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을 틈나는 대로 여행하며 만난 틈에 관한 이야기. ‘레인보우 동경’ . 무.지.개.는 허공에 놓인 ‘틈’들이다. 색깔들을 손으로 만질 수는 없었지만 눈으로 만지는 기분도 근사했다. 눈동자는 색의 틈 사이로 드나들었다.

여느 여행서적에 범람하는 여행정보는 이 책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다만 김경주 시인의 시같은 감수성을, 문봉섭 감독의 필름같은 몽환감을 만날 수 있다. 연필과 낡은 타자기, 카메라를 들고 떠난 그들이 그려낸 한 편의 도쿄 에세이는 이처럼 특별한 느낌이었다. 마냥 들뜬 초행자의 모습이 아니었기에 조금은 후미진 골목길이 낯설지만은 않은 그들이다. 그래서 나는 어둡고 칙칙한 담벼락 모습에서 분명 존재하는 인생의 어느 한 자락을 들춰본 기분이다.

어릴 적 친구라는 저자들의 관계에서 지금 나와 친구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그들과 비슷하게 닮은 점이 많았지만, 결정적으로 딱 한 가지 다른 점이 있었다. 함께 여행을 가지 못했다는 것. 그것이다. 그렇게 마음을 터놓고 말하던 사이인데도 단 한 번 여행의 시간이 없었다는 것은 나에게 조금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자주 보아왔고 많은 시간 함께 했기에 그런 사실조차 잊고 지냈던 것이다. 이런 대단할 것도 없는 사실에 문득 마주친 기분이라 왠지 헛웃음이 나온다.

저자가 말한 것과 같이 ‘레인보우 동경’은 장르를 알 수 없었다. 일기 같으면서, 시 같으면서, 또 여행서적의 느낌이 조금 묻어난다. 그렇기에 지나치게 사적인 감정이 많은데, 개인적으로 이런 부분이 마음에 들었다.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의 글은 언제나 봐도 마음을 자극하는 법이기에, 우울과 평정심 또는 기쁨과 평정심을 묘하게 오고가는 재미가 있다. 그래서 잠깐잠깐 훑어보는 시간이 많을 것 같은 예감이다. 신선하면서 독특한 이 책의 매력을 곱씹으면서...  

 

 

극락타이생활기. ‘와세다 1.5평 청춘기’을 접한 뒤라 다카노 히데유키의 작품에 대한 기대감으로 첫 페이지를 넘겼다. 저자와 특별한 인연의 나라로 보이는 타이의 솔직한 생활기란게 전면적인 책의 느낌이다. 요란법석, 기괴한 실험같은 삶이 아니라 그야말로 먹고, 마시고, 즐기는 평범한 삶의 모습인 것이다. 특별할 것도 없이 얼굴에 미소를 짓고 살아가는 타이인의 생활을 저자는 보여주고 싶었나 보다. 사실 나는 좀 더 특별한 것을 원했는지 모른다. 그는 그야말로 자취방에서 마약성분이 든 식물을 구해다 인체실험을 감행한 다카노 히데유키 아니었던가.

책을 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여행서적과 같이 특별한 정보를 주기 위함이라기보다는 타이의 생활상을 보여준다는 느낌이었다. 그것도 우리에게 익숙한 수도 방콕의 모습이 아닌 그가 대학강사를 하던 치앙마이라는 지방도시의 모습으로... 그렇게 저자는 느긋함을 좋아하는 타이인의 생활을 스케치하고 있었다. 경제적으로 풍요하지 않아도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심적인 안정감과 여유로움을 즐기며 사는 타이인을 저자는 근본적으로 좋아하고 있었던 것이다. 때문에 책 곳곳에 숨어있는 타이인을 향한 애정의 눈길은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잠시 머물다간 여행자로서 타이를 바라본 것이 아니라, 타이인의 습성, 음식, 문화 등의 체험을 통한 경험담이기에 그곳의 삶이 더욱 친근하게 다가온다. 우리의 살아가는 생활 속 즐거움과 다를 바 없는 소소한 재미로 다가오는 것이다. 그렇기에 관광국으로서 얻은 타이의 정보가 아니라 타이라는 나라 자체에 한 발 다가선 느낌이다. 더욱 정확히 말하자면 타이인의 매력을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 그들의 순박한 미소를 저절로 상상하게 되는데 이유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전작과 같은 기발한 웃음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멀게만 느끼던 타이인에 대해 좀 더 알게 된 것 같아 뿌듯한 기분이다. 다카노 히데유키의 또다른 작품이 기대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스웨덴 작가 페테르 발락의 책을 처음 접했다. ‘천국으로 스매싱’ 그전부터 테니스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성장소설과 접해진 이야기라 그런지 한층 흥미로웠다.

엄마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그의 어린 아들 욘이 그리는 순수한 슬픔의 표현을 그려내고 있었다. 가족의 부재는 누구에게나 그렇듯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들이치는 고통이 있다. 문득 익숙한 길을 걷다가, 밥을 먹다가, 운동을 하다가... 생각이 난다. 아무렇지도 않게 고통이 생활 속에 파고드는 시간은 슬픔으로 가득하다.

한 가정의 아내, 한 아이의 엄마라는 빈 자리가 가족들에게 얼마나 큰 상처로 다가왔을지는 담담하게 쓰여진 욘의 솔직한 감정에서 더 크게 느껴진다. 어린 아이의 순수한 마음처럼 툭툭 내뱉듯 쓰인 글에서 더 큰 아픔이 보이기에.

주변에 친한 사람의 부재. 그것이 죽음이라면 어떤 느낌일까... 이와 비슷한 질문은 여러 번 했었다. 하지만 실제 상황을 경험하지 않고서는 영원히 막연한 느낌으로 자리잡을 것이다. 그런 나에게 조금이나마 죽음이란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그 사람이 없는데도 나는 잘 살고 있다.’라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삶. 그래서 시간이 흐를수록 함께한 순간이 생각나 눈물 흐르게 하는 날들의 연속. 이런 슬픔의 시간과 함께 하는 것이었다.

작가의 어릴 적 경험한 실제 이야기를 전하고 있기에, 아프게 다가온다. 어린 아이의 눈을 통해 본 엄마의 부재가 직설적으로 표현되어 있어 적나라하게 감정이 드러난다. 그렇기에 더욱 큰 아픔의 크기가 엿보인다고나 할까... 상실과 상처를 딛고 일어서서 좋아하는 테니스를 다시 시작하게 된 욘의 성장소설은 이런 연유로 특별했다. 상처를 받아 본 사람에게나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나 마음을 울리는 것이 숨어 있는 소설이기에, 여러 사람에게 권하고 싶은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