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다 읽은 후에도, 잠 자리에 누워서도 누가 범인인지 도대체 헛갈려서 나 원참 추리소설 처음 읽어보는 것도 아니고 친절하게 해설서까지 붙어 있더만 그거 두 번, 세 번 읽고도 그것 참 모르겠다. 그래서 여기저기 리뷰 글들을 보고 오늘에서야 알았다. 진짜 범인을...

책장 마지막 페이지까지도 요렇게 저렇게 꼬이고 꼬여있어서 처음에 단 두명의 용의자 중에 아무나 한 명이면 나도 추리를 한 번 해볼만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는게 부끄러웠다. 책을 덮고 한참을 생각해도 여전히 답답하고,

하나씩 단서들을 던져주는 친절한 배려에도 마지막 부분이 너무나 궁금한 마음에 성급하게 책장을 넘겨버린 나의 치명적인 실수가 책을 다 읽고나서도 도대체 범인을 모르겠는 지경에까지 이르른게 아닌가 싶었다.

어찌어찌 하여 결국 범인의 정체를 알게되는 그 순간의 짜릿함을 놓쳐버린채 뒤늦게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는 내가 어찌나 한심하던지.

급히 먹는 밥이 체한다는 말을 추리소설을 읽으면서 이렇게 깨닫게 될줄이야. 아무래도 추리소설 읽는 방법을 다시 배워야 할라나 부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약간은 신선함과 충격이 덜하기는 하지만 읽는 동안에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으니 재미는 있었던거 같다. 내가 조금만 주의깊게 읽었더라면 마지막 순간 그 짜릿함을 놓치지 않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아직은 아니야 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래도 무작정 뒤로 밀어 놓기엔 나도모르게 성큼성큼 다가오는 퇴직의 시기.....

더군다나 우리네 부모님이 겪고 있는 고충을 백분 이해하기에 실질적 조언은 못해드릴 망정 간접적으로나마 이해하고 다가가고 싶어 읽어보게 된 책이었다. 개인적으로 수기 형식으로 엮은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에 처음엔 얼마나 도움이 되겠나 싶어 별 기대 없이 보았기에 생각치 못한 깨달음과 수확이 너무 많아 벅차오르는 기분을 주체할 수 없어 부모님께도 권해드린 책이었다.

최근 베이비 붐 세대의 은퇴 소식들과 함께 그들이 겪고 있는 정신적 육체적 어려움을 이 사회가 보듬어 줄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에 대해 여기저기서 이슈화 되고 있다. 국가적 차원의 대책이 전무한 상태에서 그 어려웠던 보릿고개를 넘기고, 개발 도상국 리스트에 명함을 내밀지도 못했던 우리 한국을 세계 경제 대국으로 이끌었던 주인공들의 퇴역을 손놓고 보고만 있을 수 밖에 없는 현실이 갑갑하다. 힘든 경제 상황을 맨손으로 개척했던 그들에게 이제는 또 다른 숙제를 내밀고 있는 꼴이 되었다. 그들 스스로 그들의 노후 대책을 마련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 아닌가? 젊을 때 그만큼 국가에 애국했으면 이제는 국가에서 그들의 노고를 치하해 주고 조금은 편안한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배려 하는게 인지상정 아닌가?

그도 아니면 많은 임금은 아니어도 국민연금을 받을 수 있는 나이가 될때까지 만이라도 연금을 부을 수 있는 국가적 차원의 일자리를 마련하여 주었어야 하는거 아닌가?

하지만 다른 누군가를 탓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 시간의 흐름을 되돌릴 수 없기에 흘러가는 시간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만 보고 있어서는 안된다.

앙코르 내인생을 외치는 이책의 주인공들은 하나 같이 한가닥 한자리 하던 인물들이다. 그런 그들이 무언가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는 것은 그리 쉽지 않았을 것이다. 사회적인 지위와 체면을 생각했더라면 시작도 못해보았을 일들을 그들은 꿈을 가지고 도전하는 청년의 마음으로 일구어 내고 있었다. 새로이 꿈을 꾸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으리라.

하지만 그들은 당당하게 인생 이모작에 성공했고 우리들에게 손을 내민다. 또 다시 꿈 꿀 수 있는 것은 젊은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자유가 아니라고 외치면서 말이다.

요 작품과 비슷한 시기에 출판되었던 김언수의 설계자들이 떠 올랐다. 책을 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게 떠오른 생각은 그것이었다.

이것과 비슷한 느낌을 언젠가 받았던 기억이 난다고 생각했고 잘 거슬러 올라가보니 설계자들을 읽었던 그때의 그 기분과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는 거 같았다.

누군가 죽어나가고 죽은 이는 말이 없다. 하지만 그 배후에는 막대한 자본을 이용해 돈을 지배하는 것을 넘어 사람까지도 지배하고자 하는 물질의 노예인 사람들이 등장한다. 이쯤되니 또 생각나는 작품이 조정래의 허수아비 춤이 아닌가 싶다.

인간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했던 작품들이라서 연쇄적으로 내 머릿속에 떠올랐던 것 같다.

지금 이 시간에도 생업에 종사하면서 자본주의의 철저한 희생양으로 세월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내로라 하는 작가들이 말하고자 하는 공통적인 메세지는 전달 받은 듯 하다.

하지만 과연 용감하게 혹은 아무 생각없이 내가 당장 먹고 살 걱정을 하지 않고 과감하게 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설 수 있는 사람은 이 시대에 존재할까?

정직하게 벌어 정직하게 쓸 수 있는 사회를 바라지만 나부터도 내가 흘린 땀보다는 더 많은 댓가가 나에게 와야 비로소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인데 과연 난 그 누구의 쓴 눈물을 밟고 올라선 적이 없음을 자부 할 수 있을까?

불의를 당하는 사람을 보고 용감하게 소매 겉어올려 으쌰으쌰 도와 줄 그런 용기도 없는 나인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