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이 책을 두 번 읽었다. 한 번은 이야기가 어떻게 이어질지 궁금해서, 또 한 번은 내용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이 이야기들이 어떻게 씨를 뿌리고 싹을 틔워 열매를 맺는지 감탄하면서. 두 번 모두 많이 슬펐다. <잊혀진 소년>(2018, 오타 아이 지음, 예문아카이브 펴냄) 이야기다.

23년 전, 당시 초등학교 6학년생이었던 미즈사와 나오는 여름방학이 끝나고 이틀째 되던 날 사라진다. 여름방학 동안 사귄 동년배 소마 료스케와 나오의 동생 다쿠와 함께 학교에 갔지만, 나오는 교문 앞에서 두고 온 것이 있다면서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집에 있던 엄마 가나에는 나오를 보지 못했고, 나오는 표지에서처럼 석양이 뉘엿뉘엿 지는 강가에 혼자 1시간 넘게 서 있다가 홀연히 사라졌다. 그러부터 23년이 흐른 지금, 가나에는 작은 흥신소를 운영하는 야리미즈 나나오에게 사라진 아들을 찾아달라고 의뢰한다.

야리미즈가 나오를 찾는 것은 도키와 리사라는 초등학교 6학년 여자아이가 행방불명된 사건과 맞물려 진행된다. 둘 다 초등학교 6학년생이고 행방불명되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시간상 너무나 긴 간격이 있고, 거리상으로도 전혀 연관이 없으니, 이 두 사건을 엮을 개연성이 전혀 없다. 그런데 이 사건들을 엮어 하나로 만드는 것에는 23년 전 나오의 친구였고 지금 야리미즈의 친구인 소마가 큰 역할을 한다. 여름방학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만들어진 두 소년의 우정은 23년이라는 공백에도 여전히 살아남아 그들을 구원한다.

이 소설은 아이들의 우정을 담고 있지만, 원죄(怨罪)라는 큰 테마 위에 놓여 있다. 자신이 지은 죄가 아닌데도 경찰과 검찰과 정치와 사회가 한데 얽혀 억울하게 죄를 뒤집어쓰는 것을 말한다. 작년에 재미있게 본 드라마 <피고인>, 황정민이 주연한 영화 <검사외전>도 그런 원죄를 소재로 한다. 다행히 <피고인>과 <검사외전>의 주인공들은 자신들의 법적 지식과 정보망, 수사력을 사용해서 무죄를 입증함으로써 풀려날 수 있었다. 그러나 드라마와 영화니까 가능한 것이지, 원죄자로 밝혀지는 일이 이렇게 드문 것을 보면 억울한 사람이 많을 듯하다. 거꾸로 보면 죄를 지었는데도 대로를 활보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고. 이들의 원통함을 누가 알아주며 보상해줄 것인가.

<잊혀진 소년>은 이처럼 묵직한 주제를 서정적인 이야기와 함께 탄탄하게 풀어내서, 안타까우면서도 재미있게 읽었다.

나는 사소한 것 하나도 잘 버리지 못한다. 책에 관해서는 더욱 그렇다. 책이 계속 쌓이니 언제 또 읽을지 장담하지 못하면서도 차마 버리지 못해서 방 하나를 책에 내주었다. 방 하나가 뭐야, 방마다 구석마다 책이 쌓여 있다. 그러다 보니 정작 필요한 책을 찾지 못하는 일이 다반사다. 냉장고는 또 어떻고, 옷은 또 어떤지. 집이 아니라 창고가 되어버린 지 오래다. 가족들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그래서 이런 습성을 고쳐보고자 <나의 최소주의 생활>(2018, 샤오예 지음, 청림출판 펴냄)을 선택했다. 표지가 심플하다. 바닥에 놓인 것이라고는 선인장을 심은 액자 하나. 이렇게 비어 있는 구석과 바닥을 우리 집에서는 만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나는 책을 읽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한 것이, 미니멀리즘, 청소, 정리, 비움, 라곰 등을 읽어도 내 삶은 바뀌지 않았다. 전에 비해 충동구매를 조금은 줄인 정도. 그래도 <나의 최소주의 생활>은 좀 달랐다. 내가 왜 버리지 못하는지, 왜 지저분하게 사는지, 왜 긴급하게 필요하지도 않은 것을 충동적으로 사들이는지 조근조근 들려주기 때문이다. 그런 다음 이런 마음을 어떻게 정리하고, 연연하지 않고 낭비하지 않고 신경 쓰지 않는 최소주의 생활로 내 인생을 사랑할 수 있는지 제시한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최소주의는 '소유한 물건을 통해 내면의 본질을 깨닫고, 내면의 본질로 소유한 물건의 가치를 배우는 심리적인 힘'(41쪽)이다. 게다가 최소주의가 포용하는 것은 물질만이 아니다. 물질은 태도와 욕망과 감정이 만들어내는 결과와도 같다. 간결하지 않은 태도, 끝없는 욕망, 낭비되는 감정 때문에 물질이 쌓이는 것으로 보아도 크게 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저자의 주변 사람들을 사례로 들면서 최소주의 생활이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월든 호숫가에서 살아간 2년을 현대로 옮겨 오면 최소주의 생활이 되려나. 중요하지도, 필요하지도 않은 사람과 일과 감정과 물건에 연연해하지 말고, 정말 소중한 최소한의 사람과 일과 감정과 물건에 집중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자기계발서에서 흔하게 보는 내용들이다. 특히 Part 5 업무 편이 그렇다. 일을 잘하고 성과를 내는 것. 그러나 이 책은 더 많은 일을 더 잘하는 방법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일을 한 번에 한 가지 하라고, 책상과 파일과 업무를 잘 정리하라고, 그보다 먼저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을 회복하라고 말한다는 점에서 자기계발서와 다르다. 최소주의 생활은 이처럼 삶의 모든 부분에서 정리와 안정과 풍요를 이야기한다. 비움으로써 채워지는 이 놀라운 최소주의 생활이 내가 바라는 모습으로 자리 잡았다.

김혜남 박사님의 이름은 책의 저자로서 많이 들었다. 나는 이분이 정신과 의사로서 학문적 성과를 얼마나 거두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다양한 책의 저자로서, 병원에 찾아갈 엄두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해준 점은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학문적 지식을 글로 풀어내는 것은 대단한 능력이니 말이다. 이분이 파킨슨병을 앓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정말 안타까웠는데, 그런 참에 <당신과 나 사이>(2017, 김혜남 지음, 메이븐 펴냄)를 읽게 되었다.

이 책은 제목과 마찬가지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이야기한다. 표지에는 '가족과 나 사이에 필요한 거리는 20cm, 친구와 나 사이에 필요한 거리는 46cm, 회사 사람과 나 사이에 필요한 거리는 1.2m'라고 적혀 있다. 물리적 거리로는 맞는 말일 테다. 서양은 우리나라보다 이런 거리 개념이 좀 더 엄격해서, 회사 동료가 너무 가까이 가면 흠칫 물러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더 중요한 것은 이런 물리적 거리가 아니라 마음의 거리다. 사춘기 아이에게는 가족보다 친구와의 거리가 가까울 것이고, 워커홀릭에게는 가족보다 회사 동료와의 거리가 가까울지도 모른다. 물리적으로 가까운 가족이 가장 큰 상처를 주고받는다는 것은 현실에서 익히 느끼고 있지 않은가.

저자는 병을 앓기 전에는 가족들이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고마움을 몰랐단다. 시어머님을 모시고 살았는데 가정에 상대적으로 무관심한 남편에게는 원망하는 마음도 들었다던가. 헤어질 생각까지 했을 정도로. 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럴 것이다. 사랑이 식고 기대에 못 미쳐 실망하는 모습. 그런데 아프고 나니 남편의 입장에서 자신을 생각하게 되고, 그러면서 그간 힘들었던 마음이 사라지고 이해하게 되며 고마워하게 되었단다. 그래서 자신이 느낀 점들을 덧붙여서 사람들이 인간관계를 바람직하게 만들어나가는 것을 돕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결정하는 데는 자기 자신과의 관계도 중요하다. '내면의 상처 받은 아이'라는 말은 심리학 책에서 자주 듣는 단어인데, 그 아이가 어떤 상처를 얼마나 입었는가에 따라 다른에게 한없이 매달리는 사람이 될 수도,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을 끊고 자신에게만 전념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저자는 챕터 3에서 '나에게 가장 소중한 건 당신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상처 받은 아이를 치유하고 나를 소중하게 생각하면 남을 대하는 자존감과 자신감과 포용력이 생기는 듯하다.

이 나이가 되어도 나는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이 정말 어렵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에 대해 찬찬히 생각했다. 내가 너무 가까이 가려고 하는지,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정답은 없겠지만 평생 생각할 주제라고 생각한다.

저자의 고통이 크지 않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