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쇼핑몰에서 '사과'를 검색했다. 그다음 날 그 쇼핑몰에서 다양한 '사과'를 사라고 추천하는 메일이 왔다. 쇼핑몰을 이용한다면 누구나 겪어보았을 것이다. 이용자의 일거수일투족을 파악하고 저장할 수 있는 빅데이터 때문이다. 몇 년 전부터 '빅데이터'라는 말이 널리 통용되면서 우리의 삶을 잠식해오고 있다. 그동안의 책들은 빅데이터의 위력과 잠재력을 찬탄하며 어떻게 하면 이를 이용할 수 있을지에 초점을 맞추었는데, 이번에 읽은 <대량살상수학무기>(2017, 캐시 오닐 지음, 흐름출판 펴냄)는 빅데이터의 어두운 일면을 정면으로 들여다보게 한다.

책을 읽기 전에 저자 캐시 오닐의 이력을 보는 것이 도움이 되겠다. 저자는 하버드에서 수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버나드 칼리지 수학과 종신교수로 재직했다. 그러다 2007년 헤지펀드로 옮겨가 퀀트로 일하면서 선물거래를 담당하다가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일선에서 겪었다. 그러나 시장 붕괴로 고통받은 것은 가난한 고객들뿐, 월스트리트는 큰 피해나 반성 없이 제자리로 돌아간 데 실망하고 월스트리트를 떠났다고 한다. 그런 다음 위험을 측정하고 분석하는 IT 회사인 리스크메트릭스에 들어갔으나 역시 월스트리트의 거수기일 뿐임을 깨닫고, 자리를 옮겨 데이터과학자data scientist로 활동하게 되었단다. 수학을 사랑해서 박사 학위를 받고 박사 후 과정을 거쳤으며 대학교수에 이어 트레이더라는 쟁쟁한 직업을 지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망하는 자리이니 안주해도 좋을 만한 직업들이다. 그러나 저자는 자신의 영달이 아니라 '공정함'과 '공평함'에 무게를 두어, 현재 빅데이터가 적용된 정책들의 불공정함과 불공평함을 드러낸다. 

수학이라면 숫자로만 해석하기 때문에 공정할 거라고 생각하기 쉽다. 숫자 자체로만 보면 그렇지만, 어떤 숫자를 택할 것인지에 사람의 주관이 들어가면서 공정성이 훼손되는 일이 대다수다. '대량살상수학무기'는 그런 불공정성을 명확하게 드러내는 단어다. 저자가 예로 드는 대량살상수학무기는 생활 전반에 널리 퍼져 있다. 2장은 금융에 존재한 무기였으니,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이 만들어진 배경부터 이 시한폭탄이 터지면서 초래된 고통까지 설명한다. 대출 금리, 상환율, 파산율 등 모든 것이 수학이었지만, 이 숫자들을 뭉뚱그려 자신의 배를 채우는 데 사용한 사람들 때문에 전 세계를 강타한 무기가 되었다.

3장은 우리에게도 익숙한 '대학 줄 세우기'에 관한 숫자 놀음이었다. 4장은 '영리 대학'이라는 개념을 담았는데, 학위의 메리트는 거의 없다시피 하면서 학비는 일반 대학보다 비싼 '학위 공장'이 어떻게 가난한 학생들을 노리는지 보여준다. 약탈적 광고가 그들의 강력한 무기다.

대량살상수학무기는 범죄와도 연관되며, 십여 년 전부터 우리나라에도 널리 보급된 취업용 인적성검사에도 뿌리내려 있다. 어려운 관문을 거쳐 취업한 후에도 업무 효율화라는 미명 아래 일정의 노예가 되고 있고, 신용점수는 한 사람을 나타내는 단 한 가지 숫자로 맹위를 떨치고 있다. 수학은 정치도 좌우하는 힘을 지녔다.

저자는 우리 삶의 거의 모든 면에서 빅데이터가 자리 잡고 있으며, 앞으로 점점 더 교묘하고 파괴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경고한다. 1마리 가진 사람에게서 빼앗아 99마리 가진 사람에게 건네는 기득권자의 권력이 대량살상수학무기를 휘두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에게는 어떤 힘이 필요할까? 그들의 실상을 알아보는 관심과 노력, 알고리즘을 감시하는 행동력, '도덕적 상상력'(337쪽)이다. 빅데이터의 그림자와 파괴력을 전방위적으로 알아보는 멋진 시간이었다.

차(茶)가 지닌 '시원(始原)의 맛과 멋'을 알기에는 내가 아직 내공이 부족하다. 달고 시고 쓰고 짜고 매운 것은 좋아해도, 맛이 있는 듯 없는 듯 향이 잇는 듯 없는 듯 슴슴하고 은근한 차의 맛을 모른다. 그러니 차를 즐기게 되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릴 텐데, 그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여보고자 선택한 책이 바로 <찻집여행>(2017, 류정호 지음, 인문산책 펴냄)이다. 알게 되면 보일 테니 말이다.

200쪽 겨우 넘는 이 책은 '찻집여행'이라는 제목 그대로다. 그중에서도 '물길 따라 떠난 찻집여행'이다. 차를 우릴 때는 물론 찻잎이 중요하지만, 차의 물성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물이니 물도 중요하다. 이제는 대부분 정수된 물을 쓰겠지만, 예전만 해도 물이 좋은 곳을 찾아서 차를 즐겼다고 했다. 그러니 물길 따라 세워진 찻집을 찾는 여행도 좋다.

이 책에 소개된 찻집은 총 스무 곳이다. 금강이 흐르는 충남 공주의 '루치아의 뜰'에서 시작해서 섬진강이 흐르는 전남 광양의 '섬진다원'으로, 경남 거제도의 '소향다원'으로, 인천 강화도의 '다랑채'로, 강원 양양의 낙산사 '다래헌'으로 이어지며 우리나라 곳곳을 누빈다. 가까이는 서울 홍제동과 구산동, 경기 구리와 분당, 안성에서 만날 수 있는 찻집도 있다. 거리가 아니라 찻집을 알아보는 애정과 관심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대목이다.

찻집들은 찻집과 찻집 주인들의 사연과 역사뿐 아니라 주변의 사회와 역사와 문화를 고스란히 지니고 있다. 물리학 선생님을 하다가 차 선생님으로 방향을 바꾼 지 35년이 되었고, 오랫동안 차와 인문학을 가르쳐온 저자의 지식과 경험, 차에 대한 사랑이 이야기를 풍성하게 한다. 차의 종류, 제조법, 맛과 향, 효능보다 차에 담긴 이야기, 철학, 시간, 기다림 등이 더 중요하고 더 크게 다가온다. 이 작은 책에 담긴 잔잔한 이야기와 아름다운 사진 들은 차의 은은한 향기까지 전해주는 듯하다. 그러고 보면 차를 굳이 어려워할 것이 없다. 길을 걷다 훌쩍 커피숍에 들어가서 커피를 마시듯, 눈에 띄는 찻집에 들어가 차를 한잔 마셔볼 일이다. 책에 나온 것처럼 이야기와 풍경과 멋을 갖춘 찻집이 더 많아지면 더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마음 하나 챙기고 마신다면 차는 어디서나 안정과 위안을 줄 테니 말이다.

'당신의 진짜 인생은 여기가 아니다'라고 누가 말한다면 나는 어떻게 받아들일까? 내가 원하는 일을 하고는 있지만, 과연 이것이 '진짜 인생'이라고 할 수 있을까? 열심을 기울여 살아야 하는데 어영부영 관성에 따라 흘러가고 있으니, 누가 나에게 '진짜 인생'을 제시해준다면 허황된 것일지라도 귀가 솔깃할 듯하다.

<당신의 진짜 인생은>(2017, 오시마 마스미 지음, 무소의뿔 펴냄)은 이 말을 던진 사람과, 이 말을 받아들여 자신의 인생을 바꾼 두 사람이 등장한다.

우선 이 말을 던진 사람은 모리와키 유쿠코. 필명은 '모리와키 홀리'다. '비단 배' 시리즈로 엄청난 인기를 모았지만 현재는 글을 쓰지 못하고 있고, 뇌경색을 두 차례 앓아서 거동이 불편한 상태다. 가끔 트랜스 비슷한 상태에서 다른 사람의 앞날을 내다본다.

이 말을 받아들여 자신의 인생을 바꾼 첫 번째 사람은 우시로 게이코. 24년 전에는 지방 도시의 시민회관에서 일했는데, 강연하러 온 홀리에게서 "당신의 진짜 인생은 여기에 없어"라는 말을 듣고서 그날 바로 홀리의 비서가 되기로 한다. 그렇게 24년이 흘러, 이제는 글을 쓰지 못하는 홀리 대신 글을 쓸 정도가 되었다.

두 번째 사람은 구니사키 마미. 중학생 때부터 홀리의 팬이었고 '비단 배' 시리즈를 너무너무 좋아해서 책 속 구절들을 외울 정도다. 1년 전 소설이 당선되어 등단했지만 후속작을 내지 못하던 차에, 홀리의 담당 편집자인 가가미가 홀리의 집에 들어가 살도록 주선해주었다. 홀리의 집에 들어간 순간, 마미는 '비단 배' 시리즈에 나오는 고양이인 '처칠'이라는 이름을 받고, 그 앞에 새로운 인생이 펼쳐진다.

'글'이라는 공통 분모를 놓고 이 세 사람과 함께 편집자 가가미의 이야기가 맞물려 각자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300쪽이 넘는 책장이 빠르게 넘어간다.

세상은, 그리고 인생은 우연에 크게 좌우되니, 우시로가 강연회에서 홀리를 만나지 않았다면, 구니사키가 고로케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았다면 이들은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

이 책은 일본 소설 중에서 아기자기한 이야기 편에 속한다. 큰 사건은 없지만 사람들의 소통을 통해 인생이 따뜻하게 바뀌는 내용이다. <카모메 식당>, <달팽이 식당>, <심야 식당>처럼 잔잔하고 따뜻한 이야기를 좋아한다면 이 책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