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딸아이와 함께 중국 여행을 다녀왔다. 톈진 공항을 이용하고 베이징을 둘러보는 패키지였는데, 3박 4일이라는 길지 않은 일정에도 꽤 많은 곳을 둘러볼 수 있었다. 외국을 여행하려면 그 나라의 언어를 기본이라도 배우는 것이 예의라고 딸아이가 말해서 고른 책이 바로 <랜드마크 중국어회화>(2017, 김정은 지음, 퍼브삼육오 펴냄)이다. 그래서 결론을 먼저 말하면? 이 책을 통해 베이징, 상하이, 홍콩 등의 랜드마크 50곳을 둘러보고, 중국의 행정 구역이며 다양한 문화를 보는 재미가 있었지만, 중국어는 거의 익히지 못했다.

중국의 행정구역은 직할시 4개, 특별 행정 구역 2개, 자치구 5개, 성과 주요 도시 22개로 구성된다. 이 책은 그중에서도 우리나라 여행객이 많이 몰리는 베이징, 상하이, 홍콩에 중심을 두어 랜드마크들을 소개한다.

그런데 이 책은 제목처럼 '회화' 책이다. 어휘와 문법에 대한 기본서가 아니다. 그래서 중국어 문법이 어떻게 되는지, 4개 성조마다 어떻게 발음하는지 등 기본적인 설명이 전혀 없고, 단박에 회화로 들어간다. 게다가 한문도 내가 학창 시절 배운 번체자가 아니라, 마오쩌둥이 도입한 간체자가 쓰여서, 한문에도 까막눈이나 마찬가지다. 우리말로 발음이 적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나처럼 중국어를 배운 적이 전혀 없고, 짧은 중국 여행에서 쓸 만한 단편을 배우려는 사람에게는 너무나도 어려웠다. 다행히 모든 대화 옆에 QR코드가 나와 있어서 원어민의 발음으로 대화를 들을 수 있지만, 중국어가 참 어렵다는 생각만 든다.

책에 실린 회화 내용은 내가 중국어를 어느 정도 했다면 실전에서 쓸 수 있을 만큼 실용적인 것이 많으니, 제대로 배운 후에 다시 읽어볼 만하다.

중국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 이 책을 다시 펼쳐 드니 아이와 들렀던 천안문 광장, 자금성, 이화원, 만리장성, 왕푸징 거리, 십찰해, 더 플레이스 등이 새록새록 펼쳐진다. 왕푸징 거리에서 아이랑 먹은 양꼬치와 딸기 탕후루,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갔는데도 다리가 퍽퍽해질 정도였던 만리장성의 거대함, 호수가 꽁꽁 얼어서 사람들이 열심히 썰매를 타던 이화원과 십찰해, 인력거 모는 분에게 괜히 미안해졌던 후퉁 거리 인력거 투어 등이 말이다.

다음에 또 중국에 갈 일이 생긴다면, 그때는 이 책에 실린 몇몇 문장이라도 제대로 익혀서 가야겠다. 손짓발짓 보디랭귀지로 때울 것이 아니라, 중국 사람들과 최소한의 소통이라도 할 수 있도록. 그것이 공정여행만큼이나 여행자의 기본이자 예의라고 생각한다.

40여 년간 열쇠 수리공으로 일했고, 아들과 딸을 하나씩 두어서 독립시켰으며, 아내 미리엄과 30여 년간 행복한 결혼 생활을 누린 아서 페퍼는 1년 전 아내를 폐렴으로 잃었다. 아내를 보내고 1년이 지났지만 아서는 여전히 생활로 돌아오지 못하고 무기력과 상실감에 젖어 있다. <아서 페퍼: 아내의 시간을 걷는 남자>(2017, 패드라 패트릭 지음, 다산책방 펴냄)의 주인공 이야기다.

아서는 이웃인 버나뎃이 음식를 챙겨서 방문하자 집에 사람이 없는 것처럼 꾸밀 정도로 세상에 대한 문을 닫고 지낸다. 그러다가 마침내 없는 힘을 짜내어 아내의 유품을 정리함으로써 아내를 보내주기로 하는데, '실용적인 갈색 스웨이드 부츠' 안에서 하트 모양의 주홍색 가죽 상자를 발견했다. 자물쇠를 열고서 그 안에서 발견한 것은 '코끼리, 꽃, 책, 팔레트, 호랑이, 골무, 하트, 반지'가 참으로 달려 있는 화려한 금팔찌였다. 그중에서 코끼리 참에 새겨져 있던 인도의 전화번호로 전화하면서 아서는 아내의 시간을 걷게 된다.

'그녀는 단순하고 실용적인 것들을 좋아했다. (중략) 그들은 결혼 생활 내내 돈에 쪼들렸고 궂은 날을 대비해 돈을 아끼고 모았다.'(19쪽) 아서가 사랑하고 함께 생활한 아내 미리엄은 늘 이런 모습이었다. 그러나 코끼리 참에는 인도에서의 보모 시절이, 호랑이 참에는 영국 그레이스톡의 영지에서 머물던 시절이, 책 참에는 그레이스톡 영지에서 만난 프랑스의 유명 시인 프랑소와즈 드 소펑이 연계되어 있다. 프랑스에서의 생활은 실비와 함께한 웨딩드레스 숍으로, 스커버러 대학에서 그린 누드화로 아서를 데려간다.

아내가 살아 있을 때 아이들과의 소통까지 아내에게 일임했기에, 아내가 사망한 후 아들딸과 데면데면했던 아서의 모습은 우리나라 많은 아빠들과 겹쳐질 것이다. 어렸을 때 다정다감했더라도 나이가 들어 독립하면 멀어지는 것도 당연하다. 그런데 아서는 아내의 시간을 걸어가면서 아내에 대해 몰랐던 점을 알게 되고, 그러면서 자신의 삶, 자녀와의 관계를 생각하게 된다. 그동안 오히려 귀찮게 대했던 이웃과도 소통을 시작한다. 그렇게 아내의 시간은 아서를 현실로, 이웃으로, 미래로 데려가면서 해피 엔딩을 만들어낸다.

너무나도 평범한 이 시대의 아버지상인 아서 페퍼. 파란만장하고 화려한 과거를 접고 평범하고 단순한 현실에 안주한 미리엄. 아버지에게 거리감을 느끼고 일찍이 오스트레일리아로 떠난 아들 댄. 가족을 만들고 싶어 하지만 그러지 못한 딸 루시. 이 네 사람이 만들었던 '가족'은 어떤 모습었는지, 미리엄이 사망한 후 남은 셋이 어떤 가족을 재구성하는지 따라가면서 내가 가볍게 여기는 가족의 의미와 무게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제 곧 펼쳐지는 설 연휴에는 가족을 새롭게 알아갈 생각이다.

나는 요리를 좋아한다. 아니, 요리책 보기를 좋아한다. 요리 자체에는 취미도 솜씨도 없지만, 책에 실린 식재료의 소개와 요리 과정, 맛의 묘사, 추억 이야기를 보는 것이 재미있다. 그러고 보면 <밥 이야기>(2018, 니시 가나코 지음, 생각정거장 펴냄)의 저자인 일본 작가 니시 가나코와 닮았다.

저자는 이란 테헤란에서 태어났고, 주재원인 아버지 때문에 이집트 카이로에서 몇 년 살았으며, 이후 일본으로 돌아왔단다. 그래서 <밥 이야기>에는 카이로에서의 추억, 유럽으로 여행 갔을 때의 추억, 일본으로 돌아와서의 생활 등이 들어 있다. 일본인이면서 어딘가 이방인 같은 분위기는 아무나 가질 수 없다.

우리는 으레 '의식주'라고 이야기하지만, 살면서 보면 '의'와 '주'보다 '식'을 중시하게 된다. 맛있는 것을 같이 먹는 것만큼 사람 사이를 가깝게 해주는 것이 있을까. 음식에는 함께 먹은 사람, 그때의 장소와 분위기 등이 고스란히 담긴다. 그래서 우리나라 셰프이자 작가인 박찬일 님은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라는 책을 쓰기도 했다.

이 작고 얇은 책 <밥 이야기>에는 저자가 어렸을 적 먹은 음식, 일본의 일상에서 경험한 음식, 여행에서 먹은 음식, 요리 강습에서 만난 음식 등을 담았다. 특히 재미있게 읽은 것은 '활자밥', 즉 활자화된 책에서 만난 음식들에 대한 상상을 담은 꼭지다.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에 등장한 디저트 '브라운베티', 일본 작가 이시이 신지가 쓴 <이시이 신지의 밥 일기>에 실린 '시금치 오시타시'는 어떤 요리일지 상상하기도 어렵지만, 그렇게 상상으로 만들어낸 것이 실제보다 더 맛있는 경험은 해본 사람이 많을 것이다.

내 막냇동생과 동갑인 저자가 참 다양하게 세상을 경험한 것을 보면서 부럽기도 하고, 음식을 통해 삶의 활력을 발산하는 것이 참 보기 좋았다. 생일도 심드렁한 나이가 되고, 이제는 컬러풀한 요리책뿐 아니라 하루 종일 요리하는 과정 자체를 보여주는 프로그램이 넘치는 요즘에도, 책을 통해 충족해야 하는 '활자밥 배'가 내게도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그 활자밥 배를 이 책으로 어느 정도 충족했다. 배가 아니라 마음이 출출할 때 한 꼭지씩 읽기에 좋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