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두 달 전. 한 유명 서점 밖으로 베르나르 베르베르 방한 기념 사인회를 위해 늘어선 놀랍도록 긴 줄이 잊혀지지가 않는다. 그 날 집에 돌아와 그의 이름을 검색창에 넣고 Enter키를 누르자 나열된, 신작 <신>을 재미있게 즐기기 위해 이해를 돕고자 하는 포스트들.
이렇듯 한국인들의 절대적인 사랑과 지지를 받고 있는 그의 전작을 접한 적도 없고, 수많은 사람들이 갈채를 보내고 있는 신작, 신의 1~5권을 건너뛴채 뜬금없이 6권을 읽고 서평을 쓴다는 것이 무척이나 망설여졌지만 반대로 이런 이유가 혹여나 나에게 가해질 누군가의 비난에 좋은 방패막이가 되어 줄 것이라는 생각에 솔직한 리뷰를 올리기로 결심했다. 누구나 똑같은 의견을 제시한다면 세상은 너무 재미없지 않겠는가?!
앞서 펼쳐졌을 재기발랄하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놓쳐 아쉬웠지만 6권을 읽어나아가는데 큰 문제는 없어 보였다. 되려 금새 미카엘의 모험을 훔쳐보느라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 소재, 전개 방식, 이야기 흐름의 강약을 쥐락펴락하는 작가의 능수능란함에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분명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매력적이고 훌륭한 이야기꾼임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그의 장점으로 꼽는 뛰어난 창의력의 소유자라는 의견에는 글쎄~. 너무나 많은 정보에 노출되어 있는 현대인으로서 어디선가 보고, 듣고, 읽어 보았던 지식의 집약 내지는 짜집기라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물론 이 방대한 지식과 소스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해 하나의 재미난 이야기로 만든 그가 대단한 필력의 소유자라는 것은 인정하는 바이지만 베르베르만의 독창성이 돋보인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어쩌면 익숙한 이야기를 짜집기했기에 많은 이들이 열광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했다. 어디선가 들어보았고, 따라부르기 쉽고, 기억하기 쉬운 멜로디의 음악이 인기이듯 말이다.
그의 명성에 딴지를 걸고 싶어 다소 심각한 나에게 웃음을 선사한 것은 결말이었다. 아니, 결말로 이르는 과정, 마지막 부분이라고 함이 옳을 것 같다. 6권만의 이야기로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도 있었지만 그 과정과 결말이 유쾌하게 느껴졌다. 역시 어디서 본 듯한,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것이었다고 얘기할 수도 있겠지만, 그 뻔한 선택이 오히려 반전으로 느껴졌다. 끝이지만 끝이 아닌듯한, 어딘가에서 다시 미카엘을 만날 것 같은 느낌의 결말. 책을 덮자 눈에 들어온 표지를 살펴보며 코 앞에 답이 있었구나 싶어 또 한 번 웃음이 났다.
기나긴 이야기의 굉장히 비밀스러운 결말을 먼저 보아버린 지금, 내가 다음에 읽기 원하는 책은 신 1이다. 아직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천재성, 독창성이 대단하게 느껴지지도, 인기와 명성이 당연하게 생각되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가 앞서 꾹꾹 눌러 담은 이야기가 읽고 싶어졌다. 기회가 된다면 그의 전작들도... 또 누가 알겠는가? 베르베르가 쉴새 없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제대로 듣고 그 누구보다도 열성적인 팬의 자세로 리뷰를 다시 쓸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