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갈 데 없는 막장 인생은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흔히 접할 수 있다. 에피소드가 펼쳐질 때마다 나쁜 상황이 연이어 터지고, 그 장면에서 기가 막히게 딱 들어맞는 우연이란 요소가 등장할 때마다 나는 손발이 오그라들고 가슴이 답답함을 느낀다. 극에서 보여주는 장치에 나 스스로 쉽게 이입되는 것이다. 안타까움의 눈물과 동정이 깃든 연민의 감정은  다시는 나를 이런 극 속으로 이끌지 않으리라 다짐하게 되지만, 그것조차 쉽지 않다. 왠지모를 강한 끌림이 있다. 결코 현실에서는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은 이야기도 결국 주변의 이야기, 또는 나의 이야기가 될 때도 있으니까.

오쿠다 히데오는 인기작가라는 타이틀처럼 여러 작품들이 우리나라에 소개되어 있다. 그렇기에 나도 모르게 그의 구성에 익숙해져 있다고나 할까. 이와 비슷한 감정선상에서 ‘최악’을 펼치게 되었다.

각기 다른 상황의 세 명의 주인공들. 앞으로 그들에게 다가올 운명적인 시간을 모른 채, 자신의 삶을 묵묵히 이어간다. 가와타니 신지로는 영세철공업자로, 후지사키 미도리는 현실로 도피하고픈 은행원으로, 노무라 가즈야는 파친코 벌이와 칼로 위협해 돈을 뜯는 범죄자의 모습으로 살아간다. 딱히 나쁠 것도 없던 일상 속에서 다른 악한 상황들이 겹쳐 일어남에 따라 한 인간으로서 갈 수 있는 밑바닥까지 보여준다. 그렇게 다른 모습들로 최악의 상황에 빠져들고 있을 때 그들은 한 곳으로 모이게 된다. 신지로가 공장 확장을 위해 미도리의 은행에 융자받으러 온 순간, 가즈야가 미도리의 동생 메구미와 함께 은행을 털기 위한 목적으로 침입한 것이다. 그렇게 은행에서 모이게 된 네 사람은 함께 도망을 치기에 이른다.

우리의 인생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모르는 순간 참 난감하다. 그때는 후회도 미련도 남아있지 않다. 그저 포기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아마 이 소설의 주인공도 비슷한 심정일 것이다. 저가가 말하고 있는 인생에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이런 어두운 면이 가슴이 먹먹해 질만큼 안타깝다. 속도감 있게 전개되는 내용이기에 저절로 감정이입해서 보게 된다. 그래서 빨리 책 속의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실로 오랜만에 몰입해서 읽은 글이었다.

대기업의 하청을 받아 철강소를 꾸리는 신지로는 우리 주변에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영세업자이다. 자칫 잘못하면 식구들이 야반도주해 흩어져 살 수 밖에 없는 극한 상황에 내몰릴 수도 있는 게 그들의 처지이다. 그렇기에 신지로 자신이 말한 것처럼 가장 불행한 삶으로 내 눈에 비춰졌다. 그가 다시 제자리를 찾는 모습조차 마음을 짓누른다. 그렇게 천천히 자신이 잃은 부분을 찾아가는 것. 그것만이 최악의 상황에서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인 것이다. 최근에 만난 저자의 작품들 중 가장 객관적 시선처리로 눈길을 잡은 작품이었다.

막상 나에게 생물과 무생물은 차이를 물어온다면 명확하게 개념을 설명하기 곤란하다. 그래서 잘 알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애매한 그 무엇이 궁금했기에 ‘생물과 무생물 사이’를 펼치게 되었다. 사실 생명과학이니 분자생물학이니 이런 분야는 일반인에게 생소하기에 늘 어렵게만 느껴진다. 그래서 더욱 멀리하게 되는데, 후쿠오카 신이치는 예상외로 가벼운 필체를 선보이고 있었다. 어렵게 보이던 과학도 일상의 사례와 접목하여 설명하고 있어서 읽는 순간 저자의 문학적 감성에 빠져들게 된다. 이 책이 여느 과학 서적과 다른 이유이다.

 

뉴욕의 록펠러연구소를 배경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일본의 슈바이처로 불리는 노구치 히데오를 가장 먼저 소개하고 있었다. 그는 당시 매독, 광견병과 같은 병원체를 밝히는 획기적인 연구성과를 내지만 바이러스라는 복병에 부딪혀 그의 주장은 대부분 허구로 여겨지게 된다. 현미경에서조차 발견되기 어려운 작은 이 바이러스 결정체를 물질이라 일컫는다. 얼핏 이것을 무생물이라 여길 수 있으나, 생물의 특징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복제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이것에 착안해 생물과 무생물의 차이를 밝혀내는데, 그 첫 번째로 바이러스의 생물적 특성인 복제기능에 착안하고 있다. 자기복제기능은 현재는 잘 알려진 대로 DNA에 있고, 이것의 구조가 이중나선형으로 A와 T, C와 G라는 문자가 서로 결합하게 되면서 이루어진다. 그 과정에서 쌍을 이루는 A와 T, C와 G는 90도로 꺾어져 다른 방향으로 구성되기에 가능한 것이다. 현재는 보편화된 사실로 알려진 DNA의 실체를 밝힌 것은 이름도 생소한 과학자 오즈월드 에이버리이다. 이 위대한 업적을 쌓기 위해 평생 실험실에서 작은 알갱이들과 씨름했을 무명의 한 과학자. 그가 측은한 연유는 자신의 이름이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았음 보다는 연구업적이 다른 이들의 공적인 마냥 부풀어진 것 때문이다. 하나의 결과물을 이루기 위해서는 분명 토대가 되는 연구가 있기 마련인데 그것을 왓슨과 크릭이라는 두 과학자가 고스란히 가져간 것이다. 가장 정직하고 명확해야 할 부분인 과학성과가 다른 이들의 결과물처럼 비춰지기에 불합리하다는 생각이 더해지고 비열한 마음마저 들게 한다.

 

에이버리의 연구실적을 고스란히 안고 DNA를 연구해온 왓슨과 크릭은 노벨의학생물학상을 받게 되면서 과학자로 명성을 누리게 된다. 이들에게 연구업적을 빼앗긴 또 하나의 불운한 과학자가 있었는데, 로잘린드 프랭클린이다. 여성과학자인 그녀는 X-선을 이용하여 비밀스러운 DNA의 근원에 가장 가까이 다가서게 된다. 연구방식을 오직 귀납적인 방법을 고수하였기에, 가장 과학적인 결과물을 얻어낼 수 있었던 그녀는 논문이 유출되면서 연구성과를 경쟁자인 왓슨과 크릭에게 노출하게 된다. 모든 열정을 자신의 연구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사용했던 그녀는 암에 걸려 서른일곱의 나이로 요절하게 된다. X-선에 과하게 노출되어 병에 걸렸다는 설이 있을 정도로 그녀는 자신이 하는 일을 매진했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과학계의 어두운 단면을 본 것 같아 씁쓸함이 앞서는데, 후에 왓슨의 저서에서조차 프랭클린이 히스테릭하고 까다로울 뿐만 아니라 데이터의 중요성을 모르는 조수로 왜곡한 부분에서는 분노를 감출 수 없었다.

 

생명은 작은 분자들이 끊임없이 순환하면서 평형을 이루는 가운데 성장하게 된다. 마치 이것은 겉보기에 원래의 모습과 같다고 여겨지지만 실은 변화한 다른 분자들의 또다른 모습인 것이다. 저자가 말한 ‘질서는 유지되기 위해 끊임없이 파괴되지 않으면 안 된다.’에서 잘 표현되어 있다. 즉 생명이란 끊임없이 파괴되는 질서를 통해 이룬 동적 평형 상태인 것이다. 이렇듯 자기 복제를 하는 존재로 정의된 생명은 루돌프 쇤하이머를 통해 밝혀진다.

 

저자는 녹아웃 마우스와 녹인 마우스를 유전자 조작 기술로 뽑아내 실험하게 되는데, 프리온 단백질인 녹인 마우스로 인해 정상쥐와 다른 반응을 얻게 된다. 비틀거리거나 제대로 걷지 못하는 이상현상이 나타나게 되는데, 바로 이것이 변형된 프리온 단백질이 뇌의 구조를 변화시켰기 때문이다. 결국 인간이 자연의 질서를 인위적으로 바꾸려 할 때 부작용이 생겨 더 큰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자연에 순응하는 인간의 본연의 모습을 다시금 일깨우게 된다. 이것은 한없이 작은 존재로 시작된 분자의 운동은 자연의 질서 안에서 파괴되고 또다시 생성되는 흐름으로 평형을 이루며 살아가는 것이다. 인간이 신 앞에 무릎 꿇을 수 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새로울 것도 없는 사실이 더욱더 진지하게 다가옴은 과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쓰여진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

기계에는 시간이 없다. 원리적으로는 어느 부분부터든 만들 수 있고, 완성된 다음에라도 부품을 제거하거나 교환할 수 있다. 기계에는 재시도가 불가능한 일회성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기계 내부에는 이미 접혀 다시는 펼 수 없는 시간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생물에는 시간이 있다. 그 내부에는 항상 불가역적인 시간의 흐름이 있고, 그 흐름에 따라 접히고, 한 번 접히면 다시는 펼칠 수 없는 존재가 생물이다. 생명이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답할 수 있을 것이다. ...(중략)... 우리는 한 개의 유전자를 잃은 마우스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낙담할 것이 아니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라워해야 한다. 동적 평형이 갖는 유연한 적응력과 자연스러운 복원력에 감탄해야 한다. 결국 우리가 밝혀낼 수 있었던 것은 생명을 기계적으로 조작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었다.

                                                    ---p235~236---  

웹상의 용어는 이른바 ‘눈팅’을 통해 자주 보아 왔다. 실상 내가 사용해 본 일이 별로 없기에, 범람하는 외계어들 속에 과연 그 뜻은 무엇일까. 이런 원초적인 질문을 이 책의 표지에서 던지게 된다. 그야말로 이외수의 ‘하악하악’은 내가 쓰지 않는 언어들의 연속이었다. 대략적인 뜻은 알기에 어느 정도의 의사전달만 가능하다고 느끼는 순간, 책제목으로 쓰인 ‘하악하악’이란 뜻이 항가항가, 핡과 동일어임을 비로소 깨닫는다. 이렇게 익숙지 않은 용어들로 채워졌기 때문일까. 독창적인 그의 에세이의 관문이 꽤나 흥미롭게 보이는게 사실이다. 털썩, 쩐다, 대략난감, 캐안습, 즐. 이렇게 대략난감한 다섯 개의 장으로 나뉘어진 구성을 보면서... 나야말로 캐안습이로구나..쩐다 쩔어.. 이런 단어들을 연발하는 자신을 발견. 무서운 전파력을 가진 단어라더니, 과연 그 말이 사실이었다. 털썩..

장편이 아닌 단편으로 글을 쓰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아니, 그보다는 짧은 문장에 자신의 생각을 담아내기가 힘들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욱 정확할 것이다. 이런 방면에서 저자는 타고났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내가 그의 소설보다는 에세이를 많이 보게 된 연유이기도 하다. 하나의 글 속에 나타난 그의 삶과 인생철학을 엿보면서 나는 쉽게 생각되지만, 막상 실행하려면 쉽지 않은 일을 하고 있었다. 그가 말하는 삶을 통해 나의 삶을 돌아보는 것. 자신도 모르게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만큼 꾸밈없이 자신을 표현하는 글 속에서 치유를 받는다고나 할까. 누구나 동감할 수 있는 글이라면 이미 그걸로 게임오버 아니겠는가. 그렇기에 언제부터인가 글을 읽으면서 나 스스로 정한 잣대 속에는 얼마만큼 저자 자신을 드러낸 글인가가 포함되어 있다. 솔직한 글에서 느끼는 감명은 그 어떤 명언보다 큰 울림이 있기에.

이런 점에서 이 책은 마음에 든다. 길지 않은 글에 자신의 젊은 날 상처와 현재의 생각들, 그리고 빠질 수 없는 유머까지 그야말로 솔직, 담백한 그를 볼 수 있다. 낭만과 감성이 살아있길 바라는 세상에 던진 저자의 생각들에 심히 동감하며 책을 보는 내내 진지했다, 웃었다, 씁쓸했다를 반복하게 되는 나 자신을 보게된다.

아, 돌아보면 눈물겨워라. 마음이 비우기 전에 내장이 먼저 비어 있었던 내 젊은 날.

---p228

‘다시 20대로 돌아간다면 무엇을 하실 겁니까?’라는 질문에 단호하게 돌아가지 않겠다는 이외수. 열등감이 많았던 젊은 시절이 있었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그에게서 나는 오늘도 힘을 얻는다. 절망의 이빨에 심장을 물어뜯겨본 자만이 희망을 사냥할 자격이 있다. 이 말을 되새기면서.