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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이종구 시인의 첫 시집이다. 이종구 시인의 주옥같고 흥미로운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

떠나고, 돌아오는 일로 분주한 기차역에 서서, 바람을 맞닥트려 보면 안다. 우리는 모두 바람이었음을.

어느덧 말을 배우고 글씨를 익힌 지가 한 갑자가 되었다.
그런데도 아직 일상의 혈을 풀고 이야기의 맥을 짚어 사유로 적어내는게 서툴기만 하다. 글 쓰는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울 것만 같았던 나이가 되었는데도…….

깜깜한 밤하늘 초롱초롱한 별처럼,
꿈같은 이야기를 하려면 잠이 들어야 하는데,
그런데도 깊이 잠들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잠속에 들어야, 꿈 깨는 이야기라도 하고, 잠꼬대라도 할 텐데
잠인 듯 현실인 듯 애매한 지경에서 실눈을 떠보면 벽이 보이고
벽지의 문양이 보인다.
오늘도 잠은 틀렸구나.
잠들지 못했던 몸은 무거울 것이고
남은 잠을 털지 못한 뼈들은 어둠 속인 양 뒤척거릴 것이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것에 눈뜨게 하려는 인연이었을까
슬픔과 고독, 그리움과 환희의 스승으로 인연 되어서
나를 일깨운 서둔야학의 선생님들, 불청의 모든 도반과 수원지역의 문학과 그림의 혼을 불태우는 예술가들, 특히 詩想테마인문학 동인과 늘 함께하는 SPA 현장작가님들께 먼저 인사를 올린다.
새삼 말해 무엇하랴만 글 쓰는 사람의 친위대로 고생하면서도
언제나 응원을 아끼지 않는 가족에게도 깊은 사랑의 마음을 전한다.

부족한 눈빛, 말더듬이의 시집에 흔쾌히 해설을 써주신 김우영 시인님, 격려의 마음 내어 표사글을 써주신 이덕규 시인님, 오랜 벗이자 표지에 디자인으로 함께 해준 차진환 작가, 무슨 말로 그 고마움을 표현할 수 있을까, 머리 숙여 인사를 올린다.
더불어 편집과 출판을 위해 애써주신 문정영 시산맥 발행인님과 편집부에도 고마움의 인사를 올린다.
오랫동안 시를 써 왔지만 게으름과 부족함으로 머뭇거리다 용기를 내는 이번이 첫 시집이다 보니 아무래도 오래 묵은 것과 햇것이 함께 실리게 되어 일관성이 부족하다. 그것은 게을렀던 내가 온전히 감당해 내야 할 부끄러움일 것이다.

2355년 여름, 이종구 드림

이덕규(시인)
오래전엔 그 들판을 가로질러 야목 너머 고잔과 소래를 거쳐 인천으로 가는 협궤 열차가 있었다. 그리고 거기 어디쯤 산발한 쑥부쟁이들이 도열한 어둔 고샅길을 달려 야학 가는 허름한 작업복의 소년 시인이 있었다. 이종구 시인은 밑도 끝도 없이 서러운 저 수원의 서쪽 끝 노을 속에서 걸어 나왔다. 어린 시절부터 호락호락치 않은 세상과 맞짱 뜨며 살아온 사람, 돌아보면 지워버리고 싶은 아픈 기억이 최고의 시적 자산이 되었다. 그는 가난하고 슬픈 고색을 끌어안고 좁고 구불텅한 비포장 신작로를 따라 서러운 노가다를 지나 검정고시를 지나 탄광을 지나 택시 기사를 지나 셀 수 없이 많은 직업과 곡절을 거쳐 팔달문 지나 못골 시장 지나 포교당 지나 신풍루에 도착했다. 그가 걸어온 간단치 않은 이력과 시세계가 그 안에 다 들어있다. 한 시인이 살아낸 조악한 삶의 궤적이나 그가 쓴 신산한 시편을 들춰내지 않더라도 그는 첫눈에 아름다운 고색인이며 진정한 수원인이다. 변방의 야학에서 출발한 그가 마침내 화성(華城)에 입성했다.

1부

외등 19
빨래집게 20
차를 우리며 22
빈 둥지 24
걸레를 빨며 26
때문에라는 말의 편리함 27
일 년 30
노을 시점 32
겨울 까마귀 34
나때의 울분 36
형은 세상의 주인으로 살았네 40
파아주 43
목련 나무 혹은 그 사람 46
모녀 분식 48
산책로를 기록하다 50

2부

나무 55
여름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56
머리카락 58
별을 베고 눕다 60
보리밭 62
태어난 새는 날아야 한다 64
새벽에 일을 나서다 66
빙하의 전설 68
녹슬어 가는 여름 70
산다는 일 72
바퀴벌레 74
수순手順 75
닮은꼴의 삶을 비유함 76
꽃이여 78
봄날 그 후에 82

3부

숲이 자랄 때 87
꽃샘 88
차진환의 ?禪길 91
잘 가라 나날들이여 94
오래된 기억의 빈집 96
지층의 기억 99
풍경 - 1 102
정조의 노을 104
피어있는 꽃이거나 마른 꽃이거나 106
감자꽃 필 때 108
들꽃 그리움 110
적주비구야 뭣 할꼬 111
이 詩를 112
복사꽃 114
거미줄에 매달려 116

4부

시인是認 121
추석 소회 122
장미촌 124
심중단언心中斷言 127
바보온달의 그리움 128
바람꽃 130
녹슨 병따개의 기억 132
포교당 가던 길 134
눈사람의 방 136
해넘이 139
택시, 운행을 시작하면서 140
병마라는 번뇌 142
숲 144
버마의 푸른 피 146
스스로에게 148
가상의 존재 150

■ 해설 | 김우영(시인) 1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