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랜만에 호주에 살고 있는 친구가 카톡으로 연락을 해왔다.

나는 집중하여 서평을 읽고 있던 중이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독서마라톤 심사를 맡게 되어 여러 부수의 노트에 빼곡히 채워진 서평들을 읽느라 애쓰고 있는중에 진동으로 해놓은 핸드폰이 드르륵 떨리는 게 느껴졌다.

"잘 지내?"

가벼운 인사로 시작되었으나 이상한 예감이 훅 지나갔다. 먼저 치매가 심한 내 어머니가 고관절 수술을 했고 그로인해 내가 안녕하지 못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끝에 "엄마는?"하고 물었다.

사실 그녀의 엄마에 관한 대답을 꼭 듣고 싶지 않았다. 내 무의식적 직감이 적중할까봐 나는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지난달 추석을 전후로 나는 마음이 무겁고 우울했었다. 그녀의 엄마는 내 집에서 3분거리인 같은 아파트의 1004호에 살고 계셨다. 연하고 부드러운 쇠고기라도 한근 끊어서 찾아가고 싶다는 마음과 돌덩이처럼 단단하고 울퉁불퉁한 젖가슴을 웅켜쥐고 고통스러워하는 어머니를 마주대할 자신이 없어 피하고 싶다는 마음이 대결하면서 연휴 전후를 보낸 것이다.

항암치료를 받고 있던 중 딱 한 번 찾아뵈었다. 환자에게 좋을 음료와 과일 약간을 들고 찾아갔을 때 어머니는 마치 딸을 만난듯 환히 웃으시며 또 우셨다. 친구가 한국에 있을 때 자주 취한 친구를 집에 데려다주느라 밤늦은 시간에 집에 들른적이 여러차례 있었고, 친구가 외국에 나간 뒤로 내가 동네 일을 하면서 업무적으로 어머니를 찾아뵌 적이 가끔 있었지만 어머니가 암덩어리를 끌어안고 아파하는줄은 꿈에도 몰랐다. 멀리 타국에 나가있는 딸 대신 나를 딸처럼 의지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렵사리 유방암 이야기를 하셨을 때 나는 억지를 부려 기어이 어머니의 검게 부풀어오른 암덩어리를 보았고 우린 끌어안고 잠깐 울었다. 그것이 어머니와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친구는 지난 여름 메르스로 온나라가 불안에 빠져있을 때 친정어머니를 보냈노라 이야기했다. 두 달 뒤 시어머니도 떠나셨다고 했다. 두 분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가셔서 '그곳에서' 함께 계실 거라며 자신을 위로했다.

독서마라톤 심사를 하던 중이고 빨리 마쳐야하는 상황이라 나는 그 순간의 감정을 깊이 만날 수 없었다. 서둘러 심사를 마친 후 돌아와 저녁밥상을 차리면서 드디어 억눌렀던 슬픔들이 스멀스멀 기어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친구의 어머니는 결국 내 어머니의 모습과 오버랩되었다. 항암치료로 머리가 빠진 것을 가리기위해 헝겁모자를 쓰셨던 어머니의 얼굴과 못생긴 바위처럼 울퉁불퉁한 가슴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또한 쑥스러워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마치 엇그제의 만남처럼 너무도 생생한 아픔으로 여울져 화장실로 달려가 소리죽여 울었다. 피곤에 전 남편이 침대에 누워 쉬고 있던차였기에 굳이 식구들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다.

어느날 우연히 카톡을 뒤적이다가 어머니의 전화번호를 다른 사람이 쓰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순간적으로 어머니와의 영영 이별이 떠올랐다. 하지만 확인하지 않았다. 동네 어른들이 다 아는 우리들의 관계였고, 마치 딸처럼 생각하고 이야기하곤 했었기에 경로당의 어느 누구에게 물어보아도 들을 수 있었으리라.

내 슬픔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나는 지금 당연한 애도의 과정을 겪고 있는 중이지만 매우 혼란스럽다. 내가 평소에 느끼고 있던 것보다 더 깊은 무의식적 책임감과 함께 애착이 형성되어 있지는 않았는지를 생각해본다.

슬픔이 내게 손 내밀 때 부인하거나 거부 내지는 억압하지 않고 흘러가는 물처럼 그것들을 마주하고 느끼고 자연스레 흘러가도록 허락할 것이다. 지금 알록달록 물든 아름다운 가을 단풍도 자연의 순리에 따라 곧 질 것을 아는 것처럼 인간의 삶도 피고 지는 꽃처럼 순환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이별의 아픔도 점차 퇴색되어 아름다운 기억들만 정금처럼 남을 것이다. 조금은 쓸쓸한 조금은 우울한 또 조금은 사색하고 싶은 가을날이다. 서둘러 쪼그라든 엄마의 합죽한 얼굴을 마주하러 병원에 가야겠다.

죽음, 이별, 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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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노자사상에 대해 완전 백지상태라고 할 수 있다. 공부하는 동안 공자나 맹자에 대해서는 조금씩 접할 기회가 있었으나 솔직히 노자에 대해서는 거의 접할 기회가 없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EBS 인문학특강을 보았더라면 참 재미있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조곤조곤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최진석 교수의 노자인문학은 노자에 관해 아무런 지식이 없는 내 마음에 편안하게 스며드는 햇빛처럼 느껴졌다. 생각이 어떤 메커니즘에 의해 탄생하고 또 발전해 가는지, 인류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그 영향 아래서 인간은 어떻게 변화되고, 인간사회의 균형을 위해 어떤 사상들이 만들어지고 유지, 발전되어 왔는지에 대한 내용들을 쉽고 재미있게 들려준다.

나를 '나'이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진정 내가 원하는 나의 삶을 살고 있는가? 내가 옳다고 믿는 신념은 진정 옳은 것인가? 내가 안다고 하는 것들은 진정 아는 것인가? 수많은 질문들이 내 안으로 쏟아졌다. 인간의 본성, 본질에 대해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으로, 경험을 통해 알게되는 심리현상을 정의한 부분에서는 삶을 꿰뚫는 강렬한 통찰이 있다. 이러한 부분들은 현대 인문학 특히 심리학 분야에서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타인을 아는 자는 지혜로울 뿐이지만, 자신을 아는 자라야 명철하다. P208>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타인에 대해 자신이 보고 느낀것이 전부인양 생각하고 그 프레임에 맞추어 관계를 만들어 나가지만 실제 그들에 대해 아는 것은 관념, 이념, 가치관을 가지고 아는 것이며 자신에 대해서 아는 앎이라야 자기 내면에서 주관과 객관의 분열이 통합된 것이라는 노자의 가르침은 시대를 초월하는 놀라운 통찰이다. 또한 우리가 진실이라 믿는 것들이 또한 진실이 아닐수도 있다는 역설이 가진 놀라운 지혜는 강렬한 파문으로 내 가슴을 흔든다. 무엇보다도 저자가 친구와 대포 한 잔 하면서 나누는 이야기속에 '배움'에 대한 내용들은 내 뒤통수를 후려치는 듯한 내용이었다. 나는 아직도 공부를 하기위해 일주일에 서너번씩 서울에 나간다. 혹시 나는 공부에 중독되거나 습관이 되어버린 것은 아닌지 치열하게 들여다봐야할 이유가 분명해졌다. 그동안의 공부를 통해 나를 표현하고 드러내는 일을 하고 있지만 아직도 나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미진한 느낌을 지우기위해 공부에 매달리는 내 모습을 들여다보는 기회가 되었다. 좀 더 냉철할 필요가 있으며 그 경계가 약간 모호한 상태이더라도 그것 자체로 의미있음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정리된다.

어둠이 있기에 빛이 더 환하듯이 서로 반대되는 것들, 대립면이 공존할 때는 어떤 특정한 가치가 우월한 지위를 가질 수 없다는 이론은 얼마나 공평하고 진실한가.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어떤 것은 옳고 좋으며 어떤 것은 틀리고 나쁘다는 상을 짓지 않는 것이 진정한 도가 아닐까.

어쩜 이렇게 재미있고 가볍게 이 깊고 넓은 이야기들을 담아냈을까. 최진석 교수의 다른 책을 찾아 읽어야겠다. 천천히 여유롭게 다시 한 번 정독하며 사유해야할 책이다.  

생각하는힘노자인문학, 최진석, 위즈덤하우스, 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