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이 곧 엄마니까 한 마디 한 마디 귀 기울여 잘 듣고, 친구들은 '언니 동생이다~.' 생각하면서 사이좋게 잘 지내다 와~". 고작 하루 자고 오는 유치원 캠프를 보내기 전, 어머니는 몇 번이고 내 눈을 맞추며 당부를 거듭 하셨다. 과잉 보호는 커녕 방목형 교육 방침을 지향하시는 어머니도, 처음으로 가족과 떨어져 낯선 공간에서 생활하게 된 딸이 무척 걱정되셨나보다.
가끔 티비를 통해 전해지는 유명 남자 연예인들의 군대 훈련소 입소 장면 뒤로 사랑하는 아들 혹은 친구와 아쉬운 작별 인사를 하며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때면 그때 그 추억 속 어머니의 눈빛과 말씀이 떠오르곤 한다. 정해진 시간 후 멋진 남성이 되어 일상 생활로 돌아올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생활 공간, 낯선 명령과 복종의 생활 방식 등 모든 것이 변해버린 곳에서 생활해야 할 청년들이 걱정되어 쏟아지는 눈물. 더구나 분단 국가이기에 늘 전쟁 발발의 위험을 안고 있는 우리로서는 군대에 보내는 아들들의 뒷모습에 어머니들의 가슴이 조여 올 것이다.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사랑하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막연하게 느껴졌던 나라를 지키기 위해 죽음의 공포와 두려움과 함께 책임감과 의무감을 들고 이고 지고 전쟁에 나가는 군인들. 이런 그들이 가장 원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 많은 것들을 나열할 수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바로 마음 든든하게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동료이자 대장이 아닐까? 나를 이끌어 줄 수 있는, 내가 다쳐도 끝까지 함께 해 줄 것 같은, 승전보를 울리며 사기를 높여주고 나라를 지켰다는 자부심을 느끼게 해 줄 믿음직한 동료, 혹은 대장! 말이다. 우리가 존경하는 세계 위인들 속에서 장군들의 이름을 많이 찾을 수 있는 것은, 위험천만한 전쟁이라는 조건에서 멋진 인물들의 존재가 빛을 발하고 또 그들이 지닌 재능이 멋지게 발휘되며 부하들 뿐 아니라 국민과 더 나아가 적에게도 존경심을 품게 하는 카리스마가 발현되기 때문이리라!
뛰어난 전략, 언변술, 그림 솜씨로 천재성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지만, 광기와 비뚤어진 리더십의 소유자라는 것에 대해서는 특별한 이견이 없는 남자, 히틀러. 그가 한때 총애했던 이가 이런 대장이었고 역사상 훌륭한 장군으로 여겨지고 있다는 너무나 아이러니한 사실로 인해 어안이 벙벙한 내 앞에 마침내 그가 모습을 드러냈다. 표지 속 멋진 훈장이 눈에 띄는 군복 차림의 남자, 롬멜. 깔끔한 그의 인상과 날카로운 시선, 그리고 표지의 색상 구성... 모든 것이 강렬하게 느껴지는 책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갔다.
평범한 소년, 롬멜. 직업군인이 되고자 마음 먹었지만 인맥이 없기에 지원자들이 선호하지 않는 보병으로서 군 생활을 시작했다. 시작은 다소 초라했지만 차츰 독창적인 지휘력을 인정받아 명예로운 각종 훈장을 받으며 승승장구하던 중 새로운 정권의 수장, 히틀러와의 첫 만남을 갖고 히틀러의 대담함에 매료되어 조국에 대한 애국심으로 그에게 충성을 맹세하며 적에게 이름만으로도 두려움을 안겨주는 일명 유령사단인 제7기갑사단에 몸을 담게 된다.(1장: 독일 군부 내의 아웃사이더) 프랑스 침공시 새로운 전략으로 마지노선을 돌파하며 능력을 십분 발휘한 덕분에 2급, 1급 철십자훈장과 기사십자훈장을 받은 최초의 야전군 사단장이 되며 전쟁 영웅이 된 롬멜은(2장: 1940년의 프랑스) 이어 파견된 리비아에서도 한 번 실패했던(3장: 리비아의 사막) 토브룩 함락에 성공하면서 전성기를 누렸지만( 4장: 롬멜의 전성기) 동맹군과 상부조직과 마찰을 겪으며 전투 패배로 인한 철수를 거듭해 직위해제당하는 불명예를 안는다.(5장: 스타의 몰락) 믿었던 히틀러에 대해 실망하고 환멸하면서도 자신의 군인으로서의 임무에 충실하고자 했으나,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 작전 후 패전으로 치닫고 있는 나라의 운명을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때마침 히틀러를 암살하고자 터진 폭탄. 암살단에 속한 적도 없지만 늘 아웃사이더였던 그는 마침내 마지막 명예와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 자살로서 생을 마감한다.(6장: 마지막 불꽃)
부하들을 배려하고 어려움을 함께하는 공감 리더십, 현장을 직접 몸으로 느끼는 소통 리더십,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는 솔선수범 리더십, 무한한 낙관주의의와 열정을 기반으로 한 추진형 리더십, 실패로부터 교훈을 얻고 끊임없이 연구하며 적용하는 변화혁신 리더십, 부하들을 독려하고 자신감을 고취하는 임파워링 리더십이 돋보이는 그의 발자취를 따르며 감탄해마지 않았지만 예외, 획기적 변화 등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군대에 중산층 가정 출신의 롬멜이 느꼈을 아웃사이더로서의 고충이 여기저기서 느껴져 그의 일생이 더욱 드라마틱하게 보이는 책, <신화로 남은 영웅, 롬멜>.
특히 안타까운 긴 한숨을 내쉬게 했던 마지막 부분이 잊혀지지 않는다.
"...전쟁이 끝난 뒤 롬멜의 죽음에 대한 진실이 자세하게 드러났다. 히틀러 폭탄 암살 음모에 참여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전혀 설명할 수 없는 이유로 그가 암살 음모와 관련이 있다고 믿게 되었다. 2차 세계대전의 양 진영은 모두 롬멜을 '훌륭한 독일인 good German'으로 여겼다." - 7장: 롬멜이 남긴 유산 중-
흑과 백으로 철저히 나뉘었던 냉전시대 어느 쪽을 지지하는가와 상관없이 모든 이들이 롬멜을 영웅으로 기억하게 되었다니, 충성스럽게 따랐던 히틀러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택한 비극적 죽음의 억울함이 그나마 명예로 보상받은 듯 해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그 자리에 더 이상 존재할 수 없었던 그의 운명이 왠지 슬프게 느껴졌다. 사막여우라고 불리우며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영웅이었지만 죽을때까지 귀족적인 프로이센 장교와 장군들에게 은밀한 따돌림을 받아야 했던 그. "불운하다면 불운에 맛서라!"라는 그의 외침이 끊임없는 따돌림을 이겨내기 위한 스스로의 다짐으로 들려 가슴이 뭉클해진다.
전략의 대가는 아니었지만 직접 정찰에 나서고 장군이지만 병사들과 조금의 차별도 두지 않는 생활을 하며 흙에 빠진 차를 직접 미는 전형적인 솔선수범형의 리더였던 롬멜은 직설적인 말과 엄격한 태도로 부하들을 몰아부치면서도 부하들 스스로 상황을 어울리는 판단을 실행에 옮길 수 있게 하는 임무형 지휘권을 주어 그들의 독창성과 개성을 발휘하게 하였다. 이와 함께 자신은 큰 틀을 제시하며 예리한 직관력으로 신속하게 작전을 수행해 성공적인 결과를 갖게 하였다. 이는 "롬멜의 보이드 사이드(관찰, 방향설정, 결정, 실행)"으로 불리우며 현대인들이 훌륭한 리더로서 거듭나기 위해 표본으로 삼는 지침이 되고는 한다.
"적보다 먼저 상황을 파악하고 계획을 결정하여 행동에 옮겨라." -303p
유능한 전략가는 아니었지만 뛰어난 전술과 작전 능력을 극대화하여 위기의 순간일수록 용감하게 전두지휘했던 명장, 롬멜. 책에서 강조하는 그의 리더로서의 장점에 덧붙여 현장의 상황을 알지 못한 채 사지에 몰린 병사들을 지원하는 미온적이었던 상부에 끊임없이 원하는 병력, 식량 등의 조건들을 요구하며 부하들을 보호하고자 했던 그의 책임감이 그를 최고의 명장으로 칭송했던 적의 수장, 영국의 처칠 수상의 말에 깊은 공감을 하게 한다.
"적에게는 아주 용감하고, 유능한 장군이 있습니다. 이 전쟁의 참상과 관계없이 개인적인 평가를 해도 된다면 나는 그를 위대한 장군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본문 154p-
빠르게 혁신적인 성공을 이룬 리더에게 익숙한 우리에게 평생을 자신이 속한 나라를 위해 능력과 재능을 발휘하며 온 몸을 바쳐 용맹하게 자신이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한 한 남자, 한 마디 한 마디에 애정을 담아 부인에게 편지를 썼던, 그런 가족을 너무나 사랑해 누명을 쓴 채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 밖에 없었던 롬멜의 이야기는 강인하면서도 인간미 넘치는, 색다른 리더십에 대해 배울 수 있게 한다.
좀 더 용감무쌍하게 원하는 바를 향해 거침없이 나아가며 카리스마 넘치는 창조적 리더가 되기를 꿈꾸는이라면, 군사사가이자 국방분석가인 찰스 메신저가 전하는 제 2차 대전의 역사를 보고 느끼며 스스로를 끝없이 단련시켰던 묵직한 영웅, 롬멜을 만날 수 있는 기회와 함께 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