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도는 아니지만 화폐를 봐도 참 답답하다.

백 원 권의 이순신 장군과 만 원 권의 세종대왕은

분명히 내세울 만한 역사적 위인이다.

하지만 나머지 인물들에 대해서는 재론의 여지가 있다.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 그리고 그의 모친 사임당 신씨...

그들이 누구이며 왜 지폐에까지 나오는가를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막연하게 반 만년 역사와 전통을 내세우면서도,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진지한 규명과 반성이 없다.

나에게 있어 응당 지폐에 새겨질 만한 위인을 꼽으라면

떠 올리게 되는 이름들이 있다.

암울했던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에

구국의 기치를 올렸던 안중근, 도산 안창호, 백범 김구.

20년 가까운 세월동안 억울한 귀양살이에 낙망하지 않고

연구와 저술을 했던 다산 정약용.

그리고 고려 말의 암울했던 현실에 낙망하지 않고

백성을 위한 나라라는 청사진을 구현해 낸 삼봉 정도전이다.

드라마 <정도전>은 오랫 동안 잊혀져 있던

그 이름을 찾아내어 국민들에게 다시 안겨 주었다.

그리고 이 즈음하여 삼봉 정도전에 대한 연구서와 소설들이 다수 출간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대하소설 <불멸의 이순신>을 통해

충무공 이순신을 너무나 생생하게 되살려 낸

소설가 김탁환의 2부작 소설 <혁명>은

참으로 반가운 마음으로 읽게 된 책이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적지 않게 당혹스러웠다.

첫째는 구성의 엉성함.

이성계의 낙마로부터 정몽주의 척살로 이어지는

가장 긴박했던 14일을 중심으로 썼다는데,

나에게는 도무지 그 긴박감이 전해지지 않았다.

중간중간에 편지라든지 회상이라든지 하면서

뜬금없이 중구난방으로 과거의 일들이 서술되고는 하는데,

이럴 꺼면 차라리 시간 순으로 쓰는 편이 낫지 않을까 싶었다.

둘째는 기법의 엉성함.

작가는 곳곳에서 그 당시의 시대상을 나타내기 위해 노력한다.

가전체 문학, 시조, 고려가요 그리고 경기체가...

노력의 흔적은 역력하지만

왠지 제대로 녹아들지 못한 양념 덩어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끝으로 인물의 비현실감.

이 점에 대해서는 2편의 서평에서 상술하였으므로 생략하기러 한다.

정리하면 김탁환의 <혁명>은 그리 잘 쓰여진 소설은 아니다.

다만 우리 역사에서 오랫동안 잊혀졌던

삼봉 정도전이라는 인물을 되살리는 데 한 몫을 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