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헬리베붕탄질산플네나마알규인황염아칼카.

내 기억으로는 고등학교 들어가서 외운 것 같은데, 딸아이는 중학교 3학년인 올해 이 주기율표를 외우고 있었다. 나는 맨 끝에 있는 Ca를 '카'로 외웠는데 딸아이는 '칼슘'으로 한다는 것만 다를 뿐. 머릿속에 집어넣기 위해서 주기율표 1번부터 20번까지 무작정 외우다 보니, '네온'이 몇 번째 원소인지 알려면 처음부터 손을 꼽으며 나아가야 한다. 고등학교 때 선택 과목으로 화학을 택했지만 주기율표의 매력을 알지 못하고 졸업하고 말았고, 그 이후로는 화학과 멀어져서 더더욱 기회가 없었다.

<주기율표로 세상을 읽다>(2017, 요시다 타카요시 지음, 해나무 펴냄)의 저자는 이력이 독특해서, 양자화학을 전공한 후 다시 의대에 들어가 의사가 되었단다. 양자화학을 전공하고서 의대에 들어갔을 때 이 주기율표의 매력을 깨달았다는데, 과학 기술이 뛰어나지 않았던 시기에 이론적인 추론과 직관으로 세상의 원소들을 간단한 표 하나에 정리할 수 있었다는 점에 감탄한 것이리라.

저자는 주기율표가 구성된 방법과 주기율표를 읽는 요령을 설명한다. 이를 위해서는 원자가 어떻게 구성되는지 아는 것이 우선한다. 원자는 양성자와 중성자, 전자로 구성되는데, 양성자와 중성자가 있는 원자핵보다는 바깥쪽에서 궤도를 돌고 있는 전자가 원자의 성격을 만든다. 이 가장 바깥쪽 전자가 몇 개인지에 따라 주기율표에서 차지하는 자리가 달라지며, '할로겐족', '방향족' 등으로 그룹화하는 바탕이 된다.

이런 이론적인 설명은 학문에 그칠 뿐, 별다른 재미가 없다. 그러나 이 고비를 넘기면 이런 화학적 성질이 우주에, 인체에, 생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주기 때문에 흥미롭다. 학문을 넘어 생활이 되는 것이다. 그중에서 2011년 일어난 동일본 대지진 때문에 방사성 물질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졌다. 그중 스트론튬은 칼슘과 같은 2족 알칼리 토금속에 속해 있어서 인체가 칼슘 대신 받아들이고, 그렇게 흡수되어 뼈에 자리 잡은 후 방사선을 내뿜기 때문에 위험하다고 설명한다. 원자 구조와 주기율표에 대한 지식이 없다면 스트론튬의 유해성을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는데, 이런 연관성을 이해하면 금세 이해가 된다. 여기저기서 많이 들리는 희토류, 흥미로운 독성 원소까지 다양한 지식이 실생활과 연계되어 있으므로 실제로 와닿게 읽힌다.

저자만큼 주기율표의 매력에 흠뻑 빠지지는 못했지만, 정말 오랜만에 주기율표를 떠올리면서 화학적 지식을 쌓을 수 있었다. 화학을 왜 공부하는지 모르겠다면, 화학이 실생활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궁금하다면 한번 읽어봐도 괜찮겠다.

남의 집에 허락 없이 들어간다. 집 안을 뒤져서 귀중품을 찾는다. 그대로 들고 나와서 자기 재산으로 삼는다. 

누가 봐도 용납할 수 없는 행동이고, 명백한 '도둑질'이다. 그런데도 그동안 기득권자들의 암묵적인 동의 아래 묵인되어온 분야가 있으니 바로 '약탈 문화재'다. 원래 소속되어 있던 나라에서 불법으로 약탈되어 다른 나라에 소장되어 있는 문화적 물품을 말한다.

국사 시간에 배운 대로 우리나라도 다양한 전쟁들을 겪으며 약탈된 문화재가 많고, 일제강점기라는 암흑기 동안 일본이 아예 나라 차원에서 문화재를 조직적으로 약탈했으니 할 말이 많다.

이를 정면으로 다룬 <약탈 문화재의 세계사 1: 돌아온 세계 문화유산>(2017, 김경임 지음, 홍익출판사 펴냄)은 제목 그대로 약탈된 문화재를 통해 세계사를 펼쳐 보이면서, 본국으로 반환된 사례들에 초점을 맞추어 설명한다.

저자는 미학과 법학을 공부했고 1978년 외무고시에 합격해서 2007년까지 외교관으로 세계 곳곳에서 근무했으며, 문화 전문 외교관으로서 경험하고 연구했다고 한다. 프랑스가 1866년 병인양요 때 외규장각에서 약탈해 프랑스국립도서관에 소장했던 의궤 297권을 반환하라고 협상하던 때도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고 저자 소개에 나와 있다. 의궤 297권은 발견된 지 34년, 협상한 지 20년 만에 마침내 2011년 우리나라로 돌아왔지만 소유권은 여전히 프랑스에 있고 우리나라는 5년마다 대여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약탈 문화재의 세계사 1>에서는 국제적으로 약탈 문화재를 본국에 돌려보내라는 움직임이 어떻게 만들어져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 프롤로그에서 설명한 다음, 다양한 나라들의 다양한 문화재를 대상으로 발견 경위와 협상 과정, 해당 문화재가 지닌 의의와 역사 등을 자세하게 담았다. 가깝게는 20세기에 활동했던 에곤 실레와 구스타프 클림트의 작품이 나치에게 약탈되었다가 후손에게 돌아간 경위가 소개된다. 이 경우는 작가와 국적이 명확하니 큰 어려움이 없지만, 책표지를 장식한 7세기 인도에서 만들어진 청동상이라든가, 15세기 잉카 문명의 유물, 14세기 서산 부석사 관음보살상처럼 오래전에 제작되고 오래전에 약탈된 작품들은 환수하기가 쉽지 않다. 정복과 동화 등 격동의 역사를 지닌 민족과 나라라면 원 소유국이 어디인지 밝히는 것부터 어렵다.

반환 협상이나 소송이 길게는 수십 년에 달하기 때문에 추적하기가 어려웠을 텐데, 저자는 풍부한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이 작품들에 얽힌 여러 나라들의 입장과 딜레마를 꼼꼼하게 설명한다. 그러면서 약탈 문화재로 박물관을 그득그득 채운 프랑스와 영국, 문화재 세탁을 도왔다고 표현해도 좋을 스위스를 비꼬고, 마지막 장 부석사 관음보살상 편에서는 약탈 문화재 환수에 소극적인 우리나라의 모습을 아쉬워한다. 10장에서 활약한 '이탈리아 문화재 특공대' 같은 존재가 우리나라에도 필요하다. 

문화는 경제 뒤로 빼놓아야 하는 부가물이 아니라 민족과 나라의 긍지라는 점에 동의한다. 다행히 미국을 선두로 유네스코와 세계 많은 나라가 약탈 문화재 반환에 적극 나서고 있고, 이처럼 반환된 사례들이 쌓이면 점점 더 쉬워질 것이다.

컬러풀하고 상세한 이 책으로 문화에 대한 지식을 넓힘과 동시에 정의가 실현되는 짜릿함도 맛볼 수 있어서 아주 행복했다.

미니멀리즘이 화두가 된 지 몇 년이 되었다. 그 전까지만 해도 더 많이 사서 더 많이 누리는 것이 삶의 목표라고 여겼는데, 이제는 더 비우고 더 간소하게 사는 것이 유행이 되었으니 세상은 돌고 돈다. 나는 구세대라서 더 많이 사서 더 많이 누리는 것을 좋아한다는 구실로 집 안이 너저분하게 살고 있다. 옷이나 귀중품은 전혀 없지만 이 방 저 방에 책이 산같이 쌓여 있기 때문이다. 다 읽은 책, 시간과 노력과 흥미 부족으로 두 번 다시 읽지 않을 책도 버리지 못해서 모두 끌어안고 있다. 엊그제 딸아이가 한 말처럼 '있다는 것만 알 뿐, 찾지 못하니 의미가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그렇다고 더 큰 집으로 이사할 능력이 안 되니 어떻게 할까 하다가, 근본적인 마음가짐을 바꿔보고자 선택한 것이 <우리의 미니멀 생활 일기>(2017, SE 편집부 지음, 미메시스 펴냄)다.

'최소한의 물건으로 단순하게, 무리하지 않으면서 나답게'라는 책표지의 문구가 먼저 마음에 들어온다. 표지에 실린 사진은 세숫비누들을 한 그릇에 모아놓은 것 같은데, 어떤 의미로 표지를 장식하는지는 힌트가 없어서 파악하지 못했다.

SE 편집부는 일본의 쇼에이샤 출판사에서 실용서 분야를 담당하는 부서란다. 고수들의 이야기를 모아 엮는 '모두의 일기' 시리즈를 펴내 베스트셀러로 만들었고, 내가 읽은 <우리의 미니멀 생활 일기>의 원제는 '모두의 갖지 않는 생활 일기'라고 했다. 인기 인스타그래머와 블로거 24인이 작성한 이 미니멀한 일상은 다양한 가족 구성, 다양한 포인트, 다양한 방법, 다양한 관점 등이 담겨서 흥미롭다. 그중에서 나와 가장 비슷한 사람을 찾아보려는 재미도 있다.

사실 잡지에 등장하는 것처럼 너무 깔끔하고 너무 예쁜 집을 보면 '이것이 정말 사람 사는 집이야?'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생활의 냄새가 너무 안 나서 인공적인 느낌이 들었다고 할까. 그러나 이 책은 실제로 생활하는 이들이 자신의 집과 생활을 소개하며 노하우를 밝히고 있어서 참 인간적이다. 이렇게 깨끗하게 살려면 부지런해야 하지만 사실은 귀찮아하고 미루는 성향이 있다고 솔직하게 고백하고, 마음에 드는 소품 앞에서 흔들리는 모습도 보여주며, 버리는 것에 힘들어하기도 한다. 꼭 완벽하지 않아도 미니멀하게 살 수 있으니 작은 서랍 하나부터라도 시작하라는 조언에 힘을 얻는다.

'정리 정돈은 집 안뿐 아니라 지금까지의 인생도 재고 정리하는 일이다'(258쪽)라는 말이 와 닿는 시간. 내 인생을 재고 정리하려면 큰맘을 먹고 작은 것부터 시작해야겠다. 무언가를 사들이는 것으로는 마음의 허기를 채울 수 없으니, 가지고 있는 것을 제대로 누리고 비우는 생활로 바꿔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