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의 음식들이 그 지방 고유의 맛을 잃고 '표준화' 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사람이 가장 많이 모여 사는 서울과 수도권 사람들의 입맛에 맞춰야만

손님이 몰리기 때문이다.

자기 입맛에 맞아야만 맛있다고 느껴지는 것을 교만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날이 갈수록 향토의 맛이 사라져 간다는 건 아쉬운 일이다.

허영만 화백의 <식객> 열일곱 번째 책에서는

그런 음식의 하나로 '마산 아귀찜'을 들고 있다.

원조 마산 아귀찜과 수도권의 아귀찜은 맛이 전혀 다르다.

원조의 경우 건조된 아귀를 콩나물, 미더덕, 미나리, 고춧가루와 함께 끓이지만,

생아귀와 녹말을 넣어 맛을 부드럽게 만든 서울, 인천식에 밀려

그 지방 사람들만 찾는 토속 음식으로 전락해 버렸다고 한다.

원조의 맛을 유지해 오던 마산의 아귀찜 식당들조차,

이제는 수도권식으로 빠르게 바뀌고 있단다.

전통도 사람들이 찾아야만 유지될 수 있는 것이구나.

마산 아귀찜 이야기 외에도, 이 책은 음식 자체보다

음식에 얽힌 사람들의 이야기가 무척 감동스럽다.

그 중에서도 어머니 살아생전 어릴 때 머리 다친 작은아들 위해

허리 한 번 제대로 못 피고 굴 따시다가

돌아가신 후 동생을 보호하는 형의 이야기가 담긴

'어리굴젓' 이야기가 특히 감동적이었다.

작가 자신의 고백이 담긴 '대장간의 하루' 또한

점차 사라져 가는 것 속에 담겨 있는 소중함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해 줘서 좋다.

가는 세월 그 누가 막을 수 있겠냐마는,

지금 내 삶을 이루는 것들을 잔잔하게 돌아볼 줄 아는

세심함과 여유로움이 인생을 훨씬 풍요롭게 한다.

작가의 고뇌가 작품을 통해 나누어져서,

내 삶을 지나쳐 간 수 많은 기억들을 되살려 놓아서 참 좋다.

그 덕분에 오랫동안 접하지 않았던 우리 현대문학을 접하게 되었는데,

시험에 빈출되는 시는 아니지만

유난히 따뜻하고 마음에 스며든 시가 있었다.

"긍정적인 밥" (함민복)

시(詩)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덥혀 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 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허영만 화백의 <식객> 열여섯 번째 책에

놀랍게도 함민복 시인의 이야기가 있었다.

강화도에서 이웃들과 함께 어울려서,

가난하지만 마음은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함 시인의 이야기 뿐만 아니라

이번 편에는 유난히 '자유'에 대한 에피소드들이 많았다.

10년 동안 아이 못 낳는다고 구박 받으면서 살다가

꽃동네에서 자원봉사하는 새 삶을 찾은 부인 이야기,

빌딩에서 외줄타고 일하는 위태로운 삶을 벗어나

암벽 등반을 통해 인연을 만난 남자 이야기,

그리고 노년의 단순 무료한 삶에서 벗어나

캐나다 로키로 '집단 가출'을 한 네 명의 50년지기 이야기까지.

마지막에 한 방송 프로에서 두부 제조 경쟁을 펼치는

운암정 오봉주와 차장수 성찬의 대결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만만찮은 분량에 빠져들게 했다.

너무나 현실이 갑갑하지만

대부분은 일탈이 두려워 주저앉은 채

서서히 절망하면서 죽어간다.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그러한 현실에 굴복하지 않고

각각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유를 찾아간다.

자유를 찾아 떠나는 여행은

바로 '할 수 없다'는 체념을 벗어 던지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전 국민의 거의 절반이 서울과 이른바 '수도권' 에 모여 산다.

전국 각처의 사람들이 모이니,

자연스럽게 서울에서는 전국 각처의 음식을 먹을 수 있다.

나 또한 태어나서 자란 대구와 군생활을 했던 진주에서는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타지방 음식들을

이 곳 서울에서 많이 먹아 봤다.

그러나, 모양은 비슷하게 따라할 수 있지만

그 지방에서만 낼 수 있는 맛이 있다.

음식 재료가 다르고 물이 다르다.

무엇보다도 음식을 향한 사람의 마음이 다르다.

허영만 화백의 <식객> 열다섯 번째 책은

돼지고기에 대한 다섯 편의 에피소드 모음집이다.

돼지를 고기로 가공하는 과정에서부터

족발, 순대, 돼지머리 등에 대한 이야기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 중에서도 부산을 배경으로 한 돼지국밥 편이 마음을 울렸다.

"소사골로 끓인 설렁탕이 잘 닦여진 길을 가는 모범생 같다면,

돼지국밥은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반항아 같은 맛이야."

나 또한 부산 사람이 아니기에 이 말의 정확성은 잘 모르겠다.

다만 무엇이든지 머릿 속으로 계산하여 이익이 남아야만 움직이는

서울 깍쟁이의 마음가짐으로는 만들 수 없는,

이런저런 계산 같은 거 '치아 뿌야만' 낼 수 있는

지방의 맛이 분명히 있다.

굉장히 서로에게 깍듯하면서도 좀처럼 곁을 주지 않는 서울 사람들 사이에서,

다가오는 겨울이 더욱 춥게 느껴진다.

전국 각처의 사람들이 몰려드는 서울은 좋은 곳이다.

하지만 각 지방의 다양성이 없어진다면,

이 곳 서울은 그저 커피프림 넣어 시늉이나 낸 가짜 돼지국물일 뿐이다.

깍쟁이 같은 놈들이 이 말의 진정한 의미를 과연 알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