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 인간 생의 일부인 것은 분명한데 너무나 다른 성격, 의미, 개념으로 여겨지는 두 세계.
정보라 작가가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삶과 죽음 사이의 경계를 허물고, 장르를 넘나들며 그 다양한 매력을 모아모아 멋스러운 한국형 공포(?)소설로 탄생시킨 <죽은 자의 꿈>. 그 참 맛을 느끼기 위해 한 마디로 정의하기 힘든 소설 안, 죽은 자의 꿈 속으로 깊이 빠져든다.
같지만 다른, 혹은 다르지만 같은 두 남녀
삶에 뿌리를 둔, 남자
죽은 자를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자신의 능력이 항상 저주스럽게 느껴지는 남자. 일상 속에서, 그에게는 그저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인 죽은 이들이 언제 불쑥 그 모습을 드러낼지 몰라 살아있지만 살맛이 나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
죽음에 더 익숙한, 여자
본디 죽었으나 다른 생명의 힘을 빌려 살아난 여자. 죽음에 익숙한 여자에게 죽은 이들을 비롯한 죽음의 세상을 마주하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그나마 스스로의 삶을 살아본지 오래되지 않았건만 한정된 삶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어렴풋이 알고 있다. 자꾸 몸이 식어 가는 것을 느끼며 그녀는 또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삶과 죽음의 사이에서 죽은 이를 본다는 공통점으로 만남을 시작한 두 사람. 초자연적인 비밀을 간직한 남녀의 만남이 거듭될수록, 그들을 둘러싼 비밀과 사건의 속사정이 그 민낯을 들어낼수록, 이야기의 전개는 속도를 높인다.
애처로운 사랑의 에로티시즘
매일 죽은 이들이 찾아올까봐 두려움에 떠는 남자는 이런 공포감을 떨쳐 내려는 듯 변태적인 사랑법으로 여자를 안고, 여자는 이런 남자의 행동이 죽은 듯 감각을 잃은 몸에 약간의 생기와 온기를 더해주는 것 같아 만족스럽다. 서로만이 이해하고 필요로 하는 방법이었기에 두 사람의 만남을 지속시켜주는 원인이자 수단이기도 하였던 이 사랑법. 하지만 진짜 사랑이 깊어짐에 따라 비정상성은 옅어지고 이는 곧 두 사람의 사랑을 물리적으로 위협하는 원인이 된다.
처음에는 조금 당황스럽고 의아한 장치로 여겨지던 두 사람의 잠자리 이야기.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장치가 남녀의 사랑을 더욱 애처롭게 하는 중요 요소가 된다.
죽음의 미스테리
남자에게 죽은 동창이 찾아와 자신의 죽음의 비밀을 밝혀달라며 강요에 가까운 부탁을 한다. 죽은 이의 짓인지 능력의 확장인지, 동창의 사고와 관련 있는 끔찍한 악몽에까지 시달리던 끝에 마침내 남자는 여자와 함께 죽기 전, 동창의 행적을 쫒기 시작한다.
뻔뻔한 사기꾼이라 할 수 있는 동창이었기에 살해당했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으나 이 과정에서 동창의 숨겨둔 여인의 존재가 드러나고 이 여인이 자신의 꿈에 나타나던 이임을 알게 된 남자는 사건 혹은 여인에게 집착하기 시작한다. 과연 여인은 누구이며, 살인이 있었다면 그 이유와 범인은 누구일까!
시간이 갈수록, 진실에 더욱 가까워질수록 남자와 여자를 위협하는 산 자와 죽은 자들의 수는 늘어나고 언제나 그렇듯 추리 과정에 대한 호기심에 더해가는 초조함과 긴장감은 <죽은 자의 꿈>에 비밀스러우면서도 맛깔나는 매력을 더한다.
증폭되는 공포
남자의 어깨에 죽은 자가 묻혀놓은 표식, 그 표식을 조용히 문질러 지우는 여자, 죽었다고는 하나 늘 남자를 괴롭혀 온 동창. 알 수 없는 여인의 정체, 산 자의 몸을 빼앗아 들어 간 죽은 자, 더욱 커져만 가는 죽은 자의 영향력과 죽음의 그림자, 그 모든 것의 영향을 벗어나기 위한 결계의 물건들, 넋이 나간 채 이상한 행동을 일삼는 남자의 주변인, 더욱 끔찍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죽은 자들.
넘어지고 도망가고 협박에 시달리고 당하는 것은 소설 속 인물들인데 소설 곳곳에 배치된 섬뜩한 장치와 소재들에 의해 독자의 목 뒤도 서늘하게 되니, 죽은 자의 꿈이라는 제목답게 공포물로서의 몫을 톡톡히 한다.
위험 속, 커져가는 사랑
여자는 죽은 이를 볼 수만 있을 뿐 아직 죽음의 세계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남자가 끌고 오는 죽음의 그림자가, 남자의 안전은 물론이거니와 자신의 삶의 시간까지 위협하기에 걱정이 앞선다. 가늠할 수 없는 위험에도 불구하고 남자를 지키기로 결심한 여자와 자신이 여자를 위험에 빠뜨렸음을 깨닫고 여자와 끝까지 함께 하기로 한 남자의 사랑.
두 사람 모두 삶과 경계에 서 있다고는 하나 발을 더 깊게 딛고 있는 세계가 다르기에 아슬 아슬 하기만 한 가여운 사랑. 어떤 결말이든 새로운 시작일 될 수 있는 남자와 여자의 사랑이야기가 <죽은 자의 꿈>에 온기를 더한다.
두 번째 만남. 강렬한 첫 느낌.
참신한 시도와 무한한 발전 가능성에 박수를!
이보다 내용을 잘 반영한 표지가 있을까 싶은 강렬한 첫 느낌. 어두운 바탕에 감각적인 글씨체로 책 제목을 다시 한 번 새겨 사용한 표지 이미지. 그 속의 물감을 동그랗게 떨어트리는 듯 한 'ㅇ'의 포인트가 왜 인지 문창호를 뚫고 나를 바라보는 눈처럼 느껴져 등골이 오싹하다.
결코 첫 느낌을 배신하지 않은 <죽은 자의 꿈>. 재빠른 몰입을 유도하는 도입과 남다른 인물 설정부터 비밀스러운 분위기, 궁금증을 자극하는 사건들, 책을 읽느라 지새우는 밤이 유독 어둡게 느껴지는 공포감, 원하는 결말로 이어지지 않을까봐 걱정되는 남녀의 사랑이야기 등 작가의 신선한 상상력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다양한 매력을 지닌 <죽은 자의 꿈>.
건강하고 즐거운 상상력이 바탕이 된 중간 문학의 위한 파란 미디어의 브랜드, 새파란상상과의 <말이 되냐>에 이은 두 번째 인상적인 만남을 통해 단순한 재미를 넘어 한국형 추리 문학에 이어 공포 소설의 활성화가 시작되었음을 알게 되어 더욱 뜻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