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말을 걸고, 우리는 그 말에 수긍과 질문으로 풍부한 대화가 시작된다. 낯설어서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 난감했던 경험은, 마치 그림을 막연하게 보며 일방적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 전준엽의 ‘화가의 숨은 그림 읽기’는 숨어 있는 그림의 세계를 알려주어 그림과 많은 대화를 할 수 있는 길을 터 주었다. 작가의 담백한 문장으로 화가의 삶을, Artist's view로 그림의 숨은 기술적 구성을, 그리고 색채와 사물, 인물 등의 다양한 소재를 통해 화가가 말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이 책은 분명 책이지만 글자보다 그림과의 대화 시간이 더 많아 결코 빨리 읽을 수 없었다.

 

그림은 그릴 수 있는 것을 그려냈을 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세계도 그려 냄으로써 본질의 모색과 끝없는 환상의 세계로 우리를 이끌어낸다. 화가가 인도하는 길을 걷다보면 호기심과 긴장으로 설레며, 그 세계를 내 눈으로 대면했을 때의 떨림은 마치 열정적으로 사랑하는 사람과의 만남 같은 희열을 준다.

 

17세기 무렵, 눈에 보이는 것을 그대로 그린 정물화와 자화상은 인생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아냈기에 미술사에 한 몫을 하게 된다. 값비싼 물건, 시계 등을 그려 넣음으로써 소유의 부질없음과 삶의 유한함을 나타내었고, 자화상은 삶을 관조하는 깊은 내면의 눈과 삶에 대한 반성 및 내면의 성숙함을 이루려는 의지를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보이지 않은 세계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화가가 세상을 향해 말하고 싶은 보이지 않는 진실이자 상상력이 빚어낸 창조의 세계이다. 화가가 세상을 향해 말하고 싶었던 진실이 가장 강렬했던 것은 에두아르 마네의 <풀밭 위의 식사, 1863년>이었다. 당시 알몸의 여자가 등장한 것은 혁명이라 할 정도로 획기적이었다. 마네 이전에는 여성의 누드가 신화라는 옷을 입고 있었기에 여자로 느끼지 않는다는 견해로 포장(?)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점심시간, 정중하게 차려입은 두 남자 앞에서 다른 어떤 대상보다 빛나는 알몸인 채로 너무도 자연스럽고 당당하게 우리를 쳐다보고 여성을 마네는 과감하게 그려냈다. “마네가 이런 그림을 그린 것은 회화나 신화가 역사를 재현하거나 현실을 그대로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창조하는 독자적인 세계를 담아내야 한다는 스스로의 소신을 위한 것이었다.”(213쪽) 이런 마네의 이상을 아직은 확신하지 못하는 것처럼 이상을 의미하는 새를 보일듯 말듯 작고 어둡게 표현했다. 그러나 결국 마네는 보이지 않는 진실을 그림으로 당당하게 표현해 냄으로써 시대의 흐름을 바꾸고 새로운 가치관을 세웠을 뿐더러 예술의 가치를 끌어올렸다.

 

세상을 향한 진실의 외침이 있었다면, 영혼을 향한 절규가 소름끼치도록 느껴진 것은 이미 대중화 된 에드바르 뭉크의 <절규, 1893년>이다. “뭉크는 자신이 혼돈 상태에서 들었던 소리를 표현하기 위해 이런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274쪽) 괴상한 모습을 한 사람, 그림을 보는 순간 비명이 들리는 듯한 아찔함, 불안한 선들과 색들. 결코 예쁘다고 할 만한 구석이 없음에도 대중화가 된 것은 그만큼 사람들과의 공감이 형성된 이유에서다. 쉽게 또는 함부로 표현해 내지 못하는 사람들의 공포와 두려움, 그리고 절박한 불안함 등을 알고 있는 화가 앞에 관객이 된 우리는 카타르시스와 위안을 얻는다. 그림은 사실을, 진실을, 그리고 철학까지 담아내어 그림과 내가, 너와 나라는 별개의 타자가 아닌 우리라는 공감대를 형성하며 긴밀한 대화를 나누게 한다.

 

예술가의 상상력은 그럴듯한 세계를 창조한다. 인간에게 가장 긴밀하지만 영원히 미지의 세계인 죽음. 아르놀트 뵈클린의 <죽음의 섬>이나 안견의 <몽유도원도>는 이렇게 초자연적인 세계나 관념을 그려 넣었다. 현실에서는 볼 수 없는 관념과 꿈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는 그림은 삶에서의 색다른 대화자가 된다. 화가, 그들이 나누고 싶었던 내밀한 이야기와 외치고 싶은 진실, 인생의 철학과 미지의 세계에 대한 탐색은 색으로, 향기로, 움직임으로 소리로 그렇게 그림에 모두 새겨져 있다.

 

이 책의 저자 전준엽은 회화를 전공했으며 도쿄, 로스앤젤래스, 뮌휀 등에서 23회의 개인전과 3백회 이상 기획전에 참가한 사람이다. 게다가 10여 년간 기자로 일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많은 미술작품에 대한 설명과 이야기가 솔솔 읽혀진다. 그림 하나를 이야기 하는데 역사와 그 당시의 사회배경, 화가와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 등 다양한 측면을 제시해 준다. 그래서 그림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도 그림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안목을 열어주고 있다. ‘무릇 글 쓰는 일이나 그림 그리는 일에서 담백해지자’는 저자의 생각이 잘 스며있는 문장은 글과 그림을 더욱 빛나게 한다. 참 좋은 책을 읽은 기쁨이 충만하다.

삶이 허전해졌다. 그래서 뭔가를 붙잡아야 할 것 같고, 뭔가를 모색하며 거기에 몰입해야 할 것만 같았다. 이런 중에 나에게 설렘을 부여한 책  ‘인문학 두드림 콘서트’. 인간의 다양한 면을 모색케 할 수 있는 사람, 음악, 미술, 고전, 사색이라는 목차가 구미를 당기게 한다. 요즘 앓고 있는 허전함을 뭔가로 가득 채우는 충만함 기쁨을 선사해 줄 것이라 단정지으며 책을 펼쳐들었다.

 

사랑과 성공의 이중주 속에 사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마리아 칼라스, 인도의 사 쟈한, 골프의 아널드 파머와 잭 니클라우스, 케네디家와 오나시스를 소개하고 있고, 음악에 감사하게 되는 날들에서는 바하, 하이페츠, 아바와 쇼팽을, 아름다움의 돋보기 미술에서는 라파엘로와 모딜리아니, 고전의 숲에서 미래를 찾는 고전에서는 논어, 세익스피어의 4대 비극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마음가짐을 마더 데레사와 예수님의 행적을 따스하게 펼쳐나갔다.

 

사람의 인생 과정을 여러 사람의 삶을 통해 펼쳐나가고 있어 마치 한 사람의 인생을 이야기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사람 때문에 외롭고 고통스러운 사회생활, 그렇기에 더욱 사업에 그리고 사랑에 성공하고 싶어하는 인간의 내면이 나타난다. 배신당하고 이겨내기 어려운 역경 중에서도 자기가 하고 싶은 음악과 미술로 사람에 대한 아름다움을 찾으려고 애쓰는 인간의 나약함과 신성성도 느껴진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어떤 것으로든 자기를 표현하고 세상과 소통하기를 바라는 사람에 대한 의지와 기대는 본연의 인간적인 모습이 아닐까 싶다. 고전을 통해 미래를 모색하면서 더 나은 삶을 추구하는 수직적 진보를 향하고 있으나, 동시에 수평적 주변 사람들과 따스함을 나누어 주고 싶어가는 가장 인간적인 모습이 잘 그려져 있다.

 

눈치챘는지 모르겠지만 인문학이라는 일반적인 철학적이거나 종교적인, 그리고 자기성찰을 심오하게 다루고 있지 않다. 분석적이거나 비판적으로 쓰인 것이 아니라 사변적인 방법으로 인문학을 소개하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제목을 다시 한 번 들여다보았다. ‘그렇구나, 두드림 콘서트였구나’를 생각하게 된다. 심연 속에 빠질 것을 대비해 경건한 무게 있는 마음가짐으로 이 책을 대한다면 여러 측면을 살아간 인물들의 사변적인 이야기에 살짝 움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볍다고 말할 수는 없다. 사실적인 측면에 많은 지면을 할애한 작가의 의도는 사실이라는 전제하에 다양한 사색을 확장해 가도록 독자를 배려한 것이 아닐까 싶다. 작가도 ‘인문학 숲의 단상’이라는 코너에서 자신의 사고를 자연스럽고 쉽게 풀어놓았던 것은 집필자로서의 책임감을 적절하게 실어주었다고 본다.

 

인간의 삶은 누구에게나 외롭고 쓸쓸하다. 허영심 내지는 열정에 몰입하고, 사랑에 목말라하고, 인정받고자 하는 최상의 목표인 성공을 향한 끊임없는 경주의 인생. 뭔가를 채우고 싶어 하고 인정받고 싶으며 사랑받고 사랑하기를 간절히 원한다. 이런 간절함은 부단한 노력으로 지식과 지혜로 채우면서 자기성찰로 가장 인간다운 삶의 진보된 모습으로 거듭나게 한다.

 

이 책은 인문학을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 위대한 인물로 칭송받게 되는 데에는 어떤 삶의 배경이 있는지를 알려 주어 그 인물의 삶을 더욱 쉽게 이해하고 다양한 측면으로 사색하게 한다. 새로운 사실을 쉽게 알려주며 여러 가지 방면으로 사색할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이야 말로 양서가 아닐까 싶다. 더 깊은 사고를 원한다면 독자 스스로가 그 길을 찾아나서게 될 터이니까. 유재원의 ‘인문학 두드림 콘서트’는 인문학, 그 길을 찾아나서게 하고 있다.

 

우린 늘 유토피아를 꿈꾼다. 그러나 유토피아는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나 없는 그런 모호한 세계이다. 이 세계는 ‘지금 여기’라는 현실이 암흑처럼 느껴지기에 인간이 끊임없이 갈망하는 피안의 거처로 내정된 곳처럼 여겨진다. 암담한 현실을 대면하고 싶지 않거나 피하고 싶은 인간의 나약함이 만들어낸 세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작가 김현영은 디스토피아 소설 ‘러브차일드’를 통해 과감하게 피하고 싶은 암흑의 현실을 대면하게 한다. ‘지금 여기’라는 현실에 내재된 위험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냈으며 이러한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다.

‘러브 차일드’는 참 읽기 어려웠다. 읽다가 몇 번이나 덮었고, 다시 읽었던 부분을 되새겼으며 마침내 잠시 입맛을 잃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이 책을 읽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현실의 문제를 인식하라는 작가의 외침을 받아들여야만 했기 때문이다. 내가 바로 ‘러브차일드’에 나오는 세계의 일부를 살고 있으므로. 내용이 너무 충격적이었다. 되도록이면 언급하고 싶지 않은 낙태아를 통해 1인칭이나 3인칭으로 암울한 현실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인간을 도구 내지 쓰레기로 취급하는 현장을 치밀하게 묘사하고 있는 점이 그러하다.

등장인물 ‘수’와 ‘진’은 12살 준수한 외모를 가진 아이들이었다. 용산 사태를 간접적으로 말하고 있는 사건을 계기로 이 둘은 지도층에 의해 타의적 요구에 맞는 삶을 살게 된다. 시간이 흘러도 영원히 ‘12살’의 아이의 신체로 존재하는 ‘진’은, 지도층의 디저트용으로 성을 착취당하고 인격체가 아닌 지도층의 애완동물로 대를 이어 물려받는 매우 귀중한 사유재산이 되지만, 한 팔이 주인에 의해 절단당하면서 폐기처분되는 처지가 된다. 또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나이를 먹는 ‘수’는 출산용 도구가 되어 집단 강간으로 세 번의 출산을 한 후 민간인에게 위탁되어 완전한 사용도구의 노예로 살아간다. 굶주림과 폭력과 증오의 과녁으로, 온갖 노동의 도구로 살다가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자 쓰레기 투척하듯 폐기처분된다. 그녀가 낳은 아기는 단 한 번도 얼굴을 볼 수 없었다. 다만 그의 자녀들이 251004231111 식의 이름을 명명 받은 것 외에는 아무것도 모른다. 그렇게 세상에 태어난 아이들은 이러한 세상의 시스템에 공모하는 도구로서 살아간다. 단 한 번의 애정 어린 스킨쉽도, 어미의 사랑의 뭔지도 모른 채 성장한 이들은 철저하게 인간의 감정을 배제 당한 채 완벽한 세계를 위한 시스템을 유지하는 하는 것이 그의 삶의 목적이다. 결국 ‘수’는 그의 아들 251004231111에 의해 폐기처분이 결정된다. 그 아들은 ‘어머니’라는 존재자체가 인식에 없다. 60세 이상의 노인도 쓰레기로 배출되어 재활용되거나 완전히 폐기처분되는 신세로 전락하게 된다. 다만 60세에 도달하지 않을 수 있는 돈만 있다면 그들은 영원히 살 수 있는 것이다. 지도그룹이 완벽한 세상을 누리기 위해 마련된 시스템에 적응하는 자만이 살 수 있는 미래의 세상. 돈이 없거나 뭔가를 제공할 능력이 없는 인간은 그냥 쓰레기일 뿐인 것이다.

인간이 사용도구나 쓰레기가 되어 살아가거나 분류되는 과정이나 상황을 너무도 치밀하게 묘사하여 마치 영화를 보는 듯했다. 그래서 더욱 이 책의 설정들이 명확하게 드러났고, 충격적이었다. ‘이럴 수가 있나’라고 의문을 던져보지만, 이런 생각을 말미에는 ‘지극히 당연한 모습일 수 있다.’라고 긍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 힘들었다. 그래서 계속 눈 돌리고 싶었고 피하고 싶었다. 그러나 작가는 이런 우리에게 허탄한 곳으로 눈길 돌리지 말고 ‘지금 여기’를 직시하라고 작가는 강력하게 외치고 있다. 부정적인 현실에 대한 비판과 작가의 고통스럽고 애절한 사랑이 느껴지는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