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집착, 편견, 이해관계 앞에서는 힘을 잃게 되고, 신중한 사람들이 때때로 드러내곤 하는 경솔함을 이겨내지 못하는 법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기 입장에서 유리한 사건만 전달하기 마련이다.”(8쪽)
서문에 기록한 문구다. 아나톨 프랑스는 언뜻 보아서는 인간의 부정적인 면에 초점을 두고 있는 듯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인간의 역사 및 성서에 인간의 실수와 악마의 개입으로 독자로 하여금 의심과 비판의 시각으로 바라보도록 한다. 하지만 이 책을 덮는 순간 인간의 어리석음과 추악함이 더 강하게 와 닿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다면적 모습에 대해 수용하고 싶어진다. 인간의 시작에서부터 미래의 모습을 풍자적으로 기술한 작가의 치밀함 때문이 아닐까 싶다.
성 마엘 신부의 실수로 펭귄이 세례를 받고, 이 일로 인해 펭귄은 사람이 되어 삶을 살게 된다. 방황하는 영적 자녀들을 신앙으로 다시 이끌어 보겠다는 선한 동기로 시작되었지만, 결과론적으로는 도덕과 권력, 부로 인한 불행함으로 점철된 인간의 역사.
펭귄에서 인간의 형상으로 변화되었을 때에도 그들은 자유로웠다. 그러나 악마가 아무도 봐 주지 않은 여자로 변한 펭귄에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면서부터 부끄러움과 욕정, 납치, 도덕관념 등이 생겨나게 된다. 이 여인은 많은 남자들과의 관계를 맺고 살았지만 후대에는 성녀라는 이름으로 역사에 기록되는 아이러니한 일이 벌어진다.
인간은 권력과 이기심, 부를 축적하기 위한 끝없는 전쟁의 연속으로 점철된다. 무력의 전쟁만이 아니라 삶 자체가 전쟁이었다. 이 책에서 현대시대의 ‘피로의 건초 8만 단 사건’에 대해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이 사건을 통해 진실보다는 만들어진 자료의 증거가 힘을 발하는 현대시대의 모습을 풍자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권력이 있는 자들에 의해 무죄한 자가 유죄로 감옥에 갇히게 된다. 권력이 자신 자가 곧 진실이 되는 고통스런 현실의 모습.
세상과 단절하여 살다가 우연히 식당에서 보게 된 콜롱방의 피로에 대한 청원서를 발견한 비도-코키유. 동정심에 사로 잡혀 45분간 두서없이 연설을 하고, 연설에 환호하며 피로를 옹호하며 콜롱방을 숭배하는 데에 자신의 인생목표가 있다고 비도-코키유에게 말한 여인의 한 마디. ‘정말 잘 생기셨군요.’ 그리고 피로의 만들어진 증거 자료에 대해서는, ‘732평방미터, 각각 500킬로그램의 자료, 자료는 온갖 색상과 색조, 포트판 크라운판 등 판형도 여러 가지...’ 라 말하고 있다. 이 두 개의 예를 보더라도 겉모습, 양적인 것에 치중한 현대시대의 오류를 잘 드러내고 있다.
<펭귄의 섬>은 역사의 시작, 고대시대, 중세와 르네상스, 현대시대로 나누어져 있다. 이 책이 1921년 노벨문학상 수상작이기 때문에 이 책이 기록된 시기는 적어도 1910년대라 할 수 있다. 그런데도 현대시대에 대한 이야기가 8권중 4권을 차지할 정도로 많다. 흥미로운 것이 현대시대와 미래시대에 대한 이야기가 지금과 별반 다름이 없다는 것이다. 역사는 과거가 아니라 곧 현재 그 자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옷이 입혀지기 전, 아니 인간의 형상이 되기 이전에 자유롭던 펭귄의 삶을 이 책의 마지막은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도시는 더욱 더 부유해지고 넓어졌다. ... 30층 40층 되는 건물도 지었다... 끝없이 깊게 파 내려간 지하에는 수많은 동굴과 터널이 만들어졌다.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1,500만 명에 이르렀다.’(414쪽)
현대의 도시는 또 다른 의미의 감옥이었다. 인간에 대한 서글픔이 밀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