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blog.naver.com/cutefel/40102058851

   . 이 소설. 심상치 않다. 박학다식하지만 약간 멍한 느낌을 주는 화석매니아 소년과 짝사랑에 빠진 평범한 고등학생 소녀,  비쩍 마르고 선머슴같아 후배 여학생들의 동경의 대상인 같은 반 친구(여자-_-;)와 단짝인 귀엽고 모범생 같은, 하지만 막상 공부는 그냥저냥인 미소녀까지 네 명의 주인공과 적당히 코믹한 대화, 그리고 무엇보다도 '루피너스 탐정단'이라는 지극히 소녀취향인 어디 만화책에서 따온 것 같은 이름까지. 첫인상만 보면 연애 & 학원물에 추리는 적당할 정도로만 넣은 것 같으니 그저 가볍게 즐기면서 읽으면 될 거 같은데, 막상 사건이 시작되면 공들여 쓴 진지한 추리에 사각을 찔러오는 통찰력까지, 쉽게 넘길 수 있는 구석이 하나도 없다. 마치 체스터튼의 브라운 신부 시리즈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덕분에 별 생각없이 슬슬 넘기기 시작하다가 몇번이나 앞으로 돌아가면서 제대로 읽는데 일주일이나 걸렸다. 단편 세 편 밖에 없는데.

 

   . 첫 번째 단편 '식은 피자는 어떠세요?'는 처음부터 범인을 제시해주고 트릭을 풀어나가는 소설이다. 어차피 알리바이가 없는 용의자라고 해봤자 둘 밖에 없는데다, 이미 첫머리에 범인이 누군지도 친절하게 나와있다. 하지만, 도대체, 동기고 살해방법이고를 전부 떠나서, 전날 배달되서 식어빠진 채 달랑 남아있던 피자 한 조각을 범인이 먹어버린 이유는 무엇일까? - 작가는 정말 당연하지만 그 당연한 부분에 대해 허를 찌르는 대답을 준비하고 있다. 여기에 주인공 소녀의 짝사랑에 당최 아군인지 적군인지 구별하기 어려운 경찰관 언니와는 아웅다웅거리고, 허우대 멀쩡하지만 허당끼가 있는 파트너 형사까지 등장해 전반적으로 일상과 추리가 뒤섞인 유쾌한 분위기로 흘러간다.

 

   . 두 번째 단편 '눈의 저택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는 눈 덮인 별장에서의 밀실살인을 다루고 있어서인지 간간이 코믹한 대화가 오가기도 하지만 분위기도 조금은 무겁고, 정통적인 본격물 분위기가 풍긴다. 트릭 자체는 범인에 대해선 체스터튼, 밀실에 관해서는 엘러리 퀸이 생각나는 트릭인데, 범인은 괜찮지만 밀실을 만드는 장면에서는 내가 공간에 약한건지(난 그래서 김전일이 싫다;;;;) 다 읽고도 대체 이게 가능한건가? 하는 의구심이 남는다. -_-;;

 

   . 세 번째 단편 '대 여배우의 오른손'은 체스터튼에게 바치는 오마쥬 같은 소설. 체스터튼의 '이상한 발걸음 소리'나 '폭발하는 책'처럼, 인간 스스로가 만들어내는 사각을 이용한 트릭이다. 억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트릭을 위해 처음부터 복선을 잘 깔아두었고 무엇보다 실제 저런 상황을 경험해 본 입장에서, 충분히 가능한 트릭이고 잘 포착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마 작가에게도 저런 경험이 있었던 게 아닐까. 그리고 없어도 상관없었지만 있었기 때문에 더 좋은 마지막 작은 반전까지. 특별한 장치 없이 인간의 사각만을 다룬 내용이 그렇듯, 살짝 당했다 싶으면서도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소설이다.

 

   . 세 편의 단편뿐이었지만, 충분했다. 추리에 대한 감상 위주로 썼지만 소설 내내 가볍게 튀는 대화들이 완급을 잘 조절해주고 있고, 학원물답게 캐릭터들도 차근차근 성장해가고 있다. 잡학과 화석에는 능하지만 다른 부분은 영 멍하기만 했던 소년은 실패를 겪으면서 사람에 대해 이해해가고 있고, 무미건조했던 선머슴같은 소녀는 글을 생기있게 해주면서 자신도 점점 색깔을 입어간다. 주인공 소녀의 짝사랑은 성과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하지만, 아마 어느 쪽이든 괜찮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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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동안 요네자와 호노부 하면 꽤나 유쾌한 본격 추리물이었던 '인사이트 밀'을 썼던 추리작가로 알고 있었는데, 책 말미의 소개글을 읽으니 오히려 작가의 주무대는 라이트-노벨 쪽이고 계절 디저트 시리즈(-_-;)에서 어느 정도 훈련을 쌓아 뒤늦게 추리소설에 도전한 게 아닌가 하고 추측해 본다. 인사이트 밀은 밀실과 사건해결보다는 오히려 독특한 설정이 그럴싸했었는데, 나중에 한 번 더 읽고 다뤄볼 기회가 있겠지. 우선은 계절 디저트 시리즈 1편부터.

   . 소설은 막 고등학교에 진학한 범상치 않은 한 쌍의 커플이 일상에서 접하는 미스테리들을 해결해나가는 내용이다. 짤막한 이야기가 네 개, 그리고 짤막한 이야기 중간중간에 등장하면서 봄철 내내 이어지는 사건이 하나 있는데, 입바르고 약삭빠른 고바토와 여기에 복수심과 행동력까지 갖추고 있는 오사나이는 중학교 때 있었던 모종의 사건 때문에 이제 더 이상은 추리하지도 개입하지도 않고 그저 달콤한 디저트나 즐기면서 지나쳐가는 평범한 '소시민'이 되겠다고 맹세하지만, 세상에 그렇게 말처럼 쉬운 일이 있을 리 없다.

 

   . 여기저기서 일어나는 소소한 사건들 덕에 고바토와 오사나이의 본성은 슬슬 깨어나기 시작하는데, '가방찾기 대소동'에선 경찰이나 선생이 와서 일이 커지는 건 귀찮으니까, '도둑맞은 딸기 타르트 사건'에선 딸기 타르트를 잃어버린 마음을 달래기 위해 - 그러다 제대로 한 방 먹고, '맛있는 코코아를 타는 법'에선 도발에 넘어가서 대체 세 개의 잔만 가지고 가득 담긴 따끈따끈한 코코아 세 잔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추리하다 깊이 반성하면서 다음부터야말로 반드시 소시민이 되겠다고 반성하기도 하지만, 결국 도둑맞은 자전거와 더 큰 범죄가 얽힌 '딸기 타르트의 복수'편에서 '소시민한테 가장 소중한 것은, 자기 것을 지키는 거야.' 라는 명언과 함께 이빨을 드러내고야 만다. 경찰에 폭력단까지 개입시켜서 사건을 더없이 크게 만들어 한껏 복수해놓고는, 다시 핫케이크 앞에서 반성회. 이렇게 둘은 추리와 반성을 거듭하면서 다시 기약없는 소시민의 목표를 향해 노력하지만, 계절은 이제 겨우 봄이 지나갔을 뿐이고, 맛있는 것도 아직 많고 많다(-_-;)

 

  . 소설에는 제목인 딸기 타르트부터 시작해 크레페, 반호텐 코코아, 밀피유, 몽블랑, 딸기 쇼트케이크, 티라미슈, 핫케이크 등 이름만 들어도 먹고 싶어지는 수많은 종류의 달콤한 디저트가 나오고, 아닌 척 모르는 척하는 둘 간의 감정도 곁들여져서, 단순하고 간결한 추리인데도 독자를 책으로 끌어당긴다. 이게 일상 미스테리의 매력이다. 본격 추리의 관건이 트릭에 있고, 하드보일드의 핵심이 문체에 있다면, 일상 미스테리 - '코지 미스테리(Cozy mystery)'의 성패는, 일상과 사람에 대한 설득력 있는 묘사가 아닐까. 책을 읽는 독자와 사건을 접하는 인물의 눈높이가 같기 때문에, 독자가 이런 건 내 주변에서도 흔히 있는 일이야, 나도 이거 알아 라고 생각할 수 있는 장치들이 효과적으로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상은 말 그대로, '항상 있는 일'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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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년 12월, 미즈토 부친 살해사건을 해결한 시라토리는 하마다 사요의 고백을 들으면서 그녀를 살인자의 길로 이끈 사쿠라노미야 병원에 대해 전면전을 선포한다. 그리고 7개월이 지난 여름, 도조대학의 다카시나 원장을 끌어들여 부하인 히메미야와 함께 사쿠라노미야 병원으로 잠입하고, 한편으로는 지역지를 꼬드겨 '천마 페가수스'라는 엄청난 이름의 뜻과 달리 지독히도 운 없다고 자부하는 덴마 다이키치를 자원봉사생을 빙자한 스파이로 들여보내면서 병원에 대한 전방위적 포위망을 펴고 탐색전에 돌입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 .... 라고 멋지게 서두를 꺼내긴 했지만, 사실 이번 시리즈는 별로(라기보다는 전혀에 가깝게) 재미가 없다. 광고에는 '얼음공주' 히메미야의 진면목이 드러난다고 되어있긴 하는데 이미 제너럴 루주에서 충분히 본 모습에 별로 추가된 , '죽음의 의료'라는 주제에다 제대로 된 호적수를 만나서 그런지 시라토리도 그닥 심술궂지가 않다. 시라토리라는 캐릭터 자체가, 정반대 성향인 다구치 코헤이를 만나야만 빛이 나는 느낌이다. 전편의 도움을 받고 있는 캐릭터들부터가 이렇게 죽을 쓰고 있는데다, 새로 나오는 캐릭터들도 그닥 드러나는 부분이 없다. 그냥 어디서 본 듯한 인물들이, 어디서 들은 듯한 얘기를 하고 있구나 하는 느낌.

 

   . 물론 모든 작가에게 미야베 미유키나 기리노 나쓰오를 바랄수는 없는 것이지만, 최근 일본추리소설 작가 중에선 필력이 아쉬운 작가들이 너무 많다. 줄거리보다는 얼마나 기발한 이야기인지, 그럴싸한 트릭이나 반전인지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신본격류, 그 중에서도 다른 전문지식(?) 계통에서 전입해온 작가들 중에 이런 경우가 많은데, 일반인들이 모르는 사실을 많이 알고 있으니 소재는 기발하고 귀는 솔깃한데 막상 글쓰기 자체에 깊게 천착해본 적이 없으니 이야기에 힘이 없다.

 

   . 소설은 종말기 환자들의 의료를 주제로 작가가 거의 모든 시리즈에서 주장하고 있는 오톱시 이미징(A.I)이 해결의 키워드가 되어 전개되어가고, 여기에 한창 말많은 소년범죄가 살짝 겹쳐지고 언제나 그렇듯 병원행정에 대한 토로가 전면에 깔려있어서, 복잡하다기보다는 꽤나 난잡하게 전개되어 간다. 나전미궁이라는 제목부터가 이런 줄거리를 드러내고 있는 셈인데, 전작들에선 한 번에 한 가지를 얘기하던 작가가(원래 나이팅게일의 침묵과 제너럴 루주의 개선은 한 작품을 나눠놓은 것이지만) 최초로 복잡한 구조에 도전해서 출판에 성공한 작품인데 - 차라리 전작처럼 출판사가 좀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정리해주는 게 낫지 않았겠는가 하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든다. 차라리 제너럴 루주처럼, 좀 신파적이 되더라도 단선적으로 이야기의 맛을 살리는데 더 치중하는 편이 나았을 것 같은데, 차기작이라는 블랙페앙 1988은 설정부터가 사쿠라미야 월드의 20년 전을 다루는 소설이니만큼 이런 부분을 만족시킬 수 있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