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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 예술미학 산책 : 동아시아 문인들이 꿈꾼 미의 세계[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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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동양 예술미학의 정원으로
산책을 권유하다

지난 30여 년간 동양의 미학과 그 예술정신의 탐구에 몰두해온 필자가 여러 지면에 발표해온 글들을 차분한 어조로 정리해 엮은 책이다. 눈앞의 예술작품들을 자신만의 독창적인 관점으로 재해석해내면서, 필자는 이를 창작했던 조선과 중국의 문인사대부들의 세계관을 입체적으로 재조명한다. 이 과정에서 과연 명작이라 불리는 작품들의 예술적 형상과 그를 빚어낸 예술적 언어, 그리고 그에 담긴 작가의 예술정신은 서로 동떨어진 채 이해될 수 없다는 자연스러운 결론을 재확인하기도 했다.
동양 문인사대부들의 은일(隱逸)의 세계관에 대한 심층 분석이 이 책의 본류가 되고, 유가와 도가미학으로 크게 나뉘는 동양의 미학관, 품론ㆍ임모론ㆍ인품론ㆍ서화이론 등의 예술론, 쇄락과 광기 등 동양예술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핵심 키워드들, 그리고 한국의 전통미를 비롯해 서양과 다른 동양 예술미학의 고유함과 본질에 이르기까지 동양의 미학과 그 예술정신에 대한 깊이 있는 해석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새로운 지의 총화를 모색하는 성균관대학교 출판부의 학술 기획 총서 ‘지의 회랑’의 세 번째 책으로, 중국 현대미학의 개척자인 쭝바이화(宗白華) 교수의 ?미학산보(美學散步)?처럼 학술서의 깊이와 품격을 유지하면서도 유유히 미학의 정원을 산책하며 읽는 에세이와 같이 자유로운 문장이 일품이다. 이제 여기 동양 예술미학의 정수를 채록한 스물세 편의 글 숲을 천천히 거닐어보자.

은일의 삶을 지향한
동아시아 문인들이 꿈꾼 미의 세계

중국에는 은사(隱士), 일민(逸民), 유민(遺民), 은자(隱者), 은군자(隱君子), 육침(陸沈), 은일(隱逸), 은둔(隱遁), 퇴은(退隱), 귀은(歸隱)을 비롯하여 고사(高士), 처사(處士), 일사(逸士), 유인(幽人), 고인(高人), 처인(處人) 등, 세속과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삶을 영위하는 문화가 있어 왔다. 대범함과 깨끗함, 고상함과 소박함이란 독특한 풍격을 지닌 은사들은 벼슬을 하지 않는 것을 하나의 특징으로 삼고, 정신의 독립과 세속의 초탈이라는 이상적인 삶을 추구했다.
이들은 자신의 능력과 처한 상황에 따라 유가적 삶과 도가적 삶을 함께 추구하거나 때론 도가적 삶에 치중한 형태를 취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삶은 쇄락(灑落)적 삶의 전형을 보여주기도 했다. 일찍이 범엽(范曄)이 ?후한서? ?은일전?에서 다양하게 은사를 분류한 이후 역대 중국의 정사에는 일민이나 은일과 같은 부류가 많이 보인다. 또한 정사 외에도 황보밀(皇甫謐)의 ?고사전?을 비롯해 ?일사전? 같은 부류의 저작들도 많다.
조선의 사대부들도 전통적인 가치관을 고수하며 관직에 나아가 자신의 이름을 청사(靑史)에 길이 남기겠다는 포부를 가지곤 했다. 그러나 이로 인해 자유가 속박 당하고, 심한 경우 몸에 욕됨을 당하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이런즉 관직을 멀리하고 친자연하는 삶을 통해 존심양성(存心養性)하며, 한 몸을 온전히 보전하려는 이들이 있어 왔다. 공자는 자신이 처한 시대가 좋지 않으면 “은거하면서 그 뜻을 구하라”고 한 적이 있었는데, 이런 은거는 자연을 동경하면서 자연에서의 삶에 일정한 의미를 부여했다.
경제적 빈한함에도 은사의 이러한 은일의 삶엔 결코 좌절이나 비통함이 없었다. 가난하지만 도리어 그들은 행복해했다. 그 자신이 스스로 선택한 삶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언제라도 마음만 먹으면 그 빈한함에서 벗어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능력 있는 백수’로서의 삶이었다. 이런 은일의 삶은 조선조 시인이나 화가들에게 중요한 작품 소재가 되었고, 그들은 작품을 통해 우회적으로 은일과 쇄락한 삶의 기품을 담아내고자 하였다.
이런 까닭에 동양예술에서는 기교의 최고 경지인 신품(神品) 이외에 ‘법도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예술정신’, ‘훌륭한 인품’, ‘탈속적이면서 은일 지향의 삶’ 등의 맥락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경지인 ‘일품(逸品)’을 더 높은 경지로 평가하기도 했다. 이는 동양에서 예술작품과 예술가를 대할 때 단순히 기교 하나만으로 평가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동양의 예술사를 보면, 간혹 기교를 어떤 측면에서 평가하느냐에 따라 신품과 일품의 우열을 논하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 일품을 신품보다 높게 평가하는 것은 결국 기교 너머 또 다른 미적 경지가 있다는 것과 관련이 있다. 그리고 이는 작가의 탈속적이면서 은일한 삶, 선풍도골(仙風道骨)의 풍모, 인품과 학식, 기운 등을 높이는 동양의 철학적ㆍ미학적 사유에 그 맥이 닿아 있다.
이렇게 이 책은 전 장에 걸쳐 다양한 은사들의 사례들을 제시하면서 예술적이며 그 자체로 미학적이었던 동양 문인사대부들의 은일한 삶의 기품을 다층적이며 심층적으로 분석해나간다.

출판사 서평

동양미학의 여러 관점들을 갈래 짓고
그 철학적ㆍ예술적ㆍ정치적ㆍ윤리적 맥락을 짚어보다

중국미학과 예술정신은 시대에 따라 큰 흐름을 달리하였다. 철학자 리쩌허우(李澤厚)는 유가미학, 도가미학, 굴원(屈原)으로 대표되는 초소(楚騷)미학, 선종(禪宗)미학 이 네 가지를 중국미학의 큰 흐름으로 보고, 이 4대 사조를 파악하는 것이 중국미학의 발전 단계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런데 큰 틀에서는 유가미학과 도가미학을 알면 나머지 분야는 일정 정도 해결된다. 선종이 유가ㆍ도가와 차별되는 지점이 있지만, 주희 등 송대 이학자들의 “선종은 장자에서 나왔다”는 언급이나 리쩌허우가 미학적 측면에서 볼 때, “선(禪)은 유가와 도가의 초월적인 면을 한층 높였지만, 그 내재적 실천에서는 여전히 중국의 전통을 따르고 있다”, “선은 장자와 현학(玄學)을 이었다”, 그리고 “선에서 출발하여 유가와 도가에 되돌아온 것[由禪而返歸儒道]이다”라는 언급 등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 즉, 선종미학은 도가미학 특히 장자미학과 유사한 점이 많고, 아울러 남방문화의 상징인 초소미학도 유가미학과 도가미학이란 틀에서 논의될 수 있다. 특히 송대 이후 문인사대부들은 유가, 도가, 선종을 하나로 융합한 경지를 담아내어 이전과 다른 독특한 풍모를 보이는데, 실질적인 그 중심은 유가이거나 도가였다.
철학자 장파(張法) 역시 중국미학의 큰 줄기로 ‘유가’, ‘도가’, ‘굴원’, ‘선종’에다 ‘명청시대의 사조(시민취향 포함)’를 추가하여 다섯 줄기로 구분한다. 유가, 도가, 명청시대의 사조가 기본이고, 굴원과 선종은 앞에서 거론한 세 가지의 보충 혹은 조화(굴원은 유가와 도가의 보충이고, 선종은 유가와 도가 및 시민취향의 조화다)다.
리쩌허우와 장파의 논지 외에도 이 책에서는 많은 동양미학자ㆍ예술철학자들의 입장과 결론을 종합해, 동양 미학의 주요 관점과 다양한 예술론들의 특성을 정리해놓았다. 이를 통해 각 사조들의 철학적ㆍ예술적ㆍ정치적ㆍ윤리적 맥락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된다. 또한 이를 추상적인 이론으로 요약하는 방법 대신, 문인사대부들이 창작해놓은 다양한 명작들을 인용해 구체적으로 해설하는 방법을 택함으로써 독자들이 동양 미학관의 갈래와 그 흐름들을 현장감 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왔다.

동양의 미학과 예술정신의 엣센스들
스물 세 편의 글 꼭지에서 정리하려는 바

제1장에서는 동양미학과 예술정신에 관한 기존의 연구 방법론과 그 결과들을 정리하고, 아울러 시대 변화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 미적 인식들을 고찰한다. 제2장에서는 동양의 미학과 예술정신을 이해하는 초보적인 사유에 관해 ‘우주를 담으려는 의식’, ‘형(形)과 신(神)의 관계’, ‘마음을 담아내는 예술’, ‘시ㆍ서ㆍ화는 근원이 같다’는 차원에서 고찰한다. 제3장에서는 동양의 미학과 예술정신을 이해하는 기본적인 두 가지 사유의 틀로서 유가의 중화(中和)미학과 도가의 광견(狂?)미학을 설정하고, 실질적인 예술이론에서 두 사유의 방식이 어떤 차이점을 드러냈는지를 고찰한다. 중화미학과 광견미학은 다른 차원에서는 ‘우아한 것이 아름다운가’ 또는 ‘기이한 것이 아름다운가’라는 질문과 연관되는데, 제4장에서는 이를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고찰한다.
제5장에서는 노장 예술정신의 핵심에 해당하는 ‘광기’가 실질적으로 예술창작에 어떻게 적용되었는지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고찰한다. 제6장에서는 인간과 우주자연의 교감의 결과인 감응론이 서ㆍ화 및 음악이론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특히 ‘상(象)’ 자를 중심으로 고찰한다. 동양예술에서는 품론을 통해 작가의 예술적 재능과 기교의 우열을 가렸는데, 제7장에서는 다양한 품론이 시ㆍ서ㆍ화 이론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적용되었는지 고찰한다. 제8장에서는 시ㆍ서ㆍ화의 품격론은 전각에도 적용되는 것으로 설정하면서, 문인전각에 나타난 품론에 대해 고찰한다.
동양예술에서는 기교의 최고 경지를 도(道)와 연계하여 이해하였는데, 제9장에서는 중국서화사에서 도와 기예가 역사적으로 어떤 맥락에서 이해되었는지 고찰한다. 동양의 바람직한 예술창작과 관련하여 장자가 말한 ‘해의반박(解依盤?)’의 고사와 ‘포정해우(?丁解牛)’의 고사가 거론되곤 하는데, 제10장에서는 이 고사의 의미가 실질적인 예술창작에 어떻게 적용되었는지 고찰한다.
동양예술은 창작에 앞서 임모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데, 제11장에서는 이 같이 임모를 중시하는 이유를 ‘법동(法同)’, ‘수동(手同)’, ‘심동(心同)’의 관점에서 고찰한다. 동양예술에서는 모방행위가 예술창작에 많은 영향을 준다고 보는데, 제12장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이를 가능하게 했는지 고찰한다. 유가는 내면에 쌓인 긍정적인 덕의 기운이 외적 몸짓으로 드러난다는 일종의 ‘성중형외(誠中形外)’의 사유를 말하는데, 제13장에서는 이 같은 ‘성중형외’의 사유에 담긴 상덕(象德)미학을 고찰한다.
동양예술은 한 작가의 작품을 평가할 때 ‘인품(人品)’을 가장 우선시하는데, 제14장에서는 이런 점을 실제 예술가의 역사적 평가와 연계하여 이것이 갖는 의미를 고찰한다. 동양에서 ‘몸’은 단순한 살덩이가 아니라 정신이 그 안에 내재한 것으로 이해되는데, 제15장에서는 몸과 정신의 관계를 말한 신체미학이 철학의 변천에 따라 어떤 변화를 보여주는지 주자학의 ‘수신(修身)’과 양명학의 ‘안신(安身)’의 사유에 적용하여 고찰한다.
유학에서는 경외(敬畏) 외에도 쇄락(灑落)의 경지를 추구하는데, 제16장에서는 증점(曾點)의 ‘욕기영귀(浴沂詠歸)’로 말해지는 쇄락적 사유가 실질적인 예술정신에서 어떻게 발현되는지 고찰한다. 제17장에서는 중장통(仲長統)이 [락지론(樂志論)]을 통해 제시된 은일적 삶을 고찰한다. 제18장에서는 조선조 시ㆍ화에 나타난 은일적 삶을 규명하여 과거 유학자들이 어떠한 삶을 지향했는지 고찰한다. 제19장에서는 ‘피로사회’로 규정되는 오늘날, 동양의 은일사상이 어떤 효용성이 있는지 다루면서 과거 문인들이 지향한 은일적 삶의 현대적 효용성을 고찰한다. 제20장에서는 노장철학에 바탕을 둔 서화이론은 기공(氣功)에서 추구한 실질적인 수련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출발하여 서화이론과 기공의 상호연관성을 고찰한다.
제21장에서는 유학자들의 노년기의 삶의 공간에 중점을 두고, 이른바 ‘택여기인(宅如其人)’의 한 예로 거론할 수 있는 도산서당을 형세론적 측면에서 살펴보고, 이를 이황의 인품과 학식과 연계하여 고찰한다. 제22장에서는 한국 전통미의 특질로 일컬어지는 다양한 사유들을 유가사상과 도가사상에 적용하여 규명하되, 특히 도가사상 측면에서 자연미가 갖는 의미를 고찰한다. 제23장에서는 태극음양론이 조선조의 서화이론과 한글창제 원리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고찰한다.

목차

책을 열면서

제1장 동양의 미학과 예술정신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제2장 동양의 미학과 예술정신을 이해하는 초보적 사유
제3장 동양의 미학과 예술정신을 이해하는 두 가지 틀 : 중화미학과 광견미학
제4장 정기론 : 우아한 것이 아름다운가? 기이한 것이 아름다운가?
제5장 노장철학과 예술정신 : 광기 어린 작품은 무엇을 표현하고자 한 것인가?
제6장 동양 서화예술에 나타난 감응(感應)미학에 관한 연구
제7장 품론을 통해 작품의 우열을 가리다
제8장 품격론을 통해 본 문인전각
제9장 동양예술에서의 ‘도’와 ‘기예’의 관계성
제10장 예술창작에서 기교 운용에 관한 장자적 해석
제11장 동양예술의 임모(臨摹)전통에 담긴 의미
제12장 동양미학에서의 모방과 창조
제13장 유가의 ‘성중형외(誠中形外)’ 사유에 나타난 상덕미학(象德美學)
제14장 동양예술에 나타난 인품론에 관한 연구
제15장 유가의 몸에 대한 인식을 통해 본 신체미학
제16장 쇄락(灑落)과 천재적 광기의 미학적 이해
제17장 은사(隱士)의 쇄락적 삶에 대한 미학적 이해
제18장 조선조 시화에 나타난 은일적 삶의 미학적 이해
제19장 피로사회와 동양 은일사상의 현대적 효용성
제20장 노장철학에 바탕을 둔 서화이론과 기공(氣功)의 상호연관성
제21장 도산서당 : ‘택여기인(宅如其人)’의 관점에서 본 형세론 미학
제22장 유가ㆍ도가사상의 관점에서 본 한국 전통미의 특질
제23장 조선조 서화예술에 나타난 태극음양론

책을 마치며
참고문헌ㆍ주ㆍ찾아보기
총서 ‘지의 회랑’을 기획하며

본문중에서

ㆍ 동양에서는 드러난 현상-이런 점을 철학에서는 ‘용(用)’이라 한다-너머에 있는 내재된 본질 혹은 원리-이런 점을 철학에서는 ‘체(體)’라 한다. ‘체’는 이해하는 관점에 따라 도(道), 리(理), 태극(太極) 등과 연계되어 이해한다-에 대한 체득이 있고 난 이후에 예술창작에 임할 것을 요구한다. 동양예술에서 강조하는 ‘최고의 미’에는 인간의 연상, 상상, 정감, 사유 등 제반 요소의 작용을 빌려 대상이 함축하고 있는 미는 물론, 더 나아가 ‘형상 너머[상외(象外)]’의 경지에 대한 미적 체험이 담겨 있다.
-본문 13쪽, ‘책을 열면서’ 중에서

ㆍ 이런 점에 비해 내면의 감성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노장사상의 영향을 받은 경우 유가사상보다도 더 창신적 예술창작이 가능했다. 노장사상의 세례를 받은 서화가들은 진리관과 학문관에서 정통과 이단이란 이분법적 도식에 얽매이지 않았다. 유가 입장에서 볼 때 이단이라 불리는 도가와 불가에 대해 이들이 보여준 폭넓은 이해와 포용성은 자신만의 독창적 예술적 감성을 드러내게 하였고, 이런 점에서 이들은 예술정신의 지평을 한 차원 더 넓힐 수 있었다. 이런 현상에서 접근하면, 예술적 측면에서는 노자철학이 소극적이고 퇴행적이란 말은 전혀 맞지 않는다. 왜냐하면 노자가 ‘부정의 정신’을 통해 기존의 진리를 비판하고 집단에 매몰되지 않는 주체적 나를 강조하는 정신은 과감하게 자신의 견해를 드러내는 창신적 예술정신으로 나타났고, 아울러 ‘원형으로 복귀하라’는 정신을 통하여 기존에 옳다고 인정된 법을 무시하는 ‘무법(無法)의 예술정신’을 가능하게 했기 때문이다. 이런 예술경향은 때론 졸박하고 추졸한 면으로 나타나기도 했지만, 그 어떤 것에도 얽매이고자 하지 않았던 정신의 자유로움은 광견 혹은 광일(狂逸)의 미학으로 나타나기도 하였다.
-본문 143쪽, ‘동양의 미학과 예술정신을 이해하는 두 가지 틀 : 중화미학과 광견미학’ 중에서

ㆍ 일품과 관련하여 가장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인물은 원대 예찬(倪瓚)이다. 화익륜(華翼綸)은 예찬의 화품에 대해 평담하면서 천진스럽고, 간이하면서도 후중하고, 담담하면서도 정채(精彩)한 것이 있고, 인위적 기교를 절대로 부리지 않아 순연하게 천취(天趣)가 있음을 말한다. 아울러 원대 화가들은 창망(蒼莽)하고 횡일(橫逸)한 중에 ‘정신은 한가롭고 기운은 고요한[神閒氣靜]’ 정취를 귀하게 여기는데, 특히 예찬은 동원(董源)의 그림을 본받았지만 그의 초일함을 얻었다. 동기창(董其昌) 역시 예찬의 고담(古淡)스런 천연함을 언급한다.
-본문 246쪽, ‘품론을 통해 작품의 우열을 가리다’ 중에서

ㆍ 은일을 추구하는 은사들은 어떤 공간을 선택하여 살고자 했을까? 은일을 추구하는 경우 대부분 공간적으로는 산속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 왜 산속을 택하는가? 갈홍의 예를 통해 보자. 중장통보다 약 100여 년 뒤에 태어나 〈포박자〉를 통해 은일의 다양함을 말한 갈홍은 숭산(嵩山)에 들어가고자 한 적이 있고, 실질적으로는 라부산(羅浮山)에 가서 은거 생활을 한 적이 있다. 갈홍이 라부산에 들어가 은거한 것은 산림 속에 도가 있어서가 아니다. 그것은 마음을 어지럽히는 세간의 시비에 얽매이는 삶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차원에서의 공간적 선택이었다. 한 인물이 세간의 시비에 얽매인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의 역량과 위치가 일정 정도 사회적으로 유용성과 영향력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은일을 택한다는 것은 그런 것을 다 버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본문 505쪽, ‘은사(隱士)의 쇄락적 삶에 대한 미학적 이해’ 중에서

ㆍ 동양의 예술가는 자연을 그리더라도 단순히 눈에 보이는 자연을 그리지 않았다. 마음속에 있는 자연, 마음을 담고 있는 자연을 그렸다. 동양의 회화를 사심화(寫心畵), 사의화(寫意畵)라 하고, 서예를 ‘심화(心畵)’라 하는 것도 이런 점과 무관하지 않다. 다른 말로 말하면 심(心), 의(意)를 강조하는 것에는 바로 철학과 미학이 담겨 있다는 말이다. 구체적으로 동양의 서예, 회화, 문학 등을 말할 때 천지자연의 조화를 스승으로 삼거나 도와 연계하여 말하는 것을 접할 수 있다.
-본문 683쪽, ‘조선조 서화예술에 나타난 태극음양론’ 중에서

ㆍ 이제 유가가 지향한 중화미학이 갖는 장점이 충분히 있음을 말하면서 아울러 도연명이 추구한 ‘심원(心遠)’적 삶, 백거이가 추구한 ‘중은(中隱)’적 삶에 기반한 예술정신 및 노장적 사유에 입각한 ‘진아(眞我)’, ‘환아(還我)’ 추구의 광견(狂?) 지향의 예술정신이 있었기에 동양예술과 미학은 유가 중화미학의 제한된 틀에서 벗어나 더 풍부한 예술세계를 펼칠 수 있었고, 더 나아가 서양과 대비되는 독특한 미학과 예술이 가능했다.
-본문 730쪽, ‘글을 마치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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