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연이 나와서 "나는 조선의 국모다"라고 말하고서 일본 낭인의 칼에 찔려 장렬히 죽는 뮤직비디오 때문인지, 명성황후를 주인공으로 한 뮤지컬이 나올 정도로 인기가 급격히 높아졌다. 헤이그에 밀사를 보낸 고종의 용기를 이야기하고, 독살되었다고 알려진 고종의 장례식에 운집해서 애도하는 백성들을 보여주었다. 하필이면 일본이 제국주의적인 야심을 드러낸 시기에 조선의 왕이 되었기 때문에 시대에 휩쓸렸다고 안타까워할 수도 있다. 그러나 <조선을 홀린 무당 진령군>(2017, 배상열 지음, 추수밭 펴냄)을 보니 고종과 명성황후 때문에 조선이 위기에 더 빠르게 빠져들었음을 알게 된다.

책은 1894년 7월 5일에 지석영이 올린 상소로 시작된다. 종두법을 개발한 의사로만 알고 있었던 지석영은 나라의 정세를 걱정해서 목숨을 걸고, 당대 최고의 권력을 휘두르던 '요사스러운 무당'을 고발하는 상소를 올렸다. '망국의 굿판이 벌어지고 있다'라는 준엄한 설명. 저자는 굿판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조선 시대 말에 고종과 명성황후를 홀려 나라를 망친 무당 진령군이 있었다면, 현재 우리나라에는 대통령을 홀려 국정 농단과 비선 실세로 득세한 최순실이 있었다. 조선 시대에는 굿판이 대대적으로 벌어져서 나라를 뒤집었지만 왕과 왕비가 홀려 있으니 아무도 진령군을 단죄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국민이 주인인 민주주의 시대이므로 정의의 이름으로 대통령을 파면하고 최순실을 구속했다. 그리고 이들에게 장단을 맞춘 이들은 앞으로 법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충북 충주 변두리에서 굿을 하며 살던 무당은 파란만장한 조선의 역사에 편승해, 왕족이나 받을 수 있는 존칭 '군'을 하사받았다. 안타깝게도 나라의 안위 대신 자신의 영화에만 신경 쓰는 인간들이 왕과 왕비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던 것. 저자는 간간이 무당의 관점에서 당시 조선의 상황을 묘사하며 세태를 비웃는다. 그리고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반성하지 않으면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지금 우리가 단죄하지 않으면 이들은 또다시 권력을 획득하고 나라를 뒤흔든다고.

책을 읽는 내내 우리나라의 미래가 걱정되어 마음이 무거웠는데, 다행히 대통령 파면 결정이 내려지면서 아직 우리에게 희망이 있다고 느꼈다. 이제 되었다고 안심하지 말고, 근원을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 <조선을 홀린 무당 진령군>이 누누이 말하는 바다. 이 시대에 딱 맞는 책이었다. 

이렇게 짧은 소설은 정말 오랜만이다. 소설은 길이에 따라 대하소설, 장편소설, 중편소설, 단편소설에 이어 '엽편(葉篇)소설'로 이어진다. <미시시피 모기떼의 역습>(2016, 최민석 지음, 보랏빛소 펴냄)은 이런 엽편소설들을 모아 엮은 소설집이다.

250쪽이 안 되는 분량에 42편이나 들어 있으니, 한 편에 5쪽 정도 할당된다. 거기에다 이야기 제목이 쓰인 페이지는 무조건 그림이 들어가고 본문이 없다. 또 이야기가 꼭 왼쪽 페이지에서 시작해야 해서, 오른쪽 페이지가 빈 채로 남은 것도 꽤 된다는 사실도 고려해야 한다. 여느 소설 같으면 배경을 묘사하고 주인공이 등장하기에도 모자랄 만한 분량인데, 이 책에서는 이야기 한 자락이 끝난다. 얼마나 짧은 이야기인지 이해가 되는가?

물론 어떤 것은 에피소드 소개 수준이다. '발단-전개-절정-결말'이라는 소설의 단계에서 발단과 전개 정도만 있다고 할까. 그런 이야기들이 연작처럼 이어져서 '절정'으로 나아가기도 하고, '전개' 과정을 반복하기도 한다. 저자와 동일 인물처럼 보이는 '최민석 작가'가 등장하는가 하면, 스페인어 학원에 다니는 남자와 그의 여자 친구들, 입 냄새가 지독한 이재만 등이 반복 등장한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미시시피 모기떼'는 습격, 대역습, 음모에 이어 전 여친을 문 존재로 네 번이나 나온다. 이것에 물리면 사람이 죽거나 좀비가 되는 등 치명적인 위험이 있지만, 레오 까락스의 영화처럼 졸린 것을 틀어놓으면 무력화된다는 우스운 단점이 있다. 어느 것에도 당위성은 없다. 논리도 없고 줄거리도 없다. 의미 없는 상황이 반복되고, 이 이야기와 저 이야기가 예상할 수 없이 이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아무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 등장인물의 이름을 기억하지 않아도, 어디까지 읽었는지 기억하지 않아도 괜찮다. 의미와 교훈이 있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준다. 스페인어 학원에서 만난 이리네가 맥주 1,000cc를 원샷하는 것이 대체 어떤 의미가 있단 말인가. 거기에다 여름에는 2리터, 가을에는 3리터, 겨울에는 4리터를 마셔버렸다는 전개까지. 피식 웃으면 된다. 말을 더듬는 인물이 나와서 '그'라는 단어로 두 페이지를 채워도 피식 웃으면 되고, 한 달간 문을 두드리는 연습을 해도 피식 웃으면 된다. 생각해보면 우리 생활도 그렇게 가벼운 일들로 가득하니까.

<한국인의 밥상>, <한식대첩> 같은 요리 같은 프로그램을 좋아한다. 지역마다 특색 있는 식재료들을 이용해서 독특한 요리들을 만들어내면서 사람 사는 이야기를 들려주기 때문이다. 요리의 재료가 되는 동물과 식물이 다양한 것은 물론 조리법도 다양해서 보는 재미가 있었다.

<음식패설>(2017, 김정희 지음, 앤길 펴냄)은 이런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세계로, 과거로 폭넓게 펼쳐내고 있다. 제목에 들어간 '패설'이라는 단어는 '민간에 떠도는 짤막한 이야기. 역사적 사실이나 인물, 문물 제도, 세태 풍속, 고을 이름 따위와 관련된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로 전설적, 교훈적, 세속적인 기이한 내용을 담고 있다'라는 뜻이라고 국어사전에 나온다. 그처럼 짤막한 이야기, 역사적 사실, 정치와 역사, 문화를 다양하게 담았다. 책 표지에 나온 것처럼 '음식은 이야기를 만들고, 이야기는 음식을 만들'기 때문이다.

책은 200쪽 조금 넘어서 그렇게 두껍지 않다. 그 안에서 음식을 사랑, 금지, 신화, 부와 권력, 정치와 연계해서 이야기한 다음 음식에 대한 상식, 잘못 알고 있는 것들을 짚어준다. 사과, 술, 복숭아, 올리브, 아몬드, 푸아그라, 송로버섯, 소고기 등 여러 재료들이 병렬적으로 나열되어 있기 때문에 손 가는 대로 펼쳐 읽어도 충분하다.

서양 문화의 뿌리는 그리스 로마 신화이기 때문에, 음식 이야기에서도 신화를 빼놓을 수 없다. 그 예로 삼미신의 불화를 가져온 파리스의 사과, 아테나 여신의 선물인 올리브, 하데스에게 납치된 페르세포네가 저승에서 먹은 석류 등 과일과 관련한 이야기가 많다.

후추는 어떻게 노동자의 작업복에 영향을 주었을까? 그리고 설탕에는 어떤 노동자의 슬픔이 담겨 있을까? 우리가 아주 편하게 일상적으로 마시는 커피는 시민의식과 무슨 관계일까? 이 책에서 후추 이야기는 7페이지 가까이를 차지한다. 향신료의 왕이라고 불리는 후추는 인도에서 4,000년 전부터 사용되었고,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는 아랍 상인이 들여가서 황금보다 비싼 몸값을 자랑했다. 그런데 노동자의 작업복과는 어떻게 연관될까? 바로 후추 하역을 하는 노동자들이 주머니에 후추를 숨길 수 없도록, 작업복에서 주머니를 없앤 것이란다. 저자는 유럽뿐 아니라 미국에 후추를 처음 들여온 사람, 우리나라에는 고려 때 들어왔고 임진왜란을 일으킨 작은 원인이 되었다는 것까지 동서고금을 망라해 설명하고 있다.

또한 음식은 철저하게 개인의 기호와 식성에 좌우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프랑스가 토마토케첩을 금지한 일, 맥도날드를 거부하는 나라들, 요즘 핫 이슈인 지방뿐 아니라 설탕에 포함된 로비스트의 입김 등 음식은 정치에서 절대 자유롭지 못했다.

이야기는 폭이 넓어서 참 흥미롭다. 그렇지만 문장이 거칠고 오탈자가 많아서 아쉽다. 저자가 자료 조사와 집필에 들인 노력만큼 출판사에서 편집에 조금만 신경 썼다면 좋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