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읽은 스릴러 소설은 시한부 선고를 받은 남자가 주인공이었다. 절망하고 분노하고 부정하는 대신 그는 죽음을 받아들이고 '시한부 인생'이라는 강력한 무기로 내세웠다. 뜬금없이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기자의 글쓰기>(2016, 박종인 지음, 북라이프 펴냄)도 그처럼 강력한 무기를 제시한다는 사실이었다. 글이 지배하는 시대에 걸맞는 강력한 무기, 즉 '기자의 글쓰기' 말이다.

정말 오랫동안 글은 가진 자들만 누릴 수 있는 사치재였다. 옛날에는 양반이 아니면 글을 쓰기는커녕 읽지도 못했다. 신분 제도가 철폐된 후에는 작가와 기자들처럼 글을 쓸 수 있는 한정된 사람들이 글을 썼고, 일반 대중은 그렇게 쓰인 글을 읽었다. 그러다가 오마이뉴스처럼 시민 기자가 출현하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다양한 SNS를 통해 누구나 글을 쓰고 읽는 시대가 되었다. 같은 업적을 내도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대접받는 세상이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라도 제대로 된 글쓰기를 배워야 한다.

<기자의 글쓰기>는 제목처럼 기자가 쓴 책이다. 벌써 24년 차다. 독자는 중학교 1학년 수준이다. 마감 시간은 정해져 있다. 글을 쓰는 분량은 한정적이다. 그러니 글쓰기가 빡세다.(여기서 '빡세다'는 '힘들다'를 속되게 이르는 말로 국어사전에 새로 등재되었으니, 격은 좀 떨어지지만 써도 되는 단어다.) 그렇게 단련된 글쓰기 요령을 우리에게 전해준다.

저자가 강조하는 요령은 쉽고, 짧고, 팩트(fact)에 근거해야 한다는 세 가지뿐이다. 이 원칙을 가지고, 글을 읽을 이들을 최대한 배려하면 된다. 그래서 '주장이 아니라 팩트를 담는다, 기승전결의 구성이 있다, 첫 문장과 끝 문장에 힘을 쏟는다, 리듬이 있다, 입말로 쓴다, 단순하다, 궁금함이 없다'라는 전략을 소개하고, 이를 차근차근 구현한다.

이해하기 어렵지 않은 항목들인데 막상 적용하려면 막막해지는 항목들을 잘 짚었다. 그리고 꼭지 말미에 실린 첨삭 지도가 유용하다. 저널리즘 아카데미 수강생들이 쓴 초고가 먼저 주어지고, 그 꼭지에서 설명한 내용들로 첨삭 지도한 완고가 나오며, 초고에 대한 분석과 총평으로 이어진다. 이 Before & After를 보고 나면 좋은 글은 이런 거구나 어렴풋하게나마 감 잡을 수 있다.

서문에서 저자는 이 책을 한 번 정독하면 글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지고, 두 번 읽으면 글을 쓰게 된다고 썼다. 제대로 읽었다면 두려움이 없어졌어야 하는데, 설렁설렁 읽었더니 글이 아직 두렵다. 얼른 제대로 두 번 읽어서 이 책에서 손을 뗄 수 있기를 바란다. 배를 타고 강을 건넌 이가 배에서 내린 후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길을 떠나듯이 말이다.

시한부 인생이라. 누구든 태어난 이상 죽는 것이 당연하니 모두가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 보통은 천년만년 살 것처럼 생활하지만 말이다. 그러다가 정말 구체적으로 생의 남은 날짜를 통보받는다면 나는 어떤 모습을 보일까?

요즘 가끔 보는 케이블 TV 드라마에서, 남편을 일찍 잃고 딸을 하나 키우며 친정 부모님과 남동생까지 건사하는 60대 여성이 간암 판정을 받은 장면이 나왔다. 치료하지 않으면 2~3개월 남았고, 수술해도 완치율이 20% 미만이라고 했다. 그는 은행 통장에 비밀번호를 적어놓고 보험사 전화번호를 챙기고 운영하는 가게를 건사하는 등 차분히 마지막을 준비하다가, 지금까지 가족들이라는 짐을 지고 어렵고 힘들게 살아왔는데 왜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났느냐며 통곡했다. '항상 든든한 산 같던 여자가 무너졌다'고 드라마에서는 표현했다. 여기서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5단계'를 이야기할 필요는 없겠다.

그러나 <죽기 위해 산다>(2016, 더글러스 프레스턴, 링컨 차일드 지음, 문학수첩 펴냄)의 주인공인 기드온 크루는 시한부 선고를 받고 무너지지 않았다. 대신 ''시한부 인생'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들었다고 스스로를 표현했다. 대학교수였고 나라의 극비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내부 고발을 하려다 기드온이 보는 앞에서 사살당한 아버지, 그렇게 남편을 잃고서 약물에 빠져 삶과 가정을 포기하다시피 한 어머니, 나라를 팔아먹은 배신자의 아들이라는 놀림. 이 모든 것을 딛고 기드온은 명석한 두뇌로 공부하고 지금은 로스앨러모스 국립연구소에서 일한다.

 그러다가 어머니가 죽기 직전에 아버지의 죽음의 진실을 알려주고, 기드온은 기가 막힌 작전을 꾸며 아버지의 복수를 해낸다. 원래 미술관에서 그림을 훔치고 해킹이며 다양한 전적이 있긴 하지만, 본격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 것. 그를 계기로 EES라는 사설 업체에 발탁되고, 그들의 의뢰와 '시한부 선고'를 동시에 받는다. 그렇게 기드온은 '시한부 인생'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들고, 끝없는 추적과 생명의 위협, 두뇌 싸움의 세계로 들어간다.

사람의 특징을 파악하고 모사하는 주인공의 능력이 뛰어나고, 순간을 판단하는 순발력과 사물을 암기하는 지성도 대단하다. 거기에다 사람에 대한 애정과 정의감도 갖추었으니 더 바랄 것이 없다. 현실에서 보면 지력이든 경제력이든 정치적 권력이든 어떤 힘을 가진 사람이 정의감을 잃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그래서 이런 인물이 참 반갑다.

너무 뛰어난 인물이어서 오히려 거리감이 좀 느껴졌지만, 그의 활약을 지켜보는 재미가 있었다. 부디 MRI가 그를 끌어들이기 위해 조작된 것이어서 오래오래 그의 활약을 볼 수 있기를.

전 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민족으로 꼽히는 유대인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탈무드>다. 우리는 <채근담>과 <이솝 우화>를 섞어놓은 것처럼 말랑말랑한 다이제스트 <탈무드>에 익숙해져 있어서 가볍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다양한 직업에 종사한 사람들이 500년 넘는 기간 동안 생활과 학문, 율법을 연구해서 만들어낸 책이기 때문에 양과 내용이 방대한 대작이다. 노벨 수상자의 10% 이상을 차지하는 지성과 더불어, 세계 금융의 핵심을 운영한다는 현실성까지 유대인의 잠재력과 능력은 대단하다.  

<성경>과 함께 유대인의 삶을 규정하는 <탈무드> 속 지혜를, 1500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한 것으로 선별하여 공병호 소장님이 우리에게 제시한다. <공병호, 탈무드에서 인생을 만나다>(2016, 공병호 지음, 해냄출판사 펴냄)를 통해서다.

표지에는 손으로 쓰고 채색하여 만들어낸 오래된 느낌의 책이 실려 있다. 두루마리에 이어 이런 책으로 <탈무드>를 읽었을 천 년 이상의 유대인들이 연상된다. 책은 총 다섯 개 장으로 구성되는데, 부, 노력, 가정, 성품, 영혼이라는 항목들로 구성된다. 그 많은 내용 중에서 45개 덕목을 골라서 꼭지의 맨 위에 출처와 함께 소개한 다음, 그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첫 번째 꼭지는 '돈이 없으면 자유를 잃는다'여서 참 적나라하다. 많은 이들이 그렇게 생각하지만 속물로 보일까 봐 입밖에 내기는 쉽지 않은 이야기. <탈무드>에는 더 적나라하게 '우리 몸속의 모든 장기는 심장에 의존하는데, 심장은 지갑에 의존한다'라고 쓰여 있다. 그래서 이들은 <베니스의 상인>에서 탐욕스러운 샤일록으로 등장하고, 여러 나라에서 쫓겨나는 비운을 겪는다. 그러나 이들의 말처럼 날이 갈수록 돈은 더 큰 힘이 되고, 금수저는 출발부터 우월하니 이 말을 부정할 수 없다. <탈무드>는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돈을 바라보고 돈의 중요성을 인정한 다음 게으름 피우지 말고 실용적인 기능과 기술을 습득해서 일함으로써 가정을 꾸려갈 돈을 벌라고 조언했고, 이제 이 조언이 꽃피고 있다.

<탈무드>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지혜이니, 2장에서는 진리, 명성, 분노, 행운 등 삶의 노력을 담았다. 3장은 가정 편인데, 구약성경에서도 알 수 있듯 워낙 가부장적인 유대인이 워낙 예전에 쓴 책이어서 동의할 수 없는 부분도 꽤 있었지만 참고할 만한 내용도 있었다.

4장 '유연함이 딱딱함을 이긴다'는 전형적인 자기계발서의 내용이어서 부담 없이 읽었고, 5장 영혼 관리 편에서는 기독교의 원류인 유대교에 대해 들을 수 있는 기회였다.

이 작은 책으로 <탈무드>를 모두 알 수는 없다. 그 오랜 시간과 공간을 넘어 현재 우리나라에도 그 지혜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이 흥미롭다. 게다가 이렇게 현실적이고 실용적이라는 점에 다시 놀랐다. <탈무드> 전체가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