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는 나라 전체가 박물관이다'

 

이러한 주장을 담은 한 권의 책이

20년 전 이 나라 전체에 답사 열품을 불어 넣는 일이 있었다.

 

반 만년의 문화 민족이라고 하면서도

정작 현실에서의 삶은 전통 문화와 별로 상관 없었던 한국인들에게

엄청난 자긍심을 고취시켰던 그 책이 바로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였다.

 

 

 

한 동안 그 이름을 잊고 지냈었다가,

3년 전에 여섯 번째 책으로 다시 돌아왔다.

 

명불허전이랄까,

책을 읽으면서 과연 유홍준 교수구나 싶었다.

 

 

 

하지만, 이러한 기대감은 왠지 시간에 쫓겨 나온 듯한

7권 제주도편을 읽으면서 많이 희석되었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제주도의 문화유산과 사람들에 대해 쓰기에는

'육지 것'인 유 교수의 지식과 견문은 너무나 일천했다.

 

 

 

그리고 작년에  일본편 답사기 두 권이 나왔다.

 

표지 디자인 만으로도 읽고 싶어지게 만드는 책이었으나,

솔직히 왠 오지랍인가 싶기도 했다.

 

'과연 그에게 일본에 대해 쓸 지식이 있을까?'

 

 

 

일본이라는 나라 속에서 옛 선조들의 문화유산을 찾아낸다는 것이

쫌 궁상맞고 억지스럽다는 생각 또한 들었다.

 

이천 년 전에 전파되기 시작한 흔적이 얼마나 남아 있으려고? 

 

그리고 임진왜란과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흘러들어간 문화재들을 보는 심정 또한 썩 달갑지 않을 꺼 같았다.

 

 

 

그러다 보니까 3권까지 나와 버렸고,

더는 미룰 수 없어 세 권을 모두 읽었다.

 

 

 

책을 읽으면서 기존에 가지고 있던 것은

그야말로 어리석은 편견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물론 일본 문화와 역사에 대한 저자의 지식이

한국이 그것에 비할 바는 못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 교수는 중간중간에

부족한 자신의 전문성을 보충해 줄 지식을 갖춘

전문가들의 탁견을 맛깔나게 적어내고 있다.

 

 

 

3편을 읽다가 답사기를 쓰게 된 이유를 묻는

일본인 에스코트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 무척 가슴에 와 닿았다.

 

최치원의 문경 봉암사 지증대사 탑비 비분에 쓰여진

글에서 깨우친 바가 컸기 때문이라고 한다.

 

"스님은 홀로 깨치기를 좋아하고

남을 가르치기엔 마음 쓰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날 산길을 가는데 한 나무꾼이 나타나

 

'먼저 깨우친 자가 나중 깨우칠 사람을 위하여

가르치는 데 소홀히 하면 안 된다'

 

라고 꾸짖고는 홀연히 사라졌다." (383쪽)

 

이 글에서 지식인의 사회적 책무에 대해 자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단지 일본 문화 속에 있는

우리 문화의 흔적을 찾아내는 정도에서 그치지 않고,

일본의 문화 속에서 일본의 역사와 사람들을 읽어낼 수 있도록

흥미진진하게 답사의 기록을 적어냈다.

 

새로운 생명력으로 명품 답사기의 명맥이 이어져 내려감에

흐뭇한 마음으로 읽은 책들이다. 

 

프랑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의 시작을 알리는 노래는

떠돌이 시인 그랭그와르가 부르는 "대성당의 시대" 라는 곡이다.

빅토르 위고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뮤지컬은

단지 스토리만을 담아내는 데 그치지 않고,

작가가 소설 곳곳에서 쓰고 있는 메시지까지 나타내고 있다.

'대성당의 시대'란 작품의 배경이 되는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을 통해

그 시대를 살아갔던 사람들의 삶을 되짚어 본다는 내용이다.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 3>을

읽으면서 계속 들었던 생각이,

만약에 역사를 민중들과 별 상관없는 정치 중심이 아니라

지금까지도 전래되는 문화를 중심으로 배운다면 어떨까 하는 것이었다.

지금과 같이 임진왜란과 한일합방의 관점으로 일본을 바라본다면,

저들은 결코 용서할 수 없는 불구대천의 원수일 뿐이다.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일본과의 싸움에서는 져서는 안 된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그들의 문화와 역사에 대해 새로운 관점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책장을 넘기다가 약 1천 년 전에 제작되었다는

조각의 사진을 보고 경이로움을 느끼게 된 것이다.

바로 '공야스님 입상'이라는 조각인데,

우리나라의 원효대사처럼 민중 속에 거하면서

불교의 대중화를 이룬 분이라고 한다.

극적인 사실감은 단지 정교함 때문만은 아닌

시공을 뛰어넘는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이 전해졌다.

 

 

일본 역사의 1천년 수도였던 교토는

단 한 권의 책으로 담아낼 수 없을 만큼의

엄청난 문화유산을 자랑하는 곳이다.

이 책은 그 중에서 헤이안 이전과 헤이안 시대,

그리고 가마쿠라 시대 초기의 문화유산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앞에 언급한 조각 뿐만 아니라 사진과 이야기 만으로도 여러 차례 탄복을 했다.

 

 

문화를 통해 일본과 일본인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는 점이,

수험 공부로 분주한 가운데 틈틈이 읽었던

세 권의 일본편 답사기 독서의 큰 수확이다.

독서란 결국 나와 다른 생각을 알고 수용함으로써

내 인식의 지평을 넓혀가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