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우리나라 작가들보다도 더 많이 쏟아져 들어오는 일본 작가들 중에서 오쿠다 히데오는 내게 특별한 작가다. <공중그네>의 이라부 의사도 그렇고, <남쪽으로 튀어>의 독특한 부자도 그렇고. <올림픽의 몸값>이라는 본격 서스펜스도 냈지만 그는 내게 '유쾌한 세상'을 만들어주는 작가로 각인되어 있다. 그래서 그런지, 이번 책 <버라이어티>(2017, 오쿠다 히데오 지음, 현대문학 펴냄)를 읽으면서 약간 당황스러웠다. 그동안 익숙했던 재기발랄함 대신 자연스러움과 편안함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간 여기저기 잡지에 수록했던 단편 6편에다 아주 짧은 이야기 한 편, 대담 두 편이 들어가서 책 한 권을 만들었다. 준대기업인 광고 기획사를 다니다가 독립해서 회사를 차리게 된 38세 나카이 가즈히로의 이야기를 담은 <나는 사장이다!>와 <매번 고맙습니다>는 사장이라는 자리의 무게감을 잘 담았다. 저자가 후기에 쓴 것처럼 장편으로 펼쳐나가도 좋을 만큼, 사장이며 동료며 부하며 거래처 사람의 캐릭터가 살아 있다. 특히 거래처의 '가네코 사장'은 처세술이 끝내주는 사람이어서, 이 단편을 장편으로 만든다면 <공중그네>처럼 활력소가 되기에 충분하겠다. 나카이의 무거움이 가네코의 생기로 상쇄되는 케미도 괜찮아 보여서, 그들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었다.

<드라이브 인 서머>는 저자의 장기를 잘 살려서, 이야기가 끝없이 산으로 간다. 히치하이킹을 허락하며 생기는 일을 담았는데, 정말 이러겠어 싶으면서도 다음 페이지에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궁금해진다.

<더부살이 가능>은 참 일본스러운 장소인 온천장을 배경으로 한다.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에게서 돈을 훔쳐 도망 나온 에이코는 아들과 함께 온천장에서 일한다. 사감처럼 깐깐한 도시코, 도시코의 먹이가 된 스즈키 교코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세븐틴>은 열일곱 난 딸아이를 둔 중년 엄마의 시점이다. 딸아이는 크리스마스이브에 첫 경험을 하려고 하고, 우연히 그것을 알게 된 엄마가 어떻게 대응할까 고민한다. 딸을 키우는 엄마로서, 같은 여자로서 딸에게 어떻게 대할까 고민하는 여성의 섬세한 심리를 담아서 흥미롭게 읽었다. 내가 이런 상황이 된다면 이 사람처럼 너그럽게 행동할 수 있을까?

마지막 단편인 <여름의 앨범>은 참 잔잔하다. 초등학교 2학년 남자아이의 여름은 자전거를 배우는 일로 분주하다. 그 여름은 엄마와 가장 친한 이모가 암으로 세상을 떠난 여름이기도 하다. 태어난 사람은 죽게 마련이고, 그 후에도 남은 사람들은 살아가게 마련이다. 삶과 죽음을 조용하게 펼쳐놓은 이 이야기로 <버라이어티>는 단정하고 깔끔하게 마무리된다.

대담 2편은 오쿠다 히데오의 작품을 더 읽어서 그를 파악한 다음 읽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해서 미뤄놓았다.

오쿠다 히데오는 마냥 유쾌한 작품만 쓰는 작가가 아니라는 점을 깨달으면서 새로운 면을 보았다. 그가 더 편하게 글을 술술 쓸 수 있어서 더 많은 작품을 만나게 되길 기대한다.

올겨울에는 딸아이와 일본 여행을 가기로 약속했다. 참으로 다양한 일본 애니메이션을 섭렵하는 아이는 간단한 생활 일본어가 가능할 정도로 빠져 있다. 넓고 넓은 일본 중에서 아이가 지목한 것은 유니버설 스튜디오 재팬이 있는 오사카. 그래서 여행 준비차 미리 읽게 된 것이 <리얼 오사카 교토>(2017, 황성민, 정현미 지음, 한빛라이프 펴냄)이다.

여행지의 정보가 계속 업데이트되는 만큼 책은 2017~2018 최신판이다. 올겨울에 이 책을 들고 가도 될 정도다. 깨알 같은 글씨에 여백도 별로 없이 꽉 찬 사진이 더해진 데다 무려 700페이지가 넘는다. 오사카, 교토, 고베, 나라를 묶어 주고쿠 지방의 간사이를 폭넓게 담았다. 간사이는 일본 전체에서 차지하는 면적이 큰 편은 아니지만, 오사카는 도쿄에 이어 일본 제2의 경제 도시이고, 교토는 도쿄로 천도한 1868년 이전까지 일본의 수도였기에 역사와 문화가 풍부하다. 그러니 오사카와 교토를 여행한다면 일본의 과거와 현재를 보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저자들은 우선 간사이라는 지방을 소개한다. 여행 일정을 짜는 데 가장 중요한 교통편과 여행지가 먼저 제시되기 때문에, 지방 각각을 구체적으로 알아보기 전에 큰 틀을 세울 수 있다. 필수 여행지, 비밀 여행지, 베스트 오브 베스트 여행지 등 저자들이 추천하는 여행지 리스트도 풍성하다.

파트 2는 조금 더 깊이 들어가서 테마별 여행지, 요리, 쇼핑이라는 키워드로 간사이를 살펴본다. 테마로는 온천, 체험, 테마파크, 야경 등 다양하고, 시간과 일정이 자유롭다면 축제를 챙겨 보는 것도 좋겠다. 여행의 즐거움은 먹는 것. '입이 즐거운 간사이 요리'에는 라멘부터 스시, 디저트까지 여러 요리가 거론되는데, 현지인이 추천하는 맛집 베스트 5가 제공되는 것이 특징이다. 현지인들이 추천한다니 믿음이 간다. 쇼핑도 빼놓을 수 없는 여행의 재미다. 아는 만큼 보일 뿐 아니라 돈도 아낄 수 있다는 것은 매력적인 유혹이다.

파트 3부터 진짜 실전 여행이다. 파트 3은 오사카, 파트 4는 교토, 파트 5는 고베와 나라 편이다. 각 지역을 5~6개 구역으로 나눈 다음 각 구역 안에서도 섹션을 다시 나눠 꼭 보아야 할 것들을 조목조목 설명한다. 구역 안의 추천 코스를 제공하기 때문에, 이 책을 통해 눈과 머리로 먼저 여행한 다음 가장 마음에 드는 코스를 정하면 알차게 여행할 수 있겠다.

파트 6은 나처럼 외국 여행에 초보인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정보다. 여행 베테랑이라면 아무 두려움이 없겠지만 나는 여행이라는 마음을 먹고부터 아주 막막했다. 이 책에서는 항공권 구입부터 숙소 정하기, 교통 패스 선택하기, 입국하기, 이동하기 등 여행 과정에 맞춰 구체적으로 짚어주니 참 든든하다.

패키지 여행은 자유가 없지만 여행 준비에 아무것도 신경 쓸 것이 없어서 편하다. 여행을 제대로 하려면 공부해서 하나하나 만들어가는 것이 어렵지만, 그렇게 만드는 것도 이미 여행 시작이다. 올겨울을 위해, 정보를 가득 담은 이 책을 꼼꼼하게 읽으면서 지금 여행을 시작해야겠다.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해서 귀가한 다음 어영부영하다가 잠을 잔다. 하루는 길고 1년은 짧다. 늘 같은 곳에서 제자리걸음을 하는 듯, 답답한 나날들이다. 다람쥐 쳇바퀴 돌리는 것처럼 아무 발전 없는 나날이 아니라 나선을 걷고 있는 거라면 어떨까? 같은 자리로 돌아온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사이 아주 조금은 발전해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는 나선으로 걷는다>(2017, 한수희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펴냄)는 영화를 전공하고 잡지사에서 기자 생활을 하고, 영화 만들기를 가르치고, 매거진에 칼럼을 연재하고, 북카페를 운영하다가 지금은 작업실로 바꾸어 인생을 즐기고 있는 저자의 책이다. <우리는 나선으로 걷는다>는 매거진에 책과 영화에 대해 썼던 칼럼을 모아 엮은 개정판이라고 한다. 영화를 전공하고 평생 책을 읽었으며 기자 생활을 했으니 책과 영화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으리라. 20대에 인도 여행을 했고, 연애를 여럿 했고, 많이 걸었고, 어떤 책과 어떤 영화에서 어떤 대목에 큰 영향을 받았는지, 이 책에는 조근조근 써 있다.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놓는 것은 쉽지 않을 터다. 그것도 빛나는 성취를 담은 이야기가 아니라 어느 정도는 실패와 좌절과 외로움이 듬뿍 들어 있는 이야기이니 말이다. 그러나 저자는 그런 경험을 '나선으로 걸었다'고 표현한다. 늘 같은 자리에 있는 듯하지만 조금씩 나아갔다고. 그래서 그렇게 열심히 살아온 나날들을 후회하지 않고, 먼 훗날 노인정에서 풀어놓을 수 있는 추억을 가득 담았다고 말한다. 그런 저자의 이야기는 영화와 책을 만나 더 풍성해진다.

저자는 자신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담담할 것', '씩씩할 것', '우아할 것'을 주문한다. 돈을 많이 벌 것, 많이 누릴 것, 출세할 것이 아니다. 위만 보고, 또는 앞만 보고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인생을 제대로 사는 것에는 담담함과 씩씩함, 우아함이면 충분하겠다. 그래서 오늘과 재능, 직업, 상처, 나이 듦, 죽음, 용기, 실패라는 항목들을 풀어놓는다. 무작정 핑크빛이고 모든 일이 잘 풀리고 우연이 착착 맞아떨어지는 책과 영화가 아니라 실패와 모자람과 극복을 잘 담은 책과 영화를 들어 보여주면서, 이렇게 살자고 초대한다. 조급해하지 않고 초조해하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의 눈을 신경 쓰지 않는다면 우리의 삶은 더 행복하고 더 충만해질 거라고.

그의 글에 위로받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