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령자를 검색하니 인도네시아의 157세 할머니에 대한 기사가 뜬다. 2010년에 게시된 글이니 지금도 살아계신지는 모르겠다. 2014년 9월 1일자 세계일보 기사에는 127세의 멕시코 여성이 세계 최고령자라고 소개하고 있다. 사진속의 할머니 모습은 편안해보이지 않았다. 할머니는 과연 기네스북에 최고령자로 오르는 것에 대해 기쁨을 느끼실까? 현재의 삶에 행복을 느끼실까? 삶에 대해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참 궁금하다.

세가지 거짓말에 대해 많이 들었다. 노처녀가 시집가기 싫다는 말과 노인이 빨리 죽고싶다고 말하는 것, 장사가 밑지고 판다고 말하는 것이 그것이다. 이것들중에 두번째, 노인이 빨리 죽고 싶다고 말하는 것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기로 하자.

 

나의 할머니는 아흔넷에 돌아가셨다. 동네에서 최고령자였던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아래윗동네 사람들이 모두 모였고 막걸리 사발을 돌리며 긴긴 시집살이에서 풀려난 엄마를 격려했다.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몇 년전부터 정신이 오락가략하였었다. 창호문에 구멍을 뚫어놓고 온종일 눈을 대고 마당을 가로질러 오가는 사람들을 내다보셨다. 나는 할머니의 창호문 바로 맞은편의 외양간을 치울때나 물동이를 이고 마당을 오가면서 가끔은 문구멍으로 비치는 할머니의 눈에 깜짝 놀라곤 했었다. 할머니는 지팡이를 짚고 뒷간을 다니셨지만 힘이 약해선지 늘 오줌을 지렸다. 유난히 고집이 세고 드센 할머니는 내가 아니면 결코 옷을 갈아입지 않았다. 유일하게 나만이 할머니의 지린내나는 몸빼바지를 벗겨 빨 수 있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나는 한동안 사랑방 문앞을 지나다니는 것에 공포를 느꼈다. 문에 뚫려있는 구멍으로 할머니의 눈이 보이는 것 같은 환시에 시달려야했다.

할머니가 살아계실 당시 내 눈에 비친 할머니는 그리 좋아보이지 않았다. 기력이 떨어져 지팡이에 의지한 채 발을 끌면서 뒷간에 다니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건강한 육체로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노년이라면 두 말 할 나위없이 나 또한 원할 것이다.

 

내 아버지는 여든넷에 돌아가셨다. 앓아 누우셨던 아버지는 당신 스스로 화장실도 다닐 수 없는 상태로 눈을 감았다. 한줌 재로 남은 아버지를 보내드린 후 돌아와 곧바로 장기기증센터에 등록했었다. 벌써 십년도 훨씬 넘은 이야기다. 삶과 죽음은 손바닥의 양면처럼 늘 동행한다.

몇 년 전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순간 죽음이 내 곁에 다가왔다 잠시 물러난 것 같은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하루하루의 삶에 더 충실해지고자 노력했고, 사람들과의 관계도 더 소중하게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아침에 나갈 땐 뒤를 한 번 돌아보게 되고 하루를 마감할 땐 감사기도를 드리는 습관도 생겼다. 죽음에 대한 명상을 통해 삶에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고 느낀다.

 

가끔 도시에 나가면 전철에서나 거리에서 전도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영생과 부활을 강조하는 그분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속으로 '영생도 중요하지만 현재의 행복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하고 생각한다. 당장 내 주변에도 윤회의 사슬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말하는 이가 있다. 책을 읽다보니 이렇게 말하는 이들의 심리 또한 영생에 대한 무의식적 욕망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그들 행동이나 생각의 동기겠구나 싶다. 불멸을 향한 끝없는 욕망이 의학이나 과학 발전의 동력이라는 의미에도 공감한다. 수명을 연장시키고 노화를 지연시키고자 하는 다각도의 연구는 오래전부터 인류의 숙원이었고, 다양한 실험과 연구가 이루어졌으며 그 혜택속에 살아가고 있다.

영화속에 등장하는 복제인간 문제는 사실 죽음을 두려워하고 불멸을 원하는 인간들의 심리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건이라 생각된다. 윤리적인 문제만 아니라면 인간복제도 얼마든지 이루어지지 않을까 생각된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말속에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늙음과 고통, 가난과 속박으로 가득한 가장 힘겹고 혐오스런 이승의 삶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 앞에서는 천국과도 같다." P370> 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죽음이 그렇게 두렵지는 않다고 말해왔던 내 자신의 오만을 깨닫는다. 진짜 죽음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한채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이미지로 되새김질해왔던 내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죽음이란 단지 하나의 이동에 불과하다고 우리를 안심시키는 가르침들은 심연 속으로 발을 내딛듯 죽음에 대한 우리의 직관적인 두려움을 이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가르침들은 질실과 멀리 떨어져 있다. P371>

 

책을 읽는동안 저자의 철학적 사유와 깊이에 저절로 동화되어 갔다. 이처럼 흥미롭게 삶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의식의 차원이 업그레이드 된 느낌이라면 과정된 표현일까. 나는 그랬다. 분량이 많아서 조금 벅찬 느낌으로 읽긴했지만 매우 즐겁고 지루하지 않은 만남이었다.

불멸에관하여, 스티븐케이브, 엘도라도

나는 두 아들을 키우는 엄마다. 내 뱃속에서 나온 자식들이지만 어쩜 그렇게 성격이 다른지..

큰아이는 좀 까다로운 기질을 갖고 태어냤다. 긍정적으로 말하면 섬세하고 민감하다고 할 수 있겠다. 녀석은 초등 5학년 후반기에 몽정을 시작으로 콩나물처럼 쑥쑥 자라났다. 몸 만이 아니라 마음도 함께 그 속도로 자라주면 좀 좋을까. 더디 자라고 성숙해지는 마음에 비해 몸은 속도위반처럼 급속도로 자라는지라 아이는 무척 혼란스럽게 사춘기를 앓았다. 녀석이 어느 날 나와의 감정트러블이 극에 달했을 때 선언하듯 한마디 했다.

"내가 돈만 있으면 당장 집을 나가고 싶어요" 라고.

잔뜩 화가 나있던 나도 지지않고 한마디 던졌다.

"나가고 싶고 자신있으면 나가. 짐 싸줄테니까. 직접 돈을 벌어봐야 부모가 고마운줄 알지"

 

여러차례 가슴을 철렁하게 만들던 녀석의 마음도 느릿느릿한 속도지만 부쩍 자랐고 많이 성숙해졌다. 지금 아들 이야기를 듣는 이들은 내 말에 "진짜요?"하며 반문한다. 열심히 자신의 미래를 설계하고 꿈을 이루어나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기특하다. 시간은 쉼없이 흘러가고 미친듯 뭔가에 홀린듯 혼란스럽고 불안하던 아이들도 제자리를 찾는때가 온다. 다만, 진득하게 기다려주고 믿어주는 부모가 있을 때 더 빨리 회복되어 의젓한 청소년으로 성장할 것이다.

 

이 책의 주인공인 네명의 소녀들은 '가출'을 꿈꾼다. 행복한 가출 카페를 만들고, 짜릿한 일탈을 꿈꾼다. 생각은 해볼 수 있을지라도 실제 실행하기란 어려운 법인데... 네 명의 친구들이 의기투합하여 실행하기에 이른다. 가까운 곳을 당일치기로 다녀오는 여행이지만 사실 열 세살 소녀들이 시외버스를 타고 훌쩍 도시를 벗어나 낯선곳으로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학교와 학원, 공부와 부모의 간섭, 잔소리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게 날아오르고픈 아이들의 감정은 충분히 공감가는 내용이다. 일탈에 대한 욕구는 애 어른 할 것 없이 똑같구나 싶었다.

전교 회장이 되기를 강요하는 부모의 모습이나 목적에 맞게 카페를 만들고 온라인으로 소통하는 아이들의 모습, 핸드폰을 압수당할까 염려하고 속상해하는 모습 등은 요즘 아이들의 세태를  잘 반영한 듯하다. 하지만 선율과 공부뿐 아니라 모든 부분에서 경쟁자인 지아의 모습은 억지스럽게 느껴졌다. 강릉 여행에서 갑자기 사라져버린 선율의 행방불명과 덤덤한 태도의 지아, 그리고 회장후보등록 등... 펼쳐지는 스토리들이 쉽게 읽히고 재미는 있지만 과연 요즘 아이들이 우정에 대해, 친구에 대해 이토록이나 진지하고 헌신적일까 싶은 회의가 드는 것이다.

실제 이런 상황에 처한다면 과연 어떤 결과가 나타날까? 작가는 이상적인 해결방법을 제시하고 싶었을지 모르겠으나 내가 경험한 바 현실은 한참 동떨어져 있다. 동화의 결말은 늘 긍정적이어야 하는가? 나는 솔직히 잘 모르겠으나 그 또래 아이들의 감성을 이해하는 것과 또한 현실에서의 아이들 모습을 실제적으로 그려내는 것은 중요하리라 생각해본다. 다만, 선율이 가정의 아픔과 고통에 대한 부분과 그러한 환경속에서 갈등하고 힘들어하는 선율의 감정선은 섬세하게 포착한 거 같아 많이 공감하며 읽었다.

 

위의 모든 기술들은 내 생각일뿐이다. 한사람의 독자로서 솔직한 감상을 적어본 것이다. 열 세살 아이들은 이 책을 어떻게 느끼며 읽을지... 기회되면 수업에서 함께 읽을 것이다.

우리들의행복한여행, 송아주, 별숲

나는 추리소설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편이다. 이유는 추리소설 자체가  필연적으로 안고 있는 살인이나 끔찍한 사건들을 읽는 것이 편치 않기 때문으로 생각한다. 어쩌면 이것은 '살인'이 인간적인 범주에서 벗어나는 인간들의 잔혹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읽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내 마음이 편치 않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단지 내 개인적인 사정일뿐이다.^^

누구라도 추리소설 하면 가장 먼저 아서 코난 도일과 셜록홈즈를 떠올릴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또한 추리소설계에서 아서 코난 도일을 능가하는 작가는 없을 듯하다. 셜록 홈즈가 탄생한 지 100년이 훨씬 지났으나 변함없이 많은 사람들이 그의 책 셜록 홈즈에 빠져들고 추리나 탐정의 역할을 모방하기도 한다. 당장 나의 두 아들만해도 그렇다. 우리집엔 두 권의 두꺼운 셜록 홈즈가 있는데 두꺼운 하드커버 표지가 너덜너덜하도록 여러차례 읽는 걸 보았다. 어떤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면 책을 펼쳐서 보여줄만큼 익숙하고 자신들도 추리소설을 쓴다면서 셜록 홈즈를 흉내내는 것도 보았다. 어떤 사건에 대한 추리는 고도의 사고능력을 요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추리하고 그것을 글로 표현해 본다는 자체만으로도 긍정적인 학습효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이번에 읽게 된 바스커빌가의 개는 아이들과의 대화의 통로로써 매우 훌륭한 매개체가 되어주었다.

 

이야기는 역시 찰스 바스커빌 경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시작된다. 바스커빌 가문에 전해내려오는 '검은개'의 전설은 찰스 경의 내면에 깊은 두려움을 갖게 한다. 저택에서 바라보이는 황야는 검은개가 출현하는 두려운 장소이고, 속절없이 빠져들어 죽을 수밖에 없는 늪이 존재하는 장소이다. 바스커빌 저책의 이러한 입지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사실 두려움을 느낄 수 있다. 암튼 찰스경의 의문의 죽음 이후 가문의 유일한 상속자인 헨리 바스커빌이 저택에 살게 되고, 찰스 바스커빌의 주치의였던 제임스 모티머와 함께 찰스경의 사건에 대해 의뢰를 하게 된다. 홈즈는 묘한 불안을 느끼면서 왓슨을 바스커빌가에 머물게 하고....

저택의 집사 존 베리모어의 의문스러운 행동, 한밤중의 여자 울음소리, 흉악한 살인범인 탈옥수,  나비를 채집하고 연구하는 스테이플턴, 늘 소송에 휘말리는 괴팍한 노인 프랭클랜드, 의사이며 두개골을 연구하는 모티머 등 등장인물들 모두 인상적이고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책의 말미에서 밝혀진 스테이플턴의 계획과 행동은 정말 충격적으로 느껴졌다. 철저하게 자신을 은폐한 채 바스커빌 가의 사람들과 관계를 이어간다. 스테이플턴의 여동생이 헨리 경에게 보여주는 행동에서 뭔가 있구나 하는 의문 내지는 암시를 갖게 하지만 끝까지 반전을 거듭하며 긴장을 늦출 수 없게 한다.

'검은개'의 전설과 '황야'라는 배경이 주는 황폐하고 두려운 이미지, 찰스경의 의문의 죽음과 헨리경의 뒤를 쫓던 의문의 남자, 뭔가 수상쩍게 느껴지는 집사 베리모어와 그의 아내 등 혹시 이사람이? 하는 의문이 증폭될즈음 사건은 또다시 미궁속으로 빠져버린다. 흘려버릴 수 있는 작은 단서를 가지고 자칫 미궁에 빠질거 같은 사건들을 추적하고 결국 범인을 밝혀내고 검거하게 되는 과정이 아슬아슬 손에 땀을 쥐고 하고 흥미롭다.  

 

방학동안 아이들과 미드에서 셜록 홈즈를 여러편 보았었다. 드라마속의 셜록 홈즈가 오버랩되면서 소설 읽는 재미가 배가 되었다. 심리적 측면에서도 흥미로운 점이 많았다. 특히 찰스 경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관련하여 그의 깊은 두려움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었다. '검은개'의 전설을 믿음으로써 깊게 내면화된 두려움은 그의 이성적 통제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으며, 특히 바스커빌 가의 막대한 재산을 노리는 범인으로 하여금 쉽게 범행 방법을 선택할 수 있는 빌미가 되었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긴장감을 늦출 수 없게 하는 추리소설을 찾고 있다면 이 책을 적극 추천한다.

 

 

바스커빌가의개, 아서코난도일, 보물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