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우연히 다른 도시로 볼일을 보러 갔다가 신기한 풍경을 보게 되었다.
벽보처럼 도심의 벽을 가득 메우고 붙어있는 종이가 있었는데, 바로 '지선아 사랑해'라는 문구였다. '도대체 저게 무슨 의미일까?' 라는 궁금증이 일었다. 혹시 짝사랑하는 지선이란 여성에게 공개적으로 용기내어 프로포즈 하는걸까? 하지만 바쁜 일상에 젖어 그냥 지나치며 잊어버렸다. 후에 인터넷을 통해서인가 정확하지 않지만 교통사고가 원인인 화재로 인해 심각한 화상을 입은 아리따운 처녀에 관한 이야기임을 알게 되었다.
책도 시절 인연이 있어야 내 손에 들어오는 모양이다.
몇 년 전 의아해하며 보았던 그 '지선아 사랑해'의 주인공 이지선씨의 자전에세이를 읽게 되었다. 어쩌면 내가 지난주에 종결한 장애인복지관의 부모상담으로 인해 부쩍 장애인들에 관한 관심이 생겼을수도 있고, 하반기를 준비하며 어떤 책을 선정할까.. 하는 고민에 의해 선택했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그 이유가 무엇이든 이 책을 읽게 되어 너무나도 감사하다.
지선씨의 삶은,
유복한 가정에서 온실속의 화초처럼 사랑받으며 성장한 아가씨가 불행한 한순간의 사고로 인해 인생 전체가 송두리째 뒤바뀌는 역전드라마이다. 이보다 더 극적이고 리얼한 드라마를 본적이 없다. 그녀의 고백을 들으면서 순간순간 아픔이 여울져왔다. 차라리 죽고만 싶었던 그녀의 고통이 전이되면서 마치 그 모습을 지켜보는 가족들이 이런 심정이었겠구나 싶은 공감이 있었고, 만약 나라면 어떻게 그 어두운 터널을 헤쳐나왔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사랑과 도우심을 믿는다. 목사 사모인 친구가 내게 전화하여 심리적으로 벅차고 힘겨운 사모로서의 삶을 토로할 때 내가 해줄 수 있는 격려의 말은 '든든한 빽이 있는데 뭘 걱정하냐고, 기도하라고' 하는 것이었다.
지선씨가 사고로 이전의 자신을 잃어버린 후 온전히 하나님에게로 나아가는 모습은 너무도 감동적이고 경이롭기까지 하다. 만약이란 가설이 불필요하겠지만, 만약 지선씨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 주 장애인복지관의 부모상담을 종결하면서 받은 감동도 여울져왔다.
평생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장애아를 키우면서 충분히 고통받고 절망과 좌절을 겪어왔으면서도 그들은 아픈 누군가를 위해 봉사를 쉬지 않았으며, 기꺼이 도움을 나누어주는 아름다운 삶을 살고 있었다. 상담자로서 뭔가 힘을 주고 싶어 애태우던 나를 순간순간 부끄럽게 만들어주던 그분들이었다. 장애인복지관에서는 몇 년 전 2년동안 집단상담을 했고, 이번이 두번째다. 내 삶의 어느 지점에서 그런 분들과 함께 집단경험을 허락하신 신께 감사드린다.
이러저러한 경험들로 인해 지선씨의 자전적 이야기인 이 책을 읽으면서 그녀의 아픔과 절망과 갈등과 좌절, 인간적인 두려움 등등..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간절함과 원망과 소망과 희망이 작은 물결로 여울져오는 호수의 진동처럼 내 가슴으로 흘러들었다.
이 책을 소개해주고 싶은 많은 이들이 생각났고, 남은 나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겠다는 새로운 통찰과 용기도 더해준 고마운 책이다.
겉모습보다 속사람이 아름답고 강한 지선씨가 상처속에서도 아름답고 찬란한 꽃을 피우는 승리의 삶을 살아가기를 함께 기도하며... 글을 마친다.
지선아사랑해,
이지선,
문학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