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넓고 강연은 많다. 굳이 시간을 내어 강연장에 찾아가서 강연을 듣지 않아도 인터넷이라는 보고를 통해 시도 때도 없이 접할 수 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에서 하는 강연도 실시간에 가깝게 볼 수 있으니, 강연을 보고 듣기 위해 필요한 것은 시간과 노력이 전부다. 그러나 그런 강연의 홍수는 옥석을 가리는 데 어려움을 주고, 나처럼 선택장애가 있는 사람에게는 더욱 그렇다.

<강연 읽는 시간>(2018, 신디 지음, 지식너머 펴냄)은 그런 강연의 홍수에서 보석을 골라내 들려준다. 저자는 교육학과 심리학을 공부하고 10년 이상 교육계에 종사하고 있단다. 그런 학문적 지식으로 저자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TED, 인생학교, Talks at Google 등 좋은 강연이 올라오는 웹사이트들에서 좋은 강연을 검색하고 찾아내고 정리하는 수고를 몽땅 덜어내 주었다. 사람들이 살면서 궁금해하는 행복, 일과 시간, 관계, 돈과 불안, 나 자신이라는 다섯 가지 키워드에 5가지 강연을 엮은 것이다. 이제 독자들이 할 일은 이 키워드들 중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강연을 골라 QR 코드를 찍어서 듣고, 저자가 해당 키워드를 풀이해주는 것을 읽는 것뿐이다.

저자는 이야기를 풀어내기 위해 현실적인 사례를 든다. 그런 다음 그와 연계해서 들으면 좋은 강연을 한 페이지로 요약 정리해준다. 강연 동영상은 위에 적은 것처럼 QR 코드를 스캔해서 바로 볼 수 있다. 그러고 나면 저자가 교육학과 심리학 근거들을 들어 해당 내용을 깊게 푼다. 더 많은 내용을 읽고 싶다면 책 뒤에 실려 있는 참고문헌을 보면 된다.

내가 요즘 가장 크게 절감하는 자기 통제 부족에 대해서도 댄 애리얼리가 강연한다. <상식 밖의 경제학>으로 널리 알려진 행동경제학자이자 심리학자인 댄 애리얼리는 자기 통제력을 어떻게 향상하라고 권했을까? 나를 유혹하는 것에서 관심을 분산하고, 장기적인 목표를 이루어가는 중간중간에 자신에게 선물을 하며, 유혹 발생을 막기 위해 계약하라는 것이다. 종일 핸드폰을 붙잡고 게임을 하고, 살을 빼야 하는데도 입에서 당기는 것을 먹으며, 꼭 해야 할 일을 미루는 내게 이 설명이 꼭 필요했다.

이제 지식은 노하우(knowhow)가 아니라 노웨어(know-where)라고 했던가. 시간과 노력이 부족한 현대인에게 이렇게 지식을 정리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기획이 신선하다. 덕분에 좋은 강연을 듣고, 앞으로 살아가면서 내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광고 기획자라는 타이틀보다는 인문학 강연자라는 타이틀로 박웅현 님의 명성을 익히 들어왔다. 모든 학문에 인문이 융합되는 이 시대에, 광고와 인문학의 결합은 현상과 본질의 결합이라는 점에서 더 깊이 있다.

<여덟 단어 기프트 에디션>(2017, 박웅현 지음, 북하우스 펴냄)은 저자의 명성으로 내 2017년을 마무리하고자 선택한, 내게 주는 선물이었다. <여덟 단어>는 2013년 출간된 책이고, 이번 기프트 에디션은 그 여덟 단어를 하나씩 쪼개 한 편의 강연으로 구성하면서, 독자가 자신만의 단어를 만들어 적을 수 있도록 양장 무지 노트를 증정한다. 책 한 권으로 묶여 있으면 한 번에 주루룩 읽어버려서, 빨리 읽기는 하지만 머릿속에 남길 여유가 없다. 그러나 이번 에디션은 한 단어가 40쪽 조금 넘는 작은 책 한 권을 이루고 있으므로, 시간을 내서 강연 한 편을 듣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출퇴근하면서 한 편씩 읽기에 부담이 없고, 책을 덮은 후 단어 하나하나를 깊이 생각하게 된다.

이 책을 구성하는 여덟 단어는 ‘자존’, ‘본질’, ‘고전’, ‘견(見)’, ‘현재’, ‘권위’, ‘소통’, ‘인생’이다. 이 순서대로 차근차근 읽는 것이 논리 흐름을 따라가기에 좋다. 각 책의 맨 앞은 저자의 강의 노트로 보인다. 핵심 단어를 화두로 놓고 키워드들이 나열된다. 이 키워드에 살을 입혀 책이 된다.

강의가 ‘자존’으로 시작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이 책은 20~30대 청년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꼭 생각해봐야 할 여덟 가지 키워드’를 이야기한 강연을 묶은 것인데,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를 존중하는 마음’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많은 것을 가지고 많은 것을 누리더라도 스스로를 존중하지 못한다면 물질에, 세상에 휘둘리게 된다. 이 키워드에서 ‘삶’으로, ‘죽음’으로, ‘교육’으로 이어진다. 교육에 자신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자신 안의 별을 찾아 삶을 만들어간 나무학자 강판권 님의 사례를 소개하면서 진정한 자존의 힘을 보여준다.

자존을 세웠다면 그다음은 ‘본질’이다. 자존이 자신에 대한 관점을 세우는 것이라면, 본질은 세상에 대한 관점을 세우는 것이라 볼 수 있겠다. 변화를 따라가느라 급급해하지 말고, 변하지 않는 핵심인 본질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는 것. 누구보다 세상의 흐름에 민감해야 할 광고 기획자인데도 트위터도, 페이스북도 친하지 않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본질을 따라가는 힘을 말한다.

그렇게 고전을, 견을, 현재를, 권위를, 소통을, 인생을 말한다. 고전에는 익히 아는 고전문학만이 아니라 음악도, 그림도, 문화재도 포함된다.

아주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다양한 것을 한데 녹이고 자신의 삶을 더해, 인문학을 삶과 가까이 가져온다. 학문이 아니라 삶으로 들어오는 강연이었다. 이제 나만의 단어를 만들 차례다.

덴마크의 휘게(hygge, 포근한 순간을 만든다)가 작년 여름 우리나라에 들어와 조용히 자리를 마련하더니, 이번에는 스웨덴의 라곰(lagom)이 소개되었다. <라곰 라이프>(2018, 안나 브론스 지음, 신예희 옮김, 21세기북스 펴냄)를 통해서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스웨덴 고어 라굼(laguhm, 법에 따르면)에서 유래한 말이며, '사회 구성원들이 명문화된 법뿐 아니라 상식에 따라 행동하도록 장려하는 개념'(22쪽)으로 정의한다. 더 쉽게 풀면 '당신이 원하는 딱 그만큼'(26쪽)으로도 소개한다. 원하는 것, 필요한 것뿐만 아니라 원하지도 않던 것, 필요하지도 않은 것까지 욕심을 내게 만드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참 듣기 어려운 말이다.

더 빨리, 더 많이, 더 크게 가져야 한다는 컨베이어 벨트에서 내려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1장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에서 라곰 라이프가 어떤 것이며 스웨덴 사람들은 어떻게 누리고 있는지 설명한다. 적당함을 유지한다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타인의 눈을 의식하면 더 그렇다. 그러나 라곰이 정착된 스웨덴에서는 가능하다. 라곰에는 분명 장점이 있지만,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우리 속담처럼 뛰어난 성공을 경원시하는 단점도 있다고 짚어준다. 라곰의 장점에도 단점에도 치우치지 않고 슬로 리빙 운동을 벌이자는 것, 삶에서 양보다 질을 추구하자는 것이 이 책의 주제다.

그런 라곰 라이프의 구체적인 모습이 2장부터 펼쳐지며 6장까지의 제목을 이어서 읽으면 핵심이 충분히 전달된다. 즉 '저녁 있는 삶의 즐거움, 식탁 위에 머무는 여유, 간소한 공간과 포근한 일상, 단순함 속의 작은 화려함, 몸과 마음이 균형을 이룰 때'이다. 본문을 읽기 전에 장 제목만 보아도 이상적인 삶 아닌가. 더 오래 일해서 더 많이 벌고 더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과 함께 삶의 질을 높이면서 행복하게 사는 삶이라니. 마지막 7장은 이렇게 살기 위해, 즉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내려놓는지 설명한다. 자신이 바라는 삶의 모습이 분명하게 정해졌다면 현재 쥐고 있는 것들을 내려놓을 용기가 생길 것이다. 부록에는 라곰 레시피가 실려 있다.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 온 지 9년째 접어들었는데, 방 세 개 중 하나는 책과 잡동사니가 차지해서 들어가기조차 어려운 지경이 되었고, 베란다들도 마찬가지 신세다. 마음의 허기 때문인지 꼭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들을 끝없이 사들이고, 그렇게 사들인 것들은 몇 번 사용하기도 전에 어딘가에 처박힌다. 어딜 보나 깨끗한 구석이 없는 우리 집을 보며, 또 항상 바쁘다는 말을 달고 살면서 정작 중요한 가족에게는 신경을 못 쓰는(어쩌면 외면하는) 내 마음을 보며 반성하는 시간이 되었다. 라곰 라이프가 내게 절실하게 필요하니, 이 책을 여러 번 더 읽어야겠다. 요즘 유행하는 미니멀 라이프보다 더 넓은 범위에서 이 책은 방향을 제시하며 힘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