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대표적인 나라가 일본이다.

<일본은 없다>는 상대를 부정하는

자극적인 제목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어디까지나 친선을 도모하기 위한 국가대표 축구경기장에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는 플래카드가 내걸리기도 한다.

임진왜란, 국권침탈, 징병과 징용, 종군위안부, 독도 망언 등

늘 당하기만 한다는 감정이 깔려 있기에,

이른바 혐일(嫌日)은 단지 소수의 생각이 아니라

일종의 '국민감정'이라 하겠다.

20년 전 처음 나와서 전국적으로 답사 열풍을 일으켰던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방향은

이제 현해탄을 넘어 일본에까지 이르렀다.

사실 읽기가 썩 마뜩찮았다.

나 또한 일본이 싫기 때문이다.

그것도 처음으로 다루는 규슈 지방은

한민족의 도래로 문화가 들어온 '은혜의 땅'이면서도,

도리어 임진왜란을 도모하기 위한 전진기지 구실을 하였고

전쟁시 수 많은 조선의 도공들을 납치해 옴으로써

오늘날까지의 명성을 이룬 '배은망덕의 땅'이다.

머릿말에서 저자는 명저 <총, 균, 쇠>에서

제레미 다이아몬드가 쓴 글을 인용하고 있다.

"아랍인과 유대인의 경우처럼 한국인과 일본인은 같은 피를 나누었으면서도

오랜 시간 서로에 대한 적의를 키워왔다.

(...) 한국인과 일본인은 수긍하기 힘들겠지만,

그들은 성장기를 함께 보낸 쌍둥이 형제와도 같다.

동아시아의 정치적 미래는 양국이 고대에 쌓았던 유대를

성공적으로 재발견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 제 2위와 제 3위의 경제 강국들 사이에 끼여 있는 우리 입장에서는

미래를 향해 거시적인 안목과 넓은 마음을 가져야만 할 당위는 명백하다.

 

 

유홍준 교수가 일본편의 첫번째로 다룬 지역은

한반도의 문화가 흘러들어간 땅 규슈이다.

초기국가 때 경쟁에서 밀려난 군장 세력들은

바다 건너의 땅에서 새로운 영역을 이루었고,

그들 도래인(渡來人)에 의해 대륙의 문화가 섬에 전래되었다.

또한 규슈는 임진왜란의 전진기지 구실을 하고,

전란 때 수 많은 도공들을 납치해 와서

오늘날까지 이르는 국제적인 명성을 이룬다.

도조(陶祖) 이삼평, 문근영 주연 드라마의 실제인물인 여자도공 백파선,

오늘날까지도 일본 도자기의 자존심으로 일컬어지는

심수관 가문의 조상 심당길 등이 바로 그러한 인물들이다.

 

 

어렵사리 책을 읽어 나가면서 일본에 대한 혐오의 감정은 차츰차츰 줄어들고,

도리어 우리는 무엇인가 싶은 부끄러움이 들었다.

일본이 자랑하는 최고의 도자 기술의 밑바탕에는

전국민적인 자국 문화에 대한 사랑과 긍지가 깔려 있다.

반면에 최고의 자기 기술을 갖췄다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과연 그런 마음이 있는가?

일본에 의해 잡혀갔던 이들이 주로 하삼도 출신의

비교적 낮은 기술 수준의 도공들이었고,

경기도 광주와 여주 등지에 있던 최고급 도공들의

기술의 명맥은 끊어진지 오래다.

 

 

끝으로 이 책에 대한 인상을 대략 몇 줄 적어본다.

유홍준 교수는 한국미술 전문가일 뿐

일본 문화와 역사에 대한 지식은 아무래도 한계가 분명하다.

이러한 부족분을 재치있게 동행했던 다른 전문가라든지

현지의 가이드의 말을 통해 채워나간다.

전문가로서의 자리에서 살짝 내려와서

양국 문화의 가교 역할을 자임하고자 하는 정신이 귀하다 생각된다.

 

 

2편과 3편 또한 기대하는 마음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