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목소리를 듣게 된 건 아침 라디오 프로그램에서였다. 어색한 표준말과 경제 상황을 컨설팅 하는거 같은데 나랑 무슨 상관. 하며 듣고 있었다. 그랬던 내가 어느날 TV 속 무릎팍에 출현한 사람이 라디오에서 들었던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난 무척이나 그 사람이 궁금했고, TV를 통해 알개된 그의 저서를 읽고 싶었다.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해이라.... 제목 자체도 뭔가 따스한 얘기가 뭉텅이로 쏟아져 나올 듯 싶어 얼른 책을 들었다. 헌데 책 제목과 동떨어진 일들이 페이지마다 가득하다. 의사의 이야기이니 당연히 환자들의 애환과 삶이 절절이 묻어 날 줄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가혹한 현실들이 펼쳐 질 줄이야. 읽는 동안 내내 책을 놓고 싶은 마음을 억눌러야 했다.
의사짓을 제대로 한다는 일
자신의 인턴시절 지방병원 응급실에 근무할때 폐기흉 환자가 들어왔다. 간단히 기관 삽관만 하면 되지만 자신의 능력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인데다가 아직 정확한 사인도 모르고 그런일을 저질렀다가는 환자는 물론 자신까지 위태로워 진다는 판단하에 시티 촬영실로 들어가던 중 환자는 사망하게 된다. 그 일로 인해 그는 자신 때문에 죽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참혹한, 너무나 참혹한
수 간호사의 급한 호출을 받고 응급실에 간 그는 끔찍한 광경을 목도하게 된다. 커다란 찜통에 아이 하나가 통째로 들어 있는 것이다. 사건의 발달은 이러했다. 치매에 걸린 노모를 모시고 사는 부부는 남편은 화물차 운전을 하고 며느리는 낮 동안 온전한 정신이신 어머니에게 잠시 장에 갔다 온다며 아이를 맡겼다. 집안에 들어간 며느리는 찜통 속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서 어머니에게 물었고, 곰국을 끓인다는 말에 뚜껑을 열어 본 며느리는 자신의 아이가 들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의 미니스커트
경부 고속도로에 교통사고가 났다. 운전자는 여성이었고, 중앙선을 넘어온 화물 트럭에 여성이 깔려 오른쪽 다리는 심하게 뭉개져 있었다. 원래 수술의 순서는 가슴, 머리, 배, 팔, 다리 순이지만 다리 쪽이 워낙 손실이 커서 그쪽 부터 수술을 해야했다.
문제는 다리의 출혈을 멈추게 하려면 다리를 절대해야 되기 때문에 보호자의 동의가 있어야 하지만 보호자가 올때까지 기다릴 수 없어 그는 정형외과 스태프와 모든 책임을 지기로 동의서를 작성하고 수술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녀의 아름다운 다리가 절단되고, 그는 자신이 맡은 파트의 수술을 해냈다. 그녀는 다행이 의식이 돌아왔고, 자신의 다리가 한쪽 없음을 확인했다.
처음 고통의 시간을 보내던 그녀는 약혼자의 노력과 가족의 노력으로 차츰 평상심을 되찾았다.
헌데, 몇 칠뒤 외래를 온 환자에게 약혼자가 보이지 않아 걱정했지만 차마 물어볼 수가 없었다. 그렇게 시일이 흘러 그녀에게 대해 잊혀질 때쯤 그녀는 약혼자와 함께 하얀 봉투를 가지고 그에게 찾아왔다. 그 봉투는 청첩장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그날 입은 옷은 너무나 아름다운 다리를 한껏 살려주는 미니스커트 였다.
책을 읽는 내내 의사들이 환자들에게 가지고 있는 사랑이 이렇게 큰 줄은 미쳐 몰랐다. 다 저마다의 사정이 있겠지만 밖에서 본 그들의 모습은 항상 일에 시달려 우리같은 사람들에게 온정의 시선을 두지 않는다는 차가움만 남았었는데, 알고보니 그들도 이렇게 저마다의 사정으로 힘들고 즐거워한다는 것을 그들도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런데 아직도 의심의 눈길이 남은 걸 보니 절망 속에 피어나는 희망을 본 것이 아니라 희망 속에서 희망을 봤기 때문 아닐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