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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 : 난세를 다스리는 정치철학[증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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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난세를 다스리는 정치철학. 이 책에서 맹자는 백성을 귀히 여기고 군주를 그 다음으로 보는 정치철학을 펼쳐 보인다. 당시의 군주들에게는 대단히 못마땅한 사상이었다. 혁명을 긍정하는 맹자의 사상은 군주사회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 당시에 맹자의 학설이 수용되지 못하고 거부되고 공격받게 된 주요 원인이 되기도 했다. 맹자는 변론과 논리에 능통해, 유명한 변호사가 되려면 반드시 이 책을 읽어야 한다고 했다.

출판사 서평

개 요

난세를 다스리는 정치철학. 이 책에서 맹자는 백성을 귀히 여기고 군주를 그 다음으로 보는 정치철학을 펼쳐 보인다. 당시의 군주들에게는 대단히 못마땅한 사상이었다. 혁명을 긍정하는 맹자의 사상은 군주사회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 당시에 맹자의 학설이 수용되지 못하고 거부되고 공격받게 된 주요 원인이 되기도 했다. 맹자는 변론과 논리에 능통해, 유명한 변호사가 되려면 반드시 이 책을 읽어야 한다고 했다.

“백성이란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일정한 생업이 있어야 변함없는 마음을 가질 수 있고, 일정한 생업이 없으면 변함없는 마음을 가질 수 없다. 진실로 변함없는 마음이 없으면 마음이 흔들려 방탕, 편벽, 사악, 사치 등 못할 것이 없게 된다. 이렇게 백성들이 죄에 빠지게 된 연후에 뒤따라가 그들을 처벌한다면 그것은 백성들을 그물 쳐 잡는 것이나 다음이 없다.” (본문 내용 중에서)


서문: 『맹자(孟子)』란 어떤 책인가?

『맹자(孟子)』는 조선시대부터 『대학』 『중용』 『논어』와 함께 사서(四書)의 하나로 학자라면 누구나 읽어야 하는 필독서다.

『맹자』의 저자는 이름이 가(軻)이며 자는 자여(子輿) 또는 자거(子車)이다. 전국시대(戰國時代) 중기(기원전 372~219년경) 추(鄒: 지금의 산동성 추현)에서 태어났다. 맹가를 맹자라고 부르는 것은 사후에 존칭으로 부른 것이며 그의 저서도 『맹자』로 부르게 되었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의 교육을 위해 3번이나 집을 옮겨,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의 일화를 남겼으며, 아들이 공부해야 할 기간을 다 채우지 않고 중도에 집에 돌아오자 자신이 짜던 베를 끊어 아들을 경계한 단기지훈(斷機之訓)의 고사는 오늘날까지도 교훈이 되고 있다.
이것은 맹자가 어머니의 바른 교육에 힘입어 대성한 예로서 그의 어머니의 교육방법은 오늘날에도 모든 어머니의 귀감이 되고 있다.

맹자가 태어난 곳은 공자(孔子)의 출생지인 노(魯)나라의 창평향(昌平鄕) 추읍(추邑)과 아주 가까웠다.
맹자는 공자의 손자인 자사(子思)에게 수학하였고 어려서부터 공자를 숭배하여 사숙(私淑)하였다고도 한다. 어느 일설에는 자사의 문인에게 수업했다고도 한다.
맹자가 태어날 당시의 전국시대에는 주(周)나라 왕실의 힘이 극도로 미약하여 왕실의 존재조차 망각할 정도였다. 이러한 왕실의 존재 아래에서 각 제후들의 각축전은 약육강식(弱肉强食)을 이루어, 도덕은 문란해지고 폭력과 이단(異端)과 사설(邪說)이 횡행하여 천하는 극도의 혼란 상태에 빠져 있었다. 이로 인해 백성들은 도탄에 빠져 신음하면서 갈 바를 몰라 했다.
신하가 임금을 죽이고 자식이 그 어버이를 죽이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나 그 혼란함은 5천년 중국 역사에서 그 예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이러한 때 공자의 도는 맹자를 통해 더욱 선양되고 빛났다.
맹자는 도(道)의 연원을 요순(堯舜)으로 정립하고 우탕문무(禹湯文武) 주공(周公) 공자를 거쳐 자신에 이르는 도의 정통을 세워 유학(儒學)의 체계를 확립시켰다.

사람의 본성이란 선천적으로 타고 난다. 그 본성에는, 남의 불행이나 고통을 차마 보아 넘길 수 없는 측은지심(惻隱之心)의 인(仁)과, 옳지 않은 것을 미워하고 부끄러워하는 수오지심(羞惡之心)의 의(義), 어른을 공경하고 남에게 겸손히 하는 사양지심(辭讓之心)의 예(禮), 선과 악을 구별하는 시비지심(是非之心)의 지(智)라는 4단(四端)이 있다.
이것은 모든 인간이 공통적으로 갖추고 있는 것으로 맹자는 이를 기초로 사람의 본성(本性)은 착하다는 성선설(性善說)을 주장했다.

그 한 예로 천진난만한 어린아이가 기어 다니다가 잘못해서 우물에 빠지려는 광경을 목격했을 때 누구나 경악하고 측은해 하는 마음이 부지불식간에 생겨난다. 이러한 점이 모든 인간의 본성은 착한 것이라는 성선설의 주장을 뒷받침해 주는 것이다.
또한 인(仁)을 강조한 공자에 비해 맹자는 인(仁)과 더불어 의(義)를 내세웠다.
“인은 애지리(愛之理: 사랑의 이치)요, 심지덕(心之德: 마음의 아름다움)으로 사람의 편안한 안식처이다. 의는 사지의(事之宜: 일의 합당한 것)요, 심지제(心之制: 마음의 제단)로 사람의 바른 길이다.”고 하여 인과 의를 설명하였으며 이것으로 인의(仁義)의 뜻을 밝혀 인간의 갈 길을 제시했다.
또 그 시대의 민심에 극심한 자극을 주며 유행하던 학설들인 양주(楊朱)의 극단적인 이기주의의 자애설(自愛說)과 묵적(墨翟)의 박애주의의 겸애설(兼愛說)을 배척하고, 유가(儒家)의 사상을 통일하는 것을 자신에게 부여된 막중한 책무로 삼았다.

정치면에서는 왕도정치를 부르짖었는데, 옛날 성왕(聖王)들이 인의에 입각하여 태평성대를 이룬 치적들을 열거하여 만나는 모든 제후들에게 강론하였다.
당시의 제후들은 오직 개인의 이익 추구나 세력 확장에만 급급해 가렴주구를 일삼았고, 백성들을 전쟁에 내몰아 극심한 기아의 고통에 허덕이게 했다.
이에 맹자는 인의의 도를 정치에 적용하여 백성을 도탄에서 구하고 혼란해진 세상의 질서를 바로잡아 중국을 요순시대와 같은 나라로 만들어 보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며, 양(梁) 제(齊) 송(宋) 노(魯) 등 열국들을 순방하면서 요순의 왕도정치를 부르짖었다.
전한시대(前漢時代) 사마천(司馬遷)이 지은 『사기(史記)』에 따르면 양혜왕(梁惠王) 35년에 양나라에 이르렀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맹자의 유세는 양나라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학자들 중 일부는 제나라에서 시작되어 양나라로 옮겨졌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맹자가 양혜왕을 처음 만났을 때 양혜왕이 물었다.
“어떻게 하면 우리나라를 이롭게 할 수 있겠습니까?”
이에 대해 맹자는 모든 혼란의 원인이 이익에만 급급해하는 데 있는 것으로, 이익추구를 배격하고 오직 인의에 입각하여 왕도정치를 베푼다면 천하의 모든 이익이 돌아온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왕도정치의 기본이 되는 것을 요약해 보면 전제(田制), 세제(稅制), 교육 제도, 인재 등용, 자신의 실천궁행 등을 들 수 있다.
정전제도(井田制度)를 적용하고 경계를 분명히 하여 토지분배의 공정을 기하며 백성들에게 항산(恒産)과 고정된 작업을 부여할 것을 강조했다.
모든 백성은 항산이 있으면 항심(恒心)이 있게 되고, 항심이 없으면 탈선된 행동을 하고 사회는 혼란에 빠진다. 그때 군주 된 자가 탈선한 백성을 처벌한다면 그것은 백성을 그물질하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백성을 탈선으로 빠지게 한 책임은 백성에게 항산을 주지 않은 군주에게 있는 것이니, 백성을 위하는 정치는 모든 백성에게 항심을 주어 국민경제를 확립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했다.

세제(稅制)는 정전법을 시행해야 한다고 했다.(본문 61쪽, 154~158쪽 참조). 또 도의교육을 강화하여 윤리도덕을 밝혀 부자(父子) 군신(君臣) 부부(夫婦) 장유(長幼) 붕우(朋友) 등 인간관계의 질서를 확립하고 건전한 사회를 이룩하도록 주창했다. 인재등용은 군주가 어진 정치를 베풀기 위해 현명한 인재를 얻어 그의 보필을 받아야 한다고 하였다.

인자무적(仁者無敵)이라 하여 무력으로 사람을 복종시키는 것은 패자(覇者)의 행동이며 일시적인 복종을 강요하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인덕(仁德)으로 사람을 복종케 하는 보편성과 위대성을 강조했으며, 제후들의 사리사욕에 급급해 하는 행동은 스스로 패망을 자초하는 근원이 된다고 경고하고 어진 정치를 베풀어 천하의 왕자(王者)가 되도록 권하였다.
또한 일정국이국정(一正國而國定)이라 하였다. 이것은 군주가 올바르면 한 나라가 바로잡힌다는 뜻이다. 군주만 도덕적이면 신하나 백성들은 자연적으로 올바르게 되어 그 나라의 안정과 번영을 기약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는 누구 하나 이에 호응하는 제후가 없었다. 그러므로 맹자의 유세는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 이론은 2천 몇 백 년 동안 동양의 여러 나라 정치에 크게 영향을 끼쳤으며 민생문제 해결에 많은 기여를 했다. 맹자는 민(民)을 귀하게 여겼다.

본래 민은 면(眠: 눈이 보이지 않는 상태)으로 나타냈다. 백성은 장님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노예라는 것이다. “백성을 사랑한다.” 또는 “백성을 부리는 데는 때를 가려야 한다.”고 말한 공자는 백성을 항상 지배받는 자로 규정하였다. 이보다 약 1백년 후 전국시대에 백성을 부국강병의 중요한 소재라고 한 맹자의 생각은 그 당시 사회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것이 좀 더 구체적으로 제기되어 “백성이야말로 주체다.”라는 것으로 변화되었다.
이것은 진보적인 발상이었다. 임금을 기축(基軸)으로 삼고 백성을 그 도구로 생각했던 종래의 사상을 전환시켜 백성을 주체로 하고 군주를 가벼운 종속물로 보았던 것이다. 이것은 맹자 당시의 군주들뿐만 아니라 그 뒤의 군주들에게는 대단히 위험한 사상이 아닐 수 없었다.
은(殷)나라에서 주(周)나라로 이어진 왕조의 변혁을 비평한 대목에서는 학정을 폈던 주왕(紂王)을 “하나의 필부인 주(紂)를 죽인 것이요, 군왕을 죽인 것이 아니다.”라고 한 것만 보아도 무능한 군주는 혁명으로 갈아 치워야 된다는 역성혁명(易姓革命)을 노골적으로 드러내 보였다.

저서인 『맹자』에 관해서는 맹자가 은퇴한 후 제자인 만장(萬章) 등이 7편을 저술했다고 사마천은 『사기』에 기록하고 있다. 후한의 조기(趙岐)도 『맹자주』 제사(題辭)에서 ‘맹자 자신이 공손추(公孫丑) 만장 등의 제자들과 문답을 정리 편찬하고 새로운 것을 써 넣어 7편 261장을 지었다.’고 했다.
이것으로 보아 『맹자』 7편은 맹자의 자저(自著)라 할수 있으나 이 설이 그대로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오(吳)나라의 요신(姚信)은 제자들이 지은 것이요 맹자 자신의 저서는 아니라 했다. 당(唐)나라의 한유(韓愈)도 맹자 사후에 제자 만장 공손추가 맹자의 말을 기록했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맹자』의 내용을 자세히 보면 맹자가 죽은 후가 아니면 표현할 수 없는 부분이 많이 있고, 당시 저술을 한다는 것이 어려웠던 것으로 보아 맹자의 자저라고는 믿을 수 없다. 다만 사후에 많은 시간이 경과되지는 않았다고 보아야 한다.
『맹자』의 편수는 『사기』에는 7편으로 되어 있으며 『한서예문지(漢書藝文誌)』에는 11편으로 기록되어 있다.
사실 맹자 7편은 14편으로 양혜왕 상하편, 공손추 상하편, 등문공 상하편, 이루 상하편, 만장 상하편, 고자 상하편, 진심 상하편 으로 되어있다.
편의 이름은 특별한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논어처럼 첫머리 글자를 따서 지은 것으로 사료되며 『맹자』가 사서(四書)의 하나가 되기까지는 1천여 년이란 세월이 경과되면서부터다.
『논어』가 유학으로 정치의 근간이 된 것은 한대(漢代)부터였는데 이에 비하면 『맹자』는 경전으로 취급된 연원이 늦은 것이다.
당시 맹자는 제자백가(諸子百家)의 한 사람에 불과했다. 이 상태는 육조시대(六朝時代)를 거쳐 당(唐)나라 초기까지 이어졌다. 당나라 초 육덕명(陸德明)이 『경전석문(經傳釋文)』을 만들 때 『노자』 『장자』는 수록했지만 『맹자』는 수록하지 않았다.

당나라 중기부터 후반기에 이르러 문장가인 한유, 유종원(柳宗元) 등이 적극적으로 『맹자』를 중시하였으며, 한유는 “성인의 도를 배우는 자는 반드시 맹자부터 하라.”고 했고, 유종원도 『맹자』를 『논어』 다음으로 인정했다. 이때부터 『맹자』를 경전으로 인정하는 기운이 싹트기 시작했다.
송(宋)나라 시대에 이르러 『맹자』를 숭상하는 기운이 한층 높아졌다. 송나라 초기 손석(孫奭)이 『맹자음의(孟子音義)』를 저술했다. 이것은 진종(眞宗)의 어명으로 찬술한 것이며 『맹자』가 공식적으로 인정된 시초다.
신종(神宗) 때에는 겸경(兼經)이 되고 공자묘에 합사(合祀)했다. 왕안석(王安石)은 『논어』와 함께 『맹자』를 과거 과목으로 추가하고 정자(程子)는 성선 양기(性善 養氣)의 설을 전성미발(前聖未發)의 학문이라고 찬탄하기까지 했다. 남송시대의 주희(朱熹: 朱子)는 정자의 학문을 계승하여 『논어』 『맹자』 『대학』 『중용』을 4서(四書)라고 확정하였다.
이때부터 『맹자』는 경전으로의 지위가 확보되어 남송 말의 진진손(陳振孫)이 『직제서록해제(直齊書錄解題)』에서 경전으로 취급함으로써 『맹자』의 지위는 확고부동하게 자리 잡혔다.
명(明)나라 시대의 왕양명(王陽明: 守仁)이나 이탁오(李卓吾)와 같은 왕학파(王學派)에서는 정치론과 인간론을 펼 때 『맹자』를 거론했고, 청(淸)나라시대 대진(戴震)이 『맹자자의소증(孟子字義疏證)』을 필생의 작으로 저술한 것을 보면 『맹자』의 영향력이 강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맹자는 공자의 본을 따 여러 나라를 주유하였으며 제후들에게 자신의 사상을 유세하였다. 제후들이 그의 사상을 받아들이지 않아 맹가(맹자)는 강학과 저술로 여생을 보냈으며 중국의 성자로서 공맹(孔孟)이라 일컬어질 만큼 공자에 버금간다는 뜻으로 아성(亞聖)으로 일컬어졌다.
또 그의 학문은 공자의 학문을 계승 발전시켜 유가의 도리에 능했으며 특히 『시경』과 『서경』에 통달하여 그의 저서 곳곳마다 시서(詩書)의 구절들을 예문으로 들어 설명하고 있다.
사실 맹자의 사상은 정치를 근본으로 한 것으로, 백성을 귀히 여기고 군주를 가볍게 본것은 당시의 군주에게는 대단히 못마땅한 사고였다. 또 혁명을 긍정하는 사상은 군주사회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 당시에 맹자가 수용되지 못하고 거부되었으며 공격받게 되었다.

목차

맹자란 어떤 책인가?

제1편 양혜왕 상(梁惠王上)

1. 나라를 이익되게 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2. 현자(賢者)도 이런 것을 즐기십니까?
3. 선정을 베푸는데 백성이 따르지 않는 것은?
4. 모든 것은 시기가 중요하다
5. 칼로 죽이나 정치를 잘못해 죽이나 같은 것이다
6. 어떻게 하면 원수를 갚을 수 있겠습니까?
7. 앞으로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겠습니까?
8. 제환공과 진문공은 어떠한 사람입니까?
9. 차마 볼 수 없는 마음은 곧 인이다
10.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는?
11. 연목구어(緣木求魚)와 같은 것
12. 왕도정치(王道政治)의 근본은?

제2편 양혜왕 하(梁惠王 下)

1. 음악을 좋아한다면 나라도 잘 다스릴 수 있다
2. 70리의 동산보다 40리의 동산이 더 큰 이유는?
3. 국가간의 외교에 좋은 방법이 있습니까?
4. 현자라야 여민동락(與民同樂)을 한다
5. 명당(明堂)을 보존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6. 나라를 잘못 다스린 책임은 어디에 있습니까?
7. 인사행정은 모든 국민의 뜻에 따라야 한다
8. 신하가 임금을 죽인 것을 옳다고 생각하십니까?
9. 정치는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10. 백성이 원한다면 나라를 병탄해도 좋습니다
11. 자기 나라를 먼저 정벌하라는 백성들이 있었다
12. 좋은 정치를 베풀면 백성들은 목숨을 바친다
13. 강대국 사이의 약소국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14. 지도자는 어진 덕을 베푸는 것이 최상의 정책이다
15. 강대국의 침략을 어찌해야 합니까?
16. 만나고 못 만나고 하는 것은 천명이다

제3편 공손추 상(公孫丑 上)

1. 관중이나 안자와 같은 공업을 이룩할 수 있겠습니까?
2. 유리한 시기에 어진 정치를 베푼다면
3. 나는 40에 부동심이 되었느니라
4. 선생님과 고자의 부동심은 어떻게 다릅니까?
5. 공자께서도 성인이라 자처(自處)하지 않았다
6. 상대를 덕으로 복종시켜야 영원히 복종한다
7. 인정(仁政)은 번영하고 악정(惡政)은 치욕만 있다
8. 백성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다섯 가지 방책은?
9. 인간은 측은, 수오, 사양, 시비의 네 가지 마음이 있다
10. 어질고 지혜롭지 못한 자는 남에게 부림을 당한다
11. 백이와 유하혜에 대하여 다 같이 경계하였다

제4편 공손추 하(公孫丑 下)

1. 천시, 지리, 인화 가운데 인화가 제일이다
2. 현자를 존경하는 방법을 깨닫게 하다
3. 정당한 이유 없이 남의 재물을 받는 것은 뇌물이다
4. 지도자는 자기반성과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
5. 벼슬아치들의 무사안일을 경계하다
6. 권세를 믿고 일을 전단하는 횡포를 경계하다
7. 어버이의 상을 당해서는 인색하지 말 것을 강조하다
8. 천리를 따르지 않는 나라는 쳐 바로잡아야 한다
9. 잘못한 일이 있으면 반성하고 고쳐야 한다
10. 선비 된 자는 거취를 분명하게 해야 한다
11. 현자를 대하는 예의는 정중해야 한다
12. 끝까지 제선왕이 어진 임금이 되기를 바라다
13. 하늘을 원망하지 않으며 사람을 탓하지 않는다
14. 떠날 뜻이 있으면 녹봉 받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제5편 등문공 상(?文公 上)

1. 인간의 본성은 선하므로 선을 행한다면
2. 부모의 상에는 모든 정성을 다하는 것이 효도다
3. 경지정리와 세제개혁이 치국의 대요(大要)다
4. 인정(仁政)은 농토의 경계를 바로잡는 것에서부터
5. 천하의 모든 사람은 각각 자신의 할 일이 따로 있다
6. 유가의 법도는 형식이 아니라 인간 본연의 발로다

제6편 등문공 하(?文公 下)

1. 자기를 굽히는 사람은 남을 바로잡을 수 없다
2. 세상 풍조에 휩쓸리지 않고 대도를 실행해야만
3. 정당한 도리가 아니면 벼슬을 하지 않는다
4. 모든 일은 뜻이나 과정보다도 그 결과가 중요하다
5. 소국도 왕도정치를 실행하면
6. 인간은 환경에 따라 변화하고 그 영향을 받는다
7. 예에 벗어난 아첨은 군자의 취할 바가 아니다
8. 옳지 않은 것을 알았으면 즉각 시정하라
9. 공자가 춘추를 지은 까닭은?
10. 인륜의 대도(大道)를 저버린 청렴은 무의미하다

제7편 이루 상(離婁 上)

1. 인정(仁政)은 최고의 규준(規準)이다
2. 군주와 신하는 요순의 도를 이어받아야
3. 불인하면 크게는 천하를, 작게는 자신을 잃는다
4. 모든 것은 결과가 좋지 않으면 스스로 반성하라
5. 나라의 근본은 가정, 가정의 근본은 개인이다
6. 정치에는 상하(上下)의 화합이 중요하다
7. 인정(仁政)은 천하에 대적할 상대가 없다
8. 모든 잘잘못의 원인은 자신에게 있다
9. 백성들의 마음을 얻으면 곧 천하도 얻는다
10. 인(仁)은 안택(安宅)이요, 의(義)는 정로(正路)다
11. 천하의 화평은 효제(孝悌)의 실천에 있다
12. 자신을 성실하게 하는 도는 이것이다
13. 양로(養老)를 잘하면 천하를 맡아 다스릴 수 있다
14. 전쟁을 좋아하는 사람은 극형에 처해야 한다
15. 눈동자를 보면 그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다
16. 검소한 생활은 꾸며서 되는 것이 아니다
17. 형수가 물에 빠지면 구하는 것이 예입니까?
18. 자녀의 교육은 서로 바꾸어 가르친다
19. 진정한 효도는 부모의 마음까지 봉양하는 것이다
20. 신하는 임금을 올바르게 이끄는 데 힘써야 한다
21. 세평(世評)에 의해 정당한 행위가 좌우될 수 없다
22. 무책임한 말을 마구 해서는 안 된다
23. 자신의 부족함을 모르고 가르치는 것은 병폐다
24. 어른은 도착하는 즉시 찾아뵈어야 한다
25. 먹고 살기 위해 권력과 타협하지 말라
26. 불효 가운데 후손이 없는 것이 가장 큰 불효다
27. 의(義)의 열매는 형을 따르는 것이다
28. 모든 부자간의 도덕이 순임금으로부터 정하여졌다

제8편 이루 하(離婁 下)

1. 성인(聖人)의 도는 시공을 초월해도 길은 같다
2. 정치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강구해야 한다
3. 군신일체라야 정치가 밝아지고 나라가 번영한다
4. 감옥에는 무고한 죄인이 있어서는 안 된다
5. 대인(大人)은 옳은 예와 옳은 의를 행해야 한다
6. 부모는 자식을 중용의 도와 재능으로써 길러야 한다
7. 일의 경중을 선택할 줄 알아야 한다
8. 남의 잘못을 들추는 것은 비도덕이다
9. 중용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 행동을 하라
10. 말이나 행동은 반드시 의(義)에 부합되어야 한다
11. 외물의 유혹 없이 순결한 본연의 마음을 지녀야
12. 부모의 장례는 후회 없도록 성의를 다하라.
13. 자득(自得)은 무궁무진한 응용의 묘를 얻게 된다
14. 요점을 풀이하려면 널리 배워야 한다
15. 천하가 심복해야 왕 노릇을 한다
16. 남의 현명함을 가리는 것은 상서롭지 못하다
17. 사람은 마땅히 근본을 세우는데 힘써야 한다
18. 인륜을 버리는 자는 금수와 같다
19. 다스리는 자는 성인들의 현명함을 본받아야 한다
20. 『춘추』는 사실에 관한 것을 취사선택한 역사다
21. 나는 공자를 사숙(私淑)하였다
22. 정확한 판단 아래 행동하라
23. 교제는 반드시 올바른 사람을 가려야
24. 선은 고수하고 악은 용감하게 고쳐야 한다
25. 모든 이치는 경험적인 것을 근거로 추구해야 한다
26. 예법에 따라 행동하고 아첨해서는 안 된다
27. 군자는 인과 예가 아니면 행하지 않는다
28. 성인들은 처지가 바뀌어도 행동은 같다
29. 사람들이 싫어하더라도 자세히 살펴 시비를 가린다
30. 각자의 신분에 맞는 행동을 취해야 한다
31. 인의의 도를 행하면 성인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
32. 양식을 갖춘 자만이 정신적 가치를 추구할 수 있다

제9편 만장 상(萬章 上)

1. 큰 효자는 죽을 때까지 부모를 사모한다
2. 순임금은 인간을 초월한 지극한 효자였다
3. 자기를 해치려는 동생도 애정으로 대했다
4. 천하로써 아버지를 봉양한 효도
5. 모든 백성의 뜻은 하늘의 뜻이다
6. 덕이 높아도 천명이라야 천하를 차지한다
7. 이윤은 요순의 도를 즐겼으며 그것을 실천했다
8. 공자의 진퇴는 예와 의로 일관되었다
9. 백리해가 비열한 행동을 했을 까닭이 있을까?

제10편 만장 하(萬章 下)

1. 공자는 성자(聖者)의 특성을 집대성한 대성인이다
2. 주(周)나라의 작록(爵祿) 서열은 등급이 있었다
3. 벗은 어떠한 벗을 사귀어야 합니까?
4. 존귀한 사람의 교제의 예물은 받아야 된다
5. 가난을 면하기 위해서는 미관말직이라도 나아간다
6. 군주가 인재를 기르는 방법은 어떤 것입니까?
7. 그 지위에 맞는 예로써 대해야 한다
8. 넓은 식견과 바른 행실을 가진 이와 벗해야 한다
9. 과오를 고칠 줄 모르는 군주는 바꾸어도 좋다

제11편 고자 상(告子 上)

1. 그의 논법은 인의를 해치는 행동이다
2. 사람의 본성은 선한 것이다
3. 인의예지의 성을 부여받은 것은 오직 인간뿐이다
4. 의도 인과 아울러 내부적인 것이다
5. 의는 공경하는 마음을 행하는 것이다
6. 본성에 따라 움직이는 정(情)은 선을 할 수 있다
7. 모든 사람들의 입맛은 동일하다
8. 양심은 잡으면 간직되고 놓으면 잃는다
9. 일폭십한(一暴十寒)이면 자라는 것이 없다
10. 의(義)로우면 삶도 단념하고 환난도 감수한다
11. 학문의 길은 방심(放心)을 구하는 것일 따름이다
12. 경중(輕重)을 잘 모르는 것은 어떤 것인가?
13. 물질은 사랑하면서 수양에는 소홀하다
14. 작은 것을 기르면 소인, 큰 것을 기르면 대인이다
15. 대인과 소인이 되는 방법은 어떠합니까?
16. 천작을 닦으면 인작이 저절로 따른다
17. 귀한 것을 원하지만 자신의 귀한 것은 모른다
18. 물이 불을 이기듯 인(仁)은 불인을 이긴다
19. 인(仁)도 길러 여물도록 해야 한다
20. 모든 일에는 일정한 방법이 있다

제12편 고자 하(告子 下)

1. 아무리 식과 색이 소중해도 무례하게 취해서야
2. 요순과 같은 행동을 하면 요순이 될 수 있다
3. 소변(小弁)은 소인의 시가 아니다
4. 인의(仁義)의 도를 가지고 설득해야 한다
5. 예가 물건에 미치지 못하면, 그것은 향(享)이 아니다
6. 현자를 등용하지 않는 것은 자멸의 길이다
7. 지금의 제후는 오패의 죄인이다
8. 전쟁은 백성을 재앙으로 빠뜨리는 것이다
9. 정도가 아닌 부국강병책은 만민의 적이다
10. 20분의 1에 해당하는 세금을 받고 싶은데
11. 백규의 치수(治水)는 물을 역류시켰다
12. 군자는 성실해야 한다
13. 선을 좋아하는 것만으로 천하가 다스려질 수 있다
14. 관직에 나가는 법도, 물러나는 법도 세 가지
15. 우환 속에서는 살고, 안락 속에서는 망한다
16. 남을 가르치는 데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제13편 진심 상(盡心上)

1. 생사를 초월하여 천명에 순응하는 방법은
2. 양심은 자신이 잡으면 남아있고 놓으면 없어진다
3. 서(恕)에 힘쓰는 것이 인의 지름길
4. 사람은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5. 옛날의 어진 임금과 선비는 선을 좋아하였다
6. 선비는 곤궁한 처지에서도 의를 잃지 않아야
7. 모든 호걸들은 스스로 깨닫는다
8. 위민정치를 하면 죽음에 처해도 원망치 않는다
9. 양지, 양능(良知良能)은 인간이 부여받은 본연의 성
10. 사슴과 멧돼지와 함께 산 순임금
11. 해서는 안 되는 일과 욕심내서는 안 될 일이 있다
12. 역경 속에서도 재능을 닦을 수 있다
13. 대인은 자기를 바르게 하고 남도 바르게 한다
14. 군자의 세 가지 즐거움
15. 모든 백성의 생활을 안정시킨 문왕
16. 생활이 윤택하면 백성은 착해진다
17. 태산에 오르면 천하가 작다는 것을 안다
18. 순임금과 도척의 구분은 선(善)과 이(利)의 차이뿐
19. 극단적인 것은 사람의 마음을 해친다
20. 빈천에 시달리면 부귀에 눈이 어두워지기 쉽다
21. 삼공(三公)의 지위와도 지조를 바꾸지 않은 유하혜
22. 모든 일은 중도에 포기해서는 안 된다
23. 인의를 빌리고 돌려보내지 못한 오패들
24. 이윤처럼 공정하다면 왕을 쫓아낼 수도 있다
25. 군자는 국가의 예우를 받아야 한다
26. 뜻을 높게 가져 대인의 자질을 갖추어야 한다
27. 인륜을 저버리는 것보다 더 큰 죄는 없다
28. 천자의 부귀보다 어버이를 섬기는 일이 소중했다
29. 거처하는 지위에 따라 기품이 달라진다
30. 군자는 공경하는 성의가 없으면 벼슬하지 않는다
31. 타고난 체모와 안색은 성인만이 따라갈 수 있다
32. 1년 상도 안하는 것보다 낫지 않습니까?
33. 군자가 남을 가르치는 다섯 가지 방법
34. 중용의 도에 맞으면 능력 있는 사람은 따라 온다
35. 도를 희생시키고 남의 사욕에 따라가서는 안 된다
36. 스승과 제자는 사제(師弟)의 도가 있어야
37. 나가는 것이 빠른 자는 물러나는 것도 빠르다
38. 군자는 백성을 사랑한 후에 사물을 사랑한다
39. 행동하는 데는 선후가 있다

제14편 진심 하(盡心 下)

1. 어리석은 양혜왕이여!
2. 춘추시대에는 의(義)에 맞는 전쟁은 없었다
3. 인자무적(仁者無敵)이란 틀린 말인가?
4. 도를 구하는 일은 자신의 노력에 달려 있다
5. 성인은 빈천해도 외물에 유혹되지 않는다
6. 복수는 복수를 낳는다
7. 백성에게 포악하기 위한 현재의 관문
8.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
9. 거센 파도에도 바다 속은 고요하다
10. 명예를 존중하는 사람은 의가 아니면 받지 않는다
11. 상하의 질서가 문란한 것은 예의가 없기 때문이다
12. 불인한 자는 천하를 얻지 못한다
13. 귀한 것은 백성이요, 가벼운 존재는 임금이다
14. 성인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스승이다
15. 인(仁)을 따라 행하는 것이 도(道)다
16. 공자는 밥 지을 쌀을 건져 가지고 갔다
17. 소인배에게 횡포를 당한 것은 부끄러울 것이 없다
18. 남의 비난에 신경 쓰지 말고 소신껏 행동하라
19. 자신의 덕을 닦은 뒤에 남을 지도해야 한다
20. 산 속의 지름길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21. 우왕(禹王)의 음악이 문왕의 음악보다 우수합니까?
22. 불가능한 줄 알면서 하는 것은 절도 없는 행동이다
23. 도덕적인 욕구가 인성이다
24. 인간 유형의 여섯 가지
25. 양?묵가(楊墨家)를 떠나면 유가(儒家)로 돌아온다
26. 세금 포탈이 심할수록 나라는 어지러워진다
27. 국가 존립의 세 가지 요소는
28. 사회생활에서 실패하는 원인은
29. 오는 자 막지 않고 가는 자 잡지 않는다
30. 내가 원하는 바대로 남에게 행하라
31. 도는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
32. 군자는 천명을 기다릴 뿐이다
33. 인의 도덕으로 부귀영달의 고자세를 꺾는다
34. 욕심이 많은 사람일수록 본심을 보존한 자 적다
35. 양조(羊棗)를 먹지 않은 증자의 효도
36. 공자는 왜 광자와 견자를 생각했습니까?
37. 향원(鄕原)은 덕의 적이다
38. 아! 공자 이후 도를 계승할 자 없구나!

저자소개

맹자(孟子) [저] 신작알림 SMS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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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은 가(軻)이다. 전국시대 중기에 살았던 철학자이자 정치가로, 공자의 인(仁) 사상과 함께 의(義)를 강조하면서 왕도정치를 주장했다. 각 나라를 돌며 왕도정치를 유세했지만 끝내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각 나라들이 패도정치에 의한 부국강병을 통해서만 통일을 모색하는 현실에서 역성혁명까지도 인정하는 그의 주장들은 수용되기 어려운 측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신념이 담긴 『맹자』는 한대와 송대를 거치면서 유학의 경전으로 자리매김 되면서 지식인들의 필독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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