켜켜이 쌓여있던 야요이의 기억을 잔잔하면서도 밀도있고 그려나갔다. 옅은 수체화 한 점을 보는 듯 하다.

 

이상했다. 떠도는 공기는 행복으로 가득 차 있는데도 가슴 한 구석 어디가 잃어버린 기억이 있다고 생각했다. 분명 어린시절이 불투명 하기 때문이다. 그런 느낌을 더욱 강하게 받았던 적이 있었다. 잠깐 이사를 간 낡은 집에서 혼자 목욕을 하고 있는데, 있지 않아야 할 물건이 눈 앞에 보이자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놀란 엄마가 쫓아 왔고, 난 내가 본 사실을 엄마에게 말했다. 언제나 진지하게 말을 들어주는 엄마는 따스한 눈길로 말해 주었다. 어릴 때 예민했던 넌 자주 그랬다고, 별 일 아니라며 다독 거리는 엄마의 말을 들으면서도 주체 할 수 없게 어린시절의 기억상실에 대해 생각하는 일이 많아졌고, 그러 때면 어김없이 집을 나섰다. 생각이 복잡해 지면 버릇처럼 그렇게 훌쩍 떠나고 만다. 처음엔 걱정도 많이 들었다. 그 횟수가 잦아 지면서 자연스럽게 받아 드리시긴 했지만, 그 걱정이 떠나지는 않았다. 그러다 문득 이모집이 떠올랐다. 왕래는 많지 않았지만, 어릴 때 부터 받았던 친밀감이 자석에 이끌리듯 나를 그곳으로 향하게 했다. 분명 이모의 생김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낡고 먼지가 가득한 집이었다. 제멋대로 어질러져 있던 방과 무심한 듯 걸친 잠옷이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그런 묘한 구석이 있는 이모였다. 고등학교 음악선생님인 이모는 평소 무채색 계열의 옷을 아무렇게나 걸치고 있었다. 참 재미없게 입는다고 생각 될 정도로 이모는 아름다웠다. 부러 그렇게 입는다는 생각을 했다. 그 옷을 벗고 잠옷을 입고 있음에도 이모는 아름다웠으니깐. 이모와 지내는 동안 따스한 집에선 느끼지 못했던 편안하고 안정된 하루하루를 보냈다. 간간히 엄마의 전화를 받으며 곧 돌아 갈 거라고 말 하면서도 어느새 이모와 지내는 그 시간들에 익숙해 져 버렸다.

 

행복이란 건 그렇게 쉽게 판단 할 수 있는게 아니다. 집안이 화목하다고 행복한 것도 돈이 많아서 행복한 것도 아니다. 자아찾기. 흔적도 없는 어린시절의 기억. 그 기억의 끝자락을 하염없이 따라가다 야요이는 알게된다. 자신이 그토록 합해 질 수 없었던 이유. 마음두지 못했던 이유. 슬프도록 처연한 자신의 가족사. 깨닫게 되었을 때 다가온 사랑. 언제나 모른척 그저 바라만 봤던, 아픔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 느껴졌던 아린한 통증은 야요이를 더 큰 사람으로 만들어준다. 한 편의 영화로 만들어도 아름다울 그런 책이다.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담담하면서도 담백한 소녀의 나레이션 속에 펼쳐질 풍광과 빛남을 재현하고 싶은 욕심이 생길 만큼 책은 갓 태어난 신생아의 피부처럼 여리하면서 생명력 강한 맥동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허망하다 싶을 만큼인 결말에도 의미를 부여 할 정도로 생명력이 있는 책이다.

국적도 삶의 방식도 다른 두 소년의 시각에서 바라본 마우마우 이야기!

 

1951년 11월

 

케냐의 농장에 사는 두 소년은 울타리가 망가진 틈사이로 농장 울타리 밖인 수풀로 나온다. 총을 가지고 있는 매슈는 당당한데 반해 그를 따르고 있는 무고는 불안하다. 언제 어떤 위험이 그들을 덮칠지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무고의 불안은 임팔라의 등장으로 점점 사라지고 오로지 사냥을 성공해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겠다는 무모한 감정이 매슈를 감쌌다. 허나, 임팔라를 잡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워낙 속도가 빠른데다 아직 수풀의 지리까지 파악하지 못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여기저기 임팔라를 찾아 헤매던 두 소년은 물을 마시고 있는 임팔라를 무고가 발견하게 되면서 절호의 찬스를 맞이하게 된다. 가늠쇠 사이로 임팔라를 보며 사냥을 하려는 순간 무고가 놀란 눈으로 매슈에게 코끼리가 온다고 말한다. 놀란 매슈는 근처에 있는 나무로 올라가려 하지만 총 때문에 손이 불편하여 올라 갈 수 없다. 그런 매슈의 모습에 무고는 자신에게 총을 맡기라고 손을 벌린다. 그러자 아버지의 말이 떠올라 잠시 망설이던 매슈는 일단 살고 봐야겠다는 생각에 총을 맡기고 나무 위로 올라간다. 제발 살려 달라며 나무위에서 기도를 올리는 매슈의 말을 신이 들었는지 다행스럽게도 무사하게 집으로 돌아온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무고에게 요시야의 불벼락이 떨어진다. 대체 저녁준비를 하지않고 어디를 갔었냐는 요시야의 다그침에도 무고는 매슈와의 비밀을 털어 놓을 수 없다. 그날 저녁시간 두 소년의 비밀은 온전히 무고의 잘 못으로 내 몰리고 만다. 울타리의 망가진 부분을 얘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억울했지만 무고는 자신을 다그치는 브와나(주인)에게 고개숙여 사과한다. 그 순간에도 무고가 걱정하는 것은 브와나의 신망을 잃었다는 것보다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바바(아빠)의 질책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일이 끝나고 집에 도착하자 어느 때 보다 엄한 모습을 하고 있는 바바가 기다리고 있었다. 바바의 모습을 보자 그 동안 억눌렀던 감정이 폭발해 눈물을 쏟아졌다. 울먹이며 사실을 말했지만 바바의 화를 풀어주기는 커녕 오히려 더 큰 화를 불러 들이게 된다. 다음 날 브와나의 집에서 일하고 있던 무고를 살짝 불러낸 매슈는 자신과의 비밀을 지켜준 무고에게 고맙다는 말을 한다. 바바에게 혼이 났지만 매슈에겐 나쁜 감정이 없던 무고는 괜찮다며 웃었다. 그랬던 그들에게 엄청난 사건이 벌어지고 만다. 모두가 쉬쉬했지만, 언제 자신들 차례가 올까 걱정했던 낯선 이들이 그 농장에 침입한 것이다.

 

누가 누구를 용서하며 누가 누를 위해 아파해야 하는 걸까? 판단 할 수 없다. 인간은 서로를 죽이고 아프게 하며 성장해 왔고, 그것은 부정 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 또한 일본인에게 피해자였으며, 베트남인에게는 가해자였다. 정의라는 이름 아래서 정당할 수 있는 인류 따윈 세상에 존재 하지 않는다. 간악하고 잔혹한 현실을 디테일하게 그려 나가거나, 누구의 입장에서 대변하는 대목은 없다. 두 소년은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의 앞 날도 모르는 체 서로를 의지하다 서로를 잃어버렸다. 누구를 탓 할 수도 누구를 원망 할 수 도 없는 역사에 소용돌이에 휘말린 것이다.

 

마치 책의 첫 장과 마지막 장이 한 문장으로 이루어 진 거 같았다.

 

팔 수 있는 모든 것을 판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 내게 한 줄기 빛과 같은 전화가 걸려온다. 평소 귀찮아 하며 귓등으로 흘렸던 엄마의 전화. 집으로 오라는 말에 군소리가 없자 오히려 엄마가 더 놀란 눈치다. 엄마가 준 닭죽을 게눈 감추듯 먹어 치우고 쇼파에 앉아 깜박 잠이 들었나 보다. 누군가 깨우기에 무거운 눈 꺼풀을 밀어보니 3년 전 먼저 엄마 집에 얹어 살고 있는 오함마였다. 그는 인간 말종으로 전과 5범에 빛(?)나는 쓰.레.기 같은 인간이다. 나는 오함마에게 맞고 자랐다. 그런 내가 이 집에 들어온다면 그는 어떤 반응을 보여줄까? 오감독 니가 여긴 웬일이냐? 여기 들어와서 살거야.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백 이십킬로가 넘는 그는 주먹을 날렸다. 허나, 옛날의 그가 아니였다. 이미 늙어 빠진 그의 주먹에 당할 내가 아니다. 나도 그에게 덤볐다. 내가 그럴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 했는지 그가 주춤한 사이 난 풍선만한 그의 배에 정권을 날렸다. 그렇게 우리가 뒤 엉켜 싸우는 동안 일을 나갔던 엄마가 돌아왔다. 집안는 난장판이 되었고, 늙다리 두 아들을 엄마는 아무 말 없이 지켜보며 제대로 치우라며 엄마의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 이게 무슨 개 망신인가? 그렇게 난 엄마의 집에 들어왔다. 내가 엄마의 집에 들어와 한 일이라고는 엄마가 차려주는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거였다. 마치 십 년치 잠을 몰아서 자는 마냥 그렇게 잠이 들어 있는데, 시끄러운 TV 소리에 잠이 깼다. 난생 처음보는 소녀 하나가 욕설을 하며 과자를 먹고 있었다. 넌 누구냐? 그러는 아저씨는 누군데요? 여기 우리 할 머니 집인데? 할머니라니? 오함마가 결혼했다는 말은 못 들었는데? 이런 의문을 품고 계속 나 성질 좀 있거든요를 얼굴에 쓰고 있는 싸가지 바가지 소녀에게 물어보니 소녀는 다름아닌 미연의 딸이었다. 이럴수가 미연이 이혼을 하고 이 집에 들어온 것이다. 오.마.이.갓!

 

가족이란 무엇인가? 한 집에서 한 솥밥을 먹어야 가족인가? 그렇다면 지금 사회에 가족이란 존재하는 것인가? 아니면 하나의 핏줄로 이어진 것 만이 가족이라는 단어를 쓸 수 있는 것인가? 핵가족이라는 단어가 무색해 지고, 단일민족이라는 말 또한 차별적 단어가 된 지 오래다. 그런 사회에 가족이란 어떠한 의미로 존재하는 걸까? 이렇게 무겁고 지루한 주제를 이 책은 명쾌하게 그려 나간다. 시쳇말로 한 번 잡으면 책을 놓는게 쉽지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