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오래 살다 온 친구에게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아는 사람이 아이를 잠깐 집에 혼자 두고 가게에 뭘 사러 다녀왔는데, 그걸 지켜본 이웃이 아동 방치로 신고해서 경찰이 출동했었다고. 또 학교 수업을 마치고 하교할 때도 받아주는 어른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던가. 얼마 전 읽었던 <레티시아>에서는 아버지가 폭력, 어머니가 우울증으로 아이들을 키우기 어려워지자 정부가 아이들을 데려다가 시설에 수용하는 장면이 나온다. 서양은 아동 복지에 관해서는 상당히 엄격하다는 사례다.

그런데 <더 글라스 캐슬>(2017, 저넷 월스 지음, 북하우스 펴냄)에는 얼얼한 아동학대의 현장이 가감없이 실려 있다. 미국의 유명 칼럼니스트인 저자가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쓴 회고록인데, 무려 3세 때의 기억에서 시작한다. 그때도 저넷의 가족은 일반적인 집이 아니라 컨테이너에서 살고 있었는데, 엄마가 음식을 만들어주지 않으니 3세 아이가 소시지를 데쳐 핫도그를 만들어 먹는 장면이다. 그러다 치마에 불이 붙었고, 아이는 화상을 입었으며, 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를 받던 중 병원비를 내지 않고 도망치는 장면이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집 없이 떠돌아다니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그러니 학교를 정상적으로 다니기는 언감생심이며, 어쩌다 학교에 다니게 되더라도 도시락을 싸 갈 형편이 못 되어 쓰레기통을 뒤지는 신세다. 외할머니가 대저택을 물려주신 바람에 처음으로 호화롭게 살지만 결국 집을 망치고 마니, 저넷의 부모는 철저한 자유주의자, 뼛속까지 히피가 아니라 무책임한 방임주의자라고밖에 볼 수 없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더 글라스 캐슬'은 저넷의 아빠가 가진 꿈을 상징하는데, 유리로 성과 같은 집을 지어 다 같이 살자는 꿈이다. 당장 먹을 것이 없고 크리스마스에 맞춰 아이들에게 선물을 사주지 못하더라도, 하늘에서 반짝이는 별을 아이들에게 하나씩 선물하는 낭만주의자. 어려운 현실도 흥미진진한 모험으로 바꾸어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사람.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아이들을 사랑하는 아빠. 이런 모습만 계속되었다면 그야말로 경이로운 아빠가 되었겠지만, 직장을 진득하게 다니지 못하고 금세 때려치우는 아빠, 알코올 중독에 빠져 가족들을 방치하는 아빠, 생활비를 보태줘도 부족할 판에 술값으로 뜯어가는 아빠의 모습은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그에 편승해서 자신이 원하는 예술만 추구하는 무기력한 엄마도 마찬가지다. 그 와중에 로리 언니와 남동생 브라이언, 여동생 모린은 조금씩 성장한다.

출판사 서평에 이 책은 '수많은 독자들에게 양가감정을 불러일으키며 단숨에 문제작으로 등극했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미국 언론들의 추천사에는 '현대적인 동화', '매혹적이다', '경이롭다' 등의 찬사가 가득하지만, 아쉽게도 나는 양가감정 중에서 아동학대의 부정적인 면이 더 강하게 다가왔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궁금해서 계속 읽게 될 정도로 흡인력이 있었지만, 기대가 아니라 걱정 때문이었으니 말이다.

벌써 10년이 가까워지는 2008년 초봄, 경기도립 중앙박물관에서 김금화 만신을 모시고 펼쳐진 대동굿 한마당을 보았다. 신청울림, 상산맞이, 복잔내림, 칠성제석굿, 타살군웅굿, 대감놀이의 순으로 여러 분이 굿을 주관해주셨다. 마을 산신과 부군, 칠성님을 모셔서 마을의 안녕과 복을 기원한 후, 타살된 군웅을 모셔서 위로하고 대접하며 살을 막아달라고 기원한다. 마지막으로 모든 재물을 관장하는 대감신에게 풍요를 기원한다. 이처럼 무당은 하늘과 사람을 이어주어 세상의 안녕을 비는 이들이다. 조선 시대 이후로 존재를 부정당하고 있지만, 시대가 하수상할수록 이들의 자리는 커진다.

<큰비>(2017, 정미경 지음, 나무옆의자 펴냄)는 그런 만신이 주인공이다. 나이 겨우 열아홉이지만 용을 부려 비를 내릴 수 있을 정도로 능력이 대단한 무녀 원향. 한편 여환은 미륵불에게 기도하고 명상한 지 900일, 마음의 눈을 얻고 세상 이치를 꿰뚫는 눈을 얻은 후 누룩 세 덩어리를 받았다. 누룩을 가리키는 한자 '국'은 나라를 가리키기도 하니, 나라를 얻은 증표로 여기고 여환은 원향과 함께 한양을 치고 세상을 뒤집어 나라를 얻으러 떠난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큰비'는 이들이 한양 도성을 쓸어버리기 위해 사용하려는 무기였다.

이야기는 신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가 혼재되어 진행된다. 원향과 신어머니, 자매, 신딸 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신의 세계를 이야기한다. 작가가 자료 조사를 치열하게 하셨는지, 신이 내리는 과정, 신명 나는 굿판의 모습, 무녀들의 심리가 잘 묘사되어 있어서 나도 그 굿판에 함께하는 느낌이 든다. 자신을 내려놓고 신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것은 힘든 일이지만, 그 목소리를 듣는 대상이 위안을 받고 치유되는 것이 보람되기 때문에 그 어려운 일을 하는 것일 게다. 무(巫)라는 한자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사람. 종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담은 <귀향>에서도 마지막에 여주인공의 혼이 무녀에게 실려 살아남은 사람을 위로하지 않았던가.

한편으로는 인간의 세계다. 여환은 세상을 구원하러 오는 미륵의 신앙을 구현하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다. 조선은 엄격한 신분 사회였고, 서민들은 권력과 재력이 일절 없었으며, 믿음을 위해 나서기에는 하루하루 살아나가기도 힘들었으니 말이다. 큰비가 내려서 세상을 쓸어가리라 믿고서 결집하는 사람들의 절망과 희망이 선하게 보여서 나도 마음이 안타깝다.

이 이야기는 '조선후기 혁세적 민중종교운동 연구: 17세기 용녀 부인 사건에서의 미륵신앙과 무속'이라는 서울대학교 석사학위 논문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일어난 일에 기초한 것이다. 정말 큰비가 마침 내려서 한양을 휩쓸었다면 이들은 세상을 뒤집을 수 있었을까? 이들이 함께 바란 세상이 펼쳐졌을까?

시리즈의 1권 <약탈 문화재의 세계사 1: 돌아온 세계문화유산>(2017, 김경임 지음, 홍익출판사 펴냄)은 제목처럼 약탈되었다가 고국으로 돌아온 문화재들의 이력과 내용을 소개했다. 외국을 전전한 과거는 안타깝지만 여러 노력을 거쳐 고국으로 돌아간 것이 다행스러워서 기쁘게 읽었다.

그러나 <약탈 문화재의 세계사 2: 빼앗긴 세계문화유산>(2017, 김경임 지음, 홍익출판사 펴냄)은 역시 제목처럼 고국으로 돌아갈 날이 요원한 문화재들을 소개한다.

표지를 장식한 '크니도스의 비너스'는 기원전 330년대, 당대 저명한 조각가인 프락시텔레스가 제작한 비너스상의 기원전 2세기경 로마 복제품이란다. 원본은 그리스의 도시국가 크니도스에 전시되어 선풍적 인기를 얻었고, 비너스 조각의 원조로서 '조각 예술의 새로운 장을 열었고, 여성미의 표준이 되었다'(78쪽)라는 의미를 지닌다. 이 비너스는 자체로도 이런 의미가 있지만, 루브르 박물관의 대표작으로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밀로의 비너스'를 소개하는 마중물로 소개되었다. 밀로의 비너스는 1821년 그리스 밀로스 섬에서 발견되었고, 프랑스가 헐값으로 샀다. 이 정도면 그래도 괜찮을지 모른다. 그러나 무명 작가가 제작했다고 적힌 받침대의 설명문을 제거하고, 중간까지 있던 왼팔을 잘라내는 등 맥락을 고의로 삭제했다는 점이 문제다.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문화재로는 함무라비법전 비문, <가나의 혼인 잔치>(루브르 박물관 소장), 키루스 칙령, 로제타석, 파르테논 마블, 베닌 브론즈(대영 박물관 소재), 네페르티티 왕비 흉상(베를린 달렘 미술관 소장), 오벨리스크(서양 여러 나라에 소장) 등 다양하다. 한 나라의 문화재뿐 아니라 전 세계의 문화유산으로 볼 만큼 가치가 엄청난 보물들이 즐비하다. 그중에서 우리나라 학생이라면 미술 시간에 반드시 배우는 <몽유도원도>가 눈에 들어온다. 안평대군의 꿈을 바탕으로 안견이 그린 이 산수화는 임진왜란 때 일본인에게 약탈된 것으로 추정되고 지금 일본의 덴리 대학에 소장되어 있다.

이 책은 문화재 약탈의 원인으로 '제왕들의 탐욕, 제국주의, 전쟁'을 들었다. 전쟁이 보편화되어 있었던 옛날에는 제왕들의 탐욕으로 약탈이 조직적으로 자행되었고, 제국주의가 횡행하던 때 역시 '문화재 보호'라는 구실로 약탈한 채 지금까지도 반환하지 않고 있다.

주인이 너무나도 명확한데도, 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돌려주지 않는 파렴치함에 화가 난다. 돌려주지 않는다고 버티면 그뿐, 반환을 강제할 수 있는 조직이 없다는 것도 문제다. 위의 루브르 박물관, 대영 박물관 등 소장처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주요 약탈국은 서양의 강대국들이고, 피약탈국은 제국주의에 수탈당한 약소국이라는 점 때문에 반환이 더 어렵다. 국제사회는 여전히 힘의 논리가 작동하니 말이다. 그럼에도 저자가 누누이 말하는 것처럼 문화유산은 '누가 소유하는가?'가 아니라 '누구의 소유인가?'가 중요하기 때문에, 시간과 노력은 더 들겠지만 희망을 잃지 않고 열심히 요구하고 노력해야 한다. 고 박병선 박사의 노력으로 조선왕조 의궤가 프랑스에서 반환된 것처럼, 눈 크게 뜨고 우리 권리를 찾아 투쟁할 일이다. 나처럼 지식과 노력이 없는 사람에게는 이 책이 그런 노력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