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OOO 먹고 싶은데, 해주세요~~! 누가 그러는데 무언가 먹고 싶으면, 그 음식이 몸에 필요한 거래요~!". 다 크도록 콧소리를 잔뜩 섞어 어머니께 음식 투정하는 것이 쑥스러워 어디에선가 들은 검증되지 않은 속설을 덧붙인다.
더위와 씨름하느라 하루가 어찌 지났는지도 모르던 여름의 끝자락. 시간의 흐름, 삶의 흐름, 그 속에 존재하는 자신의 모습이 주는 불만족감이 뒤엉켜 조금은 외롭고 답답하고 괜시리 후회스러운 마음의 내가 읽고 싶었던 책, "아불류 시불류". 그토록 읽고 싶었던 것은 아마도 이 책이 나에게 꼭 필요했기 때문이리라!
이수만, 이문세, 유열의 마삼 트리오처럼 딱히 명칭은 없지만 배철수, 김 C로 이어지는 공통적인 외모로 묶인 집합의 시작인, 이외수 작가. 작가에 대한 다양한 고정관념을 파괴하며 인기 TV 예능 프로그램, 따뜻한 마음으로 열심히 삶을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인 "인간극장", 재미있는 CF등에 출현하기도 하고, 홈페이지와 트위터를 통해 많은 이들과 소통하기도 하는 친숙한 이름과 모습의 그. 아주 오래 전, 생전의 천상병 시인의 다큐멘터리 속에서 손쉽게 TV 퀴즈 프로그램을 시청하며 답을 외치는 그를 조용히 지켜보던 이외수 작가, 그리고 그 풍경이 주었던 훈훈함과 어딘가 부서질 듯 연약한 그들의 모습을 아직도 기억하건만, 참 오래 돌아돌아 그와 마주하게 된 듯하여 반갑기만 하다.
작가의 이름, 책의 제목, 표지, 작가의 사진, 작가와 삽화가의 소개법처럼 "아불류 시불류" 속 이야기는 형식도, 이야기의 주제도 자유롭다. 짧막짧막한 이외수 작가의 생각과 단상, 일상의 이야기, 그가 그리는 자연, 추억, 의견, 전하고픈 가르침 등이 총 다섯 장의 아름다운 소제목 아래에 예쁘게 모여있다.
그가 풀어내는 이야기에 따라 ’맞아, 맞아.’를 외치기도 하고,
’술 한잔 마시자’라는 표현이 ’술 한잔 꺾자’라는 표현으로 변하고 ’ 밥 한번 사겠다’라는 표현이 ’밥 한번 쏘겠다’라는 표현으로 변했다...(중략)...세상이 척박해지고 사람들이 공격적으로 변했다는 증거다.
하하하 소리높여 웃기도 하고,
바지 지퍼가 열린 채로 하루 종일 사람들 많은 번화가를 활개치면서 돌아다녔다는 사실을 집에 돌아와서야 알게 되었을 때,...(중략)...쪽팔림으로 몸부림치게 만들지 말입니다. -161p
시인적 감수성에 반하기도 하고,
...(생략)...예쁜 놈들만 골라서 문하생들 목걸이를 만들어주고 나머지는 술을 담가두었다. 마시면 만물이 모두 시가 되는 술. -159p
함께 탐탁치 않은 세태를 비판하기도 하고,
종이책과 이북이 별 차이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중략)...가치비교가 된다고 생각하다니, 놀랍다.
-145p
그의 외로운 마음에 슬쩍 나의 것을 더하기도 하고,
심장이 소금에 저린 듯이 아리다. 저물어가는 시간.
남다른 상상력에 탄복하기도 하고,
밤새도록 바람이 통곡하는 소리를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마당 가운데 겨울의 거대한 시체가 나자빠져 있었다...(중략)...당신을 기다리겠습니다.
잊고 있던 사랑을 떠올리며 낭만에 젖기도 하고,
가을 찻잔에 달빛 한 조각을 녹여서 마셨습니다. 당신이 곁에 있었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뜨끔해하며 반성하기도 하고,
정상에 오른 자들을 시기하지 말라...(중략)...때로는 나태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도 죄악이라는 사실을 명심하라.- 173p
알 수 없는 동질감에 가슴이 저미기도 한다.
당신도 가끔 가족들 몰래 화장실에 들어가 벽에 이마를 기대고 소리없이 흐느껴보신 적이 있나요. -27p
별도로 내장된 작은 삽화지의 향을 맡으며 책에 마무리 부분에 실린 멋진 삽화를 다시 한 번 보고 있자니 정겨운 풀 벌레 소리, 향기로운 꽃 향기, 기분 좋은 솔바람, 상큼한 푸르른 빛이 느껴지는 듯 하다.
다들 마찬가지일텐데, 형체도 없는 인생의, 스스로의 마음의 문제를 이야기하기도 별스럽고, 막상 해보려니 말로 정확하게 풀어내기도 어렵고, 딱히 조언이나 충고가 필요한 것도, 또 그것을 원치도 않았기에 혼자 생각하고 아파했던 고민들과 외로움이 이외수 작가 옆에 조심스레 앉아 그가 하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듣고 있는 사이에 정화되는 듯, 마음을 치유해 준 "아불류 시불류.".
입 걸걸한 재미있는 친구, 조용히 인생의 지혜를 한 수 전해주는 할아버지, 묵묵히 따뜻한 손으로 등을 어루만져주는 든든한 아버지, 따끔하게 나의 잘못을 꾸짖는 엄한 선생님, 때로는 창작의 고통에 힘들어하는 예술가 등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하며 그가 뿌린 따뜻한 온기의 글의 씨들이 손을 감싼다. 책을 덮으며 느껴지는 말, ’다 괜찮다’,’자유로워지거라.’, ’유연해지거라.’... 무언가 형용할 수 없는 위로감이 나를 토닥여준다.
아불류 시불류가 전하는 메세지, "그대가 그대 시간의 주인이다. 내가 흐르지 않으면 시간도 흐르지 않는다.". 세상의 중심은 나임을, 어떤 인생의 문제든 정답은 내 안에 있음을, 내 인생의 주체는 나임을, 좀 더 넓은 눈으로 나 자신을, 타인을, 인생을, 자연의 흐름을 보라는 듯한 이외수 작가의 메세지가 나의 심장을 뛰게 한다.
책 장 사이사이 넓게 자리잡은 여백 속에 진지함과 풍유와 감수성으로 꼭꼭 들어찬 사람 냄새 나는 이야기, 그리고 그것이 주는 특별한 영혼과 감성의 울림.
자연을 벗삼아 이외수 작가가 읊는 특별하고 멋진 인생 수업 한 자락에 여러분도 흠뻑 취해보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