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꾸었다. 내가 어릴 때 돌아가신 아버지가 꿈에 나오셔서는 다리를 주물러 달라고 하셨다. 나는 꿈에서도 아버지가 이미 돌아가신 분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목소리라도 녹음해서 보존하려고 라디오로 갔다. 당시는 플레이 버튼과 녹음 버튼을 동시에 눌러야 테이프에 녹음할 수 있었는데, 라디오에 가보니 플레이 버튼과 녹음 버튼이 한데 겹쳐져서 누를 수 없게 되어 있었다. 그래서 포기하고 아버지께 돌아가 다리를 주물러드리다가 잠에서 깼다. 이때 나는 분명 현실의 상황을 기억했고, 꿈 안에서 생각하고 행동하고 이해했다. 아주 낮은 등급의 자각몽(lucid dream)으로 보아도 될지 모르겠다.

그러나 매일 꾸는 꿈은 그렇지 않다. 일어날 때는 단편적인 장면이 기억날 듯 말 듯 하다가 금세 잊힌다. 끔찍한 악몽 또는 대단히 행복한 꿈 말고는 대부분이 그렇다. 그러나 우리는 매일 밤 꿈을 여러 개 꾸고, 낮에도 선잠 상태에서 꿈을 꿀 수 있다. <어젯밤 꿈이 나에게 말해주는 것들>(2016, 슈테판 클라인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펴냄)에서 증명한 이야기다.

철학과 물리학을 전공하고 생물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은 저자는 이번 책에서 '꿈에 관한 15가지 진실'을 소개한다. 프로이트 이전에는 꿈에 주목한 사람이 없었고, 프로이트는 꿈을 해석해서 <꿈의 해석>이라는 걸작을 써냈지만, 프로이트가 살았던 시대에는 뇌를 들여다볼 기술과 기구가 없었으므로 과학적으로 증명하지 못했다. 그래도 프로이트 이후로 꿈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면서 이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많아졌고, 그렇게 밝혀낸 진실들이 여기 소개된다. 꿈이라는 것이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어서 어떻게 연구할까 했는데, 그 궁금증이 풀린다.

책은 3부로 구성된다. 1부 '꿈을 무시햇던 당신이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들'에는 꿈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꿈이 왜 생겨나는지를 이야기한다. 프로이트가 말한 것처럼 꿈은 왜곡이라는 필터를 거쳐 현실을 반영할 수 있다. 뇌의 센서가 하나씩 꺼지면서 잠이 드는데, 센서가 조화롭게 작동하지 않을 경우 가위에 눌릴 수 있고, 몽유병도 이런 현상의 일종이다.

2부 '꿈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들'에는 과학적, 역사적으로 바라본 꿈의 정체를 이야기한다. 뇌파를 측정하는 기계, 눈의 움직임을 확인하는 기계, 혈류를 통해 뇌의 활성화를 검출하는 기계 등 덕분에 우리는 사람이 잠든 사이에 뇌와 몸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안다. 숙면, 렘 수면, 방추형 수면 등 잠의 단계를 관찰하면서 피실험자를 수시로 깨워 꿈을 기록하는 노력이 돋보였고, 향기와 소리로 꿈을 조작할 수 있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그러고 보니 자기 전에 읽은 책이나 본 TV 장면이 꿈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었다. 정신은 자는데 몸이 일어나 차를 몰고 처가에 가서 장모를 살해하고 장인을 다치게 한 케네스 파크스의 사례는 자동적인 숙련 행동을 가리키는 '좀비'를 불러온다. 파크스에게는 결국 무죄가 선고되었다.

3부 '어젯밤 꿈이 우리의 인생을 바꾼다'는 인생의 방향을 알려주는 꿈, 지긋지긋한 악몽, 자각몽을 이야기하고, 꿈에서 영감을 얻은 유명인들의 사례를 들려준다. 벤젠의 구조식을 알아낸 케쿨레, 바늘 끝에 귀를 뚫어 재봉틀을 발명한 일라이어스 하우, 'yesterday'를 작곡한 비틀스의 멤버 존 매카트니 등은 잘 알려져 있다. 동양은 해몽에 관한 책이 있을 정도로, 꿈을 해석한 역사가 오래되었다. 조선을 세운 태조는 왕이 되기 전, 대들보 세 개를 등에 지고 가는 꿈을 꾸었다. 이렇게 들보들을 등에 진 모습이 王 자와 같아서 왕이 되리라는 계시로 받아들였다. 김유신의 여동생은 꿈 하나로 김춘추와 결혼했다. 위인들의 태몽에 대해서도 기록이 많다. 이처럼 꿈을 잘 해석함으로써 현실을 해석하고 미래를 만들어나갈 수 있고, 악몽에 맞섬으로써 트라우마를 해결할 수도 있다는 것이 놀랍다. 자각몽은 앞으로 도전하고 싶다. 책에서 소개한 것처럼 자각몽에 효과적인 40헤르츠의 전파를 발신하는 기계가 발명되어 보급된다면 실험해보고 싶다.

꿈을 잘 이해하려면 꿈에 대한 민감도를 키우는 것이 우선이다. 꿈을 3,000여 건 기록한 바브 샌더스, 꿈에 대해 다양한 실험을 하고 기록한 데르비 남작만큼은 불가능하지만,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꿈을 기록하는 정도는 할 수 있겠다. '어젯밤 꿈이 나에게 말해주는 것들'을 알아듣기 위해 필요한 지식을 어렵지 않고 흥미롭게 들려주는 책이었다.

'헤밍웨이'는 서양의 성이니 여러 사람이 있겠지만,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존재감이 너무나 커서 꼭 그 한 사람만을 가리키는 것 같다. <헤밍웨이 죽이기>(2016, 러디어드 키플링, 아서 밀러, 윌리엄 포크너, 싱클레어 루이스, 버트런드 러셀, 제임스 굴드 커즌스, 수전 글래스펠, 스티븐 빈센트 베네, 마크 코널리, T. S. 스트리블링, 에드나 세인트 빈센트 밀레이, 맥킨레이 캔터 지음, 엘러리 퀸 엮음, 책읽는섬 펴냄)의 제목을 듣고 그를 떠올린 것은 나만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잘못 짚었다. 이 제목의 헤밍웨이는 미국 전쟁문학 소설가이고 퓰리처상을 수상한 맥킨레이 캔터가 만들어낸 인물인 것. 그것도 다양한 도시에서 사기와 절도를 했고, 여자들을 홀렸고, 살인까지 저질렀고, 언제나 뭔가를 씹고 있는 청년이다. 머리가 좋아서 번번이 경찰을 따돌리고 범죄를 저지르고 있던 그는, 만반의 준비를 갖춘 경찰의 급습에도 기지를 발휘해 탈출하고는 복수를 감행한다. 그러나 프로파일러로 손색이 없는 경찰이 그의 행방을 찾아내 덜미를 잡는다. 그의 정체가 드러난 것은 범죄 현장에서 찾아낸 호텔 성냥갑과 피스타치오 껍질.

20세기 최후의 미스터리 거장으로 꼽히는 엘러리 퀸이 1976년에 엮은 책을 옮긴 이 책은 저자들이 쟁쟁하다. 총 12명 중에서 노벨문학상을 받은 이가 4명, 퓰리처상을 받은 이가 9명이다. 윌리엄 포크너는 노벨문학상과 퓰리처상을 모두 받았다. 노벨문학상을 받아서 익숙한 이름이 있는가 하면 생소한 이름도 있다. 12명이 400페이지를 채웠으니 한 사람당 30쪽이 조금 넘을 정도다. 이 정도 분량에서 사건이 일어나는 배경을 마련하고 드디어 사건이 일어나고 해결까지 해야 하니, 장편보다 오히려 더 어렵겠다. 그러나 쟁쟁한 수상 경력답게 저자들은 노련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헤밍웨이 죽이기'처럼 범죄 소설이 잇는가 하면 종교와 문화가 들어 있는 작품, 전혀 다른 사람을 꿈꾸며 치밀하게 준비한 사람들의 이야기, 여성이 남성에게 종속되어 살던 시대의 이야기 등이 다양하게 실려 있다.

범죄는 행복보다 더 적나라하게 사회를 반영한다. 이들이 만들어낸 이야기는 20세기 초중반의 사회를 여러 각도에서 조명한다. 그러니 평소처럼 사건이 어떻게 진행되는가, 범인이 어떤 사람이며 어떻게 잡히는가에만 관심 갖지 않고, 주인공과 배경 묘사에 꼼꼼하게 주의하며 읽었다. 시간과 공간을 넘어 짧은 삶을 살아낸 느낌이다. 엘러리 퀸이 가려 뽑을 만한 작품들이었다고 생각한다.

제갈공명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삼국지>가 우리나라 유수의 대학 필독서에 오르면서 학생부터 성인까지 이 책을 읽는다. 이 책에 나온 제갈공명의 전략과 전술이 너무나 신출귀몰해서, 그가 실존 인물이라는 것을 잊을 정도다. 그래서 그가 쓴 책이 있다는 말에 이 책을 선택했다.

<장원>(2016, 제갈량 지음, 문이원 편저, 신연우 감수, 동아일보사 펴냄)이 바로 그것이다. 유비를 도와 촉나라를 세우는 데 공헌했고, 유비 사망 후에도 유비의 아들인 유선을 보필했으니, 유비로서는 삼고초려를 통해 제갈량을 책사로 모신 것이 필생의 역작이었던 셈이다.

<장원>은 총 50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문은 '장원(將苑)'의 의미 설명으로 시작한다. 제갈량이 살고 활약했던 시기는 위촉오 삼국이 천하를 제패하기 위해 끝없는 전쟁을 벌인 시기였기에, 전쟁과 장수가 삶 자체였다. 그래서 장수의 자질과 함께 장수가 활동하는 무대으로서 정원을 이야기한다.

중국 고대서들이 그렇듯 한 장이 길지 않고 두세 글자로 된 제목이 붙어 있다. 장수의 권한, 위세, 유형, 그릇, 뜻, 기본기, 균형, 덕목, 지혜로움, 표본 등 장수의 인물됨에 대한 이야기가 앞부분을 차지한다. 실제 전투에서는 장수의 말에 병사의 생사가 좌우되었고, 전투의 승패가 모여 나라의 운명을 좌우했기 때문에, 장수의 자질은 엄청나게 중요한 문제였다. 그래서 제갈량은 전투 기술보다 장수의 자질을 먼저 배치함으로써 장수를 알아보고 장수를 키우고 장수를 만들어내는 것의 중요함을 이야기한다.

그다음에는 '출사' 편을 지나 <삼국지>에서 익히 보고 들은 전투의 기술들이 나온다.

각 장에는 두세 글자로 된 제목이 붙어 있는데, 이것이 그 장의 내용을 직접 드러낸 것이다. 그래서 편집해 엮은 문이원, 즉 문학과 어학 전공자들의 인문연구모임은 <설문해자>를 이용해, 제목과 본문을 구성한 한자의 의미를 꼼꼼히 풀어낸다. 예를 들어 다섯 번째 장인 '장기(將器)'에서 기가 도량, 능력, 인재라는 의미로 쓰였음을 이야기한다. 23번째 장인 '중형'에서 나오는 '태만(怠慢)'의 태는 마음 심(心)과 허물어질 태(台)가 더해진 것으로서, 장수가 위엄을 세우지 않으면 병사들의 마음이 허물어져서 패한다고 설명한다.

장수의 자질을 말하는 부분은 현재에도 모두 진리로 적용된다. 그러나 전투의 기술을 이야기하는 부분은 지형, 매복, 퇴각, 정찰, 수성 등의 내용이어서 현재에 직접 적용하기는 어렵다. 그래도 편저를 한 문이원은 <장원>의 원문 내용에 한정하지 않고 다양한 고사와 문헌 들을 인용해서 풍성하게 설명한다.

장수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지금도 빛을 발하는 이 책을 통해 제갈량의 지혜를 배워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