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는 거리가 먼 나도 무용가 홍신자 선생님의 이름을 들은 적이 있으니, 이분의 명성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자유를 위한 변명>(2016, 홍신자 지음, 판미동 펴냄)의 표지 날개에 있는 저자 소개를 보니 입이 떡 벌어진다. 무용가와 명상 수행자, 작가라는 타이틀과 함께 이사도라 덩컨, 니진스키, 마사 그레이엄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는 설명이 그렇고, 만 28세에 뒤늦게 무용계에 입문해서 그토록 빛나는 성취를 이루었다는 점이 더 그렇다.

<자유를 위한 변명>은 1993년에 같은 제목으로 나왔던 책을 이십여 년 만에 개정한 것이다. 초판은 해골을 옆구리에 끼고 춤을 추고 있는 젊은 저자의 모습이 표지를 장식하고 있다. 저자가 해골을 만나고 가까이하게 된 이야기가 이 책에 나온다. 무작정 건너가 무용을 배운 미국 생활 10년을 뒤로하고, 죽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인도에 갔을 때의 이야기다. 홍차로 유명한 다르질링에서 그는 티베트 사람들이 죽은 이에게 베푸는 '바르도 퇴돌'을 만난다. 우리나라의 49일재와 비슷한 그 의식을 라마승에게 배우던 그는 죽음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 죽음의 상징인 해골과 함께 지내기로 한 것. 어렸을 때부터 죽음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해골을 통해, 명상 수행을 통해, 춤과 노래와 고행을 통해 죽음에 가까이 다가가고, 마침내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하와이 섬의 볼케이노로, 인도의 다르질링으로, 우리나라의 안성과 담양으로, 미국의 뉴욕으로 종횡무진하게 된다. 해외여행이 자연스럽고 온라인으로도 외국인과 소통할 기회가 많은 요즘이 아니고, 그가 미국으로 무작정 떠난 것은 1970년도 안 되어서였다. 자유에 대한 개념조차 많지 않았던 그때, 더구나 미혼의 여자였으니 혼자 감당해야 할 자유의 무게가 얼마나 컸을까 싶다.

무용은 참 일회적인 예술이다. 그렇게 순간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무용가로서 삶과 죽음에 모두 충실한 저자의 모습을 보면서 누구보다 젊고 자유로운 영혼을 느꼈다. 끝없이 춤을 추고 끝없이 노력하며 사는 것은 옆에서 보기에도 참 고통스러웠지만, 그런 고통 속에서 태어난 깨달음은 아름다웠다. 자유는 변명이 필요 없고, 자신의 힘으로 쟁취해야 하는 큰 덕목이었다.

<브루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2016, 휴버트 셀비 주니어 지음, 자음과모음 펴냄)는 영화로 먼저 알게 되었다. 지금 찾아보니 우리나라 개봉 당시 영화 포스터에는 '브룩크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라고 적혀 있다. 영화를 본 것은 아니다. 영화가 개봉한 1990년에는 내가 고등학생이어서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를 볼 수 없었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굳이 비디오나 DVD로 찾아서 볼 일이 없었다. 그러나 제목은 가끔 들었기 때문에 궁금하던 차에 이 책이 나왔다고 해서 읽게 되었다.

<브루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는 단편 6편이 모인 연작 소설이다. 처음에는 개별 작품으로 발표했다는데, 나중에 이를 발전시켜 이 작품으로 묶었다고 한다. 그래서 주인공이 다르고 배경이 다른 이 이야기들이 묶여 '브루클린'이라는 퇴폐적인 세계를 만들어내고 있다. 브루클린은 이 연작들이 일어나는 지리적 배경이다. 노동조합이 힘을 쓰던 사회, 게이들이 활보하던 사회, '벤제드린'로 대표되는 각성제와 환각제가 만연하던 사회.

이 책의 초판이 나온 것이 1957년이니, 미국의 중산층이 '풍요한 사회(affluent society)'를 구가하던 시기다. 그러나 이 책의 주인공들은 중산층과는 거리가 멀다. 군부대 근처의 허름한 밤샘 식당에서 죽치면서 시간을 죽이고 패싸움을 벌이는 놈팽이들(하루 벌어 하루살이), 여장을 하는 멋쟁이 게이이고 게이라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하지만 소심해서 자기 사랑을 쟁취하지 못하는 퀸(동성애자) 조지(여왕은 죽었다), 오토바이를 갈망하는 소년(아기는 셋을 만든다), 젖가슴으로 승부하는 창녀(트랄랄라), 썩어빠진 노조 대변인(파업), 그 사회를 구성하는 남자들과 여자들(랜드샌드)의 이야기는 시종 맥주 냄새와 지린내, 시큼한 땀냄새와 정액 냄새가 진동한다. 비겁하고 치졸하고 무책임해서, 이 모든 이들이 첫 단편의 제목처럼 '하루 벌어 하루살이'처럼 산다.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는 듯한 심리 묘사 덕분에 독자들은 여장 남자가 되었다가 동성애자가 되었다가 창녀가 되었다가 파업 현장에 서게 된다. 술과 약에 취해 흐느적거리고, 여장 남자들의 파티에 참석하고, 아내를 때리는 남자가 된다.

휴버트 셀비 주니어는 병 때문에 진통제와 헤로인에 의존해 지냈고, 정규 교육을 얼마나 받았는지는 모르겠다. 문법, 구두점, 어법에 얽매이지 않고 썼다는데, 이 책에도 그 점이 뚜렷해서 더 자유롭고 더 환각적인 느낌을 준다.

1950년대 미국 사람들의 퇴폐적인 문화는 참 충격적이었고, 지극히 현실적이어서 더욱 매력 있다.

무령왕릉은 초등학교 다닐 때 견학을 다녀왔던 것 같은데, 기억에 선명하지 않다. 그때만 해도 이 왕릉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몰랐으니, 작은 복도를 지나 나오는 텅 빈 묘실이 그리 인상적이지 않았으리라. 그러다가 최근에야 무령왕릉에 대해 엄청나게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이 왕릉이 백제의 왕릉으로서는 유일하게 도굴당하지 않은 처녀분이었다는 것이 하나이고, 또 하나는 이렇게 중요한 왕릉을 겨우 하룻밤 만에 발굴했다는 것이다. 첫 번째 사실은 백제 멸망부터 지금까지 1,000년이 넘게 워낙 오랜 세월이 흘렀고, 중간에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조직적인 수탈을 겪었기에, 슬프지만 이해할 수 있는 문제다. 그러나 두 번째 사실, 즉 무령왕릉을 하룻밤 만에 발굴했다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1971년은 일제 강점기를 지나고 한국전쟁도 거친 후 재건이 얼추 끝나서 한창 발전하던 시기였고, 정치적으로는 군부 독재 때문에 권력이 집중되어 일단 보기에는 안정된 상태였다. 그런데 뭐가 급하다고 이 거대한 발견을 하룻밤 만에 훼손할 수 있었을까.

이 궁금증을 완전하게 해소해준 것이 바로 <직설 무령왕릉>(2016, 김태식 지음, 메디치미디어 펴냄)이다. 저자는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신문기자로 재직했다. 중간에 고고학과 고대사 분야를 전공해서 역사학 석사 학위를 받았고, 이를 바탕으로 풍납토성, 화랑세기를 연구하고 책을 냄으로써 '언론인에 의한 고고학 발굴기'의 시원을 열었다고 소개되어 있다. 이렇게 보면 저자는 정통 역사학자라고 보기 어렵다. 그러나 차라리 다행인 것이, 우리나라는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식민사학이 뿌리를 내렸고, 그 제자들이 여전히 학계를 장악하고 있어서 새로운 의견을 내기 어렵다는 책을 읽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선입견 없이 객관적으로 무령왕릉 발굴이라는 사건을 바라보며 철저하게 해부하고, 무령왕릉의 의미에 대해서도 각종 사료를 들어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1부는 무령왕릉의 발견부터 발굴까지를 시간순으로 차근차근 설명한다. 무령왕릉이 발견된 것은 1971년이지만, 백제의 터전인 송산리 고분군을 포함해서 우리나라 방방곡곡을 뒤지고 수탈한 일제의 이야기를 먼저 해야 한다. 그래서 이야기는 1927년 공주공립고등보통학교에 교사로 부임하는 가루베 지온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일제는 가루베 지온의 몸을 빌려 공주를 착취하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시간과 공간, 학술적 배경이 차근차근 전개되면서 분위기가 무르익고, 마침내 1971년 7월 5일 무령왕릉이 발견된다. 그 급박한 현장을 저자는 밀착 취재해서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토대로 짜 맞춘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고, 건국 이래 처음이라는 충격으로 집단 히스테리에 빠진 분위기여서 기록조차 부실하기 때문이다. 기자들이 난입해서 사진을 찍으며 현장을 훼손한 것, 아무리 나무뿌리에 얽혀 있었다지만 삽으로 떠서 가마니에 담아 들어낸 것, 관재를 젖은 천으로 감싼 채 며칠 방치해서 곰팡이가 핀 것, 사진이 거의 없고 기록조차 부실한 것. 저자가 설명하는 이런 사실들을 읽을수록 그 당시의 상황이 너무 안타깝고 화가 난다. 무령왕릉에서 나온 유물만으로 공주박물관을 채울 정도였으니, 다른 무덤들이 도굴되지 않았다면 백제 문화의 찬란함이 얼마나 빛났을까.

2부는 여기에서 발굴된 유물을 하나하나 짚으면서 각각의 상태와 재질, 형태, 의미 등을 고증한다. 백제는 백제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고려 때 지어진 <삼국사기>, 일본의 역사서 <일본서기>와 이어지며 우리나라 고대사의 사실을 풍성하게 하기 때문이다.

나는 역사에 대한 지식이 없기 때문에 이 책에 실린 사실에 대해서 비평할 입장이 못 된다. 그러나 저자의 주장을 차근차근 따라가다 보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할 만한 부분이 많았다. 이 책은 앞부분에 실린 무령왕릉 발굴기의 전모를 읽는 것도 의미 있지만, 뒷부분에서 여러 학자들의 이론과 사실을 비교함으로써 백제사, 고대사를 종합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본다. 벌써 45년이 지났지만 지금이라도 무령왕릉과 무령왕의 의미에 대해 재검토하고 책임 있는 반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큰 일을 해준 저자께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