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별로 사용되지 않는 표현이지만,

'86년 복음주의'라는 말이 있다.

CCC를 위시한 대학생 선교단체의 힘이

막강한 위력을 발휘하던 시기에,

'오라! 우리가 세상을 변화시키자!'는

강렬함이 특징이었던 나 보다 10년쯤 전의 세대이다.

90년대 중반 학번인 나는 캠퍼스에서

이들의 영향력을 직접적으로 받은 마지막 세대이기도 하다.

 

 

약 10년 전 청년들을 대상으로 했던 설교집인

<김회권 목사의 청년설교 1>은

86년 복음주의적 관점에서 2천년대 초중반에

청년들을 일깨우려는 목적으로 쓰여진 책이다.

깊은 성경의 이해를 바탕으로 풍부한 지식을 가미한

김회권 목사님의 통찰력이 담긴 설교들을 비난할 의도는 추호도 없다.

다만 책을 읽어 갈수록 점점 마음이 불편해지고 집중이 잘 안되었기에,

나름대로 이유를 생각해 본 것일 뿐이다.

 

 

거대한 사명감을 고취시킴으로써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하도록 유도하는데,

책을 읽으면서 이게 과연

오늘날의 청년 세대에 통할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나름대로 청년들의 고뇌와 아픔을

담아내고자 노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사자가 아니면 이해할 수도 언급할 수도 없는 아픔들을

충분히 짚어가지 못하고

'양자역학적인 도약'(이 분이 자주 하시는 표현이다)을 하기 일수이다.

 

거창한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운다고 현실의 아픔이 사라지는가?

이 책에 대한 비판이라기 보다는,

나름 복음을 안고 고뇌하면서 20년 보내오면서

갖게 된 의구심을 써 본 것이다.

 

병 주고 약 주는 격이지만,

초반의 엘리야와 에스겔에 대한 말씀들은 참 좋았다.

그 강렬함과 충격이 너무 컸기에,

뒤 이은 설교들이 다소 지루하게 느껴진 것 같기도 하다.

 

정리하면 김회권 <청년설교 1>에 대한 나의 소회는

성경을 바탕으로 한 깊은 통찰이 돗보이는 점은 좋았으나,

그 신선한 충격과 감동이

뒤로 갈 수록 사라져 간 아쉬운 책이라는 것이다.

나는 알고 싶은 욕망이 매우 강한 사람이었다.

많이 읽고 치웠음에도 불구하고,

내 방에는 이런저런 쟝르의 책들로 가득하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책을 읽고 싶은

욕구 자체가 사라지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어떠한 신간에 대한 소식도

좀처럼 구매 욕구로까지 이어지지 않는다.

 

 

일차적으로는 책 읽을 시간이 별로 없어서겠지만,

단지 그 때문만은 아닐 듯 하다.

내 인생에 고난과 고독이 깊어갈수록,

책이라는 매체가 가진 효용의 한계를 분명히 체감했기 때문이다.

 

 

지난 달 매일성경을 통해 욥기 묵상을 시작하면서,

본문 설명을 위해 약간 수록된 글을 읽으면서 흥분이 되었다.

"'욥기는 그저 머리로 읽고 이해할 책이 아니구나.

고난이 뭔지 아는 사람들에 관한 책이며,

그 사람들을 위한 책이구나!'"

"욥기는 불덩이 같은 책이다.

믿기 어려울 만큼 정직한 책이다. 

 

욥기는 사람들이 그저 교회에서 공적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그들이 실제로 무엇을 말하고 생각하는지 안다."

 

 

상처를 입어 보지 않은 사람은 흉터를 놀린다는 셰익스피어의 말처럼,

누구도 알고 싶어하지 않는 비참하고 한심한 루져의 인생에도 할 말은 있다.

현실의 삶이 과거의 죄값이 아님을 확신하기는 참 어렵다.

욥의 세 친구들이 거듭 주장하는 논리가 바로 이것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의 삶에 대해 쉽사리 내리는 결론이다.

 

 

하지만 욥기는 그게 아님을 분명히 말해주는 책이다.

"욥기는 번영을 좇는 사이비 복음과 좋은 느낌을 좇는 사이비 복음을

깊이, 거북한 방식으로 파헤친다." (21쪽)

저자의 서론에 이런 말이 있다.

"단지 욥기를 연구하는 게 아니라 욥기를 살아야 한다." (24쪽)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기 위해 읽을 책이 욥기이고,

이 욥기에 대한 뛰어난 해설서인 크리스토퍼 애쉬의 이 책이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젊은 현자 엘리후에 대해서였다.

흔히 이 사람에 대해서는 별로 비중있게 생각하지 않기 마련인데,

저자는 엘리후라는 인물을 매우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비록 욥이 과거의 죄로 인해 지금 고난을 받는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자신에 대해 변호하는 과정 속에서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죄'를 지은 것은 분명하다.

엘리후의 연설들은 바로 이 점을 분명하게 지적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궁극적으로 욥기는 욥이 당하는 고난을 시작으로 하여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책이다.

그 분은 우리의 생각이나 지식으로 완전히 알 수 있는 분이 아니다.

때로는 우리의 삶에 베헤못과 리워야단 같이

너무나 두렵고 절망스러운 고난을 당하더라도,

이 모든 고난이 바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섭리 안에 있음을 기억하고

엎드려 경배해야만 한다.

성도는 보이는 것을 따라 살지 않고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다.

끝까지 인내했던 욥이 마지막에 복을 받듯이,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이 닥쳐왔을 때

오직 하나님만을 신뢰하고 경배하는 성도는 복을 받는다.

 

 

크리스토퍼 애쉬의 <욥기 : 십자가의 지혜>...

만약에 올 해가 다 가기 전에 한 권의 책을 읽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꼭 읽어 보시라고 주저하지 않고 추천할 책이다.

어느덧 제자들교회에 온지 1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 동안 만나온 수 많은 보석같은 성도님들은,

주님께서 내 인생에 주신 참으로 복된 선물이다.

그 중에서도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신 두 분이 있는데,

한 분은 타협없는 선명한 하나님의 기준을

제시하는 설교를 들려주셨던 화종부 목사님이다.

그리고 다른 한 분은...

나 보다 두 살 많은 누나다.

나이는 겨우 두 살 차이이지만,

신앙이라든지 인격이라든지 나랑은 비교가 안 되는 분이다.

 

 

벌써 오래전 얘긴데,

이 누나가 잘 다니던 직장을 정리하고 나와서

스위스 로쟌이라는 곳으로 훈련받으러 갔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할 일이었다.

도대체 신앙적으로나 인격적으로나

이 사람이 뭐가 부족해서 모든 걸 정리하고 외국으로 나가는 걸까?

 

 

그런데 본인도 자신이 왜 그랬는지 몰랐단다.

그런 답답함으로 꾸준히 기도하던 중,

불현듯 한 단어가 떠올랐다고...

"Manipulation"

자신의 머리로 이해할 수 있을 만큼만,

그리고 자신의 능력으로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살았었는데,

지금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자신이 설정한 바운더리 안에서

하나님을 '조작'해 왔었음을 지적하신 것이다.

 

 

유진 피터슨의 초기작인 <주와 함께 달려가리이다>는

남유다가 멸망하는 격동의 시대를 살았던 선지자인 예레미야에 대한 책이다.

유진 피터슨의 책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실제성' 이다.

일상적인 용어를 사용하여 맛깔나는 이야기체로 쓰고 있지만,

그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고 독자 자신의 인생과 존재 전체에 충격을 주는 글을 쓴다.

 

 

30여 년 전에 쓰여진 이 책의 원 제목은 <Run With the Horses>이다.

직역하면 "말들과 함께 달리기" 정도인데,

왠지 거룩하게 들리는 우리말 제목과는 사뭇 느낌이 다르다.

도대체 저자가 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이 책은 굳이 처음부터 성경의 내용에 맞춰서

차근차근 설명하는 형식을 취하지 않는다.

굳이 순서가 있다면 하나님께서

선지자 예레미야를 준비시키셔서 사용하신 차례 정도이다.

너무 어려서 선지자 노릇하기를 두려워하는 소심쟁이는,

불길 같은 하나님의 손길에 이끌려서

아무도 진실을 이야기하지 않는 거짓의 시대에 끝까지 하나님의 뜻을 전한다.

 

 

이 책의 주제가 되는 구절은 이것이다.

"만일 네가 보행자와 함께 달려도 피곤하면

어찌 능히 말과 경주하겠느냐

네가 평안한 땅에서는 무사하려니와

요단 강 물이 넘칠 때에는 어찌하겠느냐" (렘 12:5)

 

 

예레미야가 살아왔던 시절은

자신들을 하나님께서 택하신 선민이라 자부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의해 철저하게 짓밟혀 무너진 때였다.

세월호 참사에 대해 먹고 살기 힘든 노인들이

일당을 받고 인간으로써 차마 해서는 안 될 언행을 하듯이,

각박한 현실에 잡아먹힌 인간은

평소 같으면 상상도 못할 극단적인 삶을 산다.

이러한 현실 가운데 자기 한 사람

믿음 지키면서 사는 것도 결코 만만찮은 일인데,

하물며 하나님 말씀을 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선지자로 사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예레미야는 때로는 힘겨워하기도 하고 불평도 하지만,

자신의 사명을 끝까지 수행했다.

 

오늘을 살아가는 성도라는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현실과 신앙의 괴리를 직면하면서도

낭만적인 자기만의 신앙을 놓기를 거부한다.

자신이 생각하는 최선의 세상 속에

하나님을 끌어오는 것을 신앙이라 생각하기에,

마치 옛 어머니들이 정안수 떠 놓고 빌듯이

하나님께 치성을 들여 자신의 소원을 들어주시길 바란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은 전혀 그렇지 않다!

내 생각보다 높으신 하나님의 뜻은

도무지 이해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혼돈의 이 세상을 살기 위해서는

말과 함께 뛸 수 있어야만 한다.

이게 사람 사는 것인가 하는 자기연민에서 벗어나,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 들고

주님께서 가게 하시는 길을 가야만 한다.

"온전한 우리의 모습은

하나님이 하고 계시는 일에 참여하는 데서 오는 것이지,

우리의 수중에 있는 것을 조작하는 데서 오지 않는다." (216쪽)

 

이 세상에 희망이 있을까?

생때같은 자식이 영문도 모른 채

바닷속에 빠져 죽은 이유를 알고 싶어하는 부모에게

차마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욕설을 퍼붓는 사람들이

절반의 국민들에게는 영웅시되고 있다.

고등학생의 7.7% 만이

자신이 위급할 때 나라가 자신을 구해줄 꺼라고 믿는단다.

 

미쳐가는 이 세상에서 우리는 성도로 살아야만 하고,

자녀들을 이보다 더한 혼돈에서도

굳건히 이겨내는 신앙의 사람으로 길러야만 한다.

그것이 내가 예레미야에 주목하게 된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