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상과 죽음 이데올로기 : 나는 존재하는가[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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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죽음은 어떻게
다시 삶이 되는가”
‘지금-여기’의 삶을 풀어내는
죽음에 관한 철학적 성찰

유불도사상과 동아시아 문화전통이
생명의 범주 속으로 포섭해온
죽음의 논리와 이데올로기에 대하여

죽음은 인간의 삶에서 가장 엄중한 사태다. 동서양의 수많은 철인들도 이에 대해 나름의 의미를 찾고자 했다. 하지만 ‘불[火]’이라는 이름이 실재하는 ‘불’과는 무관한 것처럼, 죽음도 실은 기의가 부재하는 기표일 뿐. 죽음은 그 자체로 현실적이지만 동시에 사변적이다.
동아시아 전통사상의 제 성찰을 통해 중국문학의 현대성 논의를 진전시켜온 저자는 이 책에서 죽음의 이러한 양가성에 주목하고, 유불도사상이 각자 독특한 언어와 개념으로 실재/가상이란 두 경계를 매개하는 논리를 추적해나간다. 삼교의 소의경전(所依經典)에 대한 실증적 분석을 토대로, 죽음에 관한 철학적ㆍ문화적 담론이 죽음 자체를 어떻게 이데올로기적으로 전유하고 있는지를 밝혀나가는 것이 이 책의 주된 종지다. 아울러 유불도 삼교가 상호 착종되는 사례들을 중심으로 중국사상이라는 개념에 부합되는 보편적 지평을 마련하고, 이에 대한 전(前) 단계로서 삼교를 개별적으로 분석하여 유불도의 개별적 특성을 명징하게 드러내고자 하였다. 성균관대학교출판부 학술기획총서 ‘知의회랑’의 어느덧 서른 번째 책.

출판사 서평

왜 죽음인가

죽음이라는 난제를 인문학적 논의의 화두로 전면에 내세우는 건 간단치 않은 일이다. 긴 시간 대학에서 중국문학과 전통사상을 강의하고 연구해온 저자 또한 이 책의 집필에 앞서 망설임의 시간이 길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죽음의 문제를 바라보는 중국인의 독특한 시각을 이론적으로 체계화하는 것이 인문학적으로 충분히 학술적 가치가 있다는 확신은 점점 커져갔고, 정년을 몇 해 앞두고 마침내 이 책을 상재한다. 그는 이 책이 외형상 중국문화의 원류를 추급(追及)하여 그 본질의 일단을 노정하고자 의도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중국 전통사상에 대한 이해가 충분치 않는 일반 독자들도 이 책을 통해 중국문화라는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기획하였다고 덧붙인다.
저자가 소환한 죽음은 크게는 다음의 두 차원에서다. 첫째로 이 책에서 논의될 죽음에 대한 제반 연구는 죽음 자체에 대한 종교적ㆍ철학적 탐구와는 무관하다. 그보다는 죽음이라는 주제를 통해 중국문화의 심층에 내재한 일종의 사유논리를 고찰하고자 하였다. 약동하는 자연현상을 바라보며 거기에 일정한 법칙과 원리를 부과하고, 우주적 질서 속에서 인간 존재의 의미를 (재)정립하기 위해서는 죽음의 문제를 삶의 논리와 연결시키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저자는 적는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건대 죽음은 ‘지금-여기’의 삶을 해석하기 위한 중요한 단초가 된다.
둘째로 중국문화에서 죽음은 항시 시작과 끝이 중첩된 특이한 시공적 영역이다. 죽음은 끝이면서 동시에 시작이거니와, 이로 인해 죽음은 직선론적 시간관념을 해체하기에 가장 적합한 개념으로 차용된다. 기실 인간은 직선적 관점(linear perspective)에 익숙하지만, 자연은 반(反)직선적이다. 본론에서 상세히 논의되듯이, 중국문화는 기본적으로 삶과 죽음, 현상과 본질, 용(用)과 체(體)를 동시적으로 긍정(혹은 부정)하는 독특한 논리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에 대한 체계적이고 심층적인 이해를 위해서도 죽음은 피해갈 수 없는 개념이다.
죽음 연구의 문제의식과 목표

이 책은 기본적으로 죽음에 대한 중국문화론적 해석을 유불도의 핵심 경전을 토대로 탐구해나간다. 논의 전면에 죽음이라는 화두를 내세우고 있지만, 물론 그 의도가 죽음 자체에 대한 탐구를 진행하고자 함은 아니다. 그보다는 죽음이라는 실존적 문제가 중국문화의 토양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해석 또는 전유되고 있으며, 궁극에는 (광의에서) 어떻게 이데올로기화되고 있는가에 대한 논의로 내용이 모아진다.
이렇게 가장 추상적인 개념에 천착하여 이를 구체화된 문화론적 맥락에서 재해석해보려는 시도야말로 본질 문제에 골몰하여 현상론적 영역을 창의적으로 재해석하는 종체기용(從體起用)의 전형적 사례가 될 수 있으리라 저자는 확신한다. 나아가 죽음담론에 대한 이러한 일련의 논의과정을 경유하여 궁극에는 서구 현대성의 인식론적 패러다임을 넘어설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언급한다.
또한 이 책의 주된 관심사는 유불도의 세계관이 작동하는 메커니즘을 구조론적으로 탐구해보는 것이다. 가령 유가가 역설하는 하학상달(下學上達)의 기본 종지라든가, 도가의 무위자연, 나아가 대승불교의 여래장(如來藏) 사상이 인간에 대한 어떠한 철학적 관점을 토대로 개진되고 있는가를 밝히는 것은, 이 책이 전면에 내세우는 ‘죽음 이데올로기’라는 주제의식을 심화시켜나가는 데 일조한다. 부연하자면 이 책은 죽음이 수반하는 양가성-실재하는 사건으로서의 죽음과 사변론적으로 개념화된 죽음-에 주목하여, 유불도가 각자의 독특한 우주론적 언어와 개념을 사용하여 실재와 가상의 상호 분리된 두 경계를 매개하는 논리를 추적해나간다. 저자는 이로부터 도출되는 내용이 보다 포괄적인 원환구조 속에서 상호 소통될 수 있다는 가정 속에, 이러한 주관적 신념을 이론적으로 객관화ㆍ보편화시켜내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각 장의 서사

무엇보다 이 책은 ‘죽음에 대한 철학적 성찰’이라는 기본적 명제 하에 유가, 도가, 불가가 죽음의 문제를 생명의 범주 속으로 포섭시키는 논리에 주목한다. 저자는 가급적 주관적 가치판단을 유보한 채, 중국의 문화전통에 내재된 이러한 측면들을 세밀히 분석하여, 죽음이 철학적ㆍ종교적으로 전유되는 과정을 구체적 사례들을 통해 추적해나간다. 유불도 세 갈래의 문화적 전통이 죽음을 담론화하는 형식을 개별적으로 살펴보고, 후반부에서 이러한 담론 분석을 토대로 삼교귀일(三敎歸一)에 대한 철학적 논거와 역사성을 총체적으로 정리한다.

-제1부 『중용』의 세계관
제1부에서는 『중용』을 모본으로 하여 유교사상의 맥락에서 삶과 죽음의 문제를 조망한다. 유교는 노장이나 불교에 비해 담론의 초점이 상대적으로 현실 영역에 편중돼 있는 까닭에 이 책의 주제의식을 심화시키는 것이 난해한 측면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용』의 경우 16장에서 귀신(鬼神)의 덕을 음양적 관점에서 논하고 있음에 주목하였고, 나아가 책의 전편에 등장하는 천명(天命), 중화(中和), 성(誠), 비은(費隱) 등의 개념에 대한 심층적 해석을 통해 유교사상의 생사관념을 이론화시켜보고자 하였다.

-제2부 『장자』의 세계관
제2부에서는 『장자』 내편을 모본으로 하여, 「소요유」에서 「응제왕」에 걸친 총 일곱 장을 선별된 주제 하에 심도 있게 분석한다. 각 장의 소주제가 외견상 상호 연관성이 결여된 듯 보일 수 있으나, 논의의 핵심에 천착하게 되면 서로 다른 주제들이 모두 죽음의 문제를 이런저런 형태로 조망하고 있음을 쉽게 간파할 수 있다. 보건대 죽음을 그 자체로 논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거나 불필요한 작업으로 귀결될 공산이 크다. 반면 유교나 노장의 사유형식을 구조적으로 면밀히 분석하고, 이를 통해 중국사상이 죽음의 문제를 철학적으로 어떻게 사유했는지 추론해보는 것은 가능하다.
이러한 전제하에 도가사상의 경우 삶과 죽음의 이원론적 사유가 어떠한 서사형식 및 내용을 통해 해체되고 있는가에 주목한다. 이 책에서는 이를 역설의 미학이라 편의상 명명한다. 여기서 특기할 부분은 한대(漢代) 이후 등장한 도교사상이 그 추구하는 바에 있어 노장의 근본 종지와 전혀 궤를 달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이러한 측면에 방점을 두고 불로장생을 지상목표로 설정했던 도교적 사유가 노장의 철학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부정되고 있는가를 밝힌다. 보편적 차원에서 보건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떤 위대한 사상도 생명체의 물리적 죽음을 종말로 규정하지 않는다. 노장사상의 경우 암묵적으로 죽음을 생명현상의 한 과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데, 저자는 이 같은 전제가 설득력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삶과 죽음에 대한 인간의 사유 자체를 문제 삼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한다.

-제3부 『원각경』의 세계관
제3부에서는 이 책의 주제와 관련된 불교적 관점을 『원각경』에 등장하는 특정 개념들에 초점을 맞추어 풀어나간다. 주지의 사실이지만, 불교의 경우 석가 부처가 열반에 든 이후 여러 종파가 출현하였으며, 종파마다 각각의 교리적 차이 등을 감안할 때, 이 책과 관련된 주제를 총괄적으로 기술하는 일이 간단치 않은 작업임은 분명하다. 그런즉 저자는 이 책의 구성체제를 감안하여 『원각경』에 등장하는 몇 가지 핵심 주제를 심도 있게 분석함으로써 이를 갈음하고자 했다. 단, 제3부 4장의 경우 무명(無明)에 대한 심층적이며 보다 체계적인 분석을 위해 『금강경』의 즉비논리(卽非論理)를 전적으로 인용하였다.

-제4부 죽음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의 죽음
제4부는 「죽음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의 죽음」라는 다소 생경한 제목으로 논지를 전개한다. 체제상 총 여섯 개의 장을 여기에 포함시켰으나, 내용을 곰곰이 들여다보면 실질적으로는 두 개의 상반된 주제가 상호 결합되어 있음을 파악할 수 있다. 특히 이데올로기에 대한 서구 비평담론에서의 광범위한 논의를 나름대로 분석하고 정리하여 주제에 대한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자 했다.
구체적으로 짚어보면, 미하일 바흐친의 『도스토옙스키 시학』과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각각 독립된 장에서 나름대로 심도 있게 분석한 것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특히 전자의 경우 이 책의 주제와 관련된 몇 가지 개념들에 천착하여 양자를 중서 비교문화론적 관점에서 조망해보았다. 후자에 대한 작품분석은 양가적 의미를 갖는데, 일차적으로는 시간과 공간, 말과 상징 등에 대한 논의를 통해 현실과 판타지가 흡사 태극도의 이미지처럼 서로 맞물려 있음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아울러 저자는 동양과 서양이 서로 상이한 문화적 전통을 유지하고 발전시켜왔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이란 문제를 두고서는 사유형식에 있어서 기묘한 유사성이 존재하고 있음을 지적하고자 했다. 단편적 사례라는 한계도 있지만, 적어도 이러한 논의를 통해 유불도의 생사관을 중국사상이라는 시공간적 경계 너머의 보편적 층위로 확장하는 데 일단의 교두보로 삼고자 했다.


죽음 이데올로기를 통한
나의 존재에 대한 통찰

알다시피 죽음은 인간의 의식작용이 만들어낸 개념일 뿐 실재하는 죽음과는 무관하다. 개념으로서의 죽음은 그 용어를 사용하는 개인의 입장에 따라 이런저런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으나, 죽음 자체는 실상 아무것도 지시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에 대한 어떠한 철학적ㆍ종교적 사유도 엄밀한 의미에서는 삶의 관점에서 임의로 부과된 담론행위가 될 수밖에 없다. 물론 이러한 딜레마를 감안하여 필자는 이 책의 제목을 ‘죽음 이데올로기’라는 다소 모호한 개념으로 명명하였다. 이데올로기란 일종의 정치ㆍ문화적인 믿음체계이거니와 따라서 거기에 내포된 내용이 참이냐 거짓이냐를 논하는 것은 그다지 요긴하지 않다. 죽음이라는 다분히 추상적이고 엄숙한 인문학적 주제가 정치이데올로기와 연결된다는 전제가 일견 아이러니할 뿐.
저자는 중국사상에 내재된 죽음 이데올로기를 인문학적으로 탐구하면서, 적어도 이 책의 논의가 탈물화(de-reification), 나아가 ‘이데올로기의 죽음’에 이르는 계기로 이어질 수 있기를 기대했다. 혹여 이 책의 주장처럼 삶과 죽음이 하나의 지속되는 과정이라면, 양자를 삶이라 해도 그르친 것이고, 죽음이라 해도 그르친 것이다. 「반야심경」의 경구처럼 색즉시공/공즉시색이 존재의 본질을 명징하게 드러내고 있다면, 인문학은 오직 ‘대화적 사유’를 통해서만이 근원에 한걸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동양사상의 장에 바흐친이 소환된 연유가 여기에 있을까). 따라서 이 책은 죽음 이데올로기에 대한 탐구이자 동시에 현대사회의 탈 인본주의적 지배구조에 대한 대항담론적 성격을 내포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저자는 이 책이 주목했던 또 다른 부분이 바로 ‘나’라는 개념이었고 적는다. 우리가 하루에도 헤아릴 수 없을 만치 사용하는 이 말은 실상 매우 문제적인데, ‘나’가 지시하는 것이 내 육신인지 혹은 정신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육신과 정신이 결합된 그 어떤 것인지 모호하다(이 책을 관통하고 있는 죽음과 한가지의 존재양상이다). 분명한 것은 ‘나’라는 개념이 이데올로기적으로 구축된 결과물이라는 사실이다. 이 책의 제3부와 제4부에서 죽음과 함께 세밀하게 고찰되고 있는 화두다.

목차

들어가는 말
일러두기

서론

〈제1부 『중용』의 세계관〉
제1장 사상적 토대
제2장 배움[學]의 목적
제3장 유교의 시공관념
제4장 근원으로 나아가다
제5장 죽음 속에 죽음은 없다
제6장 삶과 죽음에 대한 음양론적 고찰

〈제2부 『장자』의 세계관〉
제1장 「소요유」 자유
제2장 「제물론」 평등
제3장 「양생주」 중도
제4장 「인간세」 정의
제5장 「덕충부」 근원
제6장 「대종사」 진리
제7장 「응제왕」 죽음

〈제3부 『원각경』의 세계관〉
제1장 허공의 꽃
제2장 이환제환(以幻除幻)
제3장 가없는 허공이 깨달음에서 나오다
제4장 무명과 즉비논리
제5장 세 가지 질문

〈제4부 죽음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의 죽음〉
제1장 언어와 실재
제2장 이데올로기를 논함
제3장 바흐친론
제4장 동양사상과 바흐친
제5장 이데올로기의 죽음

결론

에필로그
주ㆍ참고문헌ㆍ찾아보기
총서 ‘知의회랑’을 기획하며

본문중에서

ㆍ요약하자면 ‘죽음’은 삶을 바라보는 특정한 인식론적 틀 속에서 의미가 부여되며, 따라서 삶과 죽음을 분리된 개념으로 파악하려는 시도는 적절치 않다. 삶이 의미를 가지려면, 삶을 가능케 하는 죽음도 의미를 가져야 한다. 그러나 인식을 넘어선 죽음을 여하히 의미의 영역으로 다시 가져올 수 있을 것인가. 아마도 이것이 유불도가 천착하지 않을 수 없었던 죽음담론의 출발이었을 것이다. 본서는 이러한 이론적 토대 위에서 삼자의 개별적 특징과 이를 아우르는 보편적 세계관을 공히 밝히고자 하였다. -본문 53쪽, ‘서론’ 중에서

ㆍ죽음은 인생의 종말인가 혹은 죽은 뒤에 인간은 다시 환생하는가라는 물음은 종교나 철학에서 끊임없이 논의되어온 질문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인간이 삶의 여정을 마감할 때, 지구의 다른 한 공간에서는 새로운 생명이 탄생한다는 것이다. 물론 한 인간의 죽음과 또 다른 생명의 탄생 사이에 우리는 어떠한 논리적 연결고리도 찾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사람이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 모두는 ‘나’로서 존재한다는 것이다. 물론 ‘나’라는 자의식은 내 존재의 본질을 가리는 베일이다. 그 망상적 베일이 벗겨질 때, 한 인간의 죽음과 새로운 생명의 탄생이라는 경이로운 자연의 현상은 우주적 존재의 잠재태가 이런저런 형태로 발현된 것과 다름없음을 알 수 있다. 『중용』에서는 만물의 성이 모두 다르지만, 다름 속에서 모든 것이 같을 수 있는 근거를 중(中)사상을 통해 제시하고 있다. 솔개와 물고기의 성품은 서로 다르지만, 하늘을 날고 물속에서 헤엄치는 그 이치는 하나이다. -본문 183쪽 ‘죽음 속에 죽음은 없다’ 중에서

ㆍ우리가 흔히 상정하는 ‘삶’의 본질이 어쩌면 그 불생불멸의 존재가 홀연 허공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과정이 아닐까. 그러나 나타남과 사라짐이 과연 무엇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인가. 장자는 어쩌면 나타남과 사라짐으로부터 분리돼 있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일상적으로 우리가 말하는 탄생과 죽음이라는 사변적 개념 쌍에서 자유로운 생명의 근원을 드러내고 싶어 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설령 이것이 우주 삼라만상의 본질이라 할지라도, 이를 개념으로 풀어내는 순간 스스로가 자기모순을 잉태할 따름이다. -본문 350쪽, ‘「응제왕」_죽음’ 중에서

ㆍ의심과 상반되는 ‘믿음’의 함의가 때로는 절대자의 존재(있음)에 대한 확신과 동의적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데 있음이라는 말 자체가 이미 그 속에 없음을 내포하고 있으며, 나아가 ‘절대자가 존재한다’라는 명제가 ‘절대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말과 상호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면, 인간은 무엇으로 신성과의 관계를 정립해야 할 것인가. 나아가 존재(있음)에 대한 확신을, 불교가 경계하는 ‘집착’과 구분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이며, 보다 근원적 차원에서 이러한 ‘믿음’이 「요한복음」이 역설하는 자유와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 것인가? 죽음이라는 문제와 관련하여 ‘인간은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반드시 죽는다’라든가 ‘몸은 죽어도 인간의 근본은 멸하지 않는다’는 등의 이항대립적 사유가 아니라, ‘죽은 적도 멸한 적도 없음’이라는 ‘무생무멸(無生無滅)’의 논리에 사유하는 인간이 어떻게 한걸음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을 것인가.
-본문 409쪽, ‘세 개의 질문’ 중에서

ㆍ삶과 죽음은 바흐친적 용어로 말하자면 ‘대화’이다. 왜냐하면 양자는 항시 상호관계성 속에서 각각의 의미를 지니며, 나아가 삶이라는 말은 그 속에 이미 ‘죽음’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흐친의 대화성이론은 과도하게 사변적이지 않으면서도 그 자체로서 우리에게 새로운 통찰력을 제공한다. 바흐친이 지적한 것처럼 말의 의미는 영원히 유보될 것이고, 따라서 말과 이름[名言]에 집착하는 것은 실체 없는 허상을 좇는 것만큼이나 허망한 것이다. 반면 대상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은, 질문에 답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본문 507쪽, ‘결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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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정진배 [저] 신작알림 SMS신청
생년월일 -

연세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캘리포니아대학(로스앤젤레스) 동아시아학과에서 중국 현대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뉴욕주립대학(스토니브룩) 비교문학과 조교수를 지냈으며, 1994년 귀국하여 현재 연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동 대학 언더우드 국제대학장을 역임했다. 귀국 후에도 스탠포드대학 쇼렌스타인 아시아-태평양연구소(Shorenstein Asia-PacificResearch Center at Stanford University), 히토츠바시대학(一橋大學) 동아시아연구소, 베이징사회과학원(北京社會科學院), 홍콩성시대학(香港城市大學) 등 해외 유수의 대학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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