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가 그리울때 찾는 작가 중의 한명이 기욤 뮈소이다. 머리아프지 않고 문자가 주는 의미를 곱씹으면서 읽어야하는게 아니라 이야기 흐름에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잘 짜여진 구성에 감탄하게 되는 책을 쓰는 작가가 아닌가 싶다. 소재면에서 이 작가만의 특징이 있긴 하지만 어느 작품하나 재미있지 않은 것이 없었다.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면서 잘만들어진 영화의 엔딩 자막을 보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한다. 
종이여자라는 제목 자체가 가지고 있는 뉘앙스가 왠지 가벼운 생각을 가지게 하는데 막상 책장을 넘기다 보면 결코 가볍지 않은 무게감을 감지할 수 있다.
인생을 살다보면 탄탄대로를 속도제한 없이 마음껏 달리는 듯 하다가도 끝도 없는 어두운 터널 속으로 곤두박질 치는 듯 할때가 있다. 내 능력대로만 평가 받고 그에 상응하는 대접을 받기만 해도 좋을텐데 삶은 내 의지와는 거리가 멀때가 더 많다.
왜 이렇게 일이 풀리지 않느냐고 누군가를  향해 외치고 싶지만 들어줄 상대가 있을리 없고 그냥 체념하고 마는게 다반사인데 말이다. 빌리는 이런 나에게 짠하고 마술처럼 나타났다. 난 빌리의 도움으로 자의반 타의반 다시 글을 써야 겠다는 의지를 불태운다. 
내가 쓴 글에서 튀어나온 여자라고 우기는 이 제정신이 아닌 여자로 인해 난 제자리로 돌아오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정말 빌리는 책속에서 튀어나온 내가 만들어낸 그 주인공이 맞을까?

집으로 오는 KTX 열차 안에서 책을 편것이 잘못이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집어들고 나왔던 것이 잘못이었는지도 모른다. 
죽음과 삶의 기로에 선 소녀의 선택을 기다리는 주변 사람들의 모습이 몇 해전 내 생에 가장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내는 내 모습과 많이 닮아있어서 흔들리는 책장에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지는게 창피하면서도 어찌할 수 없었다. 불 다꺼진 영화관에서 아주아주 슬픈영화를 보고 나올때 퉁퉁부어버린 눈두덩이가 너무나 창피하여 슬픈영화는 두 번 다시 영화관에서 보지 않겠다고 다짐한적도 있는데, 긴 여행에 적적하지 말자고 들고온 책하나가 사람을 이리 민망하게 할 줄이야. 고개를 애써 뒤로 젖혀도 한 번 터져버린 눈물샘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나보다. 
그래도 이책을 읽고 또 읽을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분명하다.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간에 사람은 언젠가 다시 만날 기약없는 이별을 경험할 수 밖에 없기때분이다. 
인간의 죽음처럼 허망하고 슬픈일은 살면서 겪고싶지 않은 일중에 가장 첫번째 일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운명을 안고 태어난다. 한 세대를 겪고 또 다른 세대를 맞이하는 것도 우리의 일이요 우리가 가야할 날이 부끄럽지 않게 하루 하루 성실하게 사는 것도 우리의 몫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미아의 할아버지가 의식을 찾지 못하는 미아에게 한 말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죽음과 삶의 기로에 선 작은 손녀에게 산 사람으로서 애써 자신의 욕심을 자제한 체로 편안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따뜻한 말 한마디가 가슴에 깊이 남은 책이었다.

용의자 X의 헌신을 기억하며 책을 골랐다면 조금은 난감한 기분이 들거같다. 용의자와 탐정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을 기대하며 책장을 넘기길 원하다면 이책을 권하고 싶지 않다. 가벼운듯 하면서도 그 안에 지금까지의 흔하디 흔한 추리 이야기들에 대한 실소를 터뜨리게 하는 유머가 있다. 난감하긴 하지만 실망스럽지는 않은 책이기에 끝까지 책장을 넘기면서 후회스럽지는 않았다. 
예를 들면 추리소설에 기본적인 등장인물들, 항상 헛다리 짚어서 엉뚱하게 수사를 이끌어가는 형사, 그리고 그런 형사가 나타나는 곳에 그림자처럼 등장하는 영민한 무명 탐정,이 화자로 등장하여 주인공인듯 이야기를 이끌어나간다. 하지만 그들의 추리는 논리적이고 복잡하게 전개되는 것이 아니다. 어찌보면 조금은 허무한 듯하게 사건의 전말을 밝혀낸다. 그 과정도 엉뚱하고 조금은 어설프다. 독자들에게 딱 이런 감성을 불러일으키도록 철저하게 계산된 작가의 시나리오대로 나 또한 반응하고 있는 사실에 흠칫 놀라기도 하면서 스토리를 따라간다. 
작가의 의도가 참 귀엽다는 생각도 해본다. 글을 전개하면서 무조건 논리적이고 절대 허물어지면 안되는 빽빽한 설계도면 그대로의 건축물이 아닌 정겨운 고향집을 보는 그런 느낌을 가지게 하는 책인거 같다. 바쁜 와중에 쉬는 시간 틈틈이 읽어도 스토리 전개를 미친듯이 궁금해하지 않으면서 단편 그 자체의 간결함과 엉뚱함을 동시에 맛볼 수 있는 히가시노 게이고다운 유머 선물꾸러미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